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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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대한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몇 년 전, 일본 여행에서 정원이 유명하다고 하는 어떤 사찰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꽃과 나무를 비롯한 온갖 식물들이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공간일 것이라는 예상은 어긋났다. 인위적으로 배치한 나무나 바위, 돌 그리고 모래와 자갈로 표현한 결들은 절제적으로 느껴졌다. 나에게는 조금 강박적으로 보였던 일본의 그 정원은, 나중에 검색을 해본 후에야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정원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나에게 평면적이고도 피상적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정원의 책》은 문학 속에서 등장하는 정원이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상징적 의미로 기능하는지, '정원'이라는 의미를 보다 확장시키며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그중에서 문학 작품 속 정원을 가장 많이 또 오래 들여다보았다. 정원이 등장하는 문학은 많다. 그저 배경일 때도 있지만 정원이 없으면 안 되는 작품도 있고, 정원이 숨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실제로 있는 정원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은유적으로 정원이라 부르는 곳도 있다. 이토록 많은 정원들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지를 알아보고 또 알리고 싶었다. p.8-9 프롤로그, 가든 라이팅으로 만든 꽃다발




불어불문학과 영어영문학, 미술사학과 조경학에 이르는 저자의 폭넓은 학문의 스펙트럼은 책이 다루는 '문학 속의 정원'이라는 키워드에 더할 나위 없이 꼭 들어맞는다. '치유, 사랑, 욕망, 생태'라는 네 가지의 범주로 다루는 정원의 이야기는 괴테나 루소, 톨킨부터 마거릿 애트우드, 김초엽까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든다. 이들 속에서 정원은 배경으로써만 존재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상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정원이라는 존재를 한정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넓게는 공공의 정원이라는 의미로써 공원이나 숲 혹은 정원을 구성하는 요소들인 나무나 꽃에 방점을 두고 느슨하게 그들이 문학 속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톺아보는 것이다.


정원을 만드는 까닭을 말할 때면 으레 '이상향'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금 여기에는 없지만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은, 그리고 언젠가는 가게 되리라고 믿는 곳에 대한 상상은 삶을 견디게 해주니까. 정원은 이런 꿈의 한 조각이다. 이를 얼마나 아름답게, 크게, 정교하게, 혹은 비싸게 만들었는지, 어떤 메시지를 담았는지 아니면 의미 대신 형태로 표현했는지, 아니면 종교적인 상징 같은 것을 담았는지 등이 정원을 읽는 실마리가 된다. 그런데 어떤 정원을 만들든 조심해야 할 점이 있는데, 마지막에 딱 하나만 더 얹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한다. 식물이 과하면 금세 뒤죽박죽이 되고, 감성이 과하면 의미가 오히려 흐려진다. p.140


《정원의 책》에는 다양한 문학 작품들이 등장한다. 《데카메론》이나 《길가메시 서사시》를 비롯한 위대한 고전들이나 영화로도 흥행한 《반지의 제왕》같은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 기억하는 《캔디 캔디》〈레겐트루데〉같은 동화도 있다. 비교적 현대적인 작품으로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3부작 시리즈〉나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같은 SF 작품들까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든다. 특히 잘 알지 못했던 작품들의 줄거리를 읊어주는 부분에서는 종종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그보다 더 신선했던 것은 그 작품 안에서 기어코 '정원적인' 요소들을 찾아내어 그 의미를 정의하고 확정시켜 나가는 시선이었다. 인간의 욕망이 다분히 투영된 정원, 밀애의 장소로서의 정원, 인물들의 어느 시절을 대변하는 정원,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정원 등등 그 의미 또한 다채롭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윤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정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담장을 맞댄 회스 일가의 정원은 갖가지 채소들과 다양하고 화려한 꽃들, 아이들을 위한 모래 놀이터와 미끄럼틀 및 풀장에 더하여 개를 비롯한 온갖 동물들이 즐비하다. 낙원처럼 보이는 이 정원은 기능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풍족하다. 수용소의 유대인들로부터 착취한 것들로 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담장을 맞댄 이 정원은 불쾌하고 기괴하기 짝이 없다. 수용소에 나온 재를 비료로 사용하기까지 하는 몰인간성의 유독한 악취를 뿜는 정원을 두고, 우리는 그 정원은 유해하다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정원 자체는 죄가 없다. 언제나 죄는 인간의 몫일 뿐이다. 저자는 아래와 같이 결론을 맺는다.


