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랑을 하면 우리는 복수를 하지 안전가옥 오리지널 25
범유진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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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별, 꽃과 별의 이름을 가진 아이", "우리만의 편의점 레시피", "아홉수 가위", "카피캣 식당", "친구가 죽었습니다", "I필터를 설치하시겠습니까?" 등을 썼으며, 다양한 앤솔러지에 참여한 작가는 조곤조곤 계속 써 내려갈 수 있는 날들을 바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럼, <당신이 사랑을 하면 우리는 복수를 하지>를 보겠습니다.



'염소 클럽'에 의뢰하면 복수를 대신해 줍니다. 복수의 방법은 클럽에 전면적으로 위임하며, 일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 하필 클럽의 이름이 염소일까요. 우리가 말하는 '희생양'은 영어로는 scapegoat로 속죄의 염소입니다. 즉 양이 아니라 염소로 말해야 올바른 표현입니다. 희생양은 가정 내에서도 존재하는데,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에게 특정한 역할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역할에서 벗어나면 비난합니다. 그렇게 해서 속죄의 염소가 된 한 명을 제외한 다른 가족끼리는 결속을 다집니다. 김꽃님의 남편은 삼시 세끼 집에서 편히 앉아 차려진 밥을 못 먹으면 하늘이 무너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절친인 친구의 장례식에서도 욕하며 빨리 집에 돌아와 밥을 차리라는 남편의 전화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갑니다. 너무나 참고 사는 게 당연해 참는 것이 참는 것인지도 모르게 돼버린 김꽃님에게 고은 얼굴의 한 청년이 명함을 내밀며 복수하고 싶으면 연락하라고 합니다. 동생을 병원에 데려가는 부모님이 밉다며 혼내 달라는 10살 손수아의 의뢰, 자신의 머릿속을 읽어 자신을 방해하는 형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전영민의 의뢰, 자신을 탑에서 꺼내달라는 진진아의 의뢰를 받고 염소 클럽은 행동을 시작합니다.


염소 클럽의 하이하, 김해찬, 진선미의 주축이 되어 복수를 대행하고, 변호사 서은진과 J 그룹 회장 정영욱이 이들을 지원합니다. 어릴 적 하이하가 집 밖을 나가면 안 되는 이유를 묻자 마마는 그녀의 목덜미에 잉크가 묻은 바늘을 찔러 넣으며 의문을 가지지 말라고 합니다. 의문을 가지지 않는 나들이 이어졌고, 마마가 직접 쓴 책을 낭송하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됩니다. 그 책은 연구의 결정체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뛰어난 인간으로 만들어,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더욱 뛰어난 인간으로 태어나는 거랍니다. 마마의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하이하는 마마를 죽이고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세뇌시킵니다. 김해찬은 국가 대표 수영 선수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실상 그의 삶은 매일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디고,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고, 자신에게만 쏟아지는 폭력을 모른 척하는 어머니와 형의 외면을 견디는 생활이었습니다. 메달만 따면, 자신이 좀 더 잘하면,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지면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했으나 메달을 따고 변하는 것은 없었고, 김해찬은 참기를 그만두었습니다. 진선미의 아버지 진동수는 성형 수술을 통해 사람들의 인생을 바뀌어 주는 예능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외모로 인한 상처가 있는 사람을 보듬어 주는 전문의, 젊은 나이에 치매 판정을 받은 아내에게 헌신하는 남편, 어린 딸을 혼자서도 잘 보살피는 자상한 아버지가 진동수의 이미지였는데 간호사에서 무면허 봉합 시술 지시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지내다가 아내를 집으로 데리고 온 진동수는 대중의 관심이 필요할 때마다 아내 이인연을 내세워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갔습니다. 어린 진선미는 집으로 촬영 팀이 올 때만 이인연이 지내는 방이 1층 안방으로 둔갑하는 것이, 치매라는 이인연이 평소엔 멀쩡한 것이, 의사가 진단을 하러 와서는 이미 작성된 진단서에 사인만 하고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됩니다.


