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 - SF 앤솔러지
고호관 외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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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제2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한 고호관, 2017년 제4회 SF 어워드 중단편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곽유진, 2018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김백상,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가작을 수상한 김정혜진, 2018년 제5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한 남유하, 2017년 제4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한 문이소, 2010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문지혁, 제2회 SF 어워드 중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박문영, 2019년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을 박해울, 2021년 제8회 SF 어워드 중단편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연여름, 제2회 문윤성문학상 장편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유진상, 2019년 제4회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경희, 2018년 및 2020년 SF 어워드 중단편소설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이산화, 2012년 제1회 문학동네대학소설상으로 등단한 이종산, 2021년 제1회 포스텍 SF 어워드로 등단한 이하진, 2007년에 데뷔한 전혜진,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소설집을 펴낸 정소연, 2005년 과학기술 창작문예 아동문학부문에 당선한 정재은, 2021년 제8회 SF 어워드 중단편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황모과, 이렇게 20인의 소설가의 작품이 모인 SF 앤솔러지,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를 보겠습니다.



고호관 작가의 '그 어떤 존재'는 첫 번째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태양계 외부에서 온 I8/바가반디, 라마는 외계의 인공 물체일 가능성이 매우 컸습니다. 금성을 지날 무렵 빛을 발한 것으로 보아 태양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시도라는 데 의견이 모였습니다. 여러 가지 파장의 신호를 보내자 라마가 궤도를 틀더니 지구로 향했고 셋으로 나뉘어 정지궤도 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마이크로파 주파수에 1, 2, 3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보냈습니다. 그러자 같은 주파수로 첫 번째 외계 신호가 들어왔습니다. 1, 2, 3이라는 간단한 송신과 비교해 답신은 상당히 길었고, 이를 분석하기 위해 수많은 컴퓨터가 동원되었습니다. 분석에 진전이 없자 똑같이 1, 2, 3을 보냈고 또다시 답신이 왔는데, 그 신호는 앞서 온 것과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방대한 외계 신호는 점점 쌓이고 있었습니다. 여러 인공지능 컴퓨터도 이 공개 데이터를 해독하는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최신 인공신경망과 기계학습 기반의 에아는 라마의 신호를 학습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에아는 모두 학습했고, 라마가 보낸 신호에 에아가 유일하게 라마와 마찬가지로 6차원 배열로 이루어진 답을 내놓았습니다. 에아의 신호는 전송되었고, 곧 둘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신호는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인간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에아의 말은 더 알아듣기 어렵게 변했습니다. 라마는 떠나기 직전까지 에아와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았지만 인간은 끝내 직접 라마와 유의미한 의사소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에아를 통해서도 어떤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읽은 "모래도시 속 인형들"의 작가인 이경희의 단편도 있어서 반갑게 읽었습니다. 사람을 원자 단위로 분해해서 먼 곳까지 초고속으로 이동시키는 제품을 만든 회사의 CEO 나도영은 대중들 앞에서 직접 시연을 했습니다. 제품은 성공적이었지만 염라국 차사 업무 시행규칙에서 신체의 일부 또는 전부가 분리되어 생명활동이 중단되었기에 사망으로 보고 나도영은 저승세계로 왔답니다. 1초 만에 원래대로 다시 붙였지만 1초 동안 분리되었기에 그 순간에 사망한 것이라는 담당자 말에 납득이 가지 않았고 이의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텔레포트 장치를 사용할 때마다 죽은 것으로 보고 저승 세계로 데리고 와서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사망자들이 수십 명이 됩니다. 재판은 완전히 사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기다리다 보니 어떤 도영이 피 묻은 칼을 들고 오열하고 있습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하진의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는 갑자기 점점 줄어드는 지구의 중력으로 인해 지구가 멸망되어 가는 모습을 그린 단편입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원인도 규명하지 못했던 중력이 갑자기 약해집니다. 몸무게가 줄어들고, 바닷물이 하늘로 올라가고, 마찰력도 줄어들어 사고가 빈번해집니다. 그러다 요요처럼 태양 주위를 돌던 지구가 중력이 약해지면서 본래의 공전궤도를 이탈해 우주로 갑니다. 생명가능지대를 벗어나면서 지구 온도는 급격히 떨어지고, 대기 속 가벼운 원자는 우주로 날아갑니다. 모든 것을 품었던 중력은 이제 모든 것을 놓아주려 합니다. 더 이상 태양빛은 따스하지 않았으며 공기는 포근하지 않았고 지구는 안락하지 않았습니다.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의 '통역'도 실려있습니다. "저주토끼"를 아직 읽지 못해 궁금하던 차에 이 분의 글을 읽게 되어 더욱 기뻤습니다. 그들은 시간과 차원을 넘어 다니며 계속 이동하는 방식으로 존재했습니다. 이동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했고, 먼 차원일수록, 여러 번 이동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물질적인 유휴 자원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기술을 오래전부터 발전시켰습니다. 지구는 유휴자원으로 넘쳐나고 있어서 그들은 지구로 왔습니다. 지구인에게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그들에게는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유휴 자원이라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그들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들의 설계에 따라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계를 만들어내고 그들의 요청에 맞춰 그들이 작업할 수 있도록 쓰레기장 한가운데 공장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기계를 돌렸고 쓰레기를 사라지게 해주었고 그 대가로 쓰레기에서 전환해낸 에너지를 가져갔습니다. 그들 덕분에 지구는, 땅은, 인간은 그만큼 조금씩 더 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한 세대씩 찾아왔고, 이동하기 충분한 에너지를 비축하고 나면 떠났고, 다음 세대가 찾아와서 작업을 이어받았습니다. 주인공 나는 그들의 언어를 배웠고 인간인 공장 사장의 아버지 유령을 없앤 일로 고소가 들어와 통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민족·시대·장르별로 수집한 짧은 명시 또는 명문의 선집을 앤솔러지라 칭하고 보통은 여러 작가의 글 혹은 한 작가의 다양한 글을 모아 펴낸 책을 일컫습니다. 한 권의 책에 여러 작가들의 글을 실었기에 다양한 글을 읽는 재미가 좋고, 한 작가의 단편집은 단편마다 작가의 다양한 세계관에 놀라며 읽게 됩니다. 그런데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는 20인의 작가의 단편을 실었습니다. 10명 이하의 장르 단편집을 읽어보긴 했지만, 이렇게 방대하고 다양한 작가들의 장르 단편집은 처음 접했고, 처음 읽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월간 '현대문학' 2022년 7월 호에 10편, 8월 호에 10편씩 실렸던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2022년 여름 장르 특집 작품들입니다.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에서도 기획하기 힘든 장르 작가 20명의 글을 한곳에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장르문학상과 여러 작품을 낸 작가들의 최신 작품이라는 사실에서,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한 달에 매일 한 가지씩 먹을 수 있다는 아이스크림 브랜드처럼 매일 다른 느낌의 장르 단편을 읽을 수 있다는 색다른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 단편마다 재미있기에, 이 책을 읽는 즐거운 경험을 누려보길 바랍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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