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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질량
설재인 지음 / 시공사 / 2022년 1월
평점 :

자신의 소설을 쓰고 다른 이의 소설을 읽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저자는 자살한 사람의 사후세계를 그린 <우리의 질량>을 썼습니다. 그럼 내용을 보겠습니다.

이곳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세계입니다. 그런 사람이 현실에서 죽으면 안내자가 인도하며 이곳으로 데리고 옵니다. 죽을 때 걸친 옷을 그대로 입고 이곳에 와서 아파트형 공동 주택의 배정된 방에서 지냅니다. 이 방은 본인이 아니면 절대 밖에서 열 수가 없게끔 설계되었고, 안에 구비되어 있는 물품들도 문구류, 메모지, 수건 정도로 똑같습니다. 목도 아무리 않고 배도 고프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아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할 필요가 없어도 그런 욕구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각자의 목덜미에 엉킨 실타래의 매듭을 풀어야 이 세계를 떠서 진짜 죽을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일정 농도 이상의 긍정적인 신체 접촉입니다. 동일인과 아무리 물고 빨고 해도 딱 매듭 두 개밖에 풀 수 없기 때문에 이곳의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신체 접촉을 합니다.
서진은 무책임하게 막내만 데리고 떠난 부모 대신 여동생과 생계와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돈을 모았고, 일자리를 계속 건네주는 이의 신발을 핥았으며, 아무 일도 없었단 듯 다시 돌아온 부모에게 생활비를 건넸습니다. 여동생은 집을 떠나 일 년에 한 번씩 그녀에게 잘 있다며 문자를 보냅니다. 고등학교 때의 담임, 새터 동아리의 과 동기, 과외생의 아버지, 인문대의 그 교수나 재수 학원의 부원장 같은 사람들이 서진을 만졌고, 그녀는 점점 무감해지면서 내치진 못하겠지, 자르진 못하겠지란 생각을 합니다.
모자란 것 없이 살며 외제차를 타는데 기초 수급자, 서류상으로 이혼한 부모, 이런 것들은 건웅의 능력과 노력을 뛰어넘는 결실을 얻기 위해 벌어진 일이고 건웅이 결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약점들입니다. 부모의 기대 때문에 삼수를 하게 된 건웅이 입시학원 질문 조교로 일하는 서진을 만났고 학원 선생 장준성의 코치로 그녀의 학교에 들어갑니다. 새내기와 재학생으로 다시 만난 둘, 건웅의 들이댐에 결국 둘은 사귀고, 각자의 처지를 숨긴 채 아슬아슬한 시간을 보냅니다. 남들처럼 스펙 쌓을 시간이 없어 취업을 하지 못한 서진은 입시학원 장준성의 조교 자리에 들어가고, 돈이 없어 밥을 굶는 것이 뭔지를 모르는 건웅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돈 걱정 없이 살고 싶은 서진은 장준성과 결혼하고, 자신의 지배욕을 과시하는 장준성에게 맞다가 결국 자살합니다. 사후세계에서 서진은 장준성과 같이 죽은 14살 정선형, 건웅과 함께 지냅니다.
사후세계에서 다시 만난 서진, 건웅, 정선형과 이들을 돕는 사토는 장준성과의 악연은 어떻게 풀지 <우리의 질량>에서 확인하세요.
누군가와 사귄다면 모든 것을 다 말하나요? 어느 정도 살아온 환경이 비슷하다면 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환경이 전혀 다르다면 말해도 이해할 순 없을 겁니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것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가난해서 너무나 가난해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서진은, 부모가 준 용돈과 카드로 생활하는 건웅에게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군대에서 휴가 나올 건웅을 위해 돈을 따로 모으는 것도, 로드숍 화장품을 살 수 없는 것도, 곰팡이가 가득한 반지하 방에서 하루 종일 취직 원서를 내는 것도 말하지 못합니다. 건웅도 서진을 위로하려고 하지만 서툴고, 그래서 장난으로 넘깁니다.
자신의 짐이 가장 무겁다고 우린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머무는 행성에서만 그럴 겁니다. 그곳의 중력이 가장 센 까닭이었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짐이 가볍다고 생각하지만 내 짐을 상대방의 행성에 옮겨 놓으면 깃털 같은 무게감만 가지게 될 수도 있고요. 우리는 타인이 살아야 했던 그 삶의 질량을 모릅니다. 그 행성에 갈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자꾸만 자신의 것만 무겁다고, 가혹하다고, 떨쳐내기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질량>에서의 서진과 건웅처럼요.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