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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전쟁 - 제국주의, 노예무역, 디아스포라로 쓰여진 설탕 잔혹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하얗고 고운 입자. 무구하게 반짝이는 결정체. 끈적하게 녹아드는 단맛. 눈 설, 엿 탕. 눈처럼 하얀, 설탕. 발음을 굴리기만 해도 혀끝에 단맛이 도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이제 현대의 과도한 설탕 섭취는 만병의 근원이 되어버렸다. 주기적으로 트렌드가 변화하는 다이어트 산업에서 인슐린 저항성에 대한 원리를 골자로 하는 온갖 상품과 마케팅이 쏟아져 나온 지는 이미 꽤 되었다. 그로 인해 열풍이었던 '저당' 혹은 '무당' 제품들은 이제는 하나의 옵션이 되어버린 지 오래. 편의점 음료 냉장고 앞에만 서있어도 그 예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대체당을 사용하면서도 설탕의 그 '단 맛'을 결코 잃을 수 없다는 현대인의 욕망. 설탕에 투영된 그러한 욕망은 수 세기 전의 인간들과도 다를 것이 없어서 설탕은 그 자체로 인간의 욕망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설탕의 궤적을 따라 읽는 세계사의 흥망성쇠는 대항해 시대로부터 그 궤적을 뚜렷이 한다. 뉴기니 지역에서 유래한 사탕수수는 고대 인도에서 재배되고 설탕이 제조되면서 이슬람 문화권을 중심으로 중동과 아프리카로 퍼져나간다. 대항해 시대를 맞이하여 비로소 유럽으로 설탕이 전파되기 시작하고 곧이어 설탕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서양의 섬에서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제조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의 경제적 패권을 주도한다. 본격적으로 대규모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도입되며 서구 열강들은 설탕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지독한 《설탕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설탕 플랜테이션이 본격적으로 융성해짐에 따라 비극적으로 발달한 것은 바로 흑인 노예 무역이었다.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의 제조 공정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가혹한 노동 환경과 유럽인들의 질병 전파로 원주민의 노동력으로도 그 필요가 감당이 되지 않자,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강제로 투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역시 가혹한 노동 착취 환경으로 그들의 기대 수명은 극히 낮았고, 이는 다시 더 많은 흑인 노예를 필요로 하게 되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이렇듯 설탕 산업이 커지면 커질수록 아프리카 흑인 노예 무역의 그림자는 더욱더 짙어져만 갔다.
이런 잔혹한 흑인 노예의 삶을 자세하게 기록한 1만 4000페이지에 달하는 사료는, 아이러니하게도 자메이카에서 플랜테이션 관리자로 근무했던 토머스 티슬우드가 남겼다는 것이다. 책에서 언급하는 짤막한 기록만을 보아도 몸서리가 쳐질 만큼 잔혹하다. 흑인 여성 노예들을 강간한 횟수는 3825회, 그가 유린한 여성 노예의 수는 138명, 도망치려는 노예에게 가차없는 매질, '더비의 약'이라는 고문 내용(p.65) 등…. 자신의 만행을 자각조차 못하고 자랑스레 기록한 토머스 티슬우드의 몰인간성에 기묘한 불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학자들은 그의 학대 내용이 당대와 비교해서 특별할 것 없이 평균적인 수준의 행태였을 거라고 평가한다는 것이 더 끔찍한 지점.

