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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를 아는 사람들
정서영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2월
평점 :

1994년에 태어난 저자는 초등학생 때 엄마에게 혼나고 가출한 곳이 도서관이었답니다. 그 이후 중학생 때는 도서부를, 고등학생 때는 독서토론부를 하며 책과 가까이 지내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책 근처를 서성이며 살고 있습니다. 그럼, 저자가 쓴 <소녀를 아는 사람들>을 보겠습니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기숙사 사감에게 납치를 당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세상에선 충동적인 남학생과 예쁘장한 여사감이 함께 사라지자 납치인지, 사랑의 도피인지 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엄마는 아들을 믿었습니다. TV에서 아들과 사감의 얼굴이 각자의 이름과 함께 나오고, 공개수사가 진행 중이며 시민들의 제보를 부탁한다고 합니다. '고등학생 납치 사건'이 보도된 후 전국은 들썩였습니다. 제보가 이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쓸 만한 제보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납치된 고등학생이 평범한 학생이고, 납치한 사감도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 제보할 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은 아닙니다. TV 화면 속 강슬지라는 이름과 얼굴을 보고 전화기를 들었다 내려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았고, 용기를 내 말을 꺼내려다가도 예전의 공포가 떠올라 차마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아는 이들은 귀를 막고 입을 닫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녀를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전공 필수 수업 과제로 옛 친구에 대해 써야 하는 주주는 합평 때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는 말에 중학교 동창 슬지가 놀러 오라는 메일이 생각납니다. 주주는 중학생 시절 아빠 사업이 망해서 집을 팔고 시골 할아버지 집에 얹혀 지내야 했습니다. 같은 반이었던 슬지는 그곳에서 나고 자란 아이였고, 엄마는 어릴 적부터 없었고 아빠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데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이번엔 대충 꾸며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슬지와 약속을 잡았습니다. 슬지와 있을수록 오랜만에 느껴보는 우월감과 희열에 주주는 뿌듯했습니다. 모두가 잘난 서울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기분입니다. 자신이 아는 노을 보는 장소가 있다고 그리로 가자는 슬지의 제안에 따라갑니다. 이제는 폐가로 남아있는 할아버지 집에서 골목으로 들어가자 슬지의 집이 나왔고 지나치면 산 입구가 나옵니다. 그 산을 올라 등산로가 아닌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슬지를 헉헉거리며 힘들게 따라갑니다. 절벽에 앉아 노을을 배경으로 셀카를 몇 장 찍었습니다. 꽤 괜찮은 장소라 여러 장 찍다 보니 배터리가 다 닳았는지 화면이 꺼졌습니다. 얼마 없는 시골 여자애들 사이에 주주는 교실의 여왕이었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공공의 적이 될 희생양이 필요했습니다. 그 희생양이 바로 강슬지였습니다. 슬지는 폭죽을 사오겠다며 순식간에 산길을 내려갑니다. 산에서 혼자 슬지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아까부터 주주를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모습이 찝찝하게 기억에 박혀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방학을 맞아 복어 식당에서 주방 아르바이트를 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사장의 성희롱과 성추행 때문에 매일 울고만 싶었습니다.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니 눈물이 나왔고 손님은 나 혼자 있는 카페에 아르바이트생이 내 앞에 앉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름은 강슬지라 소개하고 나를 재미있다는 듯이 보고 있습니다. 통화를 들었다며 간호학과 몇 학년이고 뭘 배우는지 물어봅니다. 자신은 2학년이고 피 뽑는 거 등등을 실제로 배운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은 눈을 빛내며 사람 피 뽑을 때 기분이 어떠냐며 물어봅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겁내고 있는데 자신이라면 성희롱이나 성추행 당했을 때 나처럼 안 한다고 말합니다. 맛집 촬영 때 사장 사촌인 군수가 우연인 척 들어와 복어 전골하고 찐만두를 먹기로 한 전날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복어 난소와 내장을 빼내 곱게 갈아 주사기에 담아 식당 주인이 주방에서 자리를 비웠을 때 만두에 주사기로 독을 찔러 넣으라고요. 나중에 홀에 있는 CCTV로 봐도 복어 조리대에 내가 없다는 게 증명되면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요. 사인을 조사해도 복어 독 때문이니 사장만 구속된다고요.
어딘가 섬뜩하고 이상하게 삐뚤어진 강슬지의 이야기를 <소녀를 아는 사람들>에서 확인하세요.
고등학생을 납치한 여사감 강슬지 사건이 공개수사로 시민들의 제보를 부탁한다고 TV에 나옵니다. 이를 접한 어떤 이들은 그녀와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고, 그때의 공포가 떠올라 전화를 망설였습니다. <소녀를 아는 사람들>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입을 닫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열세 편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슬지와 중학교 동창, 물류센터에서 같이 일한 동료, 시골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온 동네 동생, 아르바이트 한 카페 손님들, 전공 교수, 슬기의 일기장을 본 여대생, 강릉에서 같은 숙소의 숙박객, 의류 회사 상사, 길거리 타로 손님, 분양 사무소 동료가 말하는 슬지의 모습은 기이합니다. 조금만 말을 나눠봐도 이상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떨어지려고 하지만 그녀가 남긴 말은 마음에 가시처럼 남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악의가 생겼을 때, 그것을 살인이라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말한 대로 실행할지 말지는 본인의 판단이지만 일상 속에서 새어 나오는 분노와 복수심을 건드리는 그 방법이 구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말을 하는 슬지가 책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인지, 저마다의 마음 깊숙이 있는 목소리는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야, 윤체리 꿀밤 말고 빰 때려주면 안 되냐?
내가 해줄게. 그러면 나랑 친하게 지내줄래?
뺨으로는 안 돼. 칼빵 놔줘, 칼빵.
내가 해줄게. 그러면 나랑 친하게 지내줄래?
(p. 40)
나에게 쥐어진 행운은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여자를 만나 선택의 기로에 섰던 그날,
내면에서 들끓는 악의를 느끼면서도
내가 선택한 건 복수가 아니라 꿈이었으니.
(p. 246)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