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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계절이 한 바퀴를 돌아 벌써 1년이 되었음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받으며 새삼 깨닫는다. 부쩍 서늘해진 날씨와 함께 수상작을 받으며 계절을 가늠하는 일이 제법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지난 수상작은 김홍 작가의 《말뚝들》이었는데 전작이 남겼던 감흥의 여운이 살풋 떠올라서 이번 수상작도 기대를 하며 읽어나간다. '아르고스', 수많은 눈을 가진 불면의 존재. 《아르고스》에서는 물류센터를 통제하는 AI 시스템을 의미하는데 과연 시대의 화두인 AI의 시의성을 어떻게 발현시킬지 또 한 번 궁금해진다.

강남에서 피부클리닉을 운영하던 의사 '재일'은 3억이라는 커다란 빚을 지고 빚쟁이들을 피해 경남 김해에 위치한 물류센터에 야간 구급 대원으로 취직한다. 무감하게 순찰을 하며 야간 노동자들을 관찰하던 그는 곧 무언가 수상쩍은 낌새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것은 바로 야간 노동자들이 잠들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피로를 느끼지 못하고 일을 더욱 갈망하며, 더 나아가 일하지 못해 안달이 난 상태였다. 이러한 기묘한 상황을 파악한 재일은 그들의 혈청을 연구하여 그것으로 자신의 궁색한 처지를 타파하려 몰래 그만의 연구를 시작하려 한다.
"꿈을 안 꿔요. 잠을 안 자니까 당연한 건데, 그게 좀 허전해요. 꿈이 없으면 밤이 그냥 긴 낮이에요. 밤이 없어진 거예요. 낮만 계속돼요." p.38
무언가에 감염된 것처럼 야간 노동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언어와 감정이 퇴화되기 시작하며 마치 '로봇'처럼 변모해간다. 그러던 와중에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항체를 가진 '수아'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되며 사건은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잠들지 못하는 야간 노동자들에게 수아는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고 사람들은 그 찰나의 순간에 동요하며 감응한다. 해괴한 불면의 궤도 자체도 공포스럽지만 무엇보다도 이를 사고파는 브로커,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재일, 생산성 제고에만 특화된 AI 기술을 목도하고 있노라면 그러한 공포마저 권태롭게 느껴진다.
나는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불안을 느꼈다. 이 사람들이 죽으면 내 혈청 원료가 사라진다는 계산이 먼저 떠올랐고 그다음에, 이 사람들이 죽으면, 이라는 문장이 떠올랐지만 뒷부분을 채울 감정이 내게 없었다. p.122

그들이 근무하는 물류센터는 가야 고분군과 나란히 위치해있는데 이런 설정은 '잠들어 있는 자'와 '잠들지 못하는 자', '죽은 자'와 '산 자'의 상태를 교차하며 묘하게 중첩시킨다. '수면 박탈'로 표징 되는 인간성이 거세된 노동 환경은 굳이 AI '아르고스'를 빌리지 않아도 현실에서 고장 난 테이프처럼 구간반복되고 있으므로 놀랍지 않다. 오히려 이를 둘러싼 인간의 행태야말로 매번 성실하고 짜릿하게 불쾌와 분노를 선사한다. AI를 둘러싼 도덕과 윤리, 비인간성 따위를 논의하면서 역설적으로 진정한 '인간'의 의미를 묻는 담론들이 많은 요즘에 《아르고스》에서도 '수아'로 대변되는 그 무엇의 가치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것이 영웅의 서사라면 수아는 지금쯤 카메라를 향해 의미심장한 독백을 해야 했다. 시스템의 모순에 대해, 노동의 존엄에 대해, 인간의 잠을 빼앗는 세계의 폭력에 대해. 하지만 수아는 구인공고를 주머니에 넣고 정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등이 약간 굽어 있었다. 피곤해서. p.221
'아르고스'가 은유하는 것들을 투박하게 재단했을 때, 일종의 안티테제가 되는 '수아'의 마지막 대사와 행동은 거창한 대의가 아닌 현실을 직시하며 그 무게를 기꺼이 감내하고자 하는 하나의 증명처럼 읽힌다.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아의 모습은 환상 같은 이상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결국 구조적 모순에 균열을 내는 것은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현실적 한계에 정확한 시선을 떨구면서도 본질에 관한 질문을 다시 건네는 것이다. 내재화된 자본으로 타인의 불면이 효율로 환산되는 시대, 다시 끔 인간의 존엄을 묻고 있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3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