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전쟁 - 제국주의, 노예무역, 디아스포라로 쓰여진 설탕 잔혹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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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고 고운 입자. 무구하게 반짝이는 결정체. 끈적하게 녹아드는 단맛. 눈 설, 엿 탕. 눈처럼 하얀, 설탕. 발음을 굴리기만 해도 혀끝에 단맛이 도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이제 현대의 과도한 설탕 섭취는 만병의 근원이 되어버렸다. 주기적으로 트렌드가 변화하는 다이어트 산업에서 인슐린 저항성에 대한 원리를 골자로 하는 온갖 상품과 마케팅이 쏟아져 나온 지는 이미 꽤 되었다. 그로 인해 열풍이었던 '저당' 혹은 '무당' 제품들은 이제는 하나의 옵션이 되어버린 지 오래. 편의점 음료 냉장고 앞에만 서있어도 그 예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대체당을 사용하면서도 설탕의 그 '단 맛'을 결코 잃을 수 없다는 현대인의 욕망. 설탕에 투영된 그러한 욕망은 수 세기 전의 인간들과도 다를 것이 없어서 설탕은 그 자체로 인간의 욕망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설탕의 궤적을 따라 읽는 세계사의 흥망성쇠는 대항해 시대로부터 그 궤적을 뚜렷이 한다. 뉴기니 지역에서 유래한 사탕수수는 고대 인도에서 재배되고 설탕이 제조되면서 이슬람 문화권을 중심으로 중동과 아프리카로 퍼져나간다. 대항해 시대를 맞이하여 비로소 유럽으로 설탕이 전파되기 시작하고 곧이어 설탕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서양의 섬에서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제조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의 경제적 패권을 주도한다. 본격적으로 대규모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도입되며 서구 열강들은 설탕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지독한 《설탕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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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플랜테이션이 본격적으로 융성해짐에 따라 비극적으로 발달한 것은 바로 흑인 노예 무역이었다.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의 제조 공정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가혹한 노동 환경과 유럽인들의 질병 전파로 원주민의 노동력으로도 그 필요가 감당이 되지 않자,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강제로 투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역시 가혹한 노동 착취 환경으로 그들의 기대 수명은 극히 낮았고, 이는 다시 더 많은 흑인 노예를 필요로 하게 되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이렇듯 설탕 산업이 커지면 커질수록 아프리카 흑인 노예 무역의 그림자는 더욱더 짙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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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잔혹한 흑인 노예의 삶을 자세하게 기록한 1만 4000페이지에 달하는 사료는, 아이러니하게도 자메이카에서 플랜테이션 관리자로 근무했던 토머스 티슬우드가 남겼다는 것이다. 책에서 언급하는 짤막한 기록만을 보아도 몸서리가 쳐질 만큼 잔혹하다. 흑인 여성 노예들을 강간한 횟수는 3825회, 그가 유린한 여성 노예의 수는 138명, 도망치려는 노예에게 가차없는 매질, '더비의 약'이라는 고문 내용(p.65) 등…. 자신의 만행을 자각조차 못하고 자랑스레 기록한 토머스 티슬우드의 몰인간성에 기묘한 불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학자들은 그의 학대 내용이 당대와 비교해서 특별할 것 없이 평균적인 수준의 행태였을 거라고 평가한다는 것이 더 끔찍한 지점.





 우사인 볼트, 일레인 톰슨, 세리카 잭슨 등 오늘날 세계 단거리 육상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자메이카 선수들의 경기를 보며, 나는 종종 사탕수수밭에서 혹사당했을 그들의 선조들을 떠올리곤 한다. 해적기를 나부끼며 바다를 누빈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와 두 다리로 트랙 위를 질주하는 자메이카의 육상 선수들, 과연 '진짜 영웅'은 누구일까? p.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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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노동 환경에서 흑인 노예들은 목숨을 걸고 도망치기도 한다. 운 좋게 탈출한 그들은 산악지대에 모여 군락(Maroons)을 형성하며 자유인으로서 하나의 공동체로 성장하고 세력을 키워 제국군과 대립하기 시작한다. 특히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히스파니올라 섬의 서쪽, 생도맹그 지역은 흑인 반란군과 프랑스 제국군의 지난한 전쟁과 서구 열강의 대결 구도 위에서 모순적인 협력 속에 송토나의 노예 해방 선언을 바탕으로 최초의 흑인 공화국인 '아이티 공화국'으로 탄생하게 된다. 독립 승인 대가로 프랑스에 배상금을 지불하느라 경제적인 빈곤에 빠지게 되고, 이후 쿠데타, 군부 독재 등의 내부 정치적 갈등으로 혁명의 빛은 바래졌지만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이 스스로 쟁취한, 역사상 유일하게 성공한 노예 혁명으로 미래의 노예제 폐지에도 영향을 미친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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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티는 흑인 노예의 '고향'인 아프리카 대륙이 아니라 그들이 유럽인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 뿌리내린 땅에 세운 나라라는 점, 또한 아메리카 전체를 통틀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탄생한 독립 국가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독특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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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설탕 패권 전쟁의 흐름에서 한국의 출현은 미국으로부터 시작한다. 루이지애나 지역에서 융성했던 미국의 설탕 플랜테이션 역시 흑인 노예의 노동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북 전쟁이 발발하면서 흑인 노예들이 주가 되었던 설탕 산업은 급격히 몰락할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생산지의 필요성으로 하와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와이 설탕 플랜테이션의 초기 이주민은 주로 중국이었고, 뒤를 이어 일본인이 이주하였다. 중국인의 노동력 독점 현상, 일본인의 잦은 파업으로 다른 대체 노동 인력을 물색하던 가운데 102명의 한국인 이민자들이 처음으로 이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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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라고, 한국인이라고, 계약 노동자라고 노예보다 처지가 더 나은 것은 아니었다. 설탕 플랜테이션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여전했다. 그러나 한인 이주민들은 이역만리에서 고국을 향한 그리움에 사무치면서도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독립 자금을 모으기도 하고 미국 본토로 이주해서도 독립운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기도 하는 등 한국 독립운동 역사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분담했다. 또한 하와이 한인 이주민의 역사적인 맥락에서 '사진 신부'라는 애환의 역사 또한 살펴볼 수 있는데 이는 이민자 이탈 방지의 일환으로 서로의 사진만을 교환하여 결혼을 결정한 후, 하와이로 이주한 여성 한인 이주민을 가리킨다.





