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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 - 1인분의 육아와 살림 노동 사이 여전히 나인 것들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1인분의 육아와 살림 노동 사이 여전히 나인 것들〉이라는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저자가 20대에 겪은 퇴사와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와 살림이라는 인생의 중차대한 곡절들을 넘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느낀 일련의 감정들과 상념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으레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읽고는 하는데 저자의 나이와 지상파 아나운서라는 이력,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룬 결혼과 출산이라는 저자의 경험이 새삼 놀랍기도 했고 나로서는 경험해 본 적 없는 결혼·출산·육아라는 차원의 세계인지라 일면 궁금해지기도 했다. 피상적으로 생각한 저자의 삶은 사회가 요구하는 허들을 착실하게, 누구보다 성실하게 넘어온 것처럼 보였다. 그런 저자가 말하는 고독과 축복은 어떤 의미일까? 이런 질문을 걸고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글을 썼고,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글을 썼다. 그러나 육아는 단 한순간도 내게 고상한 것을 보여준 적이 없다. 내가 부릴 수 있는 재주 중에 제일 고상한 글쓰기가, 내가 태어나 해본 것 중에 가장 추레한 육아를 소재로 다루기 시작하니 인지부조화가 시작됐다. 그 사이의 간극이 나를 힘들게 했다. 글쓰기는 나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거였는데, 글쓰기조차 내 마음을 솔직하게 기록하라고 등 떠밀자 사지에 내몰린 사람처럼 두려웠다. p.15
이런 자기 고백으로 시작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일단 굉장히 솔직했다. 육아를 시작한 경험을 토네이도에(p.7) 비유하며 주위에 모든 것이 휩쓸어 사라지는 것 같았다는 비유 속에서 저자는 끊임없이 '나'에 대해서, 자신의 자아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엄마'라는 지위와 '육아'라는 책임 앞에서 저자는 한껏 추레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위축되기도 한다. SNS에서 자신의 모습과 현실에서의 자신의 모습 사이에 괴리를 고백하면서도 그것의 모습과 이것의 모습, 전부 어쩔 수 없는 '나'의 모습임을 인정한다. 육아의 신체적인 부침과 정신적인 방황,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자아 속에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상황을 '고독'으로 정의하면서 해결하는, 나름의 방식으로 상황을 타개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또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경험을 사회적인 이미지로 뭉뚱그려 추상적으로 술회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의 산물로 풀어나가는 점도 진솔하게 느껴진다.
엄마가 된 이가 어른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출산 후 아이를 키우며 지나온 헌신과 돌봄의 시간이 짙은 향이 되어 몸에 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완전히 혼자인 시간을 건너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들을 지나오고 나면 우리는 언제나 어른이 되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완벽히 혼자가 되어봤다는 뜻이라는 것을 엄마가 된 뒤에 알았다. p.28

남성의 육아 휴직 비율이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라지만 위와 같은 에세이에 공감을 보내는 여성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아직도 현실 육아 상황에는 그 자리가 요원한 것 같다. 저자가 경험한 현실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쪼그라든 자아가 애처롭게 느껴지는 반면에 끊임없이 자신만의 자아를 발굴하고 지켜내려고 하는 저자의 노력은 투쟁으로 읽히고, 그런 와중에도 육아와 살림 노동으로 점철되는 일상 속에서 행복이 보내오는 시선을 놓치지않는다. 연애와 결혼에서 사랑이라는 의미의 재정립, 이제는 배우자와 자식으로 묶인 가족이라는 형태 속에서의 자신의 새로운 위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저자의 삶을 뒤흔들었던 결혼, 출산, 육아, 살림이라는 토네이도. 저자가 거대한 고독이라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푹죽 같은 축복의 찰나들을 포착해나가는 모습으 내밀하고도 치열하지만 자못 당차고 씩씩하게 보이기도 한다.
완벽한 이해는 또 다른 차원을 이해하는 데서 오는 이해의 확장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지점은, 저자의 어머니께서 중년의 나이에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는 부분이었다. 처음에 저자는 자신의 육아에 어머니의 도움이 소홀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현실적이고도 사뭇 이기적인 이유로 불퉁해했지만 저자 자신이 로스쿨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그 시간 속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고찰하면서, 부모의 마음을 스스로 깨닫고 이해를 확장하는 부분은 저자가 고독 속에서 찾아낸 가장 찬란한 축복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개인적으로는 가장 감동적인 사유의 순간이었다.
…엄마의 열정을 '나이 먹고 자식 다 길러도 끝나지 않은 꿈' 같은 걸로 치환해서 교수님이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편협함을 지적한 바와 같이 엄마라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인생의 상상력을 마구 축소했다. p.195
이른 나이에 결혼을 결심하고 아이를 가지며 퇴사한 상황을 두고 사회의 잣대는 그녀의 정체성을 거칠게 재단했다. 결혼을 위한 도구로 자신의 직업과 커리어를 폄하하고, 뉴스 기사 앞 자신을 지칭하는 호칭 앞에는 항상 남편의 직업이 따라 붙었다. 출산과 육아로 얻은 '엄마'라는 지위와 그에 따라붙는 각종 책임과 신체적, 정신적 혼란만으로도 넘칠 만큼 버거운 상황인데 저자자는 그 와중에도 사회인으로써의 자아, 자신의 직업과 커리어에 대한 고민 또한 놓지 않는다.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출산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여러 번의 로스쿨 시험에 응시한다. 여러 번 낙방을 거듭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는 미국 로스쿨 대학에 장학금을 받으며 합격하기에 이른다. 저자의 고독은 결괏값으로의 축복이 아닌 고독 속에서 치열하게 분투하는 모든 과정이 축복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어림짐작을 해본다.

저자가 겪은 결혼과 출산, 육아와 살림이라는 경험은 사회가 지적한 여러 문제들을 포함한다. 육아를 전담하는 주 양육자인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 육아 휴직 문제, 독박 육아, 맞벌이 부부를 위한 육아 돌봄 정책의 부재…, 결국 사회 정책의 부재나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들이 많다. 그러면서 파생하는 결혼이나 출산, 육아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들은 자연스럽게 비혼과 저출산으로 귀결되고 만다. 저자의 에세이에 공감과 위로를 받는 같은 처지의 여성들의 후기를 읽다 보니 공감과 위로만으로 현실을 달래야 하는 현실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려 아이를 양육하는 데서 오는 긍정적인 것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이런 모든 부침의 수난을 오로지 개인적인 문제로, 개인의 역량에만 기대어 해결되기를 바라는, 모두가 방관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와는 거의 대척점에 있는 세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른 나이에 급격한 생의 변화 속에서 부단히 중심을 잡고자 했던, 여러 감정과 가치와 사유들이 충돌하면서 내는, 마치 부싯돌 사이에 튀어 오르는 작은 불꽃같은 치열한 고민들의 흔적이었다. 저자는 육아하는 자신의 모습을 두고 고상하지 않다고 했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잣대에 불과하다. 고독 속에서 치열하게 사유하고 고찰하는 모습은 분명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차원의 축복이 아닐 수가 없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