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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
유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누군가를 만나 많은 말을 쏟아내고 오는 날이면 일말일지라도 여지없이 후회스러운 구석이 남는다. 결국 실언으로부터 축적된 교훈 덕분에 '말하는 쪽이냐, 듣는 쪽이냐?' 한다면 역시나 듣는 쪽. 무엇이든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언제나 넘쳐나고, 기꺼이 들어주려 하는 사람은 좀처럼 부족하기 때문에 청자를 자청하는 일은 쉽다. 그런데 청자를 자처하면서도 과연 '잘' 듣고 있는가를 따져 묻는다면 그것은 쉽게 단정할 수가 없다. 종종 동태눈으로 딴 생각을 하기도, 마음속으로 딴지를 걸기도 하면서 듣는다. 아니, 이것은 듣는 척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심장 듣기》를 통해 진정한 '듣기'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듣기란 단순히 귀의 기능으로 누군가의 말을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고 생각이 바뀌면서 행동이 변화하는 일이 된다. 그렇게 듣는 사람은 주체가 된다. p.46
길지 않은 묵직한 내용을 읽어나가면서 제목이 왜 《심장 듣기》가 됐는지 깨닫게 된다. 일반적으로 '듣기'라는 행위를 떠올리면 정적이고 수동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존재감은 미미하고 미약하다. 그러나 저자는 '듣기'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로 재정의한다. 우리는 타자를 들음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길어올린 의미를 주체적으로 다시 끔 내면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 듣기의 예시는 저자가 10년 동안 기자로 일하며 만났던 다양한 상황과 사람을 통해서, 저자가 겪었던 고통과 슬픔, 분노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금의 나는 들어주는 일과 듣는 일이 무척 다르다는 걸 안다. 들어주는 일은 말하자면 공기를 읽는 일이다. (…) 반면 듣는 일은 나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호흡을 마시고 내뱉는 일이다. p.86-87
12·3 내란, 제주항공 참사,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등과 같이 사회적 사건을 통과하며 사회적 소수와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더욱 묵직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듣는 것'과 '들어주는 것'의 차이를 깨닫고 듣기를 조금 더 고차원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해석은 갑작스럽게 들리는 이명처럼 찰나의 경종을 울리는 느낌이다. '불편한 듣기'가 어떻게 화자를 비로소 적정한 곳에 위치시키는지, '실패한 듣기'가 어떻게 청자의 내면에서 새로운 의미를 재창조 해내는지, '무감한 듣기'가 어떻게 스스로를 갉아먹는지를 읽어내며 무수한 듣기의 결을 가늠해 본다.

그러니까 기꺼이 변두리로 물러남으로써 타자를 중심에 세우는 일. 여기에는 내가 잘 비워져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내가 나로 가득 차 있으면 남의 말 같은 건 담을 수 없다. 내 삶이 무거운 것처럼 남의 삶도 무겁기에, 듣고자 할 때는 내 삶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한다. p.115
저자는 '듣기'를 강강술래와 같이, 같이 추는 군무에 비유하며 듣기라는 행위를 적극적 상호작용으로 강조한다. 그저 수음受音의 행태가 아닌, 자신을 비워내고 말하는 이의 호흡과 파동에 맞춰 듣는 이 또한 생동하는 것이다. 그제야 마침내 내가 그의 말을, 삶을 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듣기는 무의식 속을 맴돌다가 어느 날 문득, 적정한 삶의 순간에 나타나 다시 공명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듣기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회성이 아닌, 세상과 연결되는 유기적이고도 지속적인 상호작용인 것이다.

이런 것이 '듣기'라면, 나는 그동안 '듣는 척'을 해왔던 것이다. 너무 듣기만 하다 보니 진짜 나를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상실하기도 했던 저자의 고백을 읽으며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던 기억이 왜 그토록 씁쓸하고, 심통이 났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듣는 사람이 듣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심장 듣기》는 그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듣기'의 가치와 정의를 재발견하면서 그간 타성에 젖은 '듣는 척'을 반성하기도 하고, 듣기로 인한 관성적인 피로에 위로를 얻기도 한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심장'을 진정으로 '듣기'를 바라며, 밑줄 그은 문장을 다시 찾아가 본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