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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자의 일기
엘리 그리피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나무옆의자 / 2021년 8월
평점 :

저자의 본명은 '도메니카 데 로사'로 이탈리아 혈통이 섞인 자신의 삶을 반영한 첫 소설로 데뷔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시리즈를 4권 펴냈습니다. '엘리 그리피스'란 이름으로 출간한 첫 번째 범죄 소설 "크로싱 플레이스"를 시작으로 아마추어 탐정인 법의학 고고학자 루스 갤로웨이 박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시리즈 13권을 썼으며, 매직 맨을 주인공으로 한 범죄 소설 시리즈도 5권 발표했습니다. <낯선 자의 일기>는 독립적인 작품으로 2020년 에드거 상 최우수 장편소설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의 화려한 이력과 수상 경력을 보면 바로 읽어야 할 책일 겁니다. 어떤 내용일지 보겠습니다.
소설에서 처음 등장한 내용은 으스스해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음산함을 풍깁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심장이 쫄깃해서 읽고 있노라면 바로 장면이 바뀌어 수업하는 모습으로 전환이 됩니다. 다행히 앞의 내용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문예창작반 수업이었습니다. 이 수업을 이끄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클레어는 남편과 이혼하고 런던을 떠나 시골인 이곳에 와서 탈가스 하이에서 11살부터 14살까지 교육 3단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클레어는 이 학교에서 예전에 살았던 고딕 문학의 작가 R.M 홀랜드에 대한 전기를 쓰고 있습니다. 홀랜드 작가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낯선 사람'이란 유명한 단편집을 발표했으나 사는 곳을 잘 떠나지 않았고, 아내는 사고로 죽었으며 딸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그런 그녀의 평온했던 삶은 동료 영어교사인 엘라가 집에서 여러 번 칼에 찔린 채 발견되면서 바뀌기 시작합니다. 엘라와는 친했던 사이로 같은 날 이 학교에 면접을 보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의 학교에서 부장 교사와 불륜을 저지른 엘라는 이곳에서 학부장 릭과도 적절치 못한 관계를 맺습니다. 그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누가 뭐라고 할 순 없는 문제라 클레어와 다른 교사들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클레어의 딸 조지아는 15살로 부모가 이혼한 후 엄마와 함께 지내는데 21살 타이란 남자와 사귀고 있습니다. 전학 온 탈가스 하이에서 특별한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지만 글쓰기를 다른 사람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이 사실을 모르죠. 모든 것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부모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비밀이 있거나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충격을 받겠지만,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부모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진 않습니다. 관계가 좋든, 안 좋든 간에요. 이러면서 서서히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죠.
엘라의 살인사건으로 하빈더 카우어 형사가 조사를 시작합니다. 먼저 엘라의 동료들에 대해 피해자의 성격 등과 사건이 있었던 당시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한 것들을 물어봅니다. 클레어를 만나 같은 질문을 하지만 왠지 못마땅하고 미심쩍은 눈으로 그녀를 봅니다. 하지만 살인사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두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첫 번째 피해자 옆에 '지옥은 비었다'라는 문구가 쓰인 쪽지가, 두 번째 피해자에게도 발견됩니다. 이것은 R.M 홀랜드의 소설에서 나오는 문구입니다. 여러 가지 단서와 사실을 바탕으로 범인을 추리하던 하빈더는 클레어의 일기에서 클레어의 필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필체를 발견한 사실을 알고 압수해서 그녀의 일기장을 살펴봅니다. '안녕, 클레어. 당신은 나를 모르죠.', '이런 피조물들 중 하나는 이미 처리해버렸습니다.'란 필체로 주변 인물들의 필체를 추적했지만 같은 필체는 없습니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요?
<낯선 자의 일기>는 클레어, 하빈더, 조지아의 시점을 반복하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세 인물 모두가 여성이란 점도 특별하게 볼 수 있는데요, 클레어는 동료 교사의 죽음으로 마음이 아픈 상황이고, 하빈더는 살인사건을 추리하는 형사로 냉정하며 관찰력이 뛰어나고 열정이 가득합니다. 조지아의 시점은 분량은 짧지만 그녀가 바라보는 클레어의 모습이 나타나고, 용의자 중 한 명을 제외하는 역할을 합니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유명한 문학 소설의 인용구는 다행히 주석이 달려 있어서 어떤 부분인지 알게 합니다. 영어 교사인 클레어의 직업 때문인지 이런 문구를 여러 가지 상황에 인용하는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속담이나 사자성어를 사용하니 조금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간혹 유명한 고전에서의 문구를 언급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도 드물고,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도 더 드뭅니다. 우린 대학 입학을 위한 도구로 우리나라 문학을 배우지만, 영국 사람은 교양과 상식의 하나로 문학을 배우기 때문에 그런가 혼자 납득했다가도 소설 중간에 이런 문구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것을 보고 대부분의 영국 사람이 이해하는 건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등장한 R.M 홀랜드 작가는 허구의 인물로 실제 있는 작가처럼 촘촘한 배경을 만들어서 '낯선 사람'이란 작품을 다음에 읽어야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는 이 작가는 살인사건의 주요 소재로 사용되며, 고딕 문학이 무엇인지 독자가 이해하게 만듭니다. 그래서인지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스릴러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끔찍하거나 긴박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등장인물들의 자세한 심리 묘사로 서서히 전개하는 소설입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고딕 문학을 알아가며 사건을 풀어보는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하는 <낯선 자의 일기>입니다.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