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고발 - 착한 남자, 안전한 결혼, 나쁜 가부장제
사월날씨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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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을 좋아하지만 결혼 제도는 고통스러운 결혼 5년 차, 사월날씨 님은 

대학의 성 평등센터에서 근무하고 여성의 진로발달에 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결혼 전부터 결혼 5년 차에 이르기까지 

결혼에 대한 불합리함과 불편함을 넘어 부당함을 <결혼 고발>에서 고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30대, 전 40대. <결혼 고발>을 읽으면서 

저도 가부장적인 가치관에 매몰되었다고 많이 느꼈습니다. 

아마 저를 포함해 나이 드신 분들은 결혼이 문제이긴 하지만, 

이런 거까지 문제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이런 것을 문제라고 느끼지 못한 게 문제임을 깨달았습니다.


사과를 못 깎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과가 우리 앞에 놓일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을 결심해 결혼했지만 

결혼식을 하는 과정부터 싫은 거 투성이였대요. 

청첩장과 식장 안내판에 무조건 신랑 이름이 먼저인 것도 싫었고, 

신부는 막힌 대기실 의자에 갇혀 제대로 일어서지도 혼자서는 화장실에 가지도 못한 채

마냥 앉아만 있는 것도 싫었고, 

신랑은 평소 입는 정장에서 조금 더 멋을 내는 정도지만 

신부는 화려하고 거대한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에서 

여자에게 중요한 것은 외모라는 생각이 싫었답니다. 

그 외에도 식장에 신부가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것도 사회의 지배 성별인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여성을 건넬 권함이 있음을 보여주는 의식이자 

여성은 영원히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임을 의미하는 제스처이고, 

결혼식이 아버지의 승인 하에 이루어짐을 강조하는 것 같아 싫었대요. 

이런저런 싫음을 참고 결혼식을 끝냈지만 또 다른 문제가 펼쳐졌습니다.


저자의 시부모님은 막장 드라마의 시부모님과는 반대의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결혼제도 하에 살아온 어른들처럼 한 번씩 내뱉고 행동하는 것들이 

하나둘 부당함으로 다가왔답니다. 

'며늘애가 그러라고 하디?', '고부 사이 어색해질라.', 

'아들 안색에 따라서 며느리가 미웠다가 예뻤다가 해.', 

'아들 집 놔두고 카페를 왜 가냐.', 

'우리는 못 배워지만 너는 똑똑하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등으로 말입니다. 

특히 시부 생일에 시부 친구들과 다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고 통보받은 날, 

참석하길 바란다는 말을 제안도, 요청도, 부탁도 아닌, 권위적 명령조로 일관하는 것인지, 

왜 당연하다는 듯이 며느리의 결정권을 침범하는지, 이런 것에 부당함을 느꼈대요. 

내가 언제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결정하는 건 오로지 나 자신이어야 하며, 

나에게 권리가 있습니다. 나를 결정할 권리, 자유로울 권리가 말이죠.



남자는 살림과 육아를 못해, 남자라서 그래란 말도 옳지 않습니다. 

자신이 맡아서 하면 능숙함과 덜 능숙함의 차이일 뿐 할 줄 모르진 않습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 여자가 무한한 칭찬과 인정으로 

가사노동에 참여하게 만들라고도 말합니다. 

그렇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그렇게 길러지며, 남편이 집안일을 하는 것은 칭찬받고, 

일단 하려고 하기만 해도 짜증 안내니 고맙운 거 아니냐고 주위에서 말합니다. 

하지만 남편의 가사노동에 대한 과도한 칭찬과 인정은 

'내 일을 대신해줘서 고마워'를 의미하는 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사노동은 여성의 몫이라는 차별적인 성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고라고 합니다. 

타인과 같이 산다고 혼자 사는 경우보다 노동량이 적어진다면 

타인을 착취하고 있는 셈입니다.


어떤 일에 남편은 뭐라고 하는지 물어보거나, 결혼했는데 왜 입사했는지 질문하거나,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라고 말하는 것 등 우리가 알게 모르게 차별하고 차별받는 

성 역할을 이제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여자에게 좋은 결혼은 없으며, 남들은 견디라고 말하는데 정말 얼마큼 견뎌야 하는 건지,

그런데 정말 견뎌야만 하는 것인지 저자는 모르겠대요.



저자는 말합니다. 능력이 미치는 한 가장 섬세하게 말하라고요. 

부당함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이 개인적인 수준에서는 가장 중요한 전략들이지만, 

이렇게 해보라거나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또 다른 억압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며느리의 몫이고,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 며느리가 현명하지 못한 탓으로 여겨지는 것은 

지금으로도 충분합니다.



"관계에서 더 노력해야 할 사람,

더 적은 노력으로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자식보다는 부모, 학생보다 교수, 직원보다 사장,

가부장제에서는 며느리보다 남편과 시가일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라고 외쳐야 할 방향은

아래가 아니라 위라고 믿는다.

약자들은 이미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들의 안녕과 생존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왜 했나요? 결혼을 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사람과 같이 있고 싶은 마음, 함께 쉬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겁니다. 

사랑하는 이를 마음껏 사랑하기 위해 결혼이란 형식을 취했는데요, 

이제 문제 있는 가부장제가 아닌 다른 게 필요합니다. 

손잡고 걸어가는 삶의 길 위에서 누구도 착취당하지 않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여성이 더 이상 며느리도, 아내도 아닌 오롯이 나 자신으로만 존재하고, 

일상을 함께 보내는 동반자라는 이름과 역할로 충분한 세상,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저자도 저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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