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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 보이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인지노동'의 불평등
앨리슨 데이밍거 지음, 전경훈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평점 :

남성의 육아휴직 비율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남성의 가사 노동 참여도나 그에 관한 인식 역시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는 흐름 또한 체감이 될 정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SNS에서 '유머'로 돌아다니는 남편에게 심부름을 시키면 일어나는 일에 관한 내용은 여전히 가사 노동을 진두지휘(?)하는 쪽은 여성이고 남성은 이를 수동적으로 수행하며 부차적인 역할에 그치고 마는, 가사 노동의 또 다른 이면을 웃프게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는 가사 노동 속 '인지노동'에 대하여 밀도 높은 탐구를 시작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지적 가사노동이란 가족의 필요와 요구가 무엇인지, 가족이 가족 외부의 타인과 사회에 대해 어떤 의무를 지는지, 그러한 가족의 필요와 의무가 충족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수행되는 일련의 사고 과정이다. p.12
여기서의 '인지노동'이란 하나의 가정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일에 필요한 모든 정신적인 노동을 뜻하는데, 매일의 식사 메뉴를 결정하고 식재료 재고 현황을 파악하거나 혹은 침대 시트의 적절한 교체 시기를 가늠하는 것과 공과금 납부 기한을 챙기며 각종 경조사 일정을 챙기고 일정을 조율하는 일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앨리슨 데이밍거는 이러한 인지노동을 가정 내 가사 노동에 관한 ①여러 상황과 현상을 파악하고(예측하기) ②다양한 정보를 조사하며(선택지 파악하기) ③그러한 선택지를 바탕으로 결정하고(결정하기) ④사후 관리하며 확인하는(점검하기) 4가지 단계로 정의한다.

비교적 정량적인 측정이 가능한 육체노동과 달리 인지노동은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비가시성으로 인해 그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인지노동이 주체적으로 모든 가사노동을 총체적이고 포괄적으로 기획하며 총괄하는데 비해 육체노동은 이러한 인지노동 아래 그 과업을 수행하는 수동적이고 조력적인 측면이 강하다. 노동의 강도 측면에서 우리는 신체적인 활동에만 치중하여 판단하는 우를 범하기 쉬우나 인지노동은 회사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도, 침대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24시간 내내 백그라운드 작동을 멈추지 않기에 만성적인 피로를 유발하는 것이다.

경험적으로도 충분히 예상이 가지만 책에서 진행한 면접 조사에서도 인지노동은 주로 여성이 주도하는 경우가 역시나 많았다. 이들은 이러한 여성 주도 현상을 개인적인 기질 탓으로 돌리는, 불평등을 착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는 이러한 '성격 본질주의'가 인지노동의 불평등한 심리 정서와 갈등을 자체적으로 완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개인적인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성별화된 사회가 인지노동에 관한 여러 자본을 여성이 보다 더 쉽게 획득·축적·달성하도록 유도하는 사회적 보상이 강하게 작동한 결과이고, 부정적 결과에 대한 불안과 책임의 사회적 비대칭성 또한 자기방어 맥락에서 강화된 측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진정으로 문제적인 것은 개인들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그들의 행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힘들을 간과하는 데 있다. p.294
특히 사회적 성역할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퀴어 커플은 인지노동의 불균형 격차가 이성 커플에 비해 적었으며 관습적인 사회적 각본이 없으므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조율하는 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 즉 이성 커플은 사회적, 관습적으로 부여된 성역할을 기질적으로 판단하나 퀴어 커플은 그런 관념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개인의 상황이나 현실적 여건 등과 같은 객관적 기준으로 인지노동을 부담하여 보다 평등한 경향성을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타고난 '기질'이 아닌 언제든 배워서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관점의 전환이 불평등한 인지노동을 타파할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위 '여성 문제'는 오랜 세월 동안 별도의 영역으로 격리되고,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며, 결국에는 무시되어왔다. 더 폭넓은 연대야말로 의미 있는 변화를 요구하는 연구자와 정책 입안자, 그리고 일반 시민들 가운데 남성의 목소리가 더 많이 필요하다. p.292
저자는 인지노동의 정성적 연구 방법이나 표본 설정의 한계를 스스로 지적하면서도 그동안 정량적 육체노동에 가려진 과소평가된 인지노동의 불평등에 관한 연구와 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인지노동'을 가시화하여 사회적 논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하며 성격 본질주의를 타파하여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책 입안자, 학교, 고용자, 관계 기관 등 다층적이고 포괄적인 층위에서 대안과 방안을 마련하는 제안도 인상적이다. 또 개인 단위에서는 인지노동의 이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효율성을 감내하고 지난한 과정을 인내해야 할 디테일까지 짚어낸다.

'가사노동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명쾌한 슬로건이 딱 인지노동에 관한 적절한 한 문장으로 떠오른다. 실제 커플들의 여러 사례에서 다분히 불평등한 상황을 두고 그저 '기질'탓으로 흐린 눈을 하며 그것을 기꺼이 감내하고야 만다. 인지노동이라는 개념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체계화 시키는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의 연구는 그 '흐린 눈'을 개안해 주는 느낌이다. 육체적 가사 노동이 평등해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쾌적하게 평등을 체감하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이 불균형한 인지노동에서 기원한 불쾌였다는 각성은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