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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김준녕 지음 / 고블 / 2023년 10월
평점 :

1986년에 태어난 저자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했고, 하루의 절반은 글을 준비하고, 나머지 절반은 글을 쓰면서 보냅니다.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으로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는 그의 첫 SF 소설집입니다. 그럼 내용을 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경매'는 주인공 내가 절친 상욱의 딸 상아의 기억 재건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기억 콜렉터에게 기억을 팔러 오는 데서 시작합니다. 상욱은 나와 우주선 외벽을 수리하는 일을 하며 겨우 먹고살았는데, 상욱이 우주 청소부 여자를 만났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상아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병원에 살다시피 했고, 쉬는 날도 없이 상욱과 아내는 돈을 벌었습니다. 상아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갓난아기인 상아의 부모에 대한 기억까지 팔았으나 3년 전 블랙홀에 의해 부부는 동시에 사라졌습니다. 대부로서 난 상아를 키웠고, 대학을 가길 원했으나 기억이 온전한 사람만이 대학에 갈 수 있습니다. 상아를 위해 기억 재건술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상아에 대한 기억을 팔려고 왔습니다. 기억 콜렉터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훌륭하다며 시술을 진행하겠다고 합니다. 난 지금 해달라고 했고, 그는 알겠다면서 지난번에는 하면서 말을 하려다 맙니다.
다섯 번째 이야기,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는 골방에서 지내는 내가 0번 버스를 타면서 시작합니다. 어디로 가는 건지, 가는 도중에 길을 잃으면 어떡할지 걱정이었으나, 이십 대 초반 정도로 앳되어 보이는 버스 기사는 도시 외곽으로 버스를 몹니다. 0번은 대구 남구, 중구, 시내로 향하는데 경로를 크게 벗어나고 있습니다. 0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오묘한 숫자라고 생각하며, 52세에 지하철 선로에 뛰어든 아빠를 떠올리며 내 가족도 0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버스는 전등이 달리지 않은 암흑 터널로 들어가며 목적지를 알리는 전광판에서 빛이 납니다. 2번 지구까지 47분, 3번 지구까지 1시간 35분... 2번 지구를 시작으로 숫자가 계속 쌓여갑니다.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는 10편의 SF 단편을 모은 소설입니다. 기억을 사고파는 '경매', 공기를 통해 감염되어 결국 죽는 바이러스가 퍼져 모든 사람이 방호복을 입기 시작한 지구의 모습을 그린 '팔이 닿지 못해 슬픈 짐승', 우주시대에도 행성과 별의 땅을 사고파는 '망자를 위한 땅은 없다', 태양 질량의 130배에 달하는 블랙홀이 한순간에 사라져 우주 보험사 직원이 방문하는 '블랙홀 뺑소니', 0번 버스를 타고 어딘지를 모를 곳으로 가는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방공호 내에 위치한 상위 0.01%만을 위한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요리 재료를 구하는 이야기 '맛과 맛 사이', 채무추심위원회는 구조비라는 명목으로 채무자를 어떻게든 살려냈고, 빚을 갚거나 다른 다른 이에게 빚을 넘기는 방법 외엔 없어 산 사람은 죽은 이의 빚을 지고 사는 '빛보다 빠른 빚', 창고에서 발견한 공룡알을 부화시키는 '뜨거운 얼음을 만드는 방법', 과거 지구인들이 우주로 날려 보낸 전파가 돈이 되는 미래에 세상의 진리가 들어있는 데이터센터를 찾는 '브레인 크런치 - AI 시대에서 인간이 살아남는 법',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잘 크고 맛까지 있는 좁쌀보다 작은 소형 나노봇인 그레이 구가 지배하는 '사이버 피쉬 트럭'까지 다양한 현실과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의 표현이 짜임새 있게 보여 어쩌면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 부동산 불패 신화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상위의 가진 자들은 그들의 취미를 갈구하고, 외계인들이 세상에 스며든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지까지, 책을 읽으며 다양한 상상력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릅니다. 미래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 고민하게 되는 <0번 버스는 2번 지구를 향한다>입니다.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