'사진 신부'들 또한 새로운 삶을 꿈꾸며 하와이로 이주하였지만 역시나 하와이에서의 삶은 그들에게도 녹록지 않았다. 사진과 다른 외모나 더 많은 나이의 남편을 마주하기도 했고 농장의 일 외에도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야 했다. 그러나 한인 이주 여성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여성 독립 후원 단체를 결성하여 조국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고 하와이 이민 사회의 안정을 공고히 다지는 주축으로써 그들의 후손들을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게 만드는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하와이 한인 이주민들의 역사는 인천 월미도에 위치한 한국 이민사 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 다녀왔던 인천 둘레길 13코스에서 슬쩍 본 기억이 나서 첨부. 다시 가게 되면 한 번 들러봐야겠다.





​설탕을 매개로 톺아보는 역사. 역사라고 하면 딱딱하고 지루한 이미지가 떠오르기 십상인데 《설탕 전쟁》은 말랑하고 흥미롭게 읽힌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톤으로, 이야기하듯 서술한다. 편안한 해설을 바탕으로 설탕이라는 욕망의 흐름이 어지러이 세계사를 흔들면서 제국주의, 디아스포라, 노예무역 등 역사가 드리운 그림자를 들여다보는데 의의가 있다. 끔찍한 폭력성과 잔혹한 몰인간성을 타고 흐른 설탕의 역사에는 설탕 플랜테이션의 흑인 노예 무역과 그들의 디아스포라라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가 도륙 한 슬픔이 깔려 있다는 것, 그 이면에 끊임없는 투쟁과 혁명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읽어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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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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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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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한겨레문학상 30주년 앤솔러지인 《서른 번의 힌트》를 읽고 나서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말뚝들》을 한껏 기대하고 있었다.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 걸출한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떠올리면 그 기대감은 더욱 배가 될 수밖에 없다. 30주년 기념이라 그런지 관련한 마케팅들도 활발해서 책 밖에서의 김홍 작가의 여러 인터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작품의 집필 배경이나 작품에 대한 작가의 해설 등으로 작품을 더 농밀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출판사 인스타그램(@hanibook)에서는 작가에게 당선 소식을 전하는 상황이나 책의 인쇄 과정, 시상식에서 울컥해버리고 마는 김홍 작가의 모습 등도 볼 수 있어서 책의 안과 밖으로 다양한 결의 《말뚝들》을 감상할 수 있다.





《말뚝들》은 '장'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은행에서 대출심사 업무를 담당하는 장은 어느 날 차 트렁크에 실려 납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두운 트렁크 속에서 장은 공포와 불안에 떨며 지난날 자신의 과오를 반추하며 불가해한 상황을 이해해 보려 하지만 탈출은 요원할 뿐이다. 어쩔 도리 없이 한 편의 소동극으로 무기력하게 끝나버린 납치극. 범인이 누군지는 물론이고 그 목적마저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버린 납치극은 장에게 트라우마만을 남겨버렸다. 납치 소동과 맞물려 이 세계에서는 갑자기 '말뚝들'이 도시에 출몰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납치에서 비롯된 장의 일상에서의 균열들은 말뚝을 중심으로 어그러지기 시작하고, 불행의 소용돌이 속에서 장은 고군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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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극이 시작되면서부터 스릴러처럼 이야기가 흐르려나 하고 장과 함께 범인을 추측하기 시작했다. 은행에서 대출심사 업무를 담당하는 장의 직업이 초래한 누군가의 앙심이었을 것이리라. 그에게 앙심을 품은 누군가로 추측의 저울을 기울였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흐르지 않는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는 영리하게도 재미있는 경로만을 찾아 질주한다. 이 길이 맞나 싶은 갈림길에서 주저하는 독자의 손목을 이끌고 작가는 확신에 찬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읽는 내내 도통 어디로 어떻게 전개될지 나의 궁핍한 상상력으로는 결코 가늠할 수가 없었다. 재미의 범용성을 가늠해보며 무람없이 재밌다고 할 수 있겠다. 웬만하면 보통 겁부터 먹고 낯부터 가리는 나란 사람도 이런 의외의 전개가 재밌게 느껴지는 까닭은 오로지 작가의 역량 덕분이었다.




