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미 마인 워프 시리즈 8
배리 B. 롱이어 지음, 박상준 옮김 / 허블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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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에서 태어난 저자는 부인과 함께 인쇄 회사를 경영하다가 30대 후반에 발표한 <에너미 마인>이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존 W. 캠벨 신인작가상 등 주요 SF 문학상을 석권하고 곧장 영화 판권까지 팔리면서 주목받는 SF 작가로 발돋움했습니다. 그 뒤로 "The Homecoming", "Manifest Destiny", "Infinity Hold", "Circus World", "The Fireteller Tales" 등 꾸준한 작품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2021년 장편소설 "The Hook"으로 자유주의미래학회에서 수여하는 프로메테우스상을 받으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럼 저자의 걸작 <에너미 마인>을 보겠습니다.



광물자원 때문에 드랙종족과 지구인들이 목숨 걸고 싸울 만큼 중요한 파이린 4호 행성에서 지구인 윌리스 데이비지와 드랙종족 제리바 쉬간이 전투기에서 싸우다 불시착합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작은 섬에 둘은 누워있었고, 큰 파도들이 밀어닥치는 곳입니다. 파도에 떠밀려가지 않기 위해 제리바의 캡슐 주위로 돌을 쌓았습니다. 그 작업을 여러 날에 걸쳐 완성했는데, 이 행성의 하루는 다른 곳에서의 하루보다 세 배 정도 더 긴 듯합니다. 캡슐 안에 있는 비상식량을 조금씩 먹으며 구조대들이 오길 기다렸으나 가망이 없어 보였고, 데이비지는 더 큰 육지로 가자고 합니다. 쉬간은 임신 중이라며 예전에 떨어지며 아이를 잃었다면서 두려움에 거부합니다. 하지만 엄청난 파도가 몰아치고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17일 만에 눈을 뜹니다. 그 사이 둘을 태운 캡슐은 육지에 도달했고, 제리바는 나뭇가지로 침대를 만들고 불을 피워 그를 돌봤습니다. 둘은 서로의 언어를 배워 소통했고, 동굴을 찾아 그곳에 머물며 뱀 껍질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한 그들의 성경 같은 탈만을 읽기 위해 드랙의 문자를 배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쉬간의 출산이 다가왔고, 자신은 죽을 거라며 데이비지가 태어날 자미스에게 자신의 가계를 가르쳐 주고, 고향 행성 드래코로 데려가 달라고 맹세하라고 합니다. 죽은 쉬간의 몸에서 자미스가 태어났습니다.

어린 드랙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구조대는 올지, 자세한 이야기는 <에너미 마인>에서 확인하세요.




<에너미 마인>은 미국 SF 잡지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매거진' 1979년 9월 호에 중편소설로 수록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휴고상, 네뷸러 상, 로커스상과 존 W. 캠벨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는데, 이렇게 권위 있는 상을 동시에 석권한 것은 최초의 기록이었습니다. 하지만 읽는 동안 옛날 소설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 읽어도 충분히 매력적이기에, 그 당시엔 얼마나 대단한 소설이었을까 짐작이 됩니다. 외계 종족과의 조우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그들 사이의 우정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또한 성인식 때 200명이나 되는 자신의 선조의 전기를 암송하는 의식이 있는 드랙종족의 설정을 읽으며 선대 어른들 수백 세대를 기억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될 것입니다. 어릴 땐 명절날 조부모를 만나지만, 성인이 되면 그마저도 바쁘다고 잘 보지 못하는 요즈음을 돌이켜보면 선조를 기억한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고리타분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고리타분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점점 잊어지기에 현대인들은 마음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직업이 아니라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게 한 <에너미 마인>, SF의 걸작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습니다.


재미있었다. 함께했던 그 어느 누구와보다도 더 재미있었다.

우리가 우주선이나 다른 뭔가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나는 남은 인생을 자미스와 걷고 노래하고 수평선을 바라보며 지내고 싶었다.

p. 146~7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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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2
카밀라 레크베리.헨리크 펙세우스 지음, 임소연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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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데뷔작 "얼음공주"가 유럽 전역에서 200만 부가 팔리며 출판계의 주목을 받은 저자는 이후 출간된 작품들 또한 총 2600만 부 이상 판매되어 유럽 최고의 범죄 심리 작가가 되었습니다. 2019년 세계적인 심리술사인 헨리크 펙세우스와 함께 집필한 3부작 또한 60여 개 국가에서 출간되었으며 현재 TV 영상화 제작 진행 중입니다. 그럼, 3부작의 첫 번째인 <박스 2>를 보겠습니다.



