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미래 - AI 시대에 통하는 새로운 공부법, 개정증보판
구본권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부의 미래》를 받아들고 제목을 읽어보자니 학교를 졸업한 뒤로 공부라 부를 수 있는 여타 활동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나마도 직종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 자발적이긴 했으나 다소간의 심적 압박으로 시작했던 자격증 공부가 떠오를 뿐이다. 이렇듯 고등학교 입시 공부도 그랬고, 대학교 전공 공부도 그랬고 공부 자체에 관한 본질을 경험해 본 적 없다는 감각이 새삼 서글프게 느껴진다. '공부의 본질'이라는 맥락에서 보자면 《공부의 미래》는 'AI'라는 시대적 화두에 방점을 두고 공부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지만 결국은 공부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의미를 파고든다.

​




 인간의 노동, 지식과 정보, 능력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AI가 도래한 시대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 것일까. 1부에서는 위와 같은 질문과 고민을 가지고 이러한 혁명적인 시류에 따라 대학의 가치, 학위의 효용성, 미래 직업 가치가 '위협'을 받고 있는 현 상황을 진단한다. 2부에서는 구태의연한 지금의 주입식 입시 교육을 타파하고 미래를 위한 핵심 역량으로써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인 '창의성, 비판적 사고력, 자기 통제력, 협업 능력' 등과 같은 '소프트 스킬'의 중요성과 가치를 조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3부에서는 AI 시대에 요구되는 공부를 대하는 인간의 올바른 태도와 갖추어야 할 능력을 제언하는 것이다.

​

 미래의 기술과 사회 모습은 과거와 다를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과거에 통용되던 방식과 잣대로 미래를 바라보고 선택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학생들에게 미래의 직업과 인생에 대해 교육하고 안내하는 학부모와 교사가 스스로의 경험과 인식을 기준으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이끈다는 점입니다. p.9 

​

 주입식 교육 그 자체를 받아왔으며 끊임없이 한국식 교육 생태계에 대한 문제와 비판을 들으며 살아온 터라 저자가 제시하는 공부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이면서 실용적인 제언들을 읽으면서도 미래의 그 길이 굉장히 험하고도 요원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꾸준하게 제기됐던 교육 문제가 AI라는 시대적 화두와 만나면서 온갖 병폐가 폭발하는 느낌. 저자가 지적한 한국 사회의 시대적인 맥락과 정서, 사회 구조적인 모순 등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비로소 교육 문제 또한 타파할 여지가 생기고 그제야 공부에 관한 본질을 논할, 보다 너른 공론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학습에서 '바람직한 어려움'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이처럼 AI를 자신에게 적절한 '바람직한 어려움'을 제공해 주는 도구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습니다. AI를 결과물 산출 도구가 아니라 나 자신의 장기적 학습을 도와주는 도구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p.286 

​

 'AI가 있는데 공부가 다 무슨 소용?'이라는 질문에 역설적으로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진짜 공부를 탐색하는 과정은 퍽 유의미한 고민이다. 피상적이고 목적 지향적이었던 공부를 본질적이고 과정 지향적인 방향으로, 오히려 정수精髓로 회귀하는 본질의 방향성이 흥미롭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태로 빠르게 흘러가는 AI 시대에 정도를 따라 느리게 고민하고 부딪히는 공부의 방법이야말로 인간 고유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맥락은 마치 인간사 전체에 대한 어떤 생의 이치처럼 묵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AI에게 건네는 관성적인 질문을 거두고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3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절이 한 바퀴를 돌아 벌써 1년이 되었음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받으며 새삼 깨닫는다. 부쩍 서늘해진 날씨와 함께 수상작을 받으며 계절을 가늠하는 일이 제법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지난 수상작은 김홍 작가의 《말뚝들》이었는데 전작이 남겼던 감흥의 여운이 살풋 떠올라서 이번 수상작도 기대를 하며 읽어나간다. '아르고스', 수많은 눈을 가진 불면의 존재. 《아르고스》에서는 물류센터를 통제하는 AI 시스템을 의미하는데 과연 시대의 화두인 AI의 시의성을 어떻게 발현시킬지 또 한 번 궁금해진다.







