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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의 윤무곡 ㅣ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7월
평점 :
1961년 일본 기후현에서 태어난 저자는 2009년 "안녕, 드뷔시"로 제8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수상하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후 나카야마 시치리 월드라는 특유의 세계관 속에 다양한 테마, 참신한 시점, 충격적인 전개를 담아 '반전의 제왕;이라 불리며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 "속죄의 소나타", "추억의 야상곡", "테미스의 검", "세이렌의 참회", "날개가 없어도" 등이 있습니다. 그럼,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4권인 <악덕의 윤무곡>을 보겠습니다.
남편감으로 부족할 것 없는 그런 남편의 아내인 이쿠미는 남편을 죽입니다. 정말로 선량한 남편을 죽이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돈 때문입니다. 미안하다며 계속 중얼거렸고, 남편의 몸은 허공에서 미친 듯이 춤을 췄습니다. 진동이 사라질 때까지 밧줄을 쥔 손에 계속 힘을 주었고 얼마 후 진동이 사라졌습니다. 마지막까지 남편이 자살한 것처럼 위장한 채 결국 일을 끝냈습니다. 이제 이불로 돌아가 날이 새면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비명을 한 번 지르고 경찰에 신고하면 됩니다. 퇴고와 연습을 거듭한 증언이고, 당사자가 서명한 유서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공포와 죄책감이 줄지 않았습니다. 불현듯 이쿠미는 무시무시한 악행을 저지른 인간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신이치로도 미도리를 죽일 때 이렇게 혼란스러웠을까. 아들의 행위를 수없이 질책하며 비난해 온 자신이 결국 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재작년에 일어난 특별 노인 요양원 요양 보호사 살해 사건에서 변호를 맡았던 미코시바 레이지는 구형의 절반 이하를 얻어냈으며, 일본 법정에서 별로 다룬 적이 없는 '긴급 피난'을 변호의 논거로 들어 법률 전문지뿐 아니라 신문과 주간지에도 보도됐습니다. 이 사건으로 다시 변호사 사무실에 일이 들어오던 중 미코시바가 이웃에 사는 어린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이후 30년 만에 여동생 아즈사가 찾아옵니다. 아버지 소노베 겐조가 1년 뒤에 자살하고, 엄마 이쿠미와 아즈사는 손해 배상금 일부를 지불하고 고모다로 성을 바꾼 후 이곳저곳에서 지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쿠미는 나루사와 다쿠마라는 분과 작년에 구혼 파티에서 만나 재혼을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주 나루사와 다쿠마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경찰은 이쿠미가 남편을 살해 후 자살로 위장했다며 조사하고 있답니다. 이쿠미가 '시체 배달부' 소노베 신이치로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 나면 변호를 거절해 어쩔 수 없이 친아들인 미코시바 레이지에게 변호를 맡아달라고 아즈사가 찾아온 것입니다.
악덕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는 승률 100%로 고액의 변호사 비용을 낼 수 있기만 하면 누가 의뢰인이든 상관없다며 아즈사의 부탁을 받아들입니다. 처음 이 사건은 자살이라고 생각되었으나 자살에 사용된 밧줄을 정밀 조사해 보니 감춰진 매듭 안쪽에 이쿠미의 피부 조직이 검출되었습니다. 또한 유서를 감정하자 서명 부분의 잉크가 필기구 잉크가 아닌 카본지 잉크인 것이 판명됐고, 시신을 사법 해부하니 나루사와 다쿠마의 체내에서 다량의 알코올이 검출됐습니다. 당시 생활이 힘들었던 이쿠미가 자산가인 나루사와 다쿠마의 재산을 노리고 구혼 파티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했다고 경찰은 추측합니다. 미코시바는 이쿠미를 직접 만나 남편을 죽였는지 물었고, 이쿠미는 아니라며 대답합니다.
핏줄 따위 상관없이 원하는 액수의 돈만 받으면 희대의 살인귀든 인간 말종의 약물 중독자든 변호하겠다고 선언한 미코시바 레이지가 재혼한 남편을 죽였다는 친어머니를 어떻게 변호할지, <악덕의 윤무곡>에서 확인하세요.
돈이 아니고 물질적인 것도 아닌 범죄 피해자 유족이 진정 만족할 수 있는 배상이란 것이 있을까요. 범죄 피해자 유족은 죽은 피해자가 다시 살아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고서야 진정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순 없고, 그런 상황에서 가해자가 보일 수 있는 진정한 속죄는 무엇일까요.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가족이 아닌, 제3자인 우리는 마음 놓고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을 비난합니다. 특히 소년 범죄자라면 어린 나이로 인해 재판도 받지 않아 아무 죄도 묻지 못했다면, 그런 괴물을 그대로 괴물로 키운 건 가해자 부모니까 책임을 지라고 합니다. 말로 하진 않아도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일반 시민이라고 일컬어지는 우리들의 본심입니다. <악덕의 윤무곡>의 주인공 미코시바 레이지는 과거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저지른 소년 살인범으로 의료 소년원에서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재혼한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쓴 친어머니의 변호를 맡았고, 무죄를 입증할 여지가 힘든 이 사건을 결국 승리로 이끌고 갑니다. 승소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악덕 변호사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시니컬한 윤리관과 냉철한 카리스마는 따뜻한 인간미의 주인공이 대부분인 다른 책들과 비교해 특이하고 특별합니다. 그래서 독자들의 마음에 더욱 오랫동안 남는 캐릭터일 것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의 문제들을 내보이며 독자들로 하여금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악덕의 윤무곡>, 차기작이 일본에서 연재되고 있다니 다음 권이 빨리 출간되길 기대리겠습니다.
원래 인간들은 모두 자신은 재판받지 않을 거라 자신합니다.
어쨌든 자기 자신만은 선인이고 정의롭다고 믿어 의심치 않죠.
정의가 재판받을 리 없으니 안심하고 죄인을 몰아붙입니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항상 떠올리게 됩니다.
세상에서 인간이 입에 담는 '정의'라는 단어만큼 의심스러운 건 없다는 걸요.
(p. 191)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