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지지 않는 방
윤슬 지음, 류정희 그림 / 담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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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난 보낸 가족의 애도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여전히 떠내보내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을 후회하며 이전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아버지 곁에는 말없이 곁을 지키며 그 슬픔을 함께 견뎌주는 딸이 있다. 아버지가 충분히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함께 한다. 혼자서 상실을 감당하도록 두지 않고 함께 한다. 그리고 가족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그림책을 보며 크리스티앙 보뱅의 <그리움의 정원에서>가 떠올랐다.
그림책의 아버지는 딸들과 긴 대화를 하며, 보뱅은 그녀와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기록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도의 과정을 통과한다. 지나간 존재를 단순히 그리워하는 것을 넘어 지금의 삶 속에서 그녀를 기억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움은 떠나간 사람을 향한 마음이면서 동시에 그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의 현재이며 그 존재와 함께 미래까지 나아가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사랑했던 존재를 기억하는 방식이 슬픔에 머무르지 않고
그 존재를 품은 채 다시 웃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것.
이것 역시 사랑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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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스트 문우식 - 회화와 디자인의 경계에서
문소연 지음 / 현암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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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세계의 기준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그 기준에 질문을 던진다.
문우식의 예술의 길을 따라가며 익숙한 방식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펼친다는 건 어떤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까 생각했다.

문우식은 강렬한 색채로 <자화상>을 표현했다.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화가의 독특하고 개인적인 시선을 그림에 담았다. 그리고 이듬해, 세 명의 젊은 예술가와 <4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는 당시 기성 미술계의 권위에 도전하는 새로운 전시였다.

이후 그의 삶은 회화에서 디자인으로 이어지며 관광포스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965년 이후 포스터 <서울>, <부산>, <인천항>에는 당시의 도시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모습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당시 시대를 보여주는 동시에 화가 특유의 회화적 표현이 디자인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그에게 디자인은 회화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자신의 예술을 사회와 연결하는 또 다른 길이었을 것이다. 회화로 표현하던 자신의 세계를 포스터로 확장해 가며 회화와 디자인의 경계에 서게 된다.

그러나 이후 디자인이 점차 정보 전달과 인쇄 기술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문우식의 회화적 표현은 시류에서 멀어졌고 그의 작품 역시 점차 잊혀졌다. 그의 새로운 시도는 그 시대에 굉장히 의미 있었으나 어느 순간 잊혀졌다. 이러한 사실이 먹먹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아버지의 삶을 다시 기억하여 기록하는 딸의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새로운 길을 걸어갔으나 잊혀진 예술가 아버지를 다시 세상에 펼쳐내는 마음이 어땠을까.
아버지가 남긴 작품과 기록을 살피고, 그가 살아간 시대를 되짚으며 아버지의 예술과 그가 살아온 시간을 세상이 다시 기억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알던 아버지를 넘어 도 다른 모습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의미 있는 일을 해주어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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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 아라로아, 나에게로 - 광활하고 눈부신 뉴질랜드 3000킬로미터, 혼자 걸은 아홉 달의 기록
나오미 아널드 지음, 신정은 옮김 / 그림나무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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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처럼 견고했던 나오미의 원칙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함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깎여지고 자신의 한계를 수도 없이 마주하며 비로소 체념을 배우고 순리에 자신을 맡긴다.

오직 그녀가 할 수 있는 단 하나, 걷는 것.
한 발 앞에 다른 한 발을 놓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속하는 것.

그렇게 그 긴 여정을 온몸으로 통과해 나간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9개월간의 여정을 이렇게 몇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저 송구스럽다.
날것의 자연 속에서 마주한 자신을 날것 그대로 표현해준 나오미를 말없이 바라볼 수밖에...

드디어 마지막 날, 마지막 종착지인 북섬 북쪽 끝에 있는 케이프 에잉가의 등대 앞에 서며
문득, 고요한 무언가를 깨닫는다.
그건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한 느낌, 만족감.
그저 내가 하기로 마음먹은 일을 끝냈다는 담백한 사실에서 오는 평온이었다. (319)
(이 부분에서 길 위에서 온 몸으로 생을 통과한 후 마침내 평안이 깃든 얼굴이 된 골드문트도 떠올랐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헤세))


이제,
테 아라로아 길, 그 길 위에서 만났던 이들, 그리고 길을 걷던 자신에게도 작별을 고한다.

