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 살인사건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박진범 북디자이너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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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도립 전기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11년간 공무원으로 근무한 저자는 퇴직 후 사립탐정, 경비원, 세일즈맨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며 현상 공모에 도전한 끝에 1963년 "일그러진 아침"으로 제2회 올읽기물 추리소설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1965년 "천사의 상흔"으로 제1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했고, 1978년 "침대특급 살인사건"과 철도를 무대로 한 트래블 미스터리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2004년 일본 미스터리 문학계의 발전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8회 일본 미스터리 문학 대상을 수상한 저자의 <묵시록 살인사건>을 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나비 떼의 출현과 한 청년의 기이한 죽음은 대낮 긴자의 보행자 천국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비번으로 가족과 나들이하러 온 가메이가 미소 지은 채로 죽은 청년을 발견했고, 달착지근한 아몬드 냄새로 청산 중독임을 알게 됩니다. 시신 왼쪽 손목에 채워진 황동 팔찌 뒷면엔 네잎클로버 그림과 함께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경시청 수사 1과에 출근한 가메이는 상사 도쓰가와 경부에게 이를 보고 했고, 며칠이 지나 다카시마다이라의 대형 아파트 단지에 하늘에 떠오른 고무풍선이 하나둘씩 떠오르다가 순식간에 100개가 생겼고,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가 20대 여자가 미소 지은 채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모든 형사들이 두 사건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성별 차이, 그리고 고무풍선과 나비라는 차이뿐입니다. 여자도 청동 팔찌를 차고 있었고, 뒷면에는 '우리는 한 알의 밀알이니라'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하늘로 날아간 고무풍선은 여기저기에 떨어졌고 강변에서 낚시를 즐기던 노인이 이를 주었더니 종이가 묶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엔 '다음 주 일요일, 우리 동지가 항의하기 위해 분신자살을 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예고된 자살을 막기 위해 수사본부가 차려졌고, 앞서 죽은 두 사람의 신원과 뭘 위해 나비를 수백 마리 날리고, 고무풍선을 띄웠는지, 그리고 뭐에 대한 항의인지 알아내기 위해 조사합니다. 하지만 예고된 날 야구장 투수 마운드에서 타버린 남성 사체가 나타났고, 각 신문사에 '묵시의 시대라는 증거로 다음 주 일요일에 우리 동지가 또다시 분신자살을 할 것이다'가 적힌 예고 분신자살 편지가 도착합니다. 형사들의 수사 끝에 나비와 고무풍선을 배달한 운전사를 찾았고, 그는 어떻게 자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냐고 도리어 물어봅니다. 그는 고바야시 마사히코로 팔찌엔 '우리는 빛의 자녀이니라'가 적혀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고바야시는 자신을 찾아온 노미야마를 '아버지'라 부르며 우리의 왕국이 완성될 수 있을지 물어봅니다. 노미야마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신념 때문에 죽으며, 자신도 그들을 뒤따를 거라 말합니다. 그의 팔찌엔 'I · N · R · I(라틴어,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의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란 뜻이랍니다.

예고된 분신자살을 막을 수 있을지, 노미야마가 말하는 신념과 왕국은 무엇인지, <묵시록 살인사건>에서 확인하세요.




신념은 무엇일까요. 자신이 가진 견해나 사상에 대해 흔들림 없는 태도를 견지하며 변하지 않는 것을 신념이라고 합니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위험합니다. 철학자 니체는 '강한 신념이야말로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신념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묵시록 살인사건>은 종교적 신념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줍니다. 연이은 청년들의 자살 사건과 배후에 존재하는 지도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경시청 도쓰가와 경부의 조사가 계속될수록 이야기는 확장되어 갑니다. 이 책은 저자가 1980년 처음 발표된 작품으로 사회파 미스터리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작품 출간 4년 후 일본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을 일으킨 사이비 종교 단체 '옴 진리교'가 일본에서 결성되었으니, 작가가 바라본 당시 일본 사회의 모습이 얼마나 적확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사이비 교주에 홀렸다가 형사로 인해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사람들의 반응은 우리가 생각한 반응과 전혀 다릅니다. 악몽에서 깨어나서 다행이라며 진실을 알려준 형사에게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채워지지 않는 현실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는 사실에 적극적으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그들은 그곳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언젠가 다른 낙원을 찾아 떠날 수 있습니다. 홀로 남아 있는 소녀의 모습에서 형사들의 수사는 끝이 났지만, 소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마음 둘 곳 없는 소녀의 모습이 너무나 씁쓸합니다.

니시무라 교타로는 2022년 92세로 별세하기 전까지 출간 작품 수 약 700편, 누적 발행 부수 2억 부가 넘는 일본 미스터리계의 거장 중의 거장입니다. 그의 작품은 이 책까지 총 5권의 책이 나왔으니 앞으로 출간될 저자의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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