우사인 볼트, 일레인 톰슨, 세리카 잭슨 등 오늘날 세계 단거리 육상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자메이카 선수들의 경기를 보며, 나는 종종 사탕수수밭에서 혹사당했을 그들의 선조들을 떠올리곤 한다. 해적기를 나부끼며 바다를 누빈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와 두 다리로 트랙 위를 질주하는 자메이카의 육상 선수들, 과연 '진짜 영웅'은 누구일까? p.58-59
이러한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노동 환경에서 흑인 노예들은 목숨을 걸고 도망치기도 한다. 운 좋게 탈출한 그들은 산악지대에 모여 군락(Maroons)을 형성하며 자유인으로서 하나의 공동체로 성장하고 세력을 키워 제국군과 대립하기 시작한다. 특히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히스파니올라 섬의 서쪽, 생도맹그 지역은 흑인 반란군과 프랑스 제국군의 지난한 전쟁과 서구 열강의 대결 구도 위에서 모순적인 협력 속에 송토나의 노예 해방 선언을 바탕으로 최초의 흑인 공화국인 '아이티 공화국'으로 탄생하게 된다. 독립 승인 대가로 프랑스에 배상금을 지불하느라 경제적인 빈곤에 빠지게 되고, 이후 쿠데타, 군부 독재 등의 내부 정치적 갈등으로 혁명의 빛은 바래졌지만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이 스스로 쟁취한, 역사상 유일하게 성공한 노예 혁명으로 미래의 노예제 폐지에도 영향을 미친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아이티는 흑인 노예의 '고향'인 아프리카 대륙이 아니라 그들이 유럽인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 뿌리내린 땅에 세운 나라라는 점, 또한 아메리카 전체를 통틀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탄생한 독립 국가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독특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p.100

이러한 설탕 패권 전쟁의 흐름에서 한국의 출현은 미국으로부터 시작한다. 루이지애나 지역에서 융성했던 미국의 설탕 플랜테이션 역시 흑인 노예의 노동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북 전쟁이 발발하면서 흑인 노예들이 주가 되었던 설탕 산업은 급격히 몰락할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생산지의 필요성으로 하와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와이 설탕 플랜테이션의 초기 이주민은 주로 중국이었고, 뒤를 이어 일본인이 이주하였다. 중국인의 노동력 독점 현상, 일본인의 잦은 파업으로 다른 대체 노동 인력을 물색하던 가운데 102명의 한국인 이민자들이 처음으로 이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와이라고, 한국인이라고, 계약 노동자라고 노예보다 처지가 더 나은 것은 아니었다. 설탕 플랜테이션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여전했다. 그러나 한인 이주민들은 이역만리에서 고국을 향한 그리움에 사무치면서도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독립 자금을 모으기도 하고 미국 본토로 이주해서도 독립운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기도 하는 등 한국 독립운동 역사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분담했다. 또한 하와이 한인 이주민의 역사적인 맥락에서 '사진 신부'라는 애환의 역사 또한 살펴볼 수 있는데 이는 이민자 이탈 방지의 일환으로 서로의 사진만을 교환하여 결혼을 결정한 후, 하와이로 이주한 여성 한인 이주민을 가리킨다.

'사진 신부'들 또한 새로운 삶을 꿈꾸며 하와이로 이주하였지만 역시나 하와이에서의 삶은 그들에게도 녹록지 않았다. 사진과 다른 외모나 더 많은 나이의 남편을 마주하기도 했고 농장의 일 외에도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야 했다. 그러나 한인 이주 여성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여성 독립 후원 단체를 결성하여 조국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고 하와이 이민 사회의 안정을 공고히 다지는 주축으로써 그들의 후손들을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게 만드는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하와이 한인 이주민들의 역사는 인천 월미도에 위치한 한국 이민사 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 다녀왔던 인천 둘레길 13코스에서 슬쩍 본 기억이 나서 첨부. 다시 가게 되면 한 번 들러봐야겠다.

설탕을 매개로 톺아보는 역사. 역사라고 하면 딱딱하고 지루한 이미지가 떠오르기 십상인데 《설탕 전쟁》은 말랑하고 흥미롭게 읽힌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톤으로, 이야기하듯 서술한다. 편안한 해설을 바탕으로 설탕이라는 욕망의 흐름이 어지러이 세계사를 흔들면서 제국주의, 디아스포라, 노예무역 등 역사가 드리운 그림자를 들여다보는데 의의가 있다. 끔찍한 폭력성과 잔혹한 몰인간성을 타고 흐른 설탕의 역사에는 설탕 플랜테이션의 흑인 노예 무역과 그들의 디아스포라라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가 도륙 한 슬픔이 깔려 있다는 것, 그 이면에 끊임없는 투쟁과 혁명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읽어내야만 할 것이다.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