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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아틀리에 - 나를 열고 들어가는 열쇠
천지수 지음 / 천년의상상 / 2021년 6월
평점 :

저자가 읽은 책에 대한 느낌과 감상을 글과 그림으로 재탄생시키는
'페인팅 북리뷰'라는 새로운 형태의 작업을 하며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한 글을 모아 <책 읽는 아틀리에>에 담았습니다.
저자는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감상을 하고 어떻게 그림으로 그려냈는지 몇 개를 살펴볼게요.

우리나라 서정시의 특징 중 하나는 여성 화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시인은 대부분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박장호 시인의 첫 시집에 등장하는 시편들은
대개 남성적이고 직설적입니다.
그가 7개월간 복싱이라는 육체적 수련 과정을 한 후
기록한 책인 "샌드백 치고 안녕"은 책을 읽는 내내
거친 숨소리와 땀 냄새가 고스란히 느껴진답니다.
시인은 훈련 중 스파링을 끝낸 한 중학생과 관장님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는데요,
"겁을 먹으니까 펀치를 못 보는 거지."란 말을 들으며
내면도 쇠락해버린 자신을 느꼈답니다.
나이를 먹으니 세상에 대한 겁이 많아져
삶으로부터 날아오는 펀치에 눈을 감아버린 자신의 모습.
'멕시칸 복싱'이란 제목으로 화가는 그림을 그렸는데요,
뒷다리의 발꿈치를 들고 체중은 앞다리에 싣는 자세입니다.
이것은 언제든 앞으로 치고 들어갈 수 있는 자세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유지할 수 없는 자세'인 것입니다.
두려움은 대개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눈에 보이게 하는 방법은,
두려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행동해버리면 안 될까요.
멕시칸 복싱의 기본자세를 삶에 장착하고 살아가면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
미술도 그렇답니다. 잘하려고 하면 더 잘 안되게 되죠.
미술만 그럴까요. 삶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더 노력할수록 오히려 일이 꼬이지요.
안 된다고 마음을 놓는 순간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리 재고 저리 재기보다 자신을 놓아주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는
54편의 에세이와 2편의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인 저자는 일상생활에서 보고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입니다.
아침부터 죽음을 생각하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일까요.
하지만 저자는 우리의 통념을 가볍게 뒤집고,
그 반전의 쾌감이 나중엔 안도로 느껴질 것입니다.
화가는 어느 날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답니다.
스스로의 부재와 죽음을 연상하자 생명의 증거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대요.
그때 깨달았답니다.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인간은 쉽게 부도덕해집니다.
반대로 죽음을 감각하는 인간은 도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잘 살고 싶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자는 매일 아침 죽음을 생각하며 그렇게 살자는 것입니다.

편혜영 씨의 소설집 "소년이로"에는 단편소설 8편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개의 밤'이라는 단편을 읽으며
화가가 느낀 감정은 바로 결과만 중요하다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말이 역겨웠답니다.
'인생 뭐 있어? 사람 다 똑같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지' 따위의 말들.
이런 말들은 인생을 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도록
만드는 말들이며 허무의 말들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의 말이고 시체 같은 말들이라고 화가는 생각했습니다.
어둠 속을 걸어가야 하는데 빛을 찾을 수 없다면
자신이 빛이 되는 수밖에 없는 "소년이로"를 그렸습니다.
아흔 살 주옥지 여사가 말하는 간단명료한 삶의 조언들이 담긴
"할머니의 좋은 점"엔 맞벌이 부모님 대신 자신을 길러준
작가의 외할머니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사는 동안 언제가 제일 좋았냐?'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뭐, 지금이 제일 좋지'라고 대답하는 쿨내 진동하는 할머니.
할머니의 말에는 묻어나는 연륜이 대단합니다.
그러기까지 그녀가 겪었던 인생은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겁니다.
주옥지 여사가 망설임 없이 대답한 것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스스로 돌아보게 됩니다.
시간이 생명이라는 말에 더없이 어울리는 외과 의사 이국종 교수가 쓴 "골든아워".
그는 현재 한국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의사입니다.
2011년 아덴만에서 총상을 입은 선장을 살려내면서
중증외상 치료의 중요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2017년 탈북 과정에서 총상을 입어 죽어가던 북한군 병사를 살려내며
늘 같은 자리에 버티고 있는 이 교수.
그는 이 책에서 망가진 국가 의료정책들,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중증외상 센터의 척박한 상황 등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생명줄을 부여잡고 사투를 벌이는 외과 수술실은 전쟁터와 다름없지만
화가에게는 오히려 한없이 고요한 심연이 다가옵니다.
생은 숭고하며 숭고한 것들은 모두 말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죠.
생과 생을 버티고 생을 지키려는 그 모든 행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일 것입니다.

<책 읽는 아틀리에>는 겉표지 뒷면을 펼치면 책 속의 그림 하나가 크게 나옵니다.
책 속의 작품을 실제로 접할 순 없지만 이렇게나마 볼 수 있어서 더없이 만족스럽습니다.
책은 읽는 것입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죠.
그런데 <책 읽는 아틀리에>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책은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릴 수 있다는 것을요.
이 책에는 화가가 읽은 책 53권의 감상기와 그림 53점이 실려 있습니다.
그녀가 읽은 책 중에 제가 읽은 책도 몇 권 있었지만
예술가라서 그런지, 책을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보통 책을 읽으면 자신의 인생을 투영해 느낀 점이 있는데,
화가는 이미지로 연결해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인지 책이 더욱 입체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소개한 다른 책들 중에서 못 읽은 책이 너무나 많아 부끄러운데요,
못 읽은 책을 한 권씩 읽으며 화가와 제가 어떤 부분을 보는지,
어떻게 느끼는지를 비교하며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솔직하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