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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 왜 개혁은 항상 실패할까? 2023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3년 10월
평점 :

1990년에 태어난 저자는 충주의 작은 사찰에서 살며 딴지일보에 한국사·문화재·불교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들녘에서 출간하고 있는 저자의 '시시콜콜 역사 시리즈'의 네 번째 책,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을 보겠습니다.

조선의 건국자들은 정전제를 모델로 삼아서 드라마틱한 토지 개혁을 단행합니다. 수백 년간 누적된 극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전국의 토지문서를 모아 불태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오백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무나 땅이 많아 어디가 자기 땅인지도 모르는 양반과 자기 땅이라고는 한 평도 없어서 평생 소작료를 내며 살아가는 소작농이 등장합니다. 1부에서는 조선 땅의 역사를 다룹니다. 생산수단의 평등하고 공정한 분배를 통해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꿈꿨던 조선의 시도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알아봅니다. '약간의 특권을 용인한 모든 토지의 국유화'와 '소규모 자영농의 육성과 보호'가 개혁 의지였으나 자그마한 예외 규정을 비틀어 제도와 시스템에 구멍을 낸 사람들, 그들을 비판하면서도 그 방법을 조금씩 변용하여 법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길을 찾아낸 사람들, 어느새 그들의 방식을 표준으로 받아들인 사람들 덕분에 개혁제도는 부패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2부에서는 조선 집의 역사를 다룹니다. 집과 땅의 권리와 소유가 명백하게 분리된 현대와 달리, 조선에서는 집에 대한 권리가 대체로 땅에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 문제는 땅 문제보다 덜 예민한 주제였습니다. 하지만 집에 대해 첨예하게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했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서울이었습니다. 0부터 시작된 서울 신도시 주택 분배의 역사부터 집값이 무한 폭등했던 19세기 말까지, 조선 집의 역사를 서울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마지막 '다시 여는 글'에서는 부동산 개혁은 왜 실패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풀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시도했던 부동산 국유화 개혁을 원점에서 살펴보고, 우리가 집과 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조선사를 통해 조금은 배울 수 있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인식과 사상을 형성하는 양분입니다. 조선사의 진짜 가치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훌륭함이나 무능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다각도로 둘러볼 수 있는 수많은 사료에 있습니다.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은 그런 가치에 부합하고자 인용된 주요 사료의 원문·번역문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일러두기'에 담았고, 참고문헌과 단행본·고서·연구서·학술서 등도 빠짐없이 표시했습니다.
조선이 이른바 '헬조선'이 된 데에는 '농사짓는 이에게 토지를', '실거주자에게 살 곳을'이라는 희망이 완전히 무너진 순간부터였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위기도 넓게 보면 흐름의 일환일지 모릅니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예정되지 않는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세상은 바뀐다'라는 굳건한 희망 속에서 내딛는 걸음입니다. 결국 세상은 바뀐다는 희망을 품고 미래로 나아가는 시민을 위한 역사책인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에서 그 희망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