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어둠
렌조 미키히코 저자, 양윤옥 역자 / 모모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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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1975년 "변조, 둘이서 한 옷 입기"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작가는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동시대 작가들에게 경외에 찬 질시를 받았습니다. "회귀천 정사"로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달맞이꽃 야정"으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 "연문"으로 나오키상, "숨은 국화"로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수상했습니다. 2013년 세상을 떠났으며 미스터리 단편소설 아홉 편을 모은 <열린 어둠>은 일본에서 1980년대 처음 출간된 이후 2014년에 복간 희망 1위로 꼽히면서 복간이 이루어졌습니다.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출간기념 반전에 놀라지 않거나 재미없으면 100% 환불해드리는 환불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럼 내용을 보겠습니다.



첫 번째 '두 개의 얼굴'은 화가 마사키에게 신주쿠 호텔에서 죽은 여성이 아내 게이코인 것 같다는 경찰의 전화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시신 확인을 위해 호텔로 와달라는 말을 듣고 정신이 없는 나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왜냐면 게이코는 자신의 손으로 이 침실에서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렸을 때는 사체를 뒷마당에 파묻고 흙 범벅이 된 손을 욕실에서 씻는 참이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살인 현장, 방에 들어선 순간 기묘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방의 인상이 우리 집 침실, 즉 실제로 아내를 살해한 현장과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형사가 말하길 범인은 허리 끈으로 여자의 목을 졸라 죽인 뒤에 스패너로 얼굴을 내리쳤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내가 저지른 짓과 같았습니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는 희귀한 디자인이었고, 핸드백에 들어있는 편지는 남편에게 이혼하자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겉에는 우리 집 주소와 이름이 적혀 있고, 뒤에는 게이코라는 이름만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호텔에서 죽은 여자는 아내 게이코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누구를 죽인 것일까요.


여섯 번째 '이중생활'은 삼각관계 이야기입니다. 육 년 전 마키코는 일하던 클럽에서 만나 16살 연상인 슈헤이와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젊은 남자를 만나라고 하지만 서른이 된 지금은 사랑, 돈도 아닌 증오만 남았습니다. 일 년 전에 슈헤이가 헤어지자고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청춘을 써버린 그가 미웠고, 슈헤이와 함께 사는 시즈코가 더욱 미웠습니다. 슈헤이는 일 년 전에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을 때 반쯤은 본심이지만 나머지 반쯤은 헤어질 수 없다는 마키코의 대답에 안심했습니다. 오늘 마키코가 뿌린 향수를 닦지 않고 이 집에 돌아온 것도 그 괴로움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키코가 괴로워하는 만큼 시즈코도 괴로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균형이 언제까지고 유지될 리는 없습니다.


아홉 번째 이야기이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열린 어둠'은 사립 고등학교 음악 교사인 마사가 폭주족으로 얼마 전에 퇴학당한 노리코에게서 전화를 받으며 시작합니다. 지하철 X역 개표구에서 만나자는 내용이었고, 마사는 그저께 체육 교사 아카자와 다케시가 살해된 일로 학교에서 수사 중인 형사들을 지나치며 지하철을 탔습니다. 폭주족 블랙호크스 5인조 다카키, 노리코, 가챠, 스즈타, 오사요는 노리코의 작은아버지 별장을 아지트로 삼아 지내고 있습니다. 오전 7시에 다카기가 혼자 2층에 올라갔고 곧바로 카세트테이프리코더를 가지러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가 노리코와 함께 2층으로 갔습니다. 아래층에 있던 가챠, 스즈타, 오사요는 시너를 흡입해 잠에 빠졌고, 오후 4시쯤에 가챠가 멍한 채로 다카기 방에 들어갔다가 그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다른 세 사람과 의논한 뒤에 우선 마사를 부르기로 했답니다. 경찰은 믿을 수 없다며 제한속도를 지켜 달려도 곤봉으로 때리고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랍니다. 노리코는 어제 다카기가 헤어지자고 해서 심하게 싸웠고, 다카기 가슴에 꽂힌 나이프도 노리코 것이고, 꽉 쥔 오른손에 노리코의 리본이 있어서 경찰을 부르면 노리코가 잡혀갈 거랍니다.


소개한 단편의 남은 이야기와 다른 여섯 편의 단편은 <열린 어둠>에서 확인하세요.




'관능'과 '트릭'이 버무려진 아홉 편의 단편 미스터리 <열린 어둠>은 "백광"으로 유명해진 렌조 미키히코의 단편집입니다. 일본에서 1980년대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선 처음 소개된 책으로 애증을 배경으로 한 반전을 품은 이야기들입니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서술자의 심리는 알 수 있지만 시선의 한계로 인해 놓치는 부분이 생깁니다. 작가는 그 틈을 파고들어 이야기 마지막에 반전을 선사합니다. 방금 내가 죽인 아내가 다른 곳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되어 발견된 '두 개의 얼굴', 유괴당한 소년이 커서 형사가 되어 맡게 된 유괴 사건 '과거에서 온 목소리',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딸과 죄책감에 이혼한 부모의 마음 '화석의 열쇠', 부부 사이의 믿음이 어디까지인지를 이야기하는 '기묘한 의뢰', 남들에겐 사소한 것일지라도 상처가 된 남자의 복수 '밤이여, 쥐들을 위해', 슈헤이를 사이에 둔 마키코, 시즈코의 삼각관계 '이중생활', 톱스타가 찾는 대역의 역할 '대역', 조직생활에서의 배신과 충성 '베이 시티에서 죽다', 폭주족 5명의 학생과 학교 선생 마사 이야기 '열린 어둠'까지 각각의 내용은 소재도 신선하고 서술하는 대상의 심리가 어딘가 미묘해서 읽는 내내 찝찝함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보다 사건이 일어나는 상황과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심리묘사에 집중하고 있는 <열린 어둠>은 '렌조 미키히코'의 매력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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