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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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일본 미야자키현에서 태어나 1987년 다마예술학원 영화과를 졸업한 저자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소설가로 전향했습니다. 글쓰기에 매진한 지 5년여에 걸쳐 신인상에 응모하다가 마침내 2005년 "고충증"으로 메피스토 상을 수상하며 데뷔했습니다. 2008년에 출간한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이 화제가 되면서 일본에서만 5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에 올라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깊고 깊게 모래에 묻고", "갱년기 소녀", "파리 묵시록", "다섯 명의 준코", "골든애플"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기리노 나쓰오, 미나토 가나에의 뒤를 잇는 '다크 미스터리'의 여왕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럼, 저자가 쓴 <이사>를 보겠습니다.



첫 번째 '문'은 새롭게 이사 갈 집을 알아보려는 기요코 이야기입니다. 맨션 관리인 아오시마의 안내로 둘러본 곳은 준공 5년 차 건물입니다. 그녀는 지금 사는 집에 살인범이 살았다는 정황이 있어 기분이 찜찜해 서둘러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에 살던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더니 결혼 때문에 이사한 여성분이라고 아오시마 씨가 대답합니다. 저번 집처럼 급하게 결정할 수 없었던 기요코는 볼일이 있어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관리인의 말에 혼자서라도 더 둘러보고 나갈 때 관리인실에 말하겠다며 부탁합니다. 신축이 아니라는 점과 벽에 뚫린 구멍, 창밖의 소음 빼고는 나무랄 곳이 없는 이 집을 계약하기로 결정하고 부동산업체 직원에게 연락했습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에 메시지를 남겼고 나가려던 중 마지막으로 대피 경로를 체크하기로 합니다. 대피 경로는 세 가지로, 베란다의 피난 해치, 바깥에 있는 비상계단, 현관문 옆 비상문입니다. 비상문을 당겨 들어가니 비상구라고 적힌 철문이 있고, 다시 당기니 어른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작은방이 있습니다. 바닥에 대피 사다리라고 적혀 있고 둘러보는데 천장에서 뭔가가 움직입니다. 몸을 틀다가 어깨에서 빠진 토트백 끈이 문 손잡이에 걸려 당기자 끼이익 소리와 함께 철문이 닫힙니다.


네 번째 '상자'는 사토 유미에가 다니는 회사에서 대규모 배치전환을 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배치전환은 자리 교체인데 33층까지 있는 회사다 보니 부서가 옮겨지거나 소속 부서가 이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미에는 입사 2년 차라 이동되지 않았지만 소속 부서 자체 위치가 바뀌어 3층에서 7층으로 이사하게 됐습니다. 자신의 짐을 회사에서 제공한 골판지 상자 3군데에 담고 스티커와 숫자를 적었습니다. 스티커는 층별로 색깔이 달랐고, 알파벳은 부서를, 그 옆의 숫자는 책상 번호입니다. 7층 자신의 자리에 갔더니 자신의 상자가 아닌 다른 상자 43개가 있습니다. 입사 동기 교코에게 SOS를 보냈고 그녀는 파견사원들이 손으로 작성한 좌석 명부가 있다며 PDF로 보내준다고 합니다. 좌석 명부를 열람해 7층 자기 자리를 보니 대피소라고 적혀 있고 그 밑에 작게 뭉개진 글씨로 배송처가 불확실한 물건 또는 배송처가 없는 물건은 일단 이 자리에 놓아둘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파견사원은 유미에에게 열쇠나 불만 이력 등을 재촉했고, 자신의 짐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유미에는 난감합니다.


비상구에 갇힌 기요코와 유미에의 짐은 어디에 있을지, 그리고 네 개의 이야기는 <이사>에서 확인하세요.




현관문 옆에 벽과 똑같은 색깔로 칠해진 비상구에 갇힌 기요코의 '문', 갑작스러운 이사로 수납장을 정리하는 나오코의 '수납장', 전 직원이 사용하던 책상 서랍에서 나온 편지의 '책상', 잘못 온 사무실 물건의 '상자', 동료 직원의 옆집에서 들리는 폭행 소리 '벽', 호러 게시판과 거리 뷰 기능으로 동네를 보는 것이 취미인 사야카의 '끈'. 여섯 편의 이야기는 '이사'를 주제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상황들을 다루고 있어 괴물이나 연쇄살인범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존재가 아닌 평범한 일이라 더욱 기괴하고 소름이 돋습니다. 저자는 '이야미스' 장르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는데, '이야미스'란 싫다라는 뜻의 일본어와 미스터리를 합친 조어로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불쾌하고 어두운 감정을 파헤쳐 읽고 나면 심리적 불편함과 함께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장르를 일컫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사>를 읽고나면 이야마스란 용어는 몰라도 뜻을 정의한 그 기분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한동안 찜찜한 기분에 책을 외면했다가도 저자의 다른 작품은 어떤지 궁금해지는 것은 바로 '이야미스' 장르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가 내리거나, 구름이 가득한 흐린 날에 읽으면 좋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더럽고 불쾌한 이야기, <이사>입니다.




뽀야맘책장에서 읽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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