칼 꽂기 마술 상자 안에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젊은 여자 하나가 칼날에 꿰어진 채 놀이공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단서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경찰 미나 다비리는 율리아 팀장에게 외부 고문 역할로 마스터 멘탈리스트라는 별명으로 대중에게 심리 마술 공연을 펼치는 빈센트를 건의합니다. 빈센트는 피해자의 허벅지에 새겨진 줄들을 보며 로마 숫자 Ⅲ임을 알려줬고, 그를 율리아 팀장,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루벤 회크, 패턴을 파악하는데 뛰어난 크리스테르 벵트손, 분석이 월등한 페데르 옌센에게 소개합니다. 자살 사건으로 종결된 앙네스 세시의 허벅지에 로마 숫자 Ⅳ가 새겨져 있었으며, 첫 번째 피해자 투바의 손목시계는 15시 정각, 앙네스의 시계는 14시 정각에 멈춰 있었습니다. 동일 인물이 벌인 살인 사건이며 연쇄 살인 사건임을 확인하고, 앙네스의 룸메이트이자 투바가 일하는 카페에서 같이 일하는 다니엘을 심문합니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으나 동석한 빈센트는 범인은 아니지만 숨기는 게 있다고 말합니다. 다운증후군 로베르트 베리에르는 꽃 도매시장 주차장 3단 캐비닛에서 지그재그 박스 일루전 방식으로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로베르트의 이마엔 로마 숫자 Ⅱ가 새겨져 있었고, 캐비닛 안에는 정각 2시에 멈춘 시계가 있었습니다. 검시관 밀다는 그의 위 속에서 털 뭉치를 발견했고, 생물학자 아버지에게 보여주니 밍크 털이라고 합니다.

세 시신이 모두 반드시 발견될 수밖에 없는 장소에 유기되었으며, 범인은 살인이 일어날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려는 것을 알아챈 빈센트는 날짜와 시간은 범인이 보내는 메시지의 일부라고 미나와 팀원들에게 말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피해자 로베르트는 며칠 동안 출입이 금지된 장소에 유기되어 죽은 날짜를 정확히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보전화를 받기로 했고, 어떤 남자가 전화를 걸어 5월 3일에 죽었다고 말합니다.

폐소 공포증과 편집증을 가진 빈센트, 중증 결벽증을 가진 미나가 연쇄살인범을 어떻게 잡을지, 자세한 이야기는 <박스 2>에서 확인하세요.




<박스 2>에서는 전편에 이어 새로운 시신이 발견됩니다. 이른바 지그재그 박스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무대 마술에 쓰이는 도구입니다. 조수가 상자 안에 들어가면 마술사는 몸의 일부를 비틀거나 옆으로 빼는데, 몸의 일부가 다른 부분과 일치하지 않음에도 조수는 불편해 보이지 않고 괜찮아 보입니다. 관객들은 놀라워하고 다시 박스를 맞추면 멀쩡한 조수가 나오면서 관객들은 환호합니다. 하지만 연쇄살인범은 마술도구만 사용할 뿐 일루전을 제거했기에 그 결과가 끔찍합니다. 도대체 살인범은 왜 마술도구를 택해서 살인을 하는 걸까요. 피해자 몸에 새긴 로마숫자의 의미는 주인공 빈센트가 말하듯이 카운트다운인 걸까요. 그러면 0이 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건지, 지금까지 보여준 살인사건 4, 3, 2만으로도 상상하기 힘듭니다. 살인범의 정체는 여전히 알 수 없고, 수사는 진전이 없지만 빈센트와 미나의 관계는 진전이 있습니다. 미나가 지켜보는 소녀와의 관계와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전에 빈센트에게 메시지를 담긴 책을 보낸 인물은 누구인지, 다음 권에서 확인해야겠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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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1
카밀라 레크베리.헨리크 펙세우스 지음, 임소연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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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데뷔작 "얼음공주"가 스웨덴에서 100만 부, 유럽 전역에서 200만 부가 팔리며 출판계의 주목을 받은 카밀라 레크베리는 이후 출간한 작품들 또한 총 260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대기록을 세워 유럽 최고의 범죄 심리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19년에 심리학 분야 베스트셀러 저자 겸 세계적인 심리술사인 헨리크 펙세우스와 함께 3부작을 집필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박스>입니다. 그럼, 60여 개 국가에 출간된 범죄 심리 소설 <박스 1>을 보겠습니다.



