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붉은 시대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박노자 지음, 원영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일단 붉다. 이름부터 대놓고 붉다. 한겨레출판이라서 가능한 출간이 아니었을까, 라는 잠깐의 우스갯소리. 이 짤막한 농담에서 내가 인식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이미지가 함축되어 있다. 다소 불온한,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정치적 이념으로 공격의 대상이 되는, 빨갱이, 레드 콤플렉스 등 우리 사회가 이 사상을 다루는 방식은 이토록 경멸적이다. 불과 몇 달 전에 서울대는 수요 부족을 이유로 들어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을 35년 만에 중단하고, 강사 채용 공고에도 주류경제학 전공자만을 선발하면서 사실상의 폐강을 선언했다. 이에 반발한 서울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0학점 공개강의' 형태의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을 부활시켰고 이에 호응한 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과 서울대 주변의 서점들을 비롯한 전국 서점들의 가맹 연대로 그 규모가 커진 것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40841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고해진 현시대에 이르러서까지도 공산주의와 관련한 사상과 이념들이 배격당하는 이런 사회적인 기조 속에서 개인적으로도 결코 완전하게 자유롭지 못하다. 어딘가 뒤틀린 반공 정서에 대한 불편한 인식과 그것을 선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무지에서 비롯한 답답한 마음에 《붉은 시대》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박노자의 《붉은 시대》는 1919년에서 1930년대 후반 양차 대전의 사이에, 전간기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났던 사회주의 운동의 흥망성쇠를 망라하며 당시 전 세계사적으로 큰 흐름이었던 사회주의 운동의 한 줄기가 당시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사회주의 운동이 식민지 조선사에서 가졌던 한계와 의미, 주요 인물들의 활동과 다양한 분파 간의 충돌 등을 촘촘하게 톺아본다. 특히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을 주체성을 지닌 하나의 세계사적 흐름으로 정의하는 것이고 그 흐름에서 더 나아가 그것이 가진 의미를 정제하여 현시대적 담론으로 끌어오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붉은 시대》에서 다루는 시기, 즉 식민지 시대 조선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가당키나 했을까?라는 의문이 먼저 든다. 이런 열악한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의 주체들은 주로 외부로부터 유입이 많았다. 디아스포라 조선인, 재외 조선인 2세, 해외 망명자, 일본과 러시아 코민테른의 유학생 등 주로 식자층을 주축으로 하여 조선 각지에 지하 공산당을 구축하고, 노동 파업을 주도하며 그들의 사상을 전파했다. 그러나 코민테른이 생각하는 사회주의 운동의 이상은 노동자가 중심이 되었던 독일 공산당의 예시처럼 '프롤레타리아트' 중심의 변혁이었던 만큼, 지식인 혹은 중간 계급이 주도했던 조선 사회주의 운동은 명백하게 그 한계가 존재했다. 물론 식민지 시대라는 시대적 고립과 대중의 문맹률, 저조한 산업화에 따른 적은 수의 공장 노동자와 같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러한 계층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전체적인 구성원은 고도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 계층의 전업 혁명가들부터 노동조합의 일반 조합원과 파업에 참여한 구성원까지를 폭넓게 아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부재라는 한계는 조선 공산주의 운동 내부에서 분파주의라는 문제를 야기했다. 코민테른은 조선 공산주의 운동 내의 분파주의의 원인으로 프티 부르주아지 출신이 주가 되는 지도자층과 신생 노동 계급의 유기적인 결속의 부재를 지적했다. 이러한 원인에서 발생한 분열은 정통파, 민족주의파, 신간회, 정우회 등을 비롯한 여러 계열의 분파들을 만들어냈고 이는 계속해서 충돌하고 때로는 타협하며 자연스럽게 사회적 담론의 장을 형성했다. 그러한 결과로 조선 사회주의 운동은 비판적으로 성장하며 점점 더 성숙해졌다.

