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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러운 생물, 수컷 - 생물학으로 바라보는 남성의 진화와 멸종사
후지타 고이치로 지음, 혜원 옮김 / 반니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기생충학, 열대의학, 감염면역학을 전공으로 한 저자가
기생충을 자신의 장 속에서 15년간 키우는 실험을 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답니다.
기생충은 수컷이나 암컷이 각각의 개체로 존재하지 않아 번식 가능한데,
인간처럼 남자와 여자로 성차를 가진 생물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죠.
이 문제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생물계에서의 '남자'와 '여자'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성차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알게 되었대요.
인간 세계에서도 남녀의 교제와 연애의 밀당 같은 이야기가 있는 줄만 알았는데,
인간뿐만 아니라 곤충이나 조류, 동물의 암컷과 수컷 사이에서도
신기한 이야기가 벌어집니다. <유감스러운 생물, 수컷>에서 그 이야기를 확인해 보세요.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시켜온 문명은 고도의 편리함과 쾌적함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속에 푹 빠져 풍요로움을 한껏 누려왔지요.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었던 것인지,
남성도 여성도 살기 힘든 사회가 되었습니다.
남녀 모두 성욕을 잃어 아이를 낳으려는 의욕이 사라지고,
그 탓인지 이성 간의 트러블도 세계 각지에서 증가했습니다.
현대에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실은 우리가 만들어낸 '문명' 그 자체이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연에서 살아가는 생물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유전자는 생존을 걸고 대립합니다.
생물은 모두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남기려고 필사적이며,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정자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암컷에게 있어서 자신이 낳은 새끼는 자기 유전자를 가진 게 틀림없지만
수컷에게는 암컷이 낳은 새끼가 자기 유전자를 가진 새끼라는 확증이 없기에,
동물의 세계에서는 얼마나 자신의 정자를 확실하게 암컷의 체내에 넣을지가
중대한 문제입니다.
일본애호랑나비의 수컷과 잠자리 중의 예를 봐도
동물들도 '자손 남기기'에 지혜를 쏟아붓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들과 달리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고도로 진화한 생물로,
자손을 남기기 위한 존재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체력적으로 약해 무리와 협력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생물이 되어
무리와의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중추를 발달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중추는 원시적인 자극만으로도 간단하게 제 기능을 못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실험 결과 남성의 눈앞에 알몸의 여성을 보여주면
인간관계보다 자손 번영을 우선시키는 뇌의 지령이 내려온다고 합니다.
현명하고 이성적인 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도
특히 남성은 이런 부분에서 동물과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이죠.

저자가 사는 일본의 저출산은 나라의 장래가 없어질 큰 문제입니다.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는 대부분 1만 년 전의 것과 바뀌지 않았어요.
우리는 1만 년 전의 환경에 적합한 세포로 살아가고 있음에도,
주위 환경만 점점 변해가고 있습니다.
공기가 바뀌고 음식이 달라지고 생활환경이 변했습니다.
극적으로 변화한 환경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줍니다.
인류는 고도로 발달한 뇌 덕분에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직 인간만이 안전하고 쾌적한 세계로,
반대로 많은 지구상의 생물은 멸종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암컷과 수컷에 의한 유성생식은 사실 무서운 병원체 침투나 지구 환경의 큰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발달했습니다.
심각한 병원체가 지구에서 감소하고 지구 환경이 크게 변해도
그것에 순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면, 남성은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위협이 사라지면 귀찮은 유성생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생물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약 40억 년 전에 생명이 이 지구상에 탄생하고 나서,
지구의 생물은 '빅 5'라고 불리는 5회의 대량 멸종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대량 멸종 뒤에는 '대적응방산'이 일어나 생물의 다양성이 중대한다고 합니다.
적응방산이라는 것은 생물의 진화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하나의 조상에서 다양한 형질의 자손이 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구 한랭화나 온난화, 산소 농도 등의 급격한 환경 변화에 따라 공룡 등
거대 생물의 성쇠를 거쳐, 살아남은 생물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성을 늘려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종의 멸종 반복은 자연의 흐름이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멸종 속도가
점점 가속화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원인의 대부분이 인간의 활동입니다.
지구상에서 에너지는 순환됩니다. 하지만 인간만이
지구상에 있는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지구 환경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인간이 에너지 소비의 순환을 크게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유감스러운 생물, 수컷>에서 생물계를 살펴보면서 수컷이 불필요한 생물도 알아봅니다.
애초에 수컷과 암컷에 의한 유성생식은 외적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지혜였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뇌를 고도로 발달시킴으로 외적 환경조차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유성생식이라는 방법을 떨쳐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저자는 언급합니다.
지나치게 발전한 문명사회가 수컷을 불필요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죠.
이 말은 역으로 우리가 직면한 멸종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성 확보,
결국 유성생식을 유지하기 위한 수컷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뜻도 됩니다.
<유감스러운 생물, 수컷>에서 본 수컷과 암컷의 밀당,
유감스러운 수컷의 행위-암컷을 등쳐먹는 수컷과 생식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수컷,
성을 바꾸는 생물들- 그 모든 것은 생물로서 다양성을 지키고,
멸종을 피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남기기 위한 방법입니다.
여러 가지 수컷의 유감스러운 행위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생명을 이어오게 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