일상과 비일상이 혼재하는 세계에서 비일상적인 말뚝들의 존재 자체가 자칫 판타지처럼 허황된 상상력의 산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장'이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동시대적인 현실이 핍진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예를 들면 직장인으로서 겪는 직장 내 정치 싸움 내지는 알력 다툼, 영끌 한 아파트, 사회적인 계급 차별로 인한 좌절, 납치 후에 보인 동료들의 다소 비인간적인 태도 등 누구나 적어도 한 두 개쯤은 경험하고 마는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장'아일체를 경험하게 한다. 그러는 동시에 우리 사회가 최근 겪은 국가적 트라우마인 12·3 비상계엄 사태를 똑닮은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상황은 한층 더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흐릿하게 지워버린다. 그런 투명한 경계 층에서 말뚝들이 가지는 서사는 우리를 설득하기에 모자람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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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을 나설 때와 같은 자리에 말뚝이 서 있었다. 정오의 태양이 내리쬐는 창을 등진 채 역광의 윤곽이 윤슬처럼 빛났다. 두 사람은 미처 신발을 벗지도 못한 채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나란히 눈물을 흘렸다. 묘하게도 따듯한 위로가 됐다. 아예 말뚝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데보라가 장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 해요?"

 "아무 생각도 안 해요."

 "거짓말.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건 없어요. 말하기 곤란한 걸 생각할 때 그렇게들 말하죠."

 데보라의 말을 듣고 장은 생각해 봤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과연 어떤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다.

 "지금 어딘가에서 우리처럼 울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네요."

 "신기해요.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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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갑자기 출몰한 말뚝들을 보고 불현듯 눈물을 흘린다. 광장에 출현한 말뚝들을 에워싸고 사람들은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계속해서 눈물을 흘린다. 엉엉 우는 사람, 오열하는 사람, 조용히 눈물 줄기만을 흘리는 사람…. 말뚝들의 기원도, 존재의 이유도, 그 어떤 것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말뚝들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 장에게 직접적으로 찾아온 또 하나의 말뚝. 그 말뚝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 그 말뚝의 기원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진실들과 비로소 획득하는 말뚝들의 서사를 목도하며 우리는 익숙하고도 씁쓸한 기시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말뚝들의 정체를 찾아보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우리는 이미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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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은 편안했다. 울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은 이제까지 삶에 대해 너무 큰 거짓말을 해왔다는 걸 이쯤에서 인정하고 싶었다. 희망 같은 건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지금은 기적을 믿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있다는 명백한 느낌을 믿었다. 그들은 말뚝을 지킬 것이고, 말뚝을 지키려는 장을 지킬 것이었다. 그 사실은 이후로도 내내 장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두려움은 희미해졌다.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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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의 의미도, 그들을 보고 흘리는 눈물의 의미도 저마다 다르겠지만 같이 앉아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는 위로와 안도감이 들고는 해서 페이지에 오래 머물곤 했다. 물색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고요하고 평온하다. 억눌린 슬픔의 해갈이었을까. 결코 잊힐리야 잊힐 수 없는 죽음들에 대해 생각한다. 몇 번의 국가적 참사들과 사회적 타살들을 목도하던 경험 속에서 우리는 사회적 애도를 통해 광범위한 연대를 이루어 서로를 위로했다. 장과 데보라의 대화에서 데보라가 말했던 불행의 랜덤성은 한 개인의 불행에 위로가 뒤어주기도 하지만 우리가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며 연대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불행 앞에서 우리는 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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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쟝한테 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돼요?"

 (중략)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건 그냥 사고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의 모든 일이고요. 왜 특별히 쟝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라는 말이에요?"

 "아니죠. 엄청난 일이 일어났죠. 삶에는 원래 엄청난 일이 계속돼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삶이 계속된다는 것부터 봐요. 불행을 특별 대우해 주면 불행이 잘난 척을 해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거든요. 이렇게 비교하니 미안한데 나도 기껏 한국 일정 잡고 숙소까지 예약하고서 데이식스 콘서트가 취소됐잖아요. 그냥 일어나는 일들이죠. 랜덤니스." p.185




