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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라 - 2024 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
김아인 지음 / 허블 / 2024년 9월
평점 :

1997년에 태어난 저자는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습니다. 열한 지역을 떠돌며 열두 군데의 학교에 다녔고, 열여섯 속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고도 늘 낯선 공간과 낯선 시간, 낯선 사람들을 상상하며 소설을 씁니다. 2024 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차지한 <스파이라>를 보겠습니다.

어느 날, 에피네프라는 낯선 전염병에 전 세계 사람들이 걸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혼란에 빠졌습니다. 기억과 인격을 데이터화하는 정신 전산화 기술의 개발과 그 기술을 독점해 고객들에게 제2의 가상 인생 서비스를 제공하는 AE라는 거대 회사가 세워졌습니다. 알고 있던 것과 알지 못하는 것, 대비해 오던 것과 조금도 대비하지 못한 것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뒤섞이는 그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이후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거기에 적응해 내지 못한 인간이 어떻게 될지 조금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한차례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후, 주인공 웨이쉬안의 애인 페이가 그녀의 오빠가 AE의 보존 구역에 있다며 대화를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AE 입주 고객의 뇌와 척수를 들어내고 남은 신체인 반송체를 폐기하는 일을 담당하는 웨이쉬안은 도와줄 수 없다고 말했고, 페이는 에피네프에 걸려 격리소로 옮겨졌습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은 AE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고 연락이 끊겼는데, 그녀가 반송체로 그 앞에 옵니다.
AE 연구원 하라바야시 가스미는 13개월 전 동면 상태에서도 뇌가 인격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어 뇌와 척수를 꺼낼 필요가 없게 되는 로밍셀 기술을 개발합니다. 하지만 회사는 프로젝트를 폐기하고, 지금의 방식을 계속 고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AE는 서버 시스템, 뇌와 신경계, 호르몬, 언어, 데이터 사이의 통신 체계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스무 가지 이상의 독립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데, 그녀는 회사가 이윤보다 우선시하는 게 뭔지 알아낼 거라고 합니다. 가스미의 대학교 후배 오카베가 자신의 애인 유즈키가 이곳에 강제로 끌려왔다며 캡슐을 확인하고 싶다고 합니다. 웨이쉬안은 오카베를 도와 유즈키의 캡슐에서 몸에 난 멍 자국과 여러 상처를 확인합니다. 웨이쉬안은 유즈키의 몸을 데리고 갈 수 있도록 오카베를 돕다가 경비원을 맞닥트립니다. 오카베를 죽인 경비원이 그를 쏘려는 찰나 건물 전체가 폭발하듯 뒤흔들립니다.
누군가가 돕기라도 한 것처럼 AE 시설이 다운되고, 웨이쉬안은 무사히 탈출했으나 또 다른 위험에 빠집니다. AE는 무슨 이유로 유즈키를 끌고 간 것인지, 강제로 입주당한 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디인지, 웨이쉬안과 가스미를 노리는 사람은 누구인지, 자세한 이야기는 <스파이라>에서 확인하세요.
에피네프 감염병으로 죽음이 대량화된 세계, 몸을 버리고 가상의 공간에서 대체 인생으로 연장되는 생을 배경으로 하는 SF 소설 <스파이라>는 코로나를 살았던 우리를 떠오르게 합니다. 몇 년 간 코로나로 인해 비접촉과 비대면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세대를 일명 코로나 세대라고 부르는데, 이 책에선 삶 자체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세대를 엔트로피 세대라고 한답니다. 미용이나 위생, 건강처럼 자신을 돌보는 걸 거부하고, 뭘 참지도 담아두지도 않으며 개개인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답니다. 이전 세대 사람들의 미덕이었던 노력이나 열정, 치열함 등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살기 위한 행위였으나 감염병으로 인해 모든 게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려 모든 게 그때그때 달라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료제도 없고 백신도 비싸서 일부만 맞을 수 있다면, 그런 세상이라면 삶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 것입니다. 희망이란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되기에,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면 희망도 부질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또 어떤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갈지 모르겠으나, 그때가 되면 우리 앞에 또 어떤 선택이 놓일지 모르겠으나, 주인공 웨이쉬안이 '현실'을 선택한 것처럼,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저마다의 현재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여러 현재가 모여 지금의 현실일 것입니다. 앞으로의 현실이 나쁘지 않기만을 바라며, 내년의 한국과학문학상은 어떤 내용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