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의과학사 - 그림으로 읽는 의과학 혁명의 순간들
유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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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으로 읽는 의과학사?' 쉽게 감이 오지 않은 채로 슬렁슬렁 책을 털어보니 각종 그림과 사진, 포스터, 그래프와 도해 등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그제야 이해가 됐다. 의학과 과학과 역사라는 삼중 콜라보가 빚어낸 두툼한 부피를 무겁게 가늠해 본다. 어릴 적 가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나 보았던 다소 기묘하고 괴랄했던, 의술보다는 주술에 가까웠던 초기 의학에 관한 짧고 말초적인 에피소드를 알고 있던 것이 전부였기에 새로운 영역에서 습관처럼 또 낯을 가리며 《비주얼 의과학사》를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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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음파가 청진기를 완전히 밀어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쩌면 둘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공존하게 될 것이다. 환자 곁에서 가장 먼저 사용되는 도구, 판단과 행위가 시작되는 지점, 그 자리는 언제나 의학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만드느냐, 그것이 더 본질적인 질문일지도 모른다.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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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힘없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어나갔는데 복잡한 의학적 개념을 무리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닌, 그에 이르기까지의 지적 탐구 과정에 초점을 맞춰 인간 서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학적 호기심이라는 맹아는 과학적 상상력이라는 질문을 만난다. 관찰과 실험, 연구를 양분 삼아 끝내 싹을 틔우며 성장하는 와중에도 내·외부적으로 갖가지 시련에 도전을 받는다. 제 시기에 꽃을 피우지 못하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열매를 맺기도 하는, 그야말로 치열하고 드라마틱한 서사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의사 레오폴트 아우렌브루거는 양조장을 운영하는 부친이 남은 술의 양을 가늠하기 위해 술통을 쳐서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 질병이 의심되는 부위를 손가락으로 타진하는 '타진법'을 고안해냈다. 이는 살아 있는 환자에게서 질병의 위치를 추정하려고 한 최초의 체계적 시도(p.91)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당시에는 환자의 몸을 손으로 접촉하는 진료가 의사의 품위를 훼손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큰 저항을 받았다고. 이렇듯 간단한 방식조차도 새로운 방법론으로 편입되기 어려웠는데 대개의 경우 당대 주류의 상식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개념과 정의를 관철시키는 일은 의과학사에서 몹시도 지난하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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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 출신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가 의사들에게 소독액으로 손 씻는 것을 의무화하여 산모들의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켰으나 역시 당대 주류의 오만한 편견과 비난 속에서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씁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또, DNA 이중 나선 구조의 결정적 단서인 'X선 회절 사진'을 먼저 발견한 것은 여성 과학자인 '로절린드 프랭클린'이었으나 왓슨-크릭이 그 공을 가로채 그녀를 제외하고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사후에야 그녀의 결정적인 기여가 재조명되었다고 하나 제멜바이스의 사례처럼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그들의 씁쓸한 삶은 안타까움을 남긴다. 그들의 공헌이 후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만큼, 그들의 생전 비극이 더욱 짙게 느껴진다.







 과학적 진실은 언제나 깨끗한 실험실에서만 태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야망과 우정, 질투와 협력, 전쟁과 우연이 뒤엉킨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인간적인 맥락까지 함께 읽을 때, 과학은 비로소 살아 있는 이야기가 된다.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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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뜩이는 영감의 순간, 성실하다 못해 집요한 연구,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분노가 서린 열정이나 고귀하고 숭고한 명예 혹은 욕망으로 얼룩진 명예 또한 공존하는, 의과학사는 그 자체로 인간의 드라마틱한 대서사시로 읽힌다. 획기적인 발견들 속에서 여지없이 녹아있는 '인간적인 맥락'은, 다소 차갑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의과학의 역사에 온기를 불어넣으며 생동하게 만들어준다. 몇몇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질 만큼 입문 교양서로 제격. 꼭 관련 분야가 아니더라도 세상만사에 호기심이 많다면 흥미롭게 읽힌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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