예상할 수 없이 뻗어 나가던 전개 속에서 인물은 결코 울고만 있지 않는다. 세상이 장을 제대로 골리려는 듯, 온갖 종류의 불행이 한꺼번에 그를 괴롭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은 모든 고난을 뚫고 말뚝을 끌어안는다. 소설 속에서 주어지는 지난한 불행 앞에서도 작가는 유머를 잃지 않고, 핍진한 현실성과 비상계엄이라는 시국성을 더해 산업 재해 노동자의 삶까지 순환한다. 스릴러처럼 흐르려나 했다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고, 시대상을 고찰하려나 했다가 블랙 코미디를 선사한다. 우당탕탕 하면서 전개를 다채롭게 굴려 나가다 보면 서사의 중심에 살이 붙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 정체를 마주했을 때 각자가 맞이할 타인의 무엇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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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대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박노자 지음, 원영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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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붉다. 이름부터 대놓고 붉다. 한겨레출판이라서 가능한 출간이 아니었을까, 라는 잠깐의 우스갯소리. 이 짤막한 농담에서 내가 인식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이미지가 함축되어 있다. 다소 불온한,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정치적 이념으로 공격의 대상이 되는, 빨갱이, 레드 콤플렉스 등 우리 사회가 이 사상을 다루는 방식은 이토록 경멸적이다. 불과 몇 달 전에 서울대는 수요 부족을 이유로 들어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을 35년 만에 중단하고, 강사 채용 공고에도 주류경제학 전공자만을 선발하면서 사실상의 폐강을 선언했다. 이에 반발한 서울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0학점 공개강의' 형태의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을 부활시켰고 이에 호응한 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과 서울대 주변의 서점들을 비롯한 전국 서점들의 가맹 연대로 그 규모가 커진 것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40841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고해진 현시대에 이르러서까지도 공산주의와 관련한 사상과 이념들이 배격당하는 이런 사회적인 기조 속에서 개인적으로도 결코 완전하게 자유롭지 못하다. 어딘가 뒤틀린 반공 정서에 대한 불편한 인식과 그것을 선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무지에서 비롯한 답답한 마음에 《붉은 시대》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박노자의 《붉은 시대》는 1919년에서 1930년대 후반 양차 대전의 사이에, 전간기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났던 사회주의 운동의 흥망성쇠를 망라하며 당시 전 세계사적으로 큰 흐름이었던 사회주의 운동의 한 줄기가 당시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사회주의 운동이 식민지 조선사에서 가졌던 한계와 의미, 주요 인물들의 활동과 다양한 분파 간의 충돌 등을 촘촘하게 톺아본다. 특히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을 주체성을 지닌 하나의 세계사적 흐름으로 정의하는 것이고 그 흐름에서 더 나아가 그것이 가진 의미를 정제하여 현시대적 담론으로 끌어오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붉은 시대》에서 다루는 시기, 즉 식민지 시대 조선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가당키나 했을까?라는 의문이 먼저 든다. 이런 열악한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의 주체들은 주로 외부로부터 유입이 많았다. 디아스포라 조선인, 재외 조선인 2세, 해외 망명자, 일본과 러시아 코민테른의 유학생 등 주로 식자층을 주축으로 하여 조선 각지에 지하 공산당을 구축하고, 노동 파업을 주도하며 그들의 사상을 전파했다. 그러나 코민테른이 생각하는 사회주의 운동의 이상은 노동자가 중심이 되었던 독일 공산당의 예시처럼 '프롤레타리아트' 중심의 변혁이었던 만큼, 지식인 혹은 중간 계급이 주도했던 조선 사회주의 운동은 명백하게 그 한계가 존재했다. 물론 식민지 시대라는 시대적 고립과 대중의 문맹률, 저조한 산업화에 따른 적은 수의 공장 노동자와 같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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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계층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전체적인 구성원은 고도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 계층의 전업 혁명가들부터 노동조합의 일반 조합원과 파업에 참여한 구성원까지를 폭넓게 아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부재라는 한계는 조선 공산주의 운동 내부에서 분파주의라는 문제를 야기했다. 코민테른은 조선 공산주의 운동 내의 분파주의의 원인으로 프티 부르주아지 출신이 주가 되는 지도자층과 신생 노동 계급의 유기적인 결속의 부재를 지적했다. 이러한 원인에서 발생한 분열은 정통파, 민족주의파, 신간회, 정우회 등을 비롯한 여러 계열의 분파들을 만들어냈고 이는 계속해서 충돌하고 때로는 타협하며 자연스럽게 사회적 담론의 장을 형성했다. 그러한 결과로 조선 사회주의 운동은 비판적으로 성장하며 점점 더 성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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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시류 속에서 전운이 감돌고 유럽에서 파시즘이 횡행하고 일본이 중국 동북 지역인 만주를 침략하기 시작하며 1930년 대의 사회주의 운동도 급진적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기조 아래 2부 4장에서는 박치우라는 철학자의 마르크스주의 철학과 그의 삶을 전면으로 다룬다. 박치우는 경성제대 철학과 출신으로 1930년대의 고조되는 시대적 위기를 감지하고 이를 타파할 방식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채택했다. 장로교 학교의 교사, 〈조선일보〉의 기자와 〈현대일보〉의 편집자를 거치며 좌파의 지도적 인물로 성장하며 미군정으로부터 수배자 명단에 오르고, 극우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한다. 평생을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 살아온 그의 종말이 공산주의 게릴라 부대원이었다는 점은 혼란스러운 시대적 시류에 휩쓸리고만, 안타깝고도 아이러니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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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6장과 7장은 공산주의 사회의 이상이 현신한 중국 해방구와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다루는데, 공산주의에서 주창하는 강령들이 눈앞에서 현현하고 있는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바라보던 조선인들의 시선이 흥미롭다. 디아스포라 조선인 작가 중에 하나였던 김사량은 중국 여행 일지 《노마만리》를 통해 중국 해방구에서 그가 목격한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사회 개혁 프로그램, 여성의 인권 상승, 타협적인 토지 분배 등이 실현된 사회를 기록한다. 또한 여러 조선 지식인들이 '붉은 수도' 모스크바를 여행하며 기록한 모습들, 이를테면 잘 닦인 길바닥, 고급 진 의복, 상류 문화의 대중화 등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일상적 모습을 보며 조선 개혁을 꿈꾸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시선의 한계로 인물들의 정치적인 배경과 각 사회의 내재적인 문제점이 소거된, 가시적이고 다소 편파적인 시점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 자신의 신성한 세계 축(소련)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지만, 조선 사회주의는 결국 20세기 한국에서 대중에 기반한 자기반성적이고 비판적인 문화가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그것이 바로 조선의 '사회주의 세계'를 언급하는 것이 전혀 과장이 아닌 이유다(<후기>를 보라). 1920~30년대 조선의 좌파는 유토피아적 세계에 살았지만, 중앙 유럽의 동시대인 칼 만하임이 대공황이 조선 사회주의의 고양을 촉발했던 그 해에 암시했던 것처럼, 질적으로 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사회에 유토피아가 불가피하게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1945년 이후 북조선과 남한의 궤적은 식민지 조선의 불꽃 같았던 '붉은 20년'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p.329 결론 조선의 붉은 시대