강력반 소속으로 20여 년간 현장을 누빈 베테랑 형사 이희태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자신의 관할에서 자주 일어나자 이상함을 느낍니다. 가정 폭력 신고도 한 건 안 들어왔고 경제적 어려움 없는 중산층 집안에서 계속 사건이 벌어집니다. 누군가의 일상을 상상하려면 냉장고를 봐야 한다는 신조에 따라 사건 현장에서 냉장고를 열어봅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던 개수대처럼 냉장고는 텅 비어 있습니다. 남은 흔적이라곤 가운데 선반 한쪽 구석에 찐득하게 녹아내려 들어붙어 있는 푸딩뿐입니다. 푸딩 덩어리 아래 무언가가 있었는데, 살펴보니 트럼프 카드 크기의 종이입니다. 종이에는 절벽 끝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에 목이 졸린 채 매달려 있는 염소 한 마리의 그림이 있습니다.


복수를 의뢰한 사람들과 염소 클럽 활동자들은 어떻게 복수를 완성할지, 그리고 사건들을 조사하는 경찰 이희태는 활동자들과 어떻게 맞닥뜨릴지, <당신이 사랑을 하면 우리는 복수를 하지>에서 확인하세요.




소리쳤어야 했다. 그때에.

약한 엄마, 어리석은 엄마. 그러나 내가 사랑했던, 나를 사랑했던 엄마.

나는 엄마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가 왜 도망치지 않았는지. 아니다. 도망치지 못했다.

통제는 공포다. 공포는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억지로 부여된 역할은 틀 안에 사람을 욱여넣는다. (p. 291)


<당신이 사랑을 하면 우리는 복수를 하지>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복수를 하는 '염소 클럽'의 사람들이 TV에서 나오는 사건들의 피해자들이라 안타깝습니다. 가정 내의 폭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린 그런 일들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정 내의 일이라 알아채기도 쉽지 않고, 눈치챈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뭔데 상관하냐는 말에 반박하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우린 그들의 고통을 하나도 모른 채 쉽게 쉽게 말합니다. 왜 도망가지 않고 계속 있었냐고요. 그래서 가해자가 계속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요. 하지만 폭력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포로 몸과 마음이 굳어버린 피해자의 상태를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됩니다. 그 상태를 힘들게 깨고 주위에 도와달라고 호소해도 변화되지 않는 상황을 한두 번 경험하게 되면 피해자는 포기하게 됩니다. 이웃집 사람들이 와도, 선생님이 와도, 경찰이 와도 그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갑니다. 그래서 '허허 웃는 얼굴로 모두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문구가 너무나 더욱 섬뜩하게, 가슴 아프게 남습니다. 이런 천인공노한 사건들이 벌어져도 그때뿐, 자신들의 바쁜 일상과 또 다른 뉴스에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립니다. 가해자들의 낮은 처벌에만 화를 내지, 피해자들의 삶은 관심에서 멀어집니다. 어린 피해자들은 아동 쉼터에 자리가 없으면 가정 위탁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동 쉼터는 항상 자리가 없고, 예산을 들여 부족한 아동 쉼터를 건립하려고 해도 보호 쉼터 입주 예정인 부지 주변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는 탓에 무산되기 일쑤입니다. 결국 가정 폭력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같이 살지 못하고 다른 집에 맡겨지고 자라나게 됩니다. 아니면 발견되지 못한 채로 폭력을 견디며 청소년이 됩니다. 그중 일부는 폭력을 피해 가정을 탈출하고, 그 애들은 아동 청소년 쉼터가 아니면 범죄의 표적이 됩니다. '잊힌 소녀는 어디로 사라졌는가'는 살아남은 아이의 삶은 사람들의 관심 밖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무정함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잊지 않고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행동할 때입니다.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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