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해링 베이식 아트 2.0
알렉산드라 콜로사 지음, 김율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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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트리어에서 미술사와 독일 문학, 경영학을 공부하여 2003년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독일 뒤렌에서 자유기고가이자 현대미술 전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베이식 아트 시리즈'는 1985년 피카소 작품집을 시작으로 베스트셀러 아트북 컬렉션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이후 간결하고 얇은 작가별 도서는 200여 종이 넘게 제작되었고, 20여 개 국어로 출간되었습니다. 그럼, 타센 베이식 아트 시리즈 <키스 해링>을 보겠습니다.



키스 해링은 1958년 5월 4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리딩에서 4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을 보였고 아버지가 지지하고 후원했습니다. 워싱턴의 허시온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 연작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은 키스 해링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모님의 조언에 따라 아이비 전문 미술학교에 진학해 상업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2학기를 마친 후,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었고 1978년 19세의 나이로 피츠버그 미술공예센터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였습니다. 뉴욕으로 이주해 시각예술 학교에 등록해 비디오 아트, 설치, 콜라주를 발전시켰습니다. 초기에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장소인 거리와 클럽에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대중과 더욱 가깝게 만나려 노력했습니다.


1980년 뉴욕 지하철역의 기한을 넘긴 광고 포스터들로 비어 있는 공간을 발견하고는 초크 지하철 드로잉으로 그 공간을 채웠습니다. 해링의 표현에 의하면, 지하철은 곧 그의 '실험실'이 되고 그곳에서 자신의 선명한 선과 관련된 실험들을 행했습니다. 1980년 가을, 시각예술 학교의 겨울 학기에 등록하지 않고 학교를 떠났고, 이후 그룹 전시회를 기획했고 전시했습니다. 이때부터 작품 판매로 이익을 얻기 시작했고, 해링의 다양한 표상이 등장하는 30초짜리 애니메이션이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스펙태컬러 광고판에서 한 달간 매일 20분씩 상영되어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작품들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해외 전시도 하고, 해외여행을 갔습니다. 1985년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해링의 예술 세계에서 에이즈는 더 중요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1988년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음을 알았지만, 예술적 에너지는 오히려 더욱 강화됩니다. 작품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려는 것처럼 그는 쉬지 않고 작업했습니다. 사망 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재단을 설립하고 비서에게 재단의 운영을 맡깁니다. 재단의 목표는 어린이 자선사업의 후원과 에이즈와 싸우는 단체의 지원입니다. 1990년 2월 16일, 31세의 젊은 나이에 에이즈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일생과 그의 작품들을 <키스 해링>에서 자세히 만날 수 있습니다.




키스 해링의 작품을 한번 보면 그 특이함에 눈길이 갑니다. 저도 이름은 몰랐지만 작품을 보고 난 뒤 누가 그렸나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키스 해링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술의 힘과 능력을 항상 믿었고, 예술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회화로 표현된 동시대의 역사로서, 몇몇 작품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직접적으로 지적하면서 당대의 관심사를 반영합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해링의 티셔츠를 입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양식적 특징을 인지했습니다. 그가 어떤 말을 하려고 했는지 <키스 해링>에 실린 작품들과 글을 보며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비슷한 느낌의 작품을 다른 작가들에 의해 볼 수 있는데요, 여전히 예술계에 영향을 끼치는 그의 짧은 인생이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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