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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사랑과 미술 ㅣ 아트 라이브러리 8
마이클 카밀 지음, 김수경 옮김 / 예경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처음 시작할 때 저자가 약간 어려운 말을 마구 쏟아내는 바람에 약간 주춤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 뒤론 비교적 순탄했다. 책은 도서관에 빌려 읽다가 반납하고 사서 읽었다. 미술책은 한번 읽고 끝이 아니라, 모든 분야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자주 들춰보게 된다. 그때마다 도서관을 가는 건 귀찮은 일이고 책도 맘에 들어서 샀다. 이 책도 그렇다. 이 책은 단순한 중세 시대에 사랑을 주제로 한 그림을 설명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생활방식, 사회현상까지 사적인 것부터 공적인 것까지 모두 다루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미술에 국한된 건 아니다. 이런 역사적인 어떤 흐림은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쳤고 거기에 미술도 포함되어 있다.
중세 그림이 다른 시대의 그림보다 훨씬 매력적인 이유는 숨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암호화되어 있는 편지를 읽는 느낌인데, 타로를 탁자에 펼쳐 두고 그 그림에 그려진 여러 상징을 읽고 해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런 일이 처음엔 나도 귀찮고 어렵게 느껴졌는데, 사실 지금도 중세의 알레고리라던가 상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지만 조금씩 알아갈수록 재미있다. 마치 타로를 그냥 예쁘장한 그림 정도로 알았을 때와는 다르게 그 안에 그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조금 알았을 때와 느낌이 다른 것처럼 중세의 그림도 그 비슷하다.
이 책의 주제는 중세의 사랑이다. 중세 사람들은 어떤 사랑을 했을까? 흔히 우리가 아는 중세의 사랑은 중세풍 사랑이라고 해서 기사도를 쉽게 연상한다. 그래서 기사 윌리엄 같은 영화를 보면 중세의 기사나 귀족은 사랑하는 연인의 손수건이나 물건을 품에 간직한 채 거친 마창시합을 즐기곤 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모든 걸 받치고 목숨을 내거는 그런 것이 중세풍 사랑일까? 그러나 중세를 다룬 책을 좀 더 읽다 보면, 중세는 지독히 가부장적인 사회이고 또 지독히 여성혐오적인 사회라는 걸 알게 된다. 기사도니 중세풍 사랑이니 혹은 궁정풍 사랑은 사실 중세의 사랑을 설명하지 못한다. 동성애적,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중세는 나르시즘에 빠진 남성의 가부장적 사랑으로 얘기하면 좀 더 이해가 쉽겠다. 물론 이 서평에서 그 이야기를 다 할 순 없고 나중에 시간이 나는 데로 이 주제를 한 번 더 다뤄보려고 한다. 오늘은 서평이니깐….
간단한 이야기만 하자만, 이렇다.

여기 유니콘이 등장하는 그림이 하나 있다. <시각>이란 그림이고 굉장히 유명한 그림인데, 보면 유니콘이 자기 얼굴을 거울로 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유니콘을 유인할 수 있는 것은 순결한 처녀이다. 유일한 조건인데, 여성은 신체적인 조건, 즉 처녀성을 잃지 않은 여성만이 유니콘을 유인할 수 있다. 유니콘은 남성성을 강하게 상징한다. 유니콘은 일반적으로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데, 그것은 이마에 뿔로 대변된다. 그런데 잘 보면 유니콘은 단지 그녀의 순결한 처녀성에 유인된 것일까? (유치한 처녀성 이야기는 좀 썰렁하지만,) 사실 유니콘은 그런 처녀의 유혹에 빠진 것이 아니라 거울 속에 비친 자신에게 빠진 것이다. 중세 시대에 시각은 무척 중요하게 다뤄진 감각이다. 지금이야 시각은 그냥 가시광선이 반사되어 눈에 들어오는 시각적인 정보에 불과하지만, 그 당시는 그 이상이었다. 시각은 회화를 상징하기도 했다. 그래서 자기 모습에 반해서 수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르시스는 회화의 첫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왜 그럴까? 중세 인들은 완벽한 육체와 이성을 남성 자신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성이 감히 도전할 수도 다가설 수도 없는 어떤 이상이다. 지금 보면 유치했지만, 그 당시는 꽤 진지했다. (요즘 시대에서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어떤 대단히 부정적인 행위로 불쾌하게 생각하는 남성이 있다는 걸 상기해보자. 그다지 이해가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즉 고결하고 완벽한 남성을 상징하는 유니콘을 유혹하는 것은 처녀가 든 거울이다. (이것을 동성애로 해석하면 안된다. 이 부분은 설명이 필요한데... 암튼 우리시대의 동성애와는 성격이 다르다.) 딱히 유럽의 중세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시기에 동양도 이 비슷했다. 여성은 글을 잘 쓰거나 그림을 잘 그리면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그건 중세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회화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 아름다움은 나르시스처럼 자신의 완벽한 모습을 보는 것을 발견한 최초의 회화를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을 했을까? 그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내용은 무척 흥미롭다. 초반에 약간 어려운 용어가 좀 많이 나오는데, 저자의 글쓰기 방식이 그런 것 같다. 여기에 좀 적응하면, 사실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닌데, 아주 이해하기 쉽게 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루하게 중세 그림의 알레고리를 무수히 나열하고 암기를 시키는 그런 지루한 책은 아니다. 물론 내가 중세나 그 시대 때, 꼭 서구가 아니더라도 동양도 비슷할 테니 더 다양한 지식이 있으면 이해하는 폭도 더 넓을 것 같다. 이게 내가 책을 산 이유다. 몇 년 있다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찾아볼 수 있으니깐 말이다.
이 책은 예경의 <아트라이브러리> 시리즈인데, 미술사조나 이렇게 미술과 관련된 주제를 폭넓게 다룬다. 이게 3번째 읽는 책인데…. 이 시리즈의 다른 책도 한권 한권 읽어봐야겠다. 간만에 읽는 미술책이고 내용이 좋아서 푹 빠져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