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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 현대미술의 거장들에게서 혁신과 창조의 노하우를 배우다
김태진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8월
평점 :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파리 예술혁명, 스페인 문화예술을 다룬
3권의 "아트인문학 여행"과 서양미술의 역사를 독창적 시각으로 다룬
"아트인문학: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으로 독자들의 호응을 받은 김태진 씨.
온·오프라인 강연을 통해 예술 애호가들과 교류하고 있으며
'베스트 티처' 상을 수상할 만큼 그의 강연은 유명합니다.
이번에 나온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에선
새로운 시각을 어떻게 보여줄지 내용을 보겠습니다.

20세기가 열리고 미술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새로운 길을 5개의 생성점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미술의 한계를
세잔의 후계자인 야수주의 화가들이 넘어섰습니다.
그 한계는 '재현이라는 틀'이었습니다.
그래서 '앙리 마티스, 모자 쓴 여인'은
그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그림이었습니다.
세잔이 야수주의 화가들에게 물려준 것은
'재현을 버리고 표현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사실과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닌 화가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라는 것,
특히 이들은 색채 사용에 있어 고정관념을 끊어냄으로써
색채의 무한한 자유라는 선물을 현대미술에 선사했습니다.
브라크는 세잔에게서 주목한 것이 달랐습니다.
바로 원근법에서 자유로운 시점이었습니다.
세잔은 견고하게 대상을 그려야 한다는 대원칙 아래
시점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자신이 본 대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림 속 사물들이 각도도 안 맞고 뒤틀려져 보입니다.
세잔은 이것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는데,
브라크는 원근법은 거짓된 것이므로 아예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라크의 구상은 미술의 근간을 뒤엎는 혁명적 발상이었습니다.
브라크는 피카소에게 찾아가 공동 작업을 제안했고,
둘은 경쟁과 협력의 시너지를 통해 발전해나갔습니다.
그렇게 입체주의는 잉태되었습니다.
1912년 가을에 개최된 섹시옹 도르 살롱은 최초의 입체주의 전시회였습니다.
이는 '퓌토 그룹'이라 불린 화가들이 주도한 행사였는데,
입체주의의 후발 주자들이었습니다.
이 시기 작품들은 견고한 입방체 모양도 무너지면서
화면이 점점 평면에 가까워졌습니다.
퓌토 그룹 중에는 브라크와 피카소와는 다른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 화가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오르피즘이였고
대표주자는 로베르 들로네였습니다.
그는 같은 색이 주위 색의 영향을 받는 효과인 동시대비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색채들만으로도 회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발상을 합니다.

1915년 러시아 전시회 '0, 10 마지막 미래주의 전시회'에서
말레비치는 절대주의를 선보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대상의 재현을 완전히 제거한
그야말로 완벽한 추상이었습니다.
화가는 '무언가를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창조가'가 되어야 한다며
자신의 작업도 '복제물이 아니라 창조물이다'라고 했습니다.
말레비치에 따르면 대상을 놓는 순간부터 그 그림은 가짜입니다.
복제물에 불과하니까요.
그렇다면 진짜는 자연과의 모든 관계를 떨쳐낸 것이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도형 같은 기본적인 형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물, 즉 '리얼한 존재'입니다.
폴록의 작품은 처음부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의 작품이 갖는 독창성은 '전면화'라고 번역할 수 있는 올오버회화입니다.
위아래가 없다는 뜻으로 어디가 시작인지 알 수 없으며
중간도 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올오버회화에는 유럽의 추상에서
당연히 볼 수 있는 직선과 사각형 등의 형태 자체가 없습니다.
또 다른 독창성은 화가의 행위 자체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붓을 대고 그리는 회화에서는 손놀림과 결과물이 거의 완전히 일치하지만
폴록의 그림에서는 이 둘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그려진 것과 분리된 화가의 동작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됩니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그의 회화를 '액션페인팅'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를 연 작품들의 이면에는
무엇을 그리느냐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숨겨져 있습니다.
사진이라는 기계의 발명과 모더니즘의 탄생은 화가들을 고민하게 했고,
그에 따라 형식의 차원을 넘어선 주제의 차원이 있었습니다.
또한 화상과 수집가들이 대두하면서
19세기까지 화가가 성공하려면 살롱전을 통과해야 했지만
20세기의 화가들의 지향점이나 성공 기준은 달라졌습니다.
화상과 수집가들의 눈에 들어야 했으며,
이들에게 투자가치를 보여줘야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더니즘 시대의 미술은 경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저 잘 그린 그림은 설자리는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색면회화, 팝아트, 미니멀리즘, 플럭서스,
구축주의, 신사실주의, 대지예술, 비디오아트를 지나
이제 현대미술은 결과물로서 작품이 없어도 된다는 생각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 시작은 '뒤샹, 샘'에서부터입니다.
이를 통해 그는 예술의 개념 자체를 바꿨습니다.
뒤샹이 생각하는 예술가는 착상하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아이디어가 예술의 핵심이기 때문에
제작은 직접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카프로, 해프닝'은 '제작으로서의 미술'이 아닌
'실행으로서의 미술'을 처음으로 정립했습니다.
이로 인해 카프로는 음악에도 공연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예술 영역을 만들어냈습니다.
'피에로 만초니, 예술가의 똥'은 과연 예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술에 몸과 영혼이 있다면
개념미술은 이 중에서 영혼을 붙들고 하는 작업입니다.
존 발데사리는 이 영혼을 다양한 형식으로 구현했습니다.
'요제프 보이스'의 예술은 삶은 예술이고
모든 사람이 예술가란 말을 몸으로 실천한 화가입니다.
행위예술이 발전하면서 신체 예술도 함께 발전했는데,
하위 장르로 여겨지던 신체 예술을 주류 장르로 끌어올린
예술가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입니다.
왜 지금 예술로 인문을 생각해야 할까요?
저자는 새로운 미술이 생겨난 순간은 기존의 미술이 아닌 새로운 길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직장으로 대입시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선망한 곳 대부분은 남들도 몰려간 데지요.
이처럼 많은 이들이 지나간 길에는 점점 깊게 홈이 파입니다.
홈은 깊을수록, 또 길게 이어질수록 좋은 곳이고 안전하니깐요.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또 다른 홈을 꿈꿉니다.
노력해서 더 안전한 홈에 들어가리라 다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홈에서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그곳에는 대지가 있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게임의 규칙은 완전히 다릅니다.
홈에서 나와 대지에 선 이들은 더 이상 줄 서기를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며 스스로 길을 열어갑니다.
즉 나다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남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를 보여줘야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대지에서도 홈은 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량은 바로 독창적 사고력,
즉 '틀 밖에서 생각하는 힘'입니다.
이를 갖추기 위해 창조의 경연장인 현대 미술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기>는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에게 읽어야 할 책임에 틀림없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