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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여름
김희진 지음 / 폭스코너 / 2022년 8월
평점 :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혀"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저자는 "고양이 호텔", "옷의 시간들", "양파의 습관", "두 방문객", "얼마나 이상하든"의 장편소설과 소설집 "욕조" 등을 썼습니다. 그럼 <다른 여름>을 보겠습니다.
한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검은 피부의 장세오, 37살인 그는 백화점에서 명품 브랜드의 바지, 셔츠, 넥타이와 벨트, 구두와 여행용 가방을 샀습니다. 비밀번호로 열리는 트렁크에 무언가를 넣고 숫자 다이얼을 흩트린 뒤에 주머니에 핸드폰과 지갑, 먹다 남은 우울증 약을 버리고 두통약을 넣은 뒤 집을 나섰습니다. 놀이공원의 호랑이 탈을 쓰고 일하는 그는 5일간의 휴가를 받은 후 지하철을 탔습니다. 그의 엄마는 장세오에게 형과 누나처럼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며 죽기 전까지 결백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죽고 난 후 19살 난 그를 남기고 가족들은 사라졌고 지금까지 연락이 없습니다. 지하철 종점에 다다르기 전 겨우겨우 용기를 쥐어짜내 사람들에게 자신과 하루 동안만 같이 있어주는 사람에게 트렁크와 이 안에 든 것을 몽땅 주겠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고, 검둥이 새끼라며 수작 부리지 말라고 합니다. 지하철이 열려 그는 겨우 내렸고, 의자에 앉아 두통약을 먹으며 괜한 일을 계획했나 후회합니다. 그때 어떤 여자가 세오가 한 말이 맞냐며 물었고, 트렁크를 들고 가려고 합니다. 세오가 꽉 쥐고 안 주려고 버티자 여자는 도둑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난동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런 상황이라면 그가 도둑으로 몰릴 수 있기에 세오는 트렁크를 들고 도망갑니다.
외국인 거리를 다니며 사람을 물색하다 공원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는다는 게 잠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고, 어떤 여자가 스페인어 할 줄 아냐며 물어봅니다. 그녀는 절박하고 간절하게 스페인어 번역만 할 줄 알아도 된다며 서툴러도 괜찮다고 다시 한번 물어봅니다. 그녀의 사정이 궁금한 세오는 무엇 때문에 그런지 물어봤고, 그녀는 사례는 꼭 할 거라며 다시 부탁합니다. 세오는 제발로 나타나 말까지 걸어준 그녀를 놓칠 수 없어 대학에서 배웠다며 오래돼서 잊어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녀 조소라는 도와만 준다면 며칠이 걸리든 상관없다고 답했고, 편지를 번역하면 된다고 합니다. 세오는 세 장에 걸친 장문의 편지를 보고 서한 사전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그녀는 곧바로 일어나 사러 갑니다. 다시 돌아온 그녀의 손엔 스타벅스 커피가 들려있었고, 근처 서점엔 사전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편의점에서 일회용 밴드를 주고 붙이라며 한국말을 어떻게 잘하냐고 물어봅니다. 세오는 자신의 신상을 말했고 그녀는 믿습니다. 소라는 대가 없이 명품 트렁크를 가지기 미안하다며 자신의 편지를 번역해 줄 때까지 세오와 같이 있겠다고 합니다.
사전을 사 오겠다는 핑계로 공원을 나섰던 세오는 명문 사립대학교에 가서 서한 사전을 샀고, 문구점에 들려 연필과 지우개를 사고, 편지를 복사한 다음 캠퍼스를 돌아다니면서 학생들에게 서어서문학과인지 묻어보았습니다. 계속 허탕만 치다가 도서관에서 복사본 뒷면에 서어서문학과 학생을 찾는다는 글을 쓰면서 다시 돌아다녔습니다. 겨우 한 학생이 그 글씨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밖에서 잠시 얘기하겠다는 말에 그는 낯선 검둥이인 자신을 따라와 주었습니다. 편지 복사본을 주며 돈을 주겠으니 번역해달라고 부탁했고, 그 남학생은 시험기간이라 빨리는 못하고 2학년이라 더딜 거라 말합니다. 세오는 괜찮다며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고 번역된 문장은 되는대로 문자메시지로 보내달라고 합니다. 공원에 다시 간 세오는 편지를 보낸 미겔과 그녀의 만남이 궁금해 물어보았습니다. 소라는 2년 전 산티아고 순례를 떠났고, 26일차 때 한국인 입양아인 미겔을 만났답니다. 하지만 미겔은 아기 때 입양되어 한국말은 전혀 못해서 둘은 짧은 영어와 몸짓으로 대화를 했고 함께 순례길을 동행했답니다. 소라는 미겔의 주소를 물었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그에게서 답장이 왔답니다.
세오의 트렁크 안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소라가 받은 답장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다른 여름>에서 확인하세요.
태어날 때부터 남과 확연히 피부색으로, 그것도 검정 피부색으로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에게마저 외면을 받은 장세오. 그에게는 분명 아버지였고 형과 누나였지만 그들에게는 그는 아들도 동생도 아닌 그저 피와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일 뿐입니다. 그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아들이라고, 형제 남매라고 수군거리고 욕하는 말을 계속 들었을 테니 그의 존재가 싫겠지요. 어머니가 죽기 전까지 세오를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말했지만 마음 한편엔 의심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만난 조소라가 솔직한 어머니를 믿으라며, 거짓말도 진짜로 믿고 사는 세상인데, 진짜를 진짜로 안 믿으면 어떡하냐며 타박합니다. 피부색이 다른 세상에서 살면서 이유 없는 모욕과 폭력을 받고, 경계와 경멸과 천대를 당한 세오는 그를 믿어주는 소라의 말에 감격합니다. 타인의 친절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세상을 살아왔던 세오는 그녀라면 자신의 뜻을 따라주리라 생각했고 그렇게 그녀와의 여행은 시작됩니다. 소라는 마음이 따뜻했고, 그를 걱정했으며, 그를 대신해 화를 내고 슬퍼했습니다.
<다른 여름>을 읽으며 우리와 다른 모습과 행동을 지닌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했나 생각했습니다. 말로는 그러지 않아도 눈빛으로, 행동으로, 생각으로 그들을 테두리 밖으로 배제하지 않았나 떠올려보았습니다. 편견이 얼마나 사람의 생각과 행동, 말을 가두는 것이며, 편견으로 인한 차별을 당한 사람들에게 큰 상처가 되는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글로벌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편견과 차별에 갇힌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녀는 까만 피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상처를 볼 줄 아는 섬세함을 가졌다.
아무도 타인의 발뒤꿈치 따윈 보려 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p. 57)
"누구나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전 후회하는 삶이 좋아요.
후회가 없으면 반성도 없을 거고, 반성이 없으면 달라질 내일도 없지 않겠어요?" (p. 107)
"의사를 제외하고 두통은 좀 어떠냐고 물어봐 준 사람은 그녀가 처음인 것 같아서였다.
자기가 누군가의 염려가 됐다는 사실, 그 감정이 한없이 낯설어서 그는 눈을 깜빡거리고 또 깜빡거렸다." (p. 165)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