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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
노은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평점 :

오랜만에 읽어 보는 심리 에세이. 20대 초중반에는 비슷한 분야의 교양 심리 에세이를 많이, 아니 거의 그런 종류의 책만 읽었던 것 같다. 특히나 스스로를 불안이 짙은,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책 한 권으로 명쾌한 해답을 얻기를 요행처럼 바랐다. 그러나 진중한 자기 탐구 없는 그런 요행은 변화 없이 태만할 따름이었고, 유행처럼 찍어내는 '힐링'을 표방하는 심리 에세이류에 환멸을 느끼며 꽤 오랜 시간 의도적으로 관련 분야를 피해왔다. 그런고로 《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을 통해 이러한 경계의 녹슨 빗장을 풀어 낼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정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스스로를 비난하는 대신,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자신에게 호기심을 갖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p.272
《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는 네 가지 챕터로 이루어졌으며 총 28가지의 심리학적 개념을 다룬다. EP문화, 노모패시, 피플 플리저, 리머런스, 말비빔, 조적 방어 등과 같이 낯선 용어들이 흥미롭다. 용어가 주는 낯섦과는 달리 설명하는 개념에는 익숙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런 상황과 저런 사람, 이랬던 관계와 저랬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형태도 질감도 느껴지지 않았던 무의식 속에서 숨을 죽이며 웅크렸던 무엇들이 스르륵 존재를 드러낸다. 드라마나 영화, 문학 혹은 일상에서 익숙하게 맞이하는 보편적인 상황을 예시로 들고, 간결한 개념 설명과 독자 스스로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던지며 능동적 이해를 돕는 저자의 방식이 그러한 과정을 한결 수월하게 만들어준다.

근간에 읽었던 권혁란의 《이름의 빈자리에》가 생각난다. '이름'이라는 존재, 호명하는 행위에 대한 의의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는데 자신의 병명을 찾아 고군분투했던 그래픽 노블 《제가 좀 별납니다만…》의 마그리트가 되어보는 기분을 느낀다. 자신의 병명을 찾은 마그리트는 자신의 '비정상'에 '이름'이 주어진 순간, 일종의 안도감과 해방감을 성취한다. '모호했던 마음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과 꼭 닮아있는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지만 그 '길'을 톺아가며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모호함으로부터 안도감으로 나아갈 것이다.

개인적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위안이나 위로, 다 잘 될 것이라는 만사형통식 서술이나 감정적이지 않은 담백한 방식이 좋았다. 혼란스럽고 갸우뚱한 마음을 설명해 줄 다양한 용어와 개념을 담백하게 설명하는 저자의 방식은, 결국 치열하게 답을 구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고 《모호한 마음의 이름 붙이기》는 저자가 제공해 줄 수 있는 하나의 도구처럼 읽히기에 초반에 우려했던 나의 편협한 편견은 말끔히 불식되었다. 또 각 챕터의 길이와 다루는 내용의 깊이와 범위도 부담이 없고 간결하다. 목차를 살펴보며 흥미로운 용어를 따라 챕터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읽어볼 수 있는 점은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곁에 두고 읽기 좋을 것 같다.
가짜 안전감 속에 숨어 있는 것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견디는 능력이라고 할 수 없다. 모호함을 견디는 것은 회피와 다르며, 성급한 단정을 유예하는 태도다. p.293
사실 스스로 쉽사리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나로서는 무척이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피로한 과정인지라 회피하며 게으르게 굴었다. 초반에 언급한 녹슨 편견과 이러한 상태에 일종의 경각심을 울린, 알파 기능에 관한 마지막 챕터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나의 '베타 요소'가 '알파 요소'로 전환되게 하는 '알파 기능'의 역할을 이미 《모호한 마음의 이름 붙이기》가 상당한 부분을 수행해 준 덕분에 조그만 용기가 생긴다. 소극적 능력에 자신을 조금 맡겨보기로.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