 강남에서 피부클리닉을 운영하던 의사 '재일'은 3억이라는 커다란 빚을 지고 빚쟁이들을 피해 경남 김해에 위치한 물류센터에 야간 구급 대원으로 취직한다. 무감하게 순찰을 하며 야간 노동자들을 관찰하던 그는 곧 무언가 수상쩍은 낌새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것은 바로 야간 노동자들이 잠들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피로를 느끼지 못하고 일을 더욱 갈망하며, 더 나아가 일하지 못해 안달이 난 상태였다. 이러한 기묘한 상황을 파악한 재일은 그들의 혈청을 연구하여 그것으로 자신의 궁색한 처지를 타파하려 몰래 그만의 연구를 시작하려 한다.

​

 "꿈을 안 꿔요. 잠을 안 자니까 당연한 건데, 그게 좀 허전해요. 꿈이 없으면 밤이 그냥 긴 낮이에요. 밤이 없어진 거예요. 낮만 계속돼요." p.38 

 

 무언가에 감염된 것처럼 야간 노동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언어와 감정이 퇴화되기 시작하며 마치 '로봇'처럼 변모해간다. 그러던 와중에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항체를 가진 '수아'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되며 사건은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잠들지 못하는 야간 노동자들에게 수아는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고 사람들은 그 찰나의 순간에 동요하며 감응한다. 해괴한 불면의 궤도 자체도 공포스럽지만 무엇보다도 이를 사고파는 브로커,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재일, 생산성 제고에만 특화된 AI 기술을 목도하고 있노라면 그러한 공포마저 권태롭게 느껴진다.

​

 나는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불안을 느꼈다. 이 사람들이 죽으면 내 혈청 원료가 사라진다는 계산이 먼저 떠올랐고 그다음에, 이 사람들이 죽으면, 이라는 문장이 떠올랐지만 뒷부분을 채울 감정이 내게 없었다. p.122 





 그들이 근무하는 물류센터는 가야 고분군과 나란히 위치해있는데 이런 설정은 '잠들어 있는 자'와 '잠들지 못하는 자', '죽은 자'와 '산 자'의 상태를 교차하며 묘하게 중첩시킨다. '수면 박탈'로 표징 되는 인간성이 거세된 노동 환경은 굳이 AI '아르고스'를 빌리지 않아도 현실에서 고장 난 테이프처럼 구간반복되고 있으므로 놀랍지 않다. 오히려 이를 둘러싼 인간의 행태야말로 매번 성실하고 짜릿하게 불쾌와 분노를 선사한다. AI를 둘러싼 도덕과 윤리, 비인간성 따위를 논의하면서 역설적으로 진정한 '인간'의 의미를 묻는 담론들이 많은 요즘에 《아르고스》에서도 '수아'로 대변되는 그 무엇의 가치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것이 영웅의 서사라면 수아는 지금쯤 카메라를 향해 의미심장한 독백을 해야 했다. 시스템의 모순에 대해, 노동의 존엄에 대해, 인간의 잠을 빼앗는 세계의 폭력에 대해. 하지만 수아는 구인공고를 주머니에 넣고 정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등이 약간 굽어 있었다. 피곤해서. p.221 

​

 '아르고스'가 은유하는 것들을 투박하게 재단했을 때, 일종의 안티테제가 되는 '수아'의 마지막 대사와 행동은 거창한 대의가 아닌 현실을 직시하며 그 무게를 기꺼이 감내하고자 하는 하나의 증명처럼 읽힌다.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아의 모습은 환상 같은 이상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결국 구조적 모순에 균열을 내는 것은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현실적 한계에 정확한 시선을 떨구면서도 본질에 관한 질문을 다시 건네는 것이다. 내재화된 자본으로 타인의 불면이 효율로 환산되는 시대, 다시 끔 인간의 존엄을 묻고 있다.

