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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평전 - 이탈리아 성당 기행
최의영.우광호 지음 / 시공사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1998년 교황청립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에 입회하고
이탈리아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최의영 신부는
현재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 동아시아 준관구장으로 재임 중이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한 우광호 씨와 함께
이탈리아 성당을 여행하는 <성당 평전>을 펴냈습니다.

<성당 평전>은 피렌체, 나폴리, 베네치아, 바리, 밀라노로 나눠 총 80곳을 소개합니다.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곰브리치 세계사"에서
"중세가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이라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이 새로운 시대는 아침에 비유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7백 년 전 피렌체 사람들은 환희와 낙관주의로 들떠
높은 수준의 삶을 영위했습니다.
피렌체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르네상스 문화와 예술, 건축이 꽃 피기 시작합니다.
암울하고 어두운 나폴리의 역사는 빛의 도시, 태양의 도시라 불렸습니다.
하지만 신도시 나폴리의 역사는 평탄하지 않았지요.
수많은 주인이 이 땅을 지배하면서 지금도 높은 범죄율과 실업률로
이탈리아 정부의 골칫거리입니다.
아름다운 항구도시라는 유명세가 무색할 정도로
거리는 쓰레기로 넘쳐나고, 배기가스와 교통 체증은 심했으며,
치안도 불안했습니다.
나폴리 사람들이 태양의 빛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어둠을 굳건히 딛고 일어섰기 때문이죠.
나폴리 거리 곳곳에 스며든 비잔틴, 아랍, 스페인과
프랑스, 바이킹의 문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 바이킹이 그랬고,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이 그랬으며,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그랬습니다.
5세기 로마제국이 힘을 잃어가던 시기, 훈족이 북이탈리아를 공격에
그곳에 있던 이들이 베네치아로 도망 왔습니다.
유배 아닌 유배의 땅에서 그들은 해양제국을 건설했고,
그곳에서도 성당은 지어졌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이탈리아 바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산타클로스는 4세기 터키 남부 미라에서 사목했던
주교 성 니콜라오를 지칭하며, 이 니콜라오를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산 니콜라 대성당이 풀리아주 바리 구시가 광장에 있고,
성당 지하 경당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유해가 무셔져 있습니다.
소아시아에 있던 성 니콜라오의 유해가 이곳에 모셔진 것은
십자군 전쟁 직전인 1087년이라고 하며,
이후 바리는 1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순례지 중 하나가 됩니다.
롬바르디아 주는 유럽 대륙과 이탈리아반도를 잇는 교통 중심지입니다.
그러다 374년에 성 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의 대주교가 되면서
롬바르디아는 북부 이탈리아 종교 중심지가 됩니다.
오늘날 이탈리아에 귀속된 것은 1859년인데,
롬바르디아가 많은 사람의 손을 탄 이유는 땅이 비옥했기 때문입니다.
쌀 생산량이 많아 돈이 많고, 그러다 보니 상업 또한 발전했습니다.
자연스레 성당 건축과 종교 예술도 발전했으며,
롬바르디아의 최대 도시 밀라노에는 1500년을 넘긴 성 암브로시우스 성당이
지금까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 성 마리아 성당과 그 성당에 전시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수많은 미술 작품들이 소장된 브레라 미술관,
오페라극장인 라스칼라 극장은 롬바르디아가
영적·정신적·문화적 중심지임을 드러냅니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을 지금의 우리가 보는 것은
옛 유럽 서민들의 생생한 삶을 엿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우리의 돌잔치처럼, 태어난 아기의 세례를 그곳에서 받았고,
일상의 대소사를 위해 그곳에서 기도했고,
죽은 이에 대한 마지막 예도 그곳에서 치릅니다.
<성당 평전>은 이탈리아 주요 도시의 성당 80곳을 여행하면서
유럽 역사에서 종교와 신앙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솔직하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