“전간기는 현재와 닮은 점이 많아요. 자본주의의 위기적 상황이 감지된다는 게 그렇죠. 대중들의 상대적 빈곤화와 권위주의 정치의 귀환, 그리고 글로벌 패권의 위기와 기존 패권에 도전하는 열강들의 각축 등 현재 상황을 보면서 가끔 ‘1930년대가 돌아오고 있나?’ 자문할 정도이죠. 그 때문에 ‘대안’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성장’이나 ‘시장’에 대한 환상이 많지만, 한국보다 신자유주의를 15년 먼저 도입한 미국, 영국에서는 지금 많은 젊은이들의 시대적 화두는 ‘21세기의 사회주의’입니다. 그들에게 조선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반성할 점과 배우거나 계승할 점을 알려주고 싶었죠.”_한겨레 인터뷰 중에서




https://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1122036.html



23년도에 저자가 한겨레와 인터뷰한 내용을 읽어보면 이 책이 주는 의의를 보다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 100년을 뛰어넘어 과거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을 현시대에 읽어보아야 할 이유가 조선 사회주의 운동의 '붉은 시대'를 호명하고 있다. 그들이 이룩하고자 했던 실천적인 노력들, 8시간의 노동 시간, 파업할 권리, 노동 현장의 민주주의, 여성 인권 신장 등은 복지국가의 초석이 되어 현재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이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사회적·문화적·경제적 관점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를 톺아보며 현재를 계승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보는 것, 의도적으로 소거된 《붉은 시대》를 먼저 소환해야 할 시점이다.






내가 알고 있었던, 내가 배웠던, 내가 인식하고 있었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확실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각인되었던, 대체적으로 '빨갱이'로 압축되어버린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무엇이었다. 공산주의 운동들이 추동한 한국 근·현대사의 발전 동력의 맹아가 그 시절에 움트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조선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조선인들이 당시 시대적 맥락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과 이들이 조선의 독립을 넘어 쇄신의 개혁을 꿈꾸었다는 것도 미처 알지 못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이곳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어려웠다. 그간의 논문들을 취합하고 그에 더해진 글들이라 뒤에 첨부된 주석과 참고문헌들만 떼어보아도 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이었다. 가장 느리게, 또 오래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가장 많은 책이었달까. 느리고도 지난한 과정의 독서였다. 그러나 어떤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그만한 도약이 필요한 법이리라…. 아마도 이 책은 올해 읽은 책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 책이 되고야 말 것 같다.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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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내가 원한 것
서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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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덥다고 찡찡대는 나에게 친구는 일갈을 날린다. 남은 생의 여름들 중에서 이번 여름이 그나마 가장 시원할 것이라고. 갈수록 더워질 여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난다. 쏟아지는 햇볕 아래 빈틈없이 꽉꽉 들어찬 밀도 높은 습기가 온몸을 옥죄어온다. 예상보다 오래 야외에 머물기라도 하면, 한여름의 펄펄 끓어오르는 열기에 경미한 현기증과 함께 구역감이 올라오고야 만다. 이렇게 내가 감각하는 여름은 대체로 따갑고 종종 축축하며 내내 끈적거린다. 아지랑이처럼 울렁거리는 정신머리를 겨우 붙잡는다. 그리고 조용히 숨죽이며 하루빨리 여름이 끝나기를 무기력하게 기다린다. 여름에 내가 원한 것이라고는 고작 이 여름의 찬란한 종말뿐이었다.