​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3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사랑과 안정 - '결혼'이 만드는 꿈과 불안, 그 너머 관계의 기하학
안희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과 안정》을 통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90년대생 또래들의 '결혼'에 관한 인터뷰를 읽고 있자니 새삼 닭살이 오소소 돋는다. 세상은 나의 나이를 결혼 적령기로 보고 있지만 나는 결혼과 관련한 모든 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기에 그 간극, 세상의 규범과 스스로의 인식 사이에서 비롯한 그 간극이 몹시도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혼을 갈망하지도, 그렇다고 비혼을 주창하지도 않는 이 애매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90년대생의 한 사람으로서 책을 읽어나간다.
 




 책에는 여러 입장에 서있는 90년대생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결혼을 준비 중인 사람도 있으며, 이제 막 결혼 한 사람들이 말하는 '결혼'의 이유, 조건, 배경. 이를 바탕으로 저자 나름의 분석과 해석을 곁들여 밀도 있게 탐구한다. '사랑'과 같은 낭만적인 이유가 아닌 '안정'을 택한 또래 세대는 결혼을 '삶의 최저선'으로 여기며 불안한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경제 공동체로 인식하고 소위 '정상 궤도'라 일컬어지는 'K-타임라인'에서 이탈하지 않는 사회적 안전망으로써 결혼을 인식한다.

​

 사랑이 우리 사이에서 이동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안정은 그러한 이동의 경로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자리에 대한 이야기라고. p.152 

​

 이외에도 여러 관점에서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수단으로써 결혼을 집요하게 해부하는데 역설적으로 '불안'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지독하고도 유독하게 사람을 추동하는지 서늘해진다. 사회적 압박이 빚어낸 '정상'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낭만적 춤사위가 될 수도 있었던 무엇의 억지스러운 몸짓을 읽어내는 기분이다. 불안에서 벗어나 안락하고자 결혼이라는 '타원형'을 그려내지만 때로는 이 타원형이 삶을 죄어오는 올가미가 되는 것이다. '내 집 마련'이라는 자산 형성, 육아를 비롯한 여러 돌봄 문제, 가사노동의 분담, 노동시장에서의 임금 성차별 등은 결혼이라는 최저선에도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다소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만이 유일한 구원인 것처럼 사회는 제도적, 구조적으로 청년을 몰아붙이고 있는 것 같다. 결혼에 성공한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정상 가족에게만 주거, 복지, 세제 등과 같은 혜택을 부여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는 청년 세대는 '안정을 위한 결혼'을 선택한다. 이에 저자는 결혼 외에는 삶의 안정을 얻을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면서 타원형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적 대안을 제시한다. 결혼은 구성원을 단단하게 결속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고립시킬 수도 있는 맹점에서 한 개인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매몰되지 않고 타원형 밖에 머무르는 다양한 타인과의 접점을 설계할 수 있는 상호 돌봄으로써 이 연대를 제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면을 가진 존재인 사람을 하나의 자리에 가두지 않음으로써 탐욕스러운 타원을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 그리고 서로에게서 얻는 기쁨에 관한 이야기이고, 관계 속의 개별성들이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관계의 상을 만들고자 하는 고민이다. p.261 


