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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죽음들 - 최초의 여성 법의학자가 과학수사에 남긴 흔적을 따라서
브루스 골드파브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평점 :

메릴랜드주 수석 검시관실 공공정보관인 저자는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의 디오라마 '의문사에 관한 손바닥 연구'를 관리합니다. 저자는 응급구조사로 일했으며, 법의학 수사관으로 교육받았고, 의학과 과학, 의료에 관한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저자의 첫 번째 논픽션이자 기자의 시각에서 역사적 사실만을 전달하고자 애쓴 <아주 작은 죽음들>을 보겠습니다.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는 미국 법의학의 발전을 이끈 최초의 여성 법의학자입니다. 과학수사 초창기였던 1930년대 하버드대학교에서 최초로 법의학과를 설립하기 위해 힘을 썼고, 이후 뉴햄프셔주 경찰에서 경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940년대 경찰들을 교육하기 위해 실제 사건 현장을 그대로 재연한 작은 모형 디오라마를 만들었습니다. '의문사에 관한 손바닥 연구'라 불리는 이 디오라마는 현재 18개가 남아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법의학 훈련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가봅니다.
역사적으로 사망 사건 다섯 건 중 한 건은 예기치 못하고 갑작스럽게 벌어집니다. 이들은 병을 앓고 있는 줄 몰랐던 사람들, 폭력이나 부상으로 혹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망한 사람들입니다. 1944년에 일어났던 약 28만 3000건의 의문사 중 1~2%를 넘지 않는 최대 수천 건의 사망 사건만이 자격을 갖춘 검시관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검시관이란 죽음의 원인과 방식을 진단하도록 특수한 훈련을 받은 의사를 말합니다. 당시에는 보스턴, 뉴욕, 볼티모어, 뉴어크 등 동부 연안의 몇 안 되는 도시에만 법의학적 훈련을 받은 유능한 검시관과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춘 검시관실이 있었습니다. 미국 대부분 지역에서는 그때까지도 중세 영국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체제인 매장물 조사관, 즉 코로너 제도가 활용되었습니다. 사망 사건 조사에 관한 매장물 조사관 제도는 중세 영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왕실 사유재산 관리인인 '크라우너'로 알려져 있던 이 관리는 왕실의 법적 대변인 역할을 했습니다. 코로너에게는 다양한 임무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세금이나 벌금 등 왕실이 받아야 할 돈을 수금하는 것입니다. 코로너는 갑작스럽거나 부자연스러운 사망 사건을 조사하기도 했는데 대체로 사망자가 살해당한 것인지 자살한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처형당하거나 감금된 살인범은 집과 토지를 포함해 모든 재산을 압수당했고, 자살도 왕실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였으므로 재산을 압류했습니다. 코로너는 10~12명으로 이루어진 사인 신문 배심원을 소집하는데 그중 대부분은 글을 모르는 농부고, 성인 남자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의학적인 지식이 없으므로 시신을 살펴보고 목격자의 이야기를 들은 뒤 투표로 평결을 내립니다. 이런 코로너 제도는 부패하고 무능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코로너는 부정하게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장의사에게 시신을 보낼 수 있었는데, 피의자를 기소하고 보석금을 설정한 권한이 그에게 있습니다. 코로너와 사인 심문 배심원단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급료를 받았습니다. 사인 심문 배심원단은 경찰이나 검찰에서 원하는 결론이라면 어디에든 도장을 찍어줄 사기꾼과 관련자들로 넘쳐났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혼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각자의 가정을 꾸린 뒤 필립스 하우스에서 요양하던 1929년에 검시관 매그래스를 만났습니다. 매그래스는 프랜시스에게 1928년 미국 국립 연구 회의에서 펴낸 '코로너와 검시관'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한 권 주었습니다. 이 논문에서 보스턴과 뉴욕 등 검시관 제도를 갖추고 있는 두 도시를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뉴올리언스 등 코로너가 있던 세 도시와 비교했습니다. 논문은 코로너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고,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매그래스는 방법이 있다면 이걸 법의학과의 토대로 삼고 싶다고 말하면서 현대적인 최초의 실험실을 만들고 싶다는 청사진을 프랜시스에게 말합니다. 리는 법의학을 독학하며 엄청난 자료를 모았고, 1000권의 도서를 수집해 하버드대에 기증하고 매그래스 법의학 도서관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녀는 하버드대 총장에게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법의학부의 지속을 위해 1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힙니다. 프랜시스는 록펠러 재단의 의과학 분야 관리자 그레그 박사를 매그래스에게 소개받고 법의학에 발전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레그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고 인정합니다. 프랜시스는 록펠러 재단의 도움을 받으면 인력 부족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자신이 작성한 제안서를 알립니다. 의대 3학년에게 강의할 교수진, 법의학 전문가를 훈련하는 데 쓰일 장학금, 코로너, 코로너의 의사, 검시관을 위한 교육과정 등 이 제안서를 위해 하버드대에 25만 달러를 희사할 것이라 말합니다. 프랜시스가 세운 비전의 목표는 하버드대 법의학과를 발전시켜 매사추세츠 주의 모든 법의학 수사를 진행하고 미국 전역의 경찰에게 도움을 줄 법의학 연구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녀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 속에서 법의학은 발전했습니다.
개혁자이자 교육자, 법의학의 수호자인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가 법의학 분야에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미국 최초의 법의학과 책임자인 모리츠는 리와 동료이자 친구가 되었고, 그들은 경찰들에게 일주일짜리 법의학 집중 강좌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단서를 찾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정교하고 상세한 축소 모형인 디오라마를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당시 여성이 사회에서 설 수 있는 자리에 분명히 한계가 있었던 시절이었으나 적지 않는 나이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법의학 연구와 교육에 큰 틀을 마련했습니다. 그녀의 삶을 보면, 한 사람이 흘린 땀과 나아가려는 힘이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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