에어컨과 선풍기의 비호 아래 배를 깔고 엎드려 누워 한 손에는 메로나를, 한 손에는 《여름에 내가 원한 것》을 들고 읽기 시작한다. 서한나가 써 내려간 글들은 '연인들, 감각들, 장소들'로 나뉘어 있지만 그녀가 감각하는 여름의 공간 속, 곳곳에는 연인들이 있다. 달뜬 밤, 분위기 좋은 바, 소나기 속….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권태와 매혹이 가득한 여름의 상태는 계절이라는 여름의 경계를 허물고 뛰어넘는다. 묘사하는 장면의 면면들은 이름 모를 어느 영화의 감성적인 스틸컷을 닮아있다. 구간과 구간 사이를 반복해서 재생하게 만들고 싶어지는, 그것이 비디오테이프라면 필시 필름이 닳고 닳아 늘어지고야 말 것이다.


권태와 매혹이 모두 하루에 있고, 한낮과 한밤중이 그렇게 다를 수 없다. 어느 여름날 행복했던 시간을 묘사하는 것보다도, 어떤 시간을 살든 여름의 상태로 산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p.5 Prologue


선풍기를 틀어놓은 탓에 한 손에 쥔 메로나가 금세 녹아 흘러내린다. 다급하게 책을 놓고 메로나를 핥아보지만 손은 이미 끈적거리기 시작한다. 끈적거리는 손으로 녹아내린 메로나를 마저 먹으며 생각한다. 《여름에 내가 원한 것》과 닮아 있다고, 그것을 읽고 있는 감정과도 닮아 있다고. 시원하고 달콤한 메로나가 달짝지근한 향을 풍기며 흘러내린다. 지나간 자국은 여름의 습기처럼 끈적하다. 연인, 사랑, 질투, 짝사랑, 순애, 회한 등의 감정은 마치 사랑이 녹아흘러 남긴 끈적한 자국 같다. 여전히 달큼한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여름은 좋든 싫든 감각을 건드린다. 너무 덥고, 너무 따갑고, 너무 차갑다. p.51 사랑에 빠진 사람이 견딜 수 없는 것


나른하고 권태로운 혹서는 오히려 몇 가지 감각들을 섬세하게 추려주기도 한다. 얼음을 가득 넣은 루피시아의 피콜로라는 차, 해수욕 후에 즐기는 고생스러운 독서의 권태와 낭만, 아이리시 카밤을 즐기는 정석, 판촉용 티셔츠의 가벼운 즐거움 등을 비롯해 여름에 맛보는 오이와 양파, 수박, 맥도날드 아이스크림 외에도 플레이 리스트와 책, 영화 등에 얽힌 감각들의 서사에서 여름의 발향을 들이쉬어본다. 높은 온도에서 향의 휘발성이 강렬해지는 것처럼, 여름 안에서 감각하는 것들이 뿜어내는 서사 또한 한껏 짙어지는 것이다.


근처에 오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고, 메세지를 보낼까 하다 불러내면 뭐해, 술이나 먹겠지 싶어 그냥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솔직히 말해 안 나온다고 하면 외로워질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집에 왔다. 이제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밤도 그런대로 견딜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정도로도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외로움은 해결하려고 들지만 않으면 괴롭지 않다. p.159 여름 바람


서한나의 감각들은 오감을 가로지른다. 오감의 감각들이 야기하는 정서를 따라 서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감각의 길을 따라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나의 여름 속을 헤매고 있다. 서한나가 이끄는 여름의 권태와 매혹이라는 끈적이는 속성을 만지작거리며 기어코 들여다본다. 기원을 알 수 없는 달뜬 마음으로, 장대비 속에 대책 없이 뛰어드는 무모한 용기를, 눈물이 땀처럼 흐르던 숲속에서, 끈적이는 얼굴에 달라붙던 성가신 날벌레를 함께 쫓던 밤에, 불안과 설렘을 착각하곤 했던 계절의 여름을…. 서한나가 여름을 감각하는 방식으로 들여다보는 나의 여름도 제법이었다.




슬슬 더워지려는 체온을 달래고자 얼음을 콰득콰득 씹는다. 달뜬 나의 여름을 진정시키며 책장을 넘겨 장소들을 옮겨간다. 운동장의 정글짐과 지하실 같은 공간에서부터 부여, 남해, 치앙마이, 오키나와, 가고시마 같은 멀리 떨어진 지역의 장소들까지. 옮겨 간 그곳에도 어김없이 여름의 그것들이 있다. 시간과 시절을 넘나들며 쌓인 서사, 그 지역과 장소만이 가진 고유한 정서. 같은 계절,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존재하더라도 두 번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유일한 것들이 박제되어 있다. 여름만이 발현하는 생동력, 꼼짝없이 목도하는 권태감, 사사로이 거니는 평온함 등이 또다시 나를 어지러이 나의 장소들로 옮겨 다니게 만든다.