 또래 세대들의 결혼에 대한 내밀한 갈등과 고민, 신념, 가치관 등을 살펴보며 이것저것 크게 공감하는 구석도 있었고 저자의 밀도 높은 탐구에 작은 경탄을 터뜨리기도 했다. 결혼을 개인과 개인의 낭만적인 결합이 아닌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고 결혼과 공동체의 개념을 또 다른 연대로 확장시키며 결혼 적령기 청년이 겪고 있는 다층적인 불안을 해부하며 톺아보는 과정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혼인율과 출산율이 소폭 상승했다는 기사에 어쩐지 야릇한 코웃음이 먼저 흘러나왔는데 《사랑과 안정》을 읽고 나니 그 뜻 모를 냉소가 꽤나 복잡한 함의를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3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상처에 시럽 뿌리기 - 셋셋 2026
이영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과연 '상처에 뿌리는 시럽'은 달콤할까. 그것이 씁쓸한 냄새를 풍기는 연고이든, 달콤한 향기를 머금은 시럽이든 상처 위에 뿌리는 모든 것은 결국 따갑고 쓰리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며 《상처에 시럽 뿌리기》를 펴서 읽는다. 소설 4편과 시 10편이 실린 한겨레출판 문학 앤솔러지 '셋셋' 시리즈는 신춘문예나 문학상을 통해 등단하지 않은 신인 작가들의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 독자, 출판사라는 '셋'의 만남을 '셋(set)'한다는 의미. 작년 《셋셋 2025》와 비교하니 제목과 표지에서부터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고 거기에 시까지 더해져 더욱 다채로워진 느낌.







 타인을, 타인의 사정을, 타인에게 가해진 폭력을 외면하던 화자는 '모르는 개'를 매개로 이를 극복하며 '좀 아는 개'를 데리러 간다. 상황과 사람을 기민하게 읽지 못하던 어린 시절 속 아버지를 현재의 아버지가 된 자신이 비로소 이해하게 되고, 어머니의 그림자를 밟았던 화자 또한 자신의 그림자를 목도하며 깨닫게 된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엄마와의 재회에서 끝내 얽힌 실타래를 풀지 못하고 끝나는 어떤 상처도 있다. 또 어긋나고 단절된 존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의 연결을 말하고, 사회적 상처에 체념하면서도 결국은 포기하지 않는 연대의 목소리를 낸다.

​

 "그냥 좀 아는 개야." p.37, <모르는 개 산책> 

​

 화자는 독자를 과거로부터 새겨진 상처를 들여다보도록 자꾸만 부추긴다. 외면으로 단절된 관계, 상대에 대한 원망 혹은 죄책감, 존재의 상실, 어리숙하고 부주의했던 그 시절이 남긴 상흔을 더듬어간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 한두 개쯤은 있기 마련이기에 기어코 나의 상처로 침습해오고야 마는, 결코 달달할 수만은 없는 이 여운을 그저 목도할 뿐이다. 어떤 상처는 종종 곪아버리고, 어떤 상처는 끝내 짙은 흉터를 남기겠지만 이곳에서 '완쾌'는 사이비 위약일 뿐이고 우리는 그저 과거가 남긴 상처라 불리는 어떤 것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나 슬픈 일을 바로잡기 위한 상상은 결국 그 슬픔을 더 선명하게 만들 뿐이었다. p.57 <여름의 갈래에서> 






 얼른 털고 일어나지 않으면, 그런 상처를 품고 산다면 그것은 유해하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는 선택할 수 없는 상처라 불릴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쌓인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인생의 여타 이치가 이미 그러한 것처럼, 시간이 쌓이면서 비어있던 간극에 '이해'라는 경험이 채워지며 상처의 빈틈이 메워지기도 하고 혹은 끝내 빈자리로 남은 채 아물지 못하고 굳어지기도 한다. 이쯤에서 다시 제목을 생각해 보게 된다. 상처에 뿌리는 시럽. 치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무용하지만 활자를 읽어오며 그것은 더 이상 목적이 되지 않는다. 

