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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공구 - 공구와 함께 만든 자유롭고 단단한 일상
모호연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2년 8월
평점 :

1992년 광주에서 태어난 저자는 법학을 전공하고 방송국 시사프로그램 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프리랜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2da)와 함께 일상적인 예술 창작을 위한 '소사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뉴스레터 '일간 매일마감' 제작에 참여하여 에세이와 시, 동화 등 다양한 글을 연재했습니다. 평소 가까운 물건의 생애와 쓸모에 관심이 많고 일상을 돌보는 살림으로서의 만들기에 진심인 편인 저자가 쓴 <반려공구>를 보겠습니다.

꼭 하나 갖춰야 한다면 저자는 전동 드라이버를 꼽는다고 합니다. 어쩌다 보니 사게 된 이케아 전동드라이버, 이 공구가 저자에게 도움을 주는 부분은 힘이 아니라 속도랍니다. 전동 드라이버는 노동 시간을 확실히 줄여주었고, 그 편리함에 익숙해져 걱정 없이 다음 만들기를 계획할 수 있답니다. 벙커 침대를 만들 때 일일이 그냥 드라이버로 나사를 조여야 했다면 한 달 넘는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지만, 전동 드라이버 덕분에 단 이틀 만에 조립을 마쳤습니다. 8년 동안 모니터를 받치고 있는 원목 받침대가 저자의 첫 목공 작품입니다. 이 원목 받침대는 평범해 보이지만 저자에게 대체 불가능한 물건입니다. 앉은키와 눈높이에 맞게 설계한, 오직 저자만을 위한 받침대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데에 고작 전동 드라이버 하나와 나사못 여덟 개만 있으면 됩니다. 공구 하나로 물건 하나가 뚝딱 만들어집니다. 전동 드라이버는 써보고 나서, 필요한 물건을 생각보다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전동 드라이버는 매번 다른 상상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직업으로 망치를 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벽에 못 받을 일이 점점 없어집니다. 세입자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집을 옮겨 다니고, 집주인들은 살다 간 사람의 흔적이 덜 남기를 바랍니다. 자기 소유의 집이라도 내 집에 흠집 내기가 꺼려져 되도록 못을 안 받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못을 안 받아도 되는 아이템이 매년 새롭게 출시됩니다. 커튼을 다는 필수적인 일조차 집주인의 눈치를 보거나, 실패하기 두려운 일이 되어버린 현실. 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의 벽이 어떤 소재로 되어 있는지,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알아갈 기회도 좀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실패조차 기회가 주어져야 가능한 것이라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가위는 공구보다 문구로 다가옵니다. 집에서도 보통 가위, 바느질 가위, 주방 가위 등 다양한 가위를 사용합니다. 어떤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흔한 도구라도 새로운 영역으로 생각의 지평을 뻗어나가게 합니다.
요즘은 고장 난 물건을 고치기보다 새로 사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공구를 사용하게 되면 일상이 달라집니다. 누구든 멍키 스패너만 있으면 세면대 고압호스 정도는 교체할 수 있고, 커튼을 다는 것은 일도 아니게 됩니다. 공구를 사용할수록 일상의 문제들이 통제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지를요. 내게 닥친 불편들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자 더 이상 미루거나 적응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지금 상태에서 얼마나 더 편안해질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됩니다. 공구와 함께 하는 일은 그래서 특별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물건을 사랑하는 것이 그 물건에 쌓인 추억을 되새기는 일이라면, 공구를 좋아하는 것은 공간에 잠재된 가능성을 생각하고 끄집어내는 일이기 때문이죠. 이제 나도 집에 있는 공구의 쓰임새를 알아보고 하나씩 도전해야겠습니다.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 짓지 말고, 시도해야겠습니다.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