서한나는 여름의 장막을 걷어 독자의 손을 잡고 '여름' 안으로 이끈다. 일차원적으로 감각했던 여름의 외피를 걷어내고 여름이 가진 내밀한 속성의 내피를 들춰본다. 감각적인 문장들이 많다. 에필로그 속 지인의 말이 옅은 각인을 남긴다. 좋아하는 사람 없는 선선한 가을 같은 마음은 누군가를 절절하게 좋아하는 바람에 마음이 아주 뜨거웠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것을 짐작해 보며, 이것 또한 여름의 산물이겠거니…. 이내 곧 끄덕이며 여러 문장들을 갈무리해 본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 싶을 때 내가 나라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나의 틀과 에고가 있다는 것이, 그래서 그것 때문에 진짜 그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그런 식으로 알도록, 사랑을 경유해서만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알도록 한다는 뜻이다. p.13 나는 도울 거야 당신의 지옥을


그와 헤어지고 나서는 표지가 하늘색인 시집을 샀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하는 일 중 하나는 서점을 배회하고 자신과 가장 멀어 보이는 것을 사서 집에 오는 것이다. p.86 더워지고 싶어서 그 시집을 샀다


이 세상 것이 아닌 정신이야말로 이 세상을 놀라게 할 말을 한다. 그리고 사랑은 우리의 정신을 저세상으로 보낸다. 정확히 그 에너지만큼 우리를 이 세상에 달라붙게 한다. 내가 궁금해하는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있으니까, 그가 우리의 언어로 말하고, 우리의 언어로 생각하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쓴 논문을 읽는 것만큼 변태적이고 쓸데없는 일은 없다. 너의 정신의 산물을 사랑하고 네 삶의 지향점을 사랑한다는 것보다 더 근사한 사랑의 형태를 아직 나는 모르겠다. p.98 모든 걸 저에게 알려주세요


살면서 알게 된 것은, 감정에 따라 사는 것은 미지를 감수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모험의 원형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나 장소에 그냥 가버리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주는 상처를 직격으로 맞는 것이다. 아주 길고 느린 변화가 수반된다. 지금까지 쌓아온 나에 대한 생각은 해체돼 버리고, 우리는 깊은 무력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감정과 행복의 주도권을 이미 상대에게 넘겨버렸으니. p.203 여름에 감행한 것


찻집 앞에서 세 번째 담배를 꺼내며 지인이 말했다. "아, 요즘 좋아하는 사람 없어서 좋아요. 마음이 선선해, 가을 같아." 그는 1500원 더 비싼 담배를 태운다. p.261 Epilogue 그때 내가 원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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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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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대한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몇 년 전, 일본 여행에서 정원이 유명하다고 하는 어떤 사찰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꽃과 나무를 비롯한 온갖 식물들이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공간일 것이라는 예상은 어긋났다. 인위적으로 배치한 나무나 바위, 돌 그리고 모래와 자갈로 표현한 결들은 절제적으로 느껴졌다. 나에게는 조금 강박적으로 보였던 일본의 그 정원은, 나중에 검색을 해본 후에야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정원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나에게 평면적이고도 피상적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정원의 책》은 문학 속에서 등장하는 정원이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상징적 의미로 기능하는지, '정원'이라는 의미를 보다 확장시키며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그중에서 문학 작품 속 정원을 가장 많이 또 오래 들여다보았다. 정원이 등장하는 문학은 많다. 그저 배경일 때도 있지만 정원이 없으면 안 되는 작품도 있고, 정원이 숨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실제로 있는 정원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은유적으로 정원이라 부르는 곳도 있다. 이토록 많은 정원들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지를 알아보고 또 알리고 싶었다. p.8-9 프롤로그, 가든 라이팅으로 만든 꽃다발




불어불문학과 영어영문학, 미술사학과 조경학에 이르는 저자의 폭넓은 학문의 스펙트럼은 책이 다루는 '문학 속의 정원'이라는 키워드에 더할 나위 없이 꼭 들어맞는다. '치유, 사랑, 욕망, 생태'라는 네 가지의 범주로 다루는 정원의 이야기는 괴테나 루소, 톨킨부터 마거릿 애트우드, 김초엽까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든다. 이들 속에서 정원은 배경으로써만 존재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상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정원이라는 존재를 한정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넓게는 공공의 정원이라는 의미로써 공원이나 숲 혹은 정원을 구성하는 요소들인 나무나 꽃에 방점을 두고 느슨하게 그들이 문학 속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톺아보는 것이다.


정원을 만드는 까닭을 말할 때면 으레 '이상향'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금 여기에는 없지만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은, 그리고 언젠가는 가게 되리라고 믿는 곳에 대한 상상은 삶을 견디게 해주니까. 정원은 이런 꿈의 한 조각이다. 이를 얼마나 아름답게, 크게, 정교하게, 혹은 비싸게 만들었는지, 어떤 메시지를 담았는지 아니면 의미 대신 형태로 표현했는지, 아니면 종교적인 상징 같은 것을 담았는지 등이 정원을 읽는 실마리가 된다. 그런데 어떤 정원을 만들든 조심해야 할 점이 있는데, 마지막에 딱 하나만 더 얹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한다. 식물이 과하면 금세 뒤죽박죽이 되고, 감성이 과하면 의미가 오히려 흐려진다. p.140


