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흑역사 - 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테마로 읽는 역사 6
양젠예 지음, 강초아 옮김, 이정모 감수 / 현대지성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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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1995년 퇴직한 저자는 일찍부터 과학자들의 실패에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아인슈타인, 갈릴레이, 뉴턴, 스티븐 호킹 같은 천재들에게 실수, 아집, 흑역사가 있었지만, 이것이 실패로 끝나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과학자의 흑역사>를 펴냈습니다. 그럼 내용을 보겠습니다.



천왕성을 발견한 사람은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입니다. 그는 뉴턴의 전기를 보고 하늘의 천체를 연구하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망원경에 필요한 렌즈를 직접 손으로 갈아 만들었습니다. 망원경을 빨리 만들고 싶은 마음에 밥도 먹지 않고 하느라 여동생 캐롤라인이 음식을 먹여주어야 했습니다. 캐롤라인도 오빠처럼 천체 연구에 푹 빠져 84세에 영국 왕립학회 최초 여성 회원이 되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세계 최고의 망원경을 제작했습니다. 허셜은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고 처음엔 '허셜 행성'으로 불렀으나 천문학계에서 천왕성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천왕성의 발견은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엄청난 소식입니다. 1843년 존 애덤스는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이용해 미지의 행성을 찾아내겠다고 마음먹고 계산 결과를 영국 왕립 천문대의 최고 책임자에게 보냈습니다. 고작 학생에 불과한 그의 요구는 무시되었고, 애덤스가 행성의 위치를 예측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파리 천문대의 르베리에는 행성 위치를 이론적으로 계산하라는 연구를 맡았습니다. 르베리에는 애덤스보다 1년 늦은 1846년에 계산을 완성해 베를린 천문대 연구원 갈레에게 편지를 보냈고, 갈레는 르베리에가 예측한 위치를 망원경을 관찰했습니다. 그가 말한 위치 근처에서 새로운 행성을 발견해 해왕성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해왕성이 발견된 후 누가 최초의 발견자인지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르베리에는 해왕성 발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태양과 더 가까운 곳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작은 행성이 있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당시 르베리에의 명성 때문에 그의 예언을 믿고 이 존재를 찾는 일에 많은 천문학자가 뛰어들었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가 없었습니다. 르베리에가 추측한 위치에서 새로운 행성이 발견되지 않았고, 결국 르베리에의 예언은 빗나갔습니다.



1789년 자연계에서 가장 흔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을 탐구하는 '현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가 있었습니다. 프리스틀리는 많은 과학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뛰어난 재능과 지성을 드러냈고 과학계에서 높은 평가와 주목을 받았으며 1772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명예회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1774년 프리스틀리는 파리에서 프랑스의 유명한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를 만났습니다. 프리스틀리는 라부아지에의 실험실에서 그가 진행한 실험을 시연했고, 자신의 설명과 시연이 라부아지에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뒤이어 '화학 혁명'의 막을 열게 되었지요. 연소 현상은 사람들이 많이 보고 널리 이용하는 화학 반응이지만 수천 년 동안 화학자들을 혼란스럽게 한 현상입니다. 무게가 없고 감지 불가능하며, 미세한 기체 물질을 플로지스톤이라 하고 이 플로지스톤이 가연성 물질 안에 존재하며 이런 일련의 반응을 설명하는 것이 플로지스톤설입니다. 프리스틀리처럼 탁월한 실험의 대가도 플로지스톤설이 진리라고 굳게 믿었으며 죽을 때까지 그 생각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1778년 라부아지에는 플로지스톤 이론을 완전히 부정하고 연소과정이 가연성 물질이 산화하는 과정임을 증명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도 산화 이론을 받아들였지만 산소를 발견한 프리스틀리는 죽을 때까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갈릴레이의 실수는 이 악보(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 '세계의 조화'라는 책에 수록)에 담긴 사상에 관한 것입니다. 갈릴레이는 관성의 법칙을 발견했고 자유낙하하는 물체의 가속도를 연구하면서 중력을 알아냈습니다. 태양에 흑점이 있다는 것과 달 표면이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는 것도 발견했지요. 이처럼 탁월하고 예리한 견해를 가졌으니 갈릴레이가 천체의 운동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았으나 한 발짝을 내딛지 못했습니다. 과학 연구에서의 실수 오에도 갈릴레이는 친구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피렌체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교황청의 우협을 받고 재판정에서 '참회서'를 낭독했습니다. 갈릴레이가 이런 모욕을 겪으며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지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내면의 괴로움은 노쇠한 갈릴레이를 괴롭혔고, 자기 영혼을 고문했을 것입니다. 만약 친구들의 충고를 듣고 피렌체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갈릴레이는 과학에 더 많은 공헌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과학자에게 개척 정신은 근본적인 자질입니다. 개척 정신없이는 과학도 없습니다. 한편 개척정신은 실수나 실패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남이 탐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문제를 연구하고 새로운 견해를 내놓는 일이기 때문이죠. 전통적인 틀을 깨뜨릴 만큼 신선한 의견을 내면서 어떻게 실수가 실패가 없을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과학사에서 실수나 실패는 무조건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실패 사례 연구를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뛰어난 과학자들은 실패 사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과학자의 흑역사>에 실린 26가지 이야기를 읽으며 과학자들이 실패에 실망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그 경험을 본보기로 삼아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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