마스터 멘탈리스트라는 별명으로 대중에게 심리 마술 공연을 펼치는 빈센트 발데르에게 미나 다비리 경찰이 찾아옵니다. 일주일 전 칼 꽂기 마술 상자, 이른바 검 상자가 상단과 왼쪽 면에 칼자루가 꽂혀 있고, 아래와 오른쪽 면에 칼끝이 튀어나온 채로 놀이공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젊은 여자 하나가 칼날에 꿰어 있었습니다. 시신의 신원도 파악하지 못했고, 용의자도 없었으며,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단서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미나는 상관에게 외부 고문 역할로 빈센트를 건의합니다. 공연이 끝난 그와 만나 상자와 시신 사진을 보여줬고, 빈센트는 피해자의 허벅지에 새겨진 줄들을 보며 로마 숫자 Ⅲ임을 알려줍니다. 미나는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본 빈센트의 능력을 확인하고 그를 팀원에게 소개합니다. 경찰서장의 딸이며 리더십이 뛰어난 율리아 팀장, 모든 여자들을 꼬실 수 있다는 자의식 과잉남이자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루벤 회크, 패턴을 파악하는데 뛰어난 크리스테르 벵트손, 분석이 월등하며 얼마 전 세쌍둥이 아빠가 되어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페데르 옌센이 한 팀입니다.

빈센트는 전처 울리카와 이혼하고, 전처보다 8살 어린 그녀의 여동생 마리아와 결혼했습니다. 전처와 사이에 낳은 베냐민, 레베카와 지금 아내에서 낳은 아스카까지, 10년째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는 짝수에 집착하고, 긴장을 풀기 위해서 암산과 암호 풀이 등으로 신경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미나는 병적일 정도로 바이러스와 세균 박멸에 집착해 타인과 닿는 것도 싫어하고, 소독제를 구비해 다닙니다. 살균되고 소독된 부검실의 청결함에 불안이 사라지고 편안함을 느끼는 터라, 평소 평범하게 보이기 위해 애를 씁니다.

피해자 몸에 새겨진 상처를 로마 숫자로 보고 검시관 밀다에게 확인을 부탁했고, 최근 담당했던 사건 기록을 확인해 앙네스 세시 건을 발견합니다. 그녀의 허벅지에 새겨진 로마 숫자 Ⅳ가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첫 번째 피해자의 손목시계는 15시 정각, 앙네스의 시계는 14시 정각에 멈춰 있었습니다. 동일 인물이 벌인 살인 사건이며 연쇄 살인 사건임을 깨닫게 된 미나의 팀원들과 빈센트의 자세한 이야기는 <박스 1>에서 확인하세요.




시작부터 흥미진진합니다. 칼 꽂기 마술 상자에서 발견된 피해자와 총알 잡기로 죽은 피해자까지, 범인은 고전적인 마술 일루전으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오락으로 생각된 마술이 살인 기법으로 사용되어 앞으로 나올 피해자가 어떤 방식일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범인을 잡는 경찰들도 특별합니다. 무균에 집착해 평소 불안함을 느끼지만 판단력이 뛰어난 미나, 미투 운동으로 좌천되었지만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루벤, 누구도 찾지 못하는 패턴을 찾는 데 천부적인 크리스테르, 뛰어난 분석력을 가진 페데르까지 저마다 못나 보이지만 뛰어난 부분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고문인 빈센트는 마술 전문가의 눈으로 마술을 사용해 살인하는 범인을 프로파일링 해나갑니다. 마술로 사람을 어떻게 죽일지 계획하며, 피해자 몸에 메시지를 남길 정도로 철두철미하고 이성적인 범인은 동시에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준비 과정은 빈틈없지만 살인의 과정은 그렇지 않은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는 범인,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궁금증이 폭발하지만 정체는 오리무중입니다. 거기에 수사 과정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범인인듯한 남자의 이야기와 미나가 숨기고 있는 이야기까지, <박스 1>은 제목처럼 1권이기에 아직 풀리지 않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빨리 2권을 읽게 만듭니다. 이 소설이 왜 60여 개 국가에 출간되었는지를 처음 몇 장만 읽으면 바로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만큼 가독성이 좋고,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입니다. TV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어도 좋을 정도의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뛰어난 범죄 심리 소설, 읽으면 바로 빠져들 겁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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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기름
단요 지음 / 래빗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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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저자는 장편소설 "다이브", "마녀가 되는 주문", "인버스", "개의 설계사",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목소리의 증명", 중편소설 "케이크 손", "담장 너머 버베나", 소설집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르포 "수능 해킹(공저)"를 썼습니다. 2023년 문윤성SF문학상과 박자리문학상을 수상했고, 2024년 문학동네신인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럼, 저자의 <피와 기름>을 보겠습니다.