…아무리 정원과 조성자, 만들어진 과정의 윤리적 문제는 상황적 맥락을 통해 보아야 한다고 하지만 이 정원만큼은 영영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나(헤트비치)는 이 시절을 회고하며 "그 장소에서 무언가 좋은 것이 나온다면 얼마나 역겨울지 상상해 보세요. 그곳에서요"라고 한다. 이 정원을 설명할 새로운 언어가 필요한데 나는 아직 이를 찾지 못했다. p.183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서는 끊임없이 묵묵하게 나무를 심는 목자가 나온다. 그가 심은 씨앗의 태반은 스러져갔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저 심을 뿐이다. 시간을 흐르고 흘러 어느새 그가 심은 씨앗들이 이내 숲을 이룬다. 숲을 기반으로 물이 돌고, 거센 바람의 결이 온순해지며,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종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씨앗을 심는 개인의 소소한 행위가 점차 확장되어가며 숲이라는 공공의 정원을 이룩하는 과정은, 그 모든 과정은 일면 거룩하고 고결하게 느껴진다.


이런 '공공의 정원'의 맥락으로 읽은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설계하고 조경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의 《미국 농부의 영국 도보여행과 이야기》를 다룬 편도 인상 깊다. 버컨헤드의 빵집 주인으로부터 '우리의 새 공원'을 꼭 둘러보라는 친절한 당부에 그곳을 둘려보며 일종의 센세이션을 느끼며 '민중의 정원'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힌다. 버컨헤드의 이 공원은 세계 최초로 시민들의 힘(돈)을 모아 조성한 공원(p.65)인 것이다. 이것이 의미 있는 까닭은 19세기 전까지 정원이나 공원 같은 녹지를 소유하는 것은 일부 특권계층만의 혜택이자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옴스테드가 버컨헤드의 공원에서 얻은 영감은 훗날 뉴욕 센트럴 파크를 즐기는 여러 군상의 모습으로 정원의 공유화가 대중에게 어떻게 이로움을 선사했는지 대변한다. 더불어 에밀 졸라의 《쟁탈전》을 다루면서 특권 계층이 투기로 축적한 부로 조성한 정원이 당시의 부조리를 상징하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도시 문제, 공공 보건은 물론이거니와 계층 간의 교류와 사회 통합을 목표로 조성된 공공 공간이 실제로는 기득권 계층의 권태로운 유희 공간으로 전유 된 것은 역설적이다.

 19세기 후반 등장한 도시의 공공 공간은 이 시대가 우리에게 물려준 중요한 도시의 자원 중 하나다. 그리고 이 공간을 둘러싼 이야기 또한 여전히 살아 있다. p.139




사실 일상에서 정원을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다. 일단 대부분의 주거 형태에서 정원을 조성하기 위한 물리적 공간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겠지. 철이 덜든 시절에는 근사한 중정을 품은 단독 주택을 꿈꾸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어설픈 소망마저 요원하다. 그러나 〈지구 정원사〉라는 다큐처럼 '정원'의 의미를 느슨하고도 넓게 확장시켜 생각해 보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양해진다. 《정원의 책》은 그런 맥락의 줄기 중 하나로, 문학 속에서 발굴해 낸 여러 차원의 정원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정원은 문학 속에 밀애와 사랑의 도구적 장치로 기능하는 것 외에도 정원에 담긴 서사는 더 농밀하다. 사회·역사적인 기록의 증거로 존재하기도 하며, 정원이라는 존재 자체로 생생하게 현현하기도 한다. 시비를 떠난 인간의 욕망을 오롯이 투영하는 정원도 여러 의미로 매력적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여러 문학 작품 속의 정원에서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무람없이 정원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거닐다 온 기분이 든다.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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