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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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을 읽기 전에,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볼 책!'이라는 이 슬로건 때문에 다소 기대치를 낮추고 책을 접했음을 고백해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류의 흥미진진하고 한번 잡으면 놓기 힘든 그런 책이 아니라, 다소 심심하고 지루하지만 읽어내려가면 여기저기서 잔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리라는 것.
결과적으로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 책은 잔잔한 재미를 주는 무게 있고 위트 있는 책이라기보단, 스토리를 따라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가에 깜짝 놀라게 되는 그런 역동적인 '이야기'다. 이름 모를 작가의 글을 갖고 를 찾아나서는 모험, 주인공을 둘러싼 상황의 스릴과 궁금함, 지하에 펼쳐진 운하임이라는 이름의 롤러 코스터, 부흐링이라는 더없이 사랑스럽고 환상적인 종족들이 일구어낸 세계 등등... 이 책은 오히려 흥미로운 모험과 환상적인 세계로 구성된, 잘 만들어진 테마 파크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는 사이, 책에 취해버린다.

물론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볼 책이라는 말 역시 거짓말은 아니다. 이 모든 모험이 이루어지는 세계가 '책'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모험의 동인, 갈등의 원인, 사건의 해결 방식, 심지어는 적 그 자체까지 모두가 책인데, 당연히 책을 읽는 사람이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책은 책을 읽는 사람만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종류의 책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라도 책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정말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게 될 것이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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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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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란 참 묘하다. 아주 작은 연결의 끈이라도 있다면, 서로 가까워질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자리했던 어떤 만남이, 평생을 걸쳐 사귀게 될 좋은 인연의 시작일 수도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스쳐 지나갔던 어떤 작은 만남으로 인해, 몇십 년간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경우도 있다.

미야베 미유키에 나오는 인간 관계는 그 평범한 끈을 따라 연결되어 있다. 모방범이 그러했듯이, 낙원 역시 소설의 전개는 그 가느다란 끈을, 제 3자인 시게코가 따라가면서 진흙 속에 묻혀 있는 사건이라는 큰 덩어리를 파헤쳐 전모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얽히고 얽힌 인간 간의 끈을 따라, 사건을 파악해낸다. 그러나 그 시선은 모방범의 냉혹하고 현실적이며 섬뜩한 '피스'의 입장과 달리, 나이는 어리지만 마음이 따스하고 타인을 동정할 줄 아는 히토시와, '코끼리를 닮은' 히토시의 어머니 도시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렇기에 모방범의 후속작이지만, 모방범과 달리 낙원은 따뜻하다. 히토시가 얽힌 그 사건은 너무나 섬뜩하고 충격적이지만, 그 사건을 따라가는 시게코의 모습, 그가 발견하는 히토시의 생전 기억들, 그리고 히토시의 어머니인 도시코... 그들과 연관된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슬프지만, '따스함'이 있다. 도시코의 온후하고 다정한 목소리처럼.

그래서 그들을 보고 있으면, 이 책의 제목이 낙원인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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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Watchmen 2 - 시공 그래픽 노블 시공그래픽노블
Alan Moore 지음,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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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코믹스 류를 잘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상당히 어색했습니다.
만화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텍스트와 - 심지어 챕터와 챕터 사이에는 대놓고 글이 나오기도 함 - 밀도 높고 과장이 없는 그림이 다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읽는 게 아까워지는 그런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내용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히어로가 필요 없어진 시대에, 과거의 히어로들이 살해되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를 찾아 로어셰크라 불리는, 과거의 히어로 중 하나가 행동을 개시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히어로물이지만 히어로물답지 않은 만화. 너무 우울하고 어두운 내용이고 보여주는 방식이 미국풍 코믹스라는 점 때문에 취향을 상당히 탈 것 같긴 합니다.

시대에 염증을 느끼는 히어로. 히어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 타락하는 히어로. 히어로의 우편향적인 사상에 대한 은근한 비꼼 등등. 한 마디로 만화가 정말 복잡합니다.

중간중간 정말 인상적인 문구들이 많았습니다. 간단히 두 덩어리만 소개하자면...

"예전에 에이드리언이 나한테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여행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이 기억나는군."
"흠. 파라오들과 함께 퍼스트클래스로 갈 수만 있다면 좋은 생각이겠군요..."
"...하지만 우리들이 떠나는 방식으로 봤을 때, 거의 3등석일 것 같아."

