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는다는 것의 역사 - 우리는 왜 목욕을 하게 되었을까?
이인혜 지음 / 현암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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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며 한국의 목욕 문화를 조사한 저자는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서해안 어촌의 여성 금기와 서해 5도 민속 의료를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연구 보고서 "목욕탕: 목욕으로 보는 한국의 생활문화"를 집필하는 동안 자료 조사를 위해 전국의 목욕탕을 누볐습니다. 하루에도 두어 번씩 목욕관리사에게 세신 서비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럼, 발로 뛰어 연구한 목욕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한 <씻는다는 것의 역사>를 보겠습니다.



가장 오래된 목욕 문화의 흔적은 파키스탄의 중남부, 인더스강 하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류 3대 문명 중 하나, 인더스 문명이 남긴 최대의 도시 유적인 모헨조다로는 기원전 30000년 초에 지어져 기원전 2500~1800년 사이에 전성기를 맞이한 후 사라졌습니다. 모헨조다로는 물 관리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계획도시로 도시 곳곳에는 700개가 넘는 우물이 있었으며, 각 집에는 실내 배수관과 목욕을 위한 방이 마련되었고,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도 갖춰져 있었습니다. 그리스에서 공중목욕탕은 기원전 6세기 무렵 도시 국가에 등장했습니다. 공중목욕탕은 개인의 즐거움보다는 청결함이라는 덕목을 상기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로마의 도시 곳곳에는 테르마이라 불리는 대규모 공중목욕탕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테르마이 입장료는 무료거나 저렴했고 따라서 가난한 사람도 목욕이라는 오락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로마에서 테르마이는 황제의 성적표로 불렸습니다. 기독교 교리는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 영혼의 정결함을 우선시했고,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죄악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로마의 목욕 문화는 이슬람 목욕 문화로도 일부 스며들어 비잔틴 도시를 비롯해 이후 이집트와 시리아까지 널리 퍼졌고, 기독교의 영향으로 사라졌던 공중목욕탕은 십자군 전쟁에서 이슬람식 목욕을 경험하고 돌아온 군인들을 통해 유럽에서 부활했습니다. 근대 목욕 문화와 북미와 핀란드의 사우나, 인도의 쿰브 멜라, 일본의 센토도 살펴봅니다.

삼국 시대에서의 목욕은 부정을 쫓는 일입니다.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러 목욕은 더욱 성행했는데, 불교의 영향이 컸습니다. 불교의 계율에는 목욕 재계가 포함되어 있으며, 불교 경전에는 목욕 횟수까지 정해져 있었습니다. 고려 사람들은 시원한 시냇물에서 목욕하는 것뿐만 아니라, 온천욕도 즐겼습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엔 같은 성별이라 할지라도 벗은 몸을 드러내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 안에서 몸을 씻었고, 이로 인해 부분욕이 일반적인 목욕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특정한 날이 되면 반드시 목욕을 해야 했습니다. 3월 삼짇날, 5월 단오, 6월 유두와 복날, 7월 칠석과 백중이 그런 날입니다. 이날이 되면 조상들은 몸을 씻고 건강과 평안을 기원했습니다. 근대 이후 공중목욕탕은 일본인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유입되었습니다. 또한 온천 주변은 철도 개통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어 관광지로 발전했습니다.

한국 전쟁 후 도시로 몰린 인구가 증가하면서, 위생 시설의 부족도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중목욕탕은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부상했고, 목욕탕 거리 제한제가 폐지되자 목욕탕 수는 더욱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이런 목욕탕의 증가는 전국적으로 상하수도 시설이 갖춰진 것과도 맞물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공중목욕탕의 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으로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고, 아파트 안에 배스 유닛이 설치되어 점차 집에서도 목욕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편의시설이 갖춰진 찜질방이 늘어나고, 농어촌 인구가 감소하고, 남은 인구도 빠르게 고령화되면서 공중목욕탕의 이용객이 줄어들고, 운영 비용은 계속 올라 수익성은 점점 떨어져 문 닫는 곳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류가 언제부터 목욕을 시작했는지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목욕이 인간의 습성이자 문화적 행동임은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인류 문명의 시작부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목욕이라고 하면 신체는 씻는 것만을 떠올리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문화적 맥락이 따라옵니다. 공중목욕탕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모두 익명이지만 얼굴만 아는 사이를 넘어 자기들끼리 끈끈하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합니다. 서로 약속을 정해 만나는 사이도 아니고, 비슷한 요일, 비슷한 시간에 만나 친교 활동을 합니다. 그런 세월이 짧게는 수년, 길게는 공중목욕탕의 역사만큼이나 이어집니다. 같은 목욕탕에서 몸을 씻는다는 소속감,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상호작용이 있는 목욕탕 이용객 집단은 일종의 느슨한 지역 공동체입니다. 이제 이런 공중목욕탕이 자꾸만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억 속으로 사라질 뻔한 공중목욕탕 건물은 용도를 바꿔 새로운 공간으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카페, 쇼룸, 식당, 복합 문화시설, 영화빌딩 등으로 이용하는데, 레트로 감성과 맞물려 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앞으로 공중목욕탕은 어떻게 될까요. 2000년대 태어난 저희 아들은 어릴 때 제가 목욕탕에 데리고 갔는데, 2020년대 태어난 아이들은 아마 목욕탕을 가본 경험이 없을 것입니다. 20년 만에 공중목욕탕을 경험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존재하듯이, 공중목욕탕도 결국에는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닐지 벌써부터 아쉬움이 듭니다. 10년, 20년이 지난 후에도 옛 방식을 그대로 간직한 공중목욕탕이 어딘가에 있기를 바라며 <씻는다는 것의 역사>를 통해 목욕의 과거부터 현재를 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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