“지난 9개월의 여정이 나라는 존재를 남김없이 태워버렸다. 이제 모든 것이 타버린 뒤 남겨진 내가 누구인지 마주해야 할 시간이다.” (332)


장 그리니에의 <섬>이 떠올랐다.

“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것은 불가능한 일 –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섬 p93)

나오미의 이 여정(여행)이 단순히 낯선 장소로의 이동이 아닌 자신에게서 멀어졌다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과정처럼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고통과 고군분투하며 나아갔던 걸음과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었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을 통과하며 나오미는 자신 안에 있었으나 아직 만나지 못했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먼 과거부터 이 여정을 그렇게나 열망했는지도 모른다.

나를 만나기 위해 더 먼 길을 향해 나아간다는 건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는 긴 여정이지 않았을까.

먼 길을 떠나기 전의 나와 돌아온 뒤의 나는 같은 사람이면서도, 더는 완전히 같은 사람일 수 없으니까.

*

내가 그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길이 나를 통과해 흐르고,
그 길 위의 모든 것이 비어있는 나를 온전히 채워가는 것.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가 다시 일으켜 세워 더 단단해 만들어 가는 것.

자신이 해낸 것이 아닌 나를 움직이게 한 건 테 아라로아라고..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꿋꿋이 버티는 것뿐이었다고.

테 아라로아가 나에게로 온 것이다.

이 여정의 끝에서 제목을 되뇌며 전율과 숙연함이 동시에 흐른다.

“테 아라로아, 나에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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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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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소박한 농부이자 정원사이고
시인, 소설가이며
화가이다.

사랑하는 시, 소설과 그림 그리고 자연으로 세계와 만나는 사람이다.

자연의 언어를 섬세하게 감각하고 자신의 언어로 세밀하게 담아낸다.
때로는 시로 때로는 그림으로...
자연 속에서 삶과 세계를 바라보기에 그 언어에는 헤세 자신이 담겨있다.

아름답지만 동시에 덧없음이, 화려하게 피어 경이롭지만 사라져 가는 ...

자연은 우리의 생과도 닮아있어 유년의 꽃들은 지고 빛이 바래 가지만
그 기억을 자기 안에 간직하고 나아간다. 그리고,

많은 길을 돌아오더라도
여전히 꿈꾸고 소망하며 환하게 불타오르는 찬란한 빛(185)을 바라보며
다시 걸어간다.

오직 예술을 지향하며...
말로든 물감으로든, 음으로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겪으며
그는 삶을 진실하게 말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한다.

나는 헤세의 소설들을 읽으며
그가 궁금했다.
이 산문을 읽는 동안
헤세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고요히 꽃에 몰두하듯이(248)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렇게
그의 글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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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이야기 ㅣ 이야기의 낮과 밤 1
알베르 카뮈 외 지음, 이재경 외 옮김 / 유선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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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식물의 세계 끝에는 하늘이 있고 다른 끝에는 흙이 있다는 마음으로
수록된 작가들의 정원을 거닐었다.


봄과 겨울의 약속처럼
이 책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정원의 입구와 출구에 두고 있다.


첫 번째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듯
조용히 첫 문을 열면 가장 먼저 카뮈의 바다와 해변, 태양 그리고 그가 사랑한 폐허가
아름다운 티파사를 만날 수 있다.

여름 바다를 사랑한 대표 작가인 카뮈의 정원은
침묵과 고독마저 사랑하게 만드는
단순함에서 위대함을 길어 올리는 그 모두와 함께 나누는 연대의 자유가 느껴졌다.


빛으로 열리는 정원의 숲을 지나가면
4월과 8월 그리고 10월과 11월의 차페크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엔 차페크의 열두 달 정원 이야기를 모두 만날 수 없지만
그의 발끝과 숨결이 닿아있는 계절의 풍성한 숲을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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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무언가를 결심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오 헨리의 「장미, 계략 그리고 로맨스」의 정원이 그랬다!

장미를 지나면 가장 뜨거운 태양빛을 만나는, 여름 동안 사라진 것들을 조용히 바라보면
새로운 마음이 열리는 헨리의 소설은 이야기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눈빛으로 전하는 거라는 감각의 방향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이 책의 정원을 다 돌아보고 빠져나오니 새벽 3시...
에밀리 디킨슨은 항상 새벽 3시에 책상에 앉아 글작업을 했다고 한다.
나는 늘 내 방 창문에 작은 나만의 정원이 보인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보곤 한다.


「정원 이야기」는
누군가의 신발을 바깥으로 돌려 놓아주는 배려처럼
나의 삶에 꼭 필요한 힘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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