세계적 시류 속에서 전운이 감돌고 유럽에서 파시즘이 횡행하고 일본이 중국 동북 지역인 만주를 침략하기 시작하며 1930년 대의 사회주의 운동도 급진적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기조 아래 2부 4장에서는 박치우라는 철학자의 마르크스주의 철학과 그의 삶을 전면으로 다룬다. 박치우는 경성제대 철학과 출신으로 1930년대의 고조되는 시대적 위기를 감지하고 이를 타파할 방식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채택했다. 장로교 학교의 교사, 〈조선일보〉의 기자와 〈현대일보〉의 편집자를 거치며 좌파의 지도적 인물로 성장하며 미군정으로부터 수배자 명단에 오르고, 극우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한다. 평생을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 살아온 그의 종말이 공산주의 게릴라 부대원이었다는 점은 혼란스러운 시대적 시류에 휩쓸리고만, 안타깝고도 아이러니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6장과 7장은 공산주의 사회의 이상이 현신한 중국 해방구와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다루는데, 공산주의에서 주창하는 강령들이 눈앞에서 현현하고 있는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바라보던 조선인들의 시선이 흥미롭다. 디아스포라 조선인 작가 중에 하나였던 김사량은 중국 여행 일지 《노마만리》를 통해 중국 해방구에서 그가 목격한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사회 개혁 프로그램, 여성의 인권 상승, 타협적인 토지 분배 등이 실현된 사회를 기록한다. 또한 여러 조선 지식인들이 '붉은 수도' 모스크바를 여행하며 기록한 모습들, 이를테면 잘 닦인 길바닥, 고급 진 의복, 상류 문화의 대중화 등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일상적 모습을 보며 조선 개혁을 꿈꾸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시선의 한계로 인물들의 정치적인 배경과 각 사회의 내재적인 문제점이 소거된, 가시적이고 다소 편파적인 시점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 자신의 신성한 세계 축(소련)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지만, 조선 사회주의는 결국 20세기 한국에서 대중에 기반한 자기반성적이고 비판적인 문화가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그것이 바로 조선의 '사회주의 세계'를 언급하는 것이 전혀 과장이 아닌 이유다(<후기>를 보라). 1920~30년대 조선의 좌파는 유토피아적 세계에 살았지만, 중앙 유럽의 동시대인 칼 만하임이 대공황이 조선 사회주의의 고양을 촉발했던 그 해에 암시했던 것처럼, 질적으로 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사회에 유토피아가 불가피하게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1945년 이후 북조선과 남한의 궤적은 식민지 조선의 불꽃 같았던 '붉은 20년'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p.329 결론 조선의 붉은 시대

“전간기는 현재와 닮은 점이 많아요. 자본주의의 위기적 상황이 감지된다는 게 그렇죠. 대중들의 상대적 빈곤화와 권위주의 정치의 귀환, 그리고 글로벌 패권의 위기와 기존 패권에 도전하는 열강들의 각축 등 현재 상황을 보면서 가끔 ‘1930년대가 돌아오고 있나?’ 자문할 정도이죠. 그 때문에 ‘대안’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성장’이나 ‘시장’에 대한 환상이 많지만, 한국보다 신자유주의를 15년 먼저 도입한 미국, 영국에서는 지금 많은 젊은이들의 시대적 화두는 ‘21세기의 사회주의’입니다. 그들에게 조선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반성할 점과 배우거나 계승할 점을 알려주고 싶었죠.”_한겨레 인터뷰 중에서

https://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1122036.html
23년도에 저자가 한겨레와 인터뷰한 내용을 읽어보면 이 책이 주는 의의를 보다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 100년을 뛰어넘어 과거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을 현시대에 읽어보아야 할 이유가 조선 사회주의 운동의 '붉은 시대'를 호명하고 있다. 그들이 이룩하고자 했던 실천적인 노력들, 8시간의 노동 시간, 파업할 권리, 노동 현장의 민주주의, 여성 인권 신장 등은 복지국가의 초석이 되어 현재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이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사회적·문화적·경제적 관점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를 톺아보며 현재를 계승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보는 것, 의도적으로 소거된 《붉은 시대》를 먼저 소환해야 할 시점이다.

내가 알고 있었던, 내가 배웠던, 내가 인식하고 있었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확실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각인되었던, 대체적으로 '빨갱이'로 압축되어버린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무엇이었다. 공산주의 운동들이 추동한 한국 근·현대사의 발전 동력의 맹아가 그 시절에 움트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조선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조선인들이 당시 시대적 맥락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과 이들이 조선의 독립을 넘어 쇄신의 개혁을 꿈꾸었다는 것도 미처 알지 못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이곳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어려웠다. 그간의 논문들을 취합하고 그에 더해진 글들이라 뒤에 첨부된 주석과 참고문헌들만 떼어보아도 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이었다. 가장 느리게, 또 오래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가장 많은 책이었달까. 느리고도 지난한 과정의 독서였다. 그러나 어떤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그만한 도약이 필요한 법이리라…. 아마도 이 책은 올해 읽은 책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 책이 되고야 말 것 같다.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