최우혁이 15살 소년이었을 때 외갓집이 있던 광양 백운산 자락에서 급류에 휩쓸려 죽다 살아납니다. 그를 구해준 것은 긴 머리카락을 등줄기까지 길러 묶은 소년으로 눈빛과 기운이 묘합니다. 이 일을 말하면 안 된다는 다짐을 받은 그는 사라졌고, 우혁은 그 이후 자꾸만 죽고 싶은 충동에 시달립니다. 철학 학술 동아리에서 만난 김 형은 우혁에게 도박을 알려준 장본입니다. 아버지와 지인들, 금융권에서 빚을 지면서 중독에 빠진 그는 본가에 들어와 폐인처럼 지내고 있던 중 김 형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도의적인 책임을 진다며 자신이 세운 논술 학원 보조 강사 자리를 제안합니다. 수락하고 일을 하며 겨우 사람처럼 지내는 그는 김 형과 점심을 먹던 식당 TV 프로그램에서 '교주를 죽여라'라는 사이비 종교 새천년파 이야기가 나옵니다. MC의 내레이션과 함께 소년 교주의 사진이 등장하는데, 계곡에서 보았던 소년의 얼굴이 거기에 있습니다. 학원으로 돌아와 일을 하다가 잠시 바람을 쐬고 돌아왔더니 그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1999년 집단 자살 사건 당시 15세였던 이도유는 소년 교주이자 재림 메시아로서 새천년파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12월 31일 종말을 확언했으며 모두를 사랑했습니다. 32명의 숭배자들은 은혜 속에 죽음을 택했고 12명의 아이들만 남았습니다. 집단 자살 사건 직후 교주가 증발하듯 사라졌고, 살아남은 아이들 중 일부가 새천년파 조직을 재구축해 교주 척살에 나섰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해 도망쳤기 때문에 세계가 지금에 이르렀다고 믿었습니다. 타락한 세계가 용서받을 방법은 이도유를 찾아내 죽이는 것 외에는 없다고 합니다. 새천년파 열심당원들은 이도유와 접점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 회유했고, 협박했으며, 납치해 죽이기도 합니다. 이도유의 거취와 기적의 규칙을 알아내기 위해, 그를 고립시키기 위해, 발붙일 곳을 없앤다면 어쩔 수 없이 하늘 왕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냐는 논리였습니다. 조강현은 새천년파 피해자 모임의 대표이며, 구 새천년파의 생존자 12명 중 최연장자입니다.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조강현은 보육원 출신의 신학교 자퇴생이었고, 이후 계열사를 여럿 거느린 대기업의 회장으로 성공했습니다. 새천년파와 조강현은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이도유를 쫓고 있습니다.

새천년파와 조강현을 피해 이도유는 설악산까지 데려다 달라고 우혁에게 요구하고, 그와의 동행은 어떻게 전개될지, 자세한 이야기는 <피와 기름>에서 확인하세요.




세상을 끝장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나쁜 사람이 잘 살고, 죄 없는 사람은 죽는 이 세상에 안녕을 고할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생명들이 안타까워 이대로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권한이 내게 있다면 그 권한을 준 신에게 도로 반납하고 싶습니다. <피와 기름>에서의 이도유가 그렇습니다. 감독 직분을 받은 이도유는 땅의 권세가 너무 강해지면 들고일어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합니다. 만약 이 땅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타락했다는 판단이 서면, 예수에게 그 결정을 전달할 권한도 있습니다. 이도유는 종말을 불러올 능력이 있었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니 인간의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글을 읽을수록 성경 속 내용, 신학적인 종말, 예수 재림의 의미까지 저자가 얼마나 심도 있게 인문, 철학, 종교를 조사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종교를 이런 식으로 보는 관점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불안해서 무언가에 기대는 마음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파고들어가서 만나게 되는 종교의 모습이 색달랐습니다. 누가 봐도 실패자의 모습인 주인공 우혁이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조금씩 변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까지 읽게 되면 그가 왜 주인공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세계를 지탱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평범하다 못해 실패자 같은 모습이라도 그런 사람을 믿어주는 또 다른 사람이 있기에 이 세상은 아직 망하지 않는가 봅니다. 저자가 보여주는 또 다른 희망의 빛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물론 이 믿음이라는 것 때문에 나쁜 일들도 벌어지고 그러죠.

