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도시 - 대규모 전염병의 도전과 도시 문명의 미래
스티븐 존슨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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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비단 지금뿐이었을까요? 

흑사병, 콜레라, 메르스, 사스 등으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는 이때 생명을 구하기 위해 

오늘도 힘쓰고 있는 의료진들을 보면 감사할 따름인데요.

그보다 앞서 개인들의 철저한 위생관리와 

정부의 발 빠른 역학조사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하고, 카드 내역 등이 전산망에 저장되어서 

역학조사가 많이 어렵진 않지요.

하지만 예전엔 누가, 어떻게 바이러스를 퍼트렸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조사관들의 꾸준함과 집요함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감염 도시>는 존 스노라는 평범한 의사가 

역학과 공중보건학에서 그의 지적 탐색 능력을 발휘되어 

큰 업적을 남겼는지를 취재하듯 소설 형식으로 사건을 재구성해서 보여줍니다.

그럼, 콜레라가 창궐한 1840년대 말 영국으로 가보겠습니다.



유럽, 영국이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왕실 근위병, 여왕, 빅벤, 템스강 등 깨끗하고 클래식한 풍경이 그려질 겁니다.

하지만 1850년대의 영국 런던은 청소부들의 도시였습니다. 

뼈 수거인, 넝마주이, 개똥 수거인, 선상 청소부, 개펄 수색꾼, 

하수관 수색꾼, 석탄재 수거인, 분뇨 수거인, 여자 넝마주이, 

강물 수색꾼, 선창 청소부….

이들은 런던의 최하층 계급으로, 그 수가 최소 10만 명에 달했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은 수정궁, 트라팔가 광장, 웨스트민스터 팰리스 

증축 건물 등 엽서 사진으로 손색없는 명소를 자랑하는 도시였어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오수가 넘실대는 인공 연못, 

집채만 한 똥 무더기가 가득했습니다.

배설물이 도시에 차오른 건 청소부들의 높은 제거 비용 탓만은 아니었어요.

수세식 변소의 인기도 한몫했습니다.

분뇨를 물로 씻어내는 기기를 발명한 후 

이 기기가 널리 퍼진 것은 1700년대 말이었습니다.

수세식 변소는 삶의 질 면에서는 대단한 혁신이었지만 

도시의 하수 문제에는 재앙에 가까웠습니다.

제대로 된 하수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은 터라, 변소가 내린 물은 

기존의 분뇨 구덩이로 쓸려가 구덩이가 넘칠 가능성을 높일 뿐이었지요.

거기에 런던의 쓰레기 위기를 부추긴 제일 큰 요인은 바로 인구였습니다.

쓰레기를 양산하는 사람의 수가 50년 만에 거의 세 배로 늘었어요. 

자신의 배설물에 익사할 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한데 몰리자 시체가 넘쳐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한 악취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런 런던에서 병이 나타나지 않는 게 더욱 이상할 일이었지요.


1854년 8월 말 6개월도 안 된 루이스네 둘째 아이가 콜레라에 걸렸습니다.

루이스네 아기가 토하기 시작하더니 톡 쏘는 냄새가 나는 

초록색 설사를 쏟아냈어요.

엄마인 사라 루이스는 몇 블록 떨어진 의사를 불렀고, 의사를 기다리면서

들통 속 미적지근한 물로 변이 묻은 기저귀를 빨았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몇 분간 눈을 붙인 틈을 이용해 

브로드 가 40번지의 지하로 내려가 건물 앞 오물 구덩이에 

더러운 물을 버렸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존 스노는 당시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마취 실력으로 

노동자 가정의 장남에서 인생역전을 한 유명한 외과의사였습니다.

특히 1853년 봄에는 여덟째 아이를 출산한 빅토리아 여왕의 

클로로포름 마취를 담당해 최고의 명의로 신분 상승을 이뤘지요.

그런 그가 콜레라의 원인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콜레라의 원인은 2가지 이론이 팽배했는데, 

감기처럼 매개체가 있을 것이라는 감염론과 

비위생적인 공간에 가득 찬 독기 때문이라는 독기론이 그것입니다.

스노는 1848년 콜레라 자료에서 뚜렷한 특징을 발견하고 

정체 모를 매개체를 통해 옮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1854년 런던에 콜레라가 재유행하자 감염론을 입증하기 위해 

콜레라가 발생한 빈민촌을 꼼꼼히 조사해 증거를 모았고, 

런던에 식수를 제공하는 회사의 자료를 모았습니다.



두 자료를 취합해 감염 지도를 작성한 후 스노는 

특정 상수 회사의 상수도가 오염돼 콜레라 발생이 높다는 가설을 세웠어요.

헨리 화이트헤드라는 지역 목사의 도움으로 교구 이사회를 설득해 

콜레라가 유행한 브로드 가의 펌프를 제거했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인간 대 콜레라균의 싸움의 역사적 반환점이었습니다.

브로드 가 전염병이 가라앉은 이유는 우물과 주민들의 소장을 잇는 

유일한 가시적 경로가 브로드 가 40번지 오물 구덩이였습니다.

그런데 사라 루이스는 남편이 앓아눕자 다시금 양동이에 담긴 찌꺼기 물을

오물 구덩이에 내다 버리기 시작했어요.

스노가 그 시점에 교구 이사회를 설득해 손잡이를 제거하지 않았다면, 

콜레라균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만연했을지도 모릅니다.

스노의 개입은 질병 확산을 막는데 그치지 않고 재발까지 방지한 셈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콜레라균은 독기설을 지지하는 유명인들로부터 

보호되었습니다.

그러다 런던 전역에 악취가 점점 심해지자 새 하수망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새 하수망 건설은 브루클린 다리나 에펠탑 건설만큼 

역사적이면서도 고된 작업입니다.

하수망은 장대한 것이기는 해도 눈에 안 띄는 땅 밑에 자리하다 보니, 

보다 더 상징적인 다른 시대적 업적들처럼 자주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잘렛이 구상한 하수도는 실로 중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도시가 심각한 환경 및 보건 위기에 맞서 공공사업으로 

문제를 풀 수 있음을 보여준 예였죠.


스노와 화이트헤드의 브로드 가 조사가 마침내 도시의 지성들이 

심각한 보건 위기를 인식하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면, 

바잘렛의 하수망은 위기에 대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감염 도시>의 스노와 화이트헤드는 치명적 질병의 공포와 

무의미함에 관한 정보를 다루었습니다.

두 사람은 정보를 관리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모형을 만든 것이며, 

이것은 역학 분야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닙니다.

스노가 아무리 훌륭한 의학자 경력을 내세웠어도, 

헨리 화이트헤드라는 아마추어 지역 전문가가 없었다면

브로드 가 사건은 독기 이론을 옹호하는 쪽으로 결론나고 말았을 겁니다.

결국 전문가의 지식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마추어와 

비공식적 '지역 전문가'들의 중요성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0년 초 중국 우한에서 최초로 확인된 코로나19 감염병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스노가 브로드 가에서 집집마다 확인하여 작성된 감염 지도를 

지금은 스마트폰에 내장된 GPS 수신기 위치 정보를 

컴퓨터의 지리정보시스템(GIS)에 결합해 실시간으로 그려낼 수 있습니다.


<감염 도시>가 그려낸 1850년대 런던과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바이러스의 유행이라는 측면에서 도시의 미래는 어떻게 되어야 할지 

생각하게 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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