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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안정 - '결혼'이 만드는 꿈과 불안, 그 너머 관계의 기하학
안희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사랑과 안정》을 통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90년대생 또래들의 '결혼'에 관한 인터뷰를 읽고 있자니 새삼 닭살이 오소소 돋는다. 세상은 나의 나이를 결혼 적령기로 보고 있지만 나는 결혼과 관련한 모든 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기에 그 간극, 세상의 규범과 스스로의 인식 사이에서 비롯한 그 간극이 몹시도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혼을 갈망하지도, 그렇다고 비혼을 주창하지도 않는 이 애매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90년대생의 한 사람으로서 책을 읽어나간다.

책에는 여러 입장에 서있는 90년대생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결혼을 준비 중인 사람도 있으며, 이제 막 결혼 한 사람들이 말하는 '결혼'의 이유, 조건, 배경. 이를 바탕으로 저자 나름의 분석과 해석을 곁들여 밀도 있게 탐구한다. '사랑'과 같은 낭만적인 이유가 아닌 '안정'을 택한 또래 세대는 결혼을 '삶의 최저선'으로 여기며 불안한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경제 공동체로 인식하고 소위 '정상 궤도'라 일컬어지는 'K-타임라인'에서 이탈하지 않는 사회적 안전망으로써 결혼을 인식한다.
사랑이 우리 사이에서 이동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안정은 그러한 이동의 경로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자리에 대한 이야기라고. p.152
이외에도 여러 관점에서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수단으로써 결혼을 집요하게 해부하는데 역설적으로 '불안'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지독하고도 유독하게 사람을 추동하는지 서늘해진다. 사회적 압박이 빚어낸 '정상'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낭만적 춤사위가 될 수도 있었던 무엇의 억지스러운 몸짓을 읽어내는 기분이다. 불안에서 벗어나 안락하고자 결혼이라는 '타원형'을 그려내지만 때로는 이 타원형이 삶을 죄어오는 올가미가 되는 것이다. '내 집 마련'이라는 자산 형성, 육아를 비롯한 여러 돌봄 문제, 가사노동의 분담, 노동시장에서의 임금 성차별 등은 결혼이라는 최저선에도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다소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만이 유일한 구원인 것처럼 사회는 제도적, 구조적으로 청년을 몰아붙이고 있는 것 같다. 결혼에 성공한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정상 가족에게만 주거, 복지, 세제 등과 같은 혜택을 부여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는 청년 세대는 '안정을 위한 결혼'을 선택한다. 이에 저자는 결혼 외에는 삶의 안정을 얻을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면서 타원형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적 대안을 제시한다. 결혼은 구성원을 단단하게 결속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고립시킬 수도 있는 맹점에서 한 개인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매몰되지 않고 타원형 밖에 머무르는 다양한 타인과의 접점을 설계할 수 있는 상호 돌봄으로써 이 연대를 제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면을 가진 존재인 사람을 하나의 자리에 가두지 않음으로써 탐욕스러운 타원을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 그리고 서로에게서 얻는 기쁨에 관한 이야기이고, 관계 속의 개별성들이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관계의 상을 만들고자 하는 고민이다. p.261
또래 세대들의 결혼에 대한 내밀한 갈등과 고민, 신념, 가치관 등을 살펴보며 이것저것 크게 공감하는 구석도 있었고 저자의 밀도 높은 탐구에 작은 경탄을 터뜨리기도 했다. 결혼을 개인과 개인의 낭만적인 결합이 아닌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고 결혼과 공동체의 개념을 또 다른 연대로 확장시키며 결혼 적령기 청년이 겪고 있는 다층적인 불안을 해부하며 톺아보는 과정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혼인율과 출산율이 소폭 상승했다는 기사에 어쩐지 야릇한 코웃음이 먼저 흘러나왔는데 《사랑과 안정》을 읽고 나니 그 뜻 모를 냉소가 꽤나 복잡한 함의를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3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