하지만 세상을 망치는 힘이랑, 망가진 상태를 고착시키는 힘이랑,

역으로 고치는 힘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거,

p.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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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아들
안도 요시아키 지음, 오정화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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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일본 시즈오카현 출생으로, 메이지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저자는 1994년 "죽음이 내려앉았다"로 일본 추리서스펜스대상 우수상을 수상했고, 2000년 "귀자모신"으로 호러서스펜스대상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일본 내 권위 있는 문학상인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에 "수감"이 당선되면서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 소개된 <사라지는 아들>을 보겠습니다.



2025년 3월 3일의 미야즈 가즈오는 2008년 2월 24일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아들 케이스케가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 가자고 졸라서 사가미 호수에 왔고, 세 식구는 유람선을 탔습니다. 2층에 올라가 아들과 호수를 바라보는데, 강 후미의 안쪽 깊은 곳을 보더니 아들이 어른 같은 말투로 저기에서 살해당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케이스케의 목 주변으로 기묘한 무늬가 나타나는데, 마치 줄무늬 뱀이 목에 감겨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아파하거나 가려워하는 반응도 없고, 흔적을 문질러봤지만 점점 더 짙어집니다. 가즈오의 어머니 후미요가 이른 귀가를 의아해하며 느낌이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시청 공무원인 가즈오는 치과기공사인 아내 유키에보다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어 케이스케를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그날 오후에 잠이 든 가즈오는 어떤 남자를 목 졸라 죽이는 꿈을 꿉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고, 목을 조르던 감각도 또렷이 두 손에 남아 있습니다.

병원에서 케이스케를 진찰하고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혹시나 해서 최면 치료사에게 찾아갑니다. 최면에 들어간 케이스케는 지장보살 8개와 무덤 2개가 보인다고 하고, 물에 가라앉고 있다고 말합니다. 최면 치료사는 케이스케에게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고, 아들은 오이카와 에이치라고 말하며 아저씨가 자신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가즈오는 어젯밤 꾼 꿈이 떠올라 소름이 끼칩니다. 아들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도서관에서 사가미 호수에 관련된 신문을 검색하던 중 1975년 3월 7일 자 기사에서 오이카와 에이치가 사가미 호수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찾습니다.

가즈오가 전생에서 아들의 전생인 오이카와 에이치를 죽인 것인지, 그렇다면 살해 동기는 무엇인지, 오이카와는 1975년 3월에 살해당했고, 자신은 1975년 11월 10일에 태어났는데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혼란한 가즈오가 1975년 3월 3일로 시간 여행을 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사라지는 아들>에서 확인하세요




'백 투 더 퓨처'란 영화를 아시나요? 1985년에 개봉한 SF ·코미디 미국 영화로 타임머신을 이용한 시간 여행을 재미있게 풀었습니다. 주인공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괴짜 발명가가 만든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 과거로 갑니다. 그곳에서 만난 자신의 엄마가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는데, 그러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게 됩니다. 자신의 아빠와 만나 서로 좋아하게 만들어야 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렸는데요, 이렇게 시간 여행이란 것은 영화나 소설의 단골 소재이지만, 시간 여행이 발생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논리적 모순이나 역설 때문에 아직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아들>의 주인공 미야즈 가즈오도 시간 여행을 합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과거로 가서 아들의 전생인 오이카와 에이치를 만나고, 그가 자신의 어머니와 좋아하는 사이임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나흘 후엔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데, 그것을 알고 막습니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데, 돌아온 현재는 자신이 알고 있는 현재와 다릅니다. 오이카와는 아직까지 살아있지만, 자신의 아들은 없습니다. 다시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간 가즈오, 만약 내가 가즈오라면 어떻게 할까요. 이후의 펼쳐지는 가즈오의 행동에 백퍼 공감이 갑니다. 그동안 보여준 기사의 내용들을 멋지게 연결해 탄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예견할 수 없는 이야기의 끝을 향해가는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이 작품이 처음 번역되어 소개된 작품이라니, 저자의 다른 작품도 빨리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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