《정원의 책》에는 다양한 문학 작품들이 등장한다. 《데카메론》이나 《길가메시 서사시》를 비롯한 위대한 고전들이나 영화로도 흥행한 《반지의 제왕》같은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 기억하는 《캔디 캔디》와 〈레겐트루데〉같은 동화도 있다. 비교적 현대적인 작품으로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3부작 시리즈〉나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같은 SF 작품들까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든다. 특히 잘 알지 못했던 작품들의 줄거리를 읊어주는 부분에서는 종종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그보다 더 신선했던 것은 그 작품 안에서 기어코 '정원적인' 요소들을 찾아내어 그 의미를 정의하고 확정시켜 나가는 시선이었다. 인간의 욕망이 다분히 투영된 정원, 밀애의 장소로서의 정원, 인물들의 어느 시절을 대변하는 정원,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정원 등등 그 의미 또한 다채롭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윤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정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담장을 맞댄 회스 일가의 정원은 갖가지 채소들과 다양하고 화려한 꽃들, 아이들을 위한 모래 놀이터와 미끄럼틀 및 풀장에 더하여 개를 비롯한 온갖 동물들이 즐비하다. 낙원처럼 보이는 이 정원은 기능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풍족하다. 수용소의 유대인들로부터 착취한 것들로 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담장을 맞댄 이 정원은 불쾌하고 기괴하기 짝이 없다. 수용소에 나온 재를 비료로 사용하기까지 하는 몰인간성의 유독한 악취를 뿜는 정원을 두고, 우리는 그 정원은 유해하다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정원 자체는 죄가 없다. 언제나 죄는 인간의 몫일 뿐이다. 저자는 아래와 같이 결론을 맺는다.


…아무리 정원과 조성자, 만들어진 과정의 윤리적 문제는 상황적 맥락을 통해 보아야 한다고 하지만 이 정원만큼은 영영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나(헤트비치)는 이 시절을 회고하며 "그 장소에서 무언가 좋은 것이 나온다면 얼마나 역겨울지 상상해 보세요. 그곳에서요"라고 한다. 이 정원을 설명할 새로운 언어가 필요한데 나는 아직 이를 찾지 못했다. p.183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서는 끊임없이 묵묵하게 나무를 심는 목자가 나온다. 그가 심은 씨앗의 태반은 스러져갔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저 심을 뿐이다. 시간을 흐르고 흘러 어느새 그가 심은 씨앗들이 이내 숲을 이룬다. 숲을 기반으로 물이 돌고, 거센 바람의 결이 온순해지며,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종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씨앗을 심는 개인의 소소한 행위가 점차 확장되어가며 숲이라는 공공의 정원을 이룩하는 과정은, 그 모든 과정은 일면 거룩하고 고결하게 느껴진다.


이런 '공공의 정원'의 맥락으로 읽은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설계하고 조경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의 《미국 농부의 영국 도보여행과 이야기》를 다룬 편도 인상 깊다. 버컨헤드의 빵집 주인으로부터 '우리의 새 공원'을 꼭 둘러보라는 친절한 당부에 그곳을 둘려보며 일종의 센세이션을 느끼며 '민중의 정원'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힌다. 버컨헤드의 이 공원은 세계 최초로 시민들의 힘(돈)을 모아 조성한 공원(p.65)인 것이다. 이것이 의미 있는 까닭은 19세기 전까지 정원이나 공원 같은 녹지를 소유하는 것은 일부 특권계층만의 혜택이자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옴스테드가 버컨헤드의 공원에서 얻은 영감은 훗날 뉴욕 센트럴 파크를 즐기는 여러 군상의 모습으로 정원의 공유화가 대중에게 어떻게 이로움을 선사했는지 대변한다. 더불어 에밀 졸라의 《쟁탈전》을 다루면서 특권 계층이 투기로 축적한 부로 조성한 정원이 당시의 부조리를 상징하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도시 문제, 공공 보건은 물론이거니와 계층 간의 교류와 사회 통합을 목표로 조성된 공공 공간이 실제로는 기득권 계층의 권태로운 유희 공간으로 전유 된 것은 역설적이다.

 19세기 후반 등장한 도시의 공공 공간은 이 시대가 우리에게 물려준 중요한 도시의 자원 중 하나다. 그리고 이 공간을 둘러싼 이야기 또한 여전히 살아 있다. p.139




사실 일상에서 정원을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다. 일단 대부분의 주거 형태에서 정원을 조성하기 위한 물리적 공간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겠지. 철이 덜든 시절에는 근사한 중정을 품은 단독 주택을 꿈꾸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어설픈 소망마저 요원하다. 그러나 〈지구 정원사〉라는 다큐처럼 '정원'의 의미를 느슨하고도 넓게 확장시켜 생각해 보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양해진다. 《정원의 책》은 그런 맥락의 줄기 중 하나로, 문학 속에서 발굴해 낸 여러 차원의 정원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정원은 문학 속에 밀애와 사랑의 도구적 장치로 기능하는 것 외에도 정원에 담긴 서사는 더 농밀하다. 사회·역사적인 기록의 증거로 존재하기도 하며, 정원이라는 존재 자체로 생생하게 현현하기도 한다. 시비를 떠난 인간의 욕망을 오롯이 투영하는 정원도 여러 의미로 매력적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여러 문학 작품 속의 정원에서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무람없이 정원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거닐다 온 기분이 든다.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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