'침대에 앉았다. 로르샤흐의 얼룩을 보았다. 가지가 뻗어나간 나무이고 그 아래 그림자가 진 거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전에 찾아냈던 죽은 고양이가 보였고, 살찌고 빛나던 구더기들은 장님처럼 몸부림치며 서로의 위로 뒤엉켜 급히 빛을 피해 굴을 파고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 역시 진짜 공포를 피하는 것이다.
진짜 공포는 이것이다. 최후에 그것은 단지 아무 뜻도 없는 텅 빈 암흑일 뿐이다.
우리는 혼자다. 그 외엔 아무 것도 없다.'

괴물들과 싸우지 말라. 싸우는 동안 당신 자신도 괴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심연 속을 들여다보게 되면, 심연 역시 당신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이건 몬스터 덕분에 너무 유명해진...)



결론은 강추합니다.

마지막 순간의, 로어셰크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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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브 디거 밀리언셀러 클럽 66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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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브 디거는 한 마디로 말해서 흥미진진한 추리활극이다. 딱히 복잡한 트릭이 사용되는 것도 아니고, 추리의 과정이 놀랄 만큼 충격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읽히는 재미는 그 웬만한 추리 소설 못지 않은 박력을 지닌다. 그 박력의 힘은, 바로 박진감 넘치는 플롯과 캐릭터의 힘이다.

야가미라는 소악당은 결코 싫어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소악당'이기에 그러한 것이리라. 겉보기에는 악당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인간에 대한 따스함을 잃어버리지는 않는. 그래서 호감을 가질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주인공이다.

무엇이 옳은가? 이사카 코타로의 글에서 항상 보이는, 실제로 옳은 것과 옳아야 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 이 글도 조심스레 손을 대고 있다.  다카노 카즈아키 역시 이사카 코타로 과인 것 같다. 옳은 것과, 법으로 옳다고 선언되는 것은 다르다. 다만, 이사카 코타로와는 달리 어느 쪽이 틀리다고 말하지는 않아서 베일을 벗으려 하지 않는 여인처럼 더 매력적인 다카노 카즈아키.

그 가운데에서 도망가는 야가미와 여의사와의 이야기, 그리고 마녀 재판에서부터 비롯하는 그레이브 디거의 이야기.

아마 한번 쥐면 끝까지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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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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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을 기다리는 한 청년이 있다. 죄목은 10년 전, 손도끼로 노부부를 살해하고 지갑을 훔친 죄. 정황 증거가 워낙 강력해서 사형을 도저히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단, 청년은 범행 시간 직후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서 범행 시간을 앞뒤로 몇 시간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기억하지도 못한 채 죽어야 한다.
그 청년이 죽음을 앞두고,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낸다. 그날 자기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는 것.
이 단서를 토대로, 전직 교도관이었던 남자와 그 교도소에서 상해치사로 2년을 복역했던 청년이 함께 사형수의 혐의를 벗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시작이다.

제목이 13계단인 이유는, 사형 집행이 내려지기까지 법무성에서 문서 결재를 위해 거치는 절차가 13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역시 추리 소설을 쓰려면 법률 공부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원래 이 쪽으로 지식이 좀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위해 이렇게 공부했다면 정말 대단한 열정이다.
후기에 미야베 미유키 아주머니의 멘트가 있다.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모양인데, 마찬가지로 추리 소설 작가인 다른 심사위원들 중 두 명이 법대 출신이었다고 한다. 추리 소설을 쓰는 데도 유리한 건 법대와 의대라니. 세상은 불공평해 ...

거두절미하고, 재밌다.
전직 교도관이었던 남자의 사형 집행 이야기라든가, 전과자인 청년의 10년 전 이야기라든가... 캐릭터에 대해 시선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사건에 대해서는 불필요한 부분이 전혀 없이 간결하고 현실적이다. 특히 사건을 풀어나가기 위해 전개해가는 방식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미야베 미유키의 방식과 비슷한 듯. 머리가 대단히 좋은 탐정 한 명이 사건을 깔끔하게 해결해버리는 게 아니라 단서를 찾고 찾고 찾아서 몸으로 뛰어다니며 답을 구하는 것. 그래서 소설 내용의 현실성에 더 신뢰가 간다. 동시에 사형을 집행한 사람과, 사형을 구형하는 사람과, 사형을 앞둔 사람을 모두 그리면서 사형에 대한 아이러니한 시각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 심사위원들이 대상으로 선정하면서 장래의 라이벌을 탄생시킨다고 투덜거릴 만하다는 생각이 확실히 ...

일본의 추리 소설 문화는 정말이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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