​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3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
유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누군가를 만나 많은 말을 쏟아내고 오는 날이면 일말일지라도 여지없이 후회스러운 구석이 남는다. 결국 실언으로부터 축적된 교훈 덕분에 '말하는 쪽이냐, 듣는 쪽이냐?' 한다면 역시나 듣는 쪽. 무엇이든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언제나 넘쳐나고, 기꺼이 들어주려 하는 사람은 좀처럼 부족하기 때문에 청자를 자청하는 일은 쉽다. 그런데 청자를 자처하면서도 과연 '잘' 듣고 있는가를 따져 묻는다면 그것은 쉽게 단정할 수가 없다. 종종 동태눈으로 딴 생각을 하기도, 마음속으로 딴지를 걸기도 하면서 듣는다. 아니, 이것은 듣는 척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심장 듣기》를 통해 진정한 '듣기'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듣기란 단순히 귀의 기능으로 누군가의 말을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고 생각이 바뀌면서 행동이 변화하는 일이 된다. 그렇게 듣는 사람은 주체가 된다. p.46 



 길지 않은 묵직한 내용을 읽어나가면서 제목이 왜 《심장 듣기》가 됐는지 깨닫게 된다. 일반적으로 '듣기'라는 행위를 떠올리면 정적이고 수동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존재감은 미미하고 미약하다. 그러나 저자는 '듣기'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로 재정의한다. 우리는 타자를 들음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길어올린 의미를 주체적으로 다시 끔 내면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 듣기의 예시는 저자가 10년 동안 기자로 일하며 만났던 다양한 상황과 사람을 통해서, 저자가 겪었던 고통과 슬픔, 분노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다.

​

 지금의 나는 들어주는 일과 듣는 일이 무척 다르다는 걸 안다. 들어주는 일은 말하자면 공기를 읽는 일이다. (…) 반면 듣는 일은 나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호흡을 마시고 내뱉는 일이다. p.86-87 

​

 12·3 내란, 제주항공 참사,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등과 같이 사회적 사건을 통과하며 사회적 소수와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더욱 묵직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듣는 것'과 '들어주는 것'의 차이를 깨닫고 듣기를 조금 더 고차원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해석은 갑작스럽게 들리는 이명처럼 찰나의 경종을 울리는 느낌이다. '불편한 듣기'가 어떻게 화자를 비로소 적정한 곳에 위치시키는지, '실패한 듣기'가 어떻게 청자의 내면에서 새로운 의미를 재창조 해내는지, '무감한 듣기'가 어떻게 스스로를 갉아먹는지를 읽어내며 무수한 듣기의 결을 가늠해 본다.







 그러니까 기꺼이 변두리로 물러남으로써 타자를 중심에 세우는 일. 여기에는 내가 잘 비워져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내가 나로 가득 차 있으면 남의 말 같은 건 담을 수 없다. 내 삶이 무거운 것처럼 남의 삶도 무겁기에, 듣고자 할 때는 내 삶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한다. p.115 

​

 저자는 '듣기'를 강강술래와 같이, 같이 추는 군무에 비유하며 듣기라는 행위를 적극적 상호작용으로 강조한다. 그저 수음受音의 행태가 아닌, 자신을 비워내고 말하는 이의 호흡과 파동에 맞춰 듣는 이 또한 생동하는 것이다. 그제야 마침내 내가 그의 말을, 삶을 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듣기는 무의식 속을 맴돌다가 어느 날 문득, 적정한 삶의 순간에 나타나 다시 공명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듣기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회성이 아닌, 세상과 연결되는 유기적이고도 지속적인 상호작용인 것이다.





 이런 것이 '듣기'라면, 나는 그동안 '듣는 척'을 해왔던 것이다. 너무 듣기만 하다 보니 진짜 나를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상실하기도 했던 저자의 고백을 읽으며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던 기억이 왜 그토록 씁쓸하고, 심통이 났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듣는 사람이 듣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심장 듣기》는 그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듣기'의 가치와 정의를 재발견하면서 그간 타성에 젖은 '듣는 척'을 반성하기도 하고, 듣기로 인한 관성적인 피로에 위로를 얻기도 한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심장'을 진정으로 '듣기'를 바라며, 밑줄 그은 문장을 다시 찾아가 본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