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친구 집에 다녀왔다. 매일 카톡을 주고받지만 거의 반년 만에 만남이었는데 그 사이, 작고 하얀 말티즈 한 마리가 등장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작고 하얀 개가 친구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온몸으로 맹렬하게 반가움을 드러냈다. 어쩔 도리 없이 문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품에 안고 쓰다듬었다. 연신 '귀엽다, 귀여워'를 남발하며 쓰다듬으면서도 이 작은 생명체의 맹목적인 반가움이 의아스럽기도 했다. 반년의 안부는 제쳐두고 내리 2시간 동안 이 작고 하얀 개의 서사부터 특성과 말썽, 기깔나는 개인기들까지… 쉼이 없었다. 이즈음에 《어린 개가 왔다》를 반쯤 읽고 있었는데 하루를 머물고 돌아와 마저 읽기 시작하니 감흥이 사뭇 남달랐다. 저마다의 고유한 서사였다.



이 책은 작가가 유기견 보호소에서 루돌이를 반려견으로 맞으면서 일어나는 여러 경험과 사유의 기록이다. 유기견 보호소 SNS에서 어린 바둑이를 보고 작가의 가족 구성원 75%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루돌이는 그렇게 가족의 반려견이 되었다. 가족들과 달리 작가는 무지라는 불안과 걱정 속에서 루돌이를 맞을 준비를 한다. 특히 루돌이와의 처음을 맞이하는 전후,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작가가 경험하는 걱정과 불안,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만남의 기쁨보다 책임의 무게를 더 무겁게 느끼는 반려인으로서 작가의 태도를 읽고 나는 그가 곧 루돌이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 누가 온다는 것은 정말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방금 누군가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가, 한 '개'의 일생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p.31


가족 구성원 75%의 절대적인 지지와는 무관하게 루돌이와 가장 많이 지내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작가 자신이었다. 이러한 독박 돌봄에 대한 작은 한탄과 시간적·공간적 자유의 박탈 등은 어느새 루돌이와 함께 하는 일상으로 융해되면서 끝내는 루돌이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다는 고백으로 변모한다. 서로 공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온갖 부침의 과정 속에서 훈련과 교육이 동반되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의 마음을 추동하게 만든 것은 교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나의 '개'가 물리적으로 오는 것이 아닌, 하나의 '세계'가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 것이다. 그 밀물에 살짝 발목만 담가보는 독자이자 비반려인인 나에게도 이것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였던 것이다.


어린 개와 사는 것은 그전에 모르고 지났던, 모르고 지나도 아무 문제 없었던 삶의 여러 지평이 갑자기 넓어지는 일이었다. p.108





반려견과 함께하는 일상의 적응과 초반의 부침에 관한 내용을 읽다 보면 나의 친구가 풀어준 지난한 시간과도 꽤나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퇴근 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에서 마주하는 반려견의 분별없는 배변 자국과 새벽 시간 뜬금없는 하울링,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다른 반려견과의 교류를 주선하지만 좌절되는 무용한 노력들 외에도 크고 작은 질병으로 수술과 케어가 필요했던 상황들은 내가 어림짐작했던 반려 생활의 모든 것을 뛰어넘는 차원이었다. 짜증과 한탄, 현타를 넘어서 이제는 그저 어울렁 더울렁 같이 사는 것이라고, 저 녀석도 저 나름의 고충 속에서 인간인 자신을 이해하고 적응하며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친구의 말은 그야말로 두 세계가 끊임없이 충돌하며 빚어낸 공존의 세계였다.





책장을 넘어갈수록 변모하며 진전하는 작가와 루돌이의 관계성도 감동적인 부분이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세계가 점점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특히 루돌이를 하나의 개체로 독립시켜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반려 견뿐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이 다른 종을 대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어야 할 하나의 올바른 관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 명이 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지만 여러 플랫폼에서 빈번하게 마주하는 동물에 관한 학대와 방임과 유기 사건들은 이런 인식의 부재가 초래한 비극이다. 작가가 루돌이를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을 따라 책을 읽다 보면 법적으로 아직도 소유물 혹은 재물로 취급되어버리는 생명체가 더는 없길 바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


…무엇보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깨우침은 모든 개가 개별적 존재임을 알게 한 게 아닌가 싶다. 하나의 인간은 이 세상 어떤 인간들과도 다른 개별 개체인 것처럼 루돌이 역시 이 세상의 어떤 개들과도 다른 개별 개체였다. 우리는 틀림없이 '인류의 일원:개의 일원'이지만 '개별 개체 1:개별 개체 1'로 치환되는 순간 무언가 조금쯤 달라졌다. 우주 아래 동등하게, 너 하나 나 하나. 그렇게 우리는 균등하게 일대일. p.96


책에서는 루돌이와 함께 하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겠지만 모르지도 몰랐을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의 어디쯤에 적힌 문구는 루돌이와 작가가 일상을 함께 해나가면서 경험하는 일들, 그 과정에서 찬란한 사유의 순간들, 그러나 결코 유쾌하지만은 일들을 마주하는 경험들의 총체를 정말 정확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르는 것도 몰랐을 것들의 세계가 확장되면서 서로의 삶은 다채로워진다. 결국은 반려동물과 사랑에 빠지고야 마는 반려인들의 서사는 일면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각 서사의 결은 또 고유하고 개별적이어서 작가가 말한 개별 개체로서의 존재를 다시 끔 생각해 보게 한다. 인간의 오만한 관점을 고백했던 작가의 말처럼 반려견의 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사랑의 무한한 확장은 아닐까를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이 사회의 어떤 분야든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저 '내가 모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태도로 살아간다. 루돌이가 아니었으면 나 역시 '보호받지 못하는 동물의 세계와 그 세계를 둘러싼 여러 일에 대해 인지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내가 사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으므로 계속 모르는 채 평온히 살았을 것이다. 어렴풋이 눈을 뜬 이상 몰랐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p.174


친구의 말티즈는 하룻밤 손님인 나에게도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따뜻하고 작고 하얀 몸통을 찰싹 붙여 앉아 계속해서 손길을 갈구하던 까만 두 눈동자가 아직도 선명하다. 어떤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존재에 대한 이해의 축을 옮겨 가는 것,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 사랑에는 필히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는 것 등과 같은 자명한 사실들은 이것이 결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다시 끔 일깨워 주는 것이다. 그 사랑의 그림자까지도 기꺼이 감내하는 수고로움 앞에 겸허해지고야 만다. '어린 개'에서 비롯한 또 다른 차원으로의 확장은 책을 읽는 독자인 나에게도 인식의 확장을 도와주었다. 책을 덮고도 잠시 여운이 남아 부디 모든 반려의 세계가 안온하고 평화롭기를 빌어본다.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 - 1인분의 육아와 살림 노동 사이 여전히 나인 것들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인분의 육아와 살림 노동 사이 여전히 나인 것들〉이라는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저자가 20대에 겪은 퇴사와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와 살림이라는 인생의 중차대한 곡절들을 넘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느낀 일련의 감정들과 상념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으레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읽고는 하는데 저자의 나이와 지상파 아나운서라는 이력,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룬 결혼과 출산이라는 저자의 경험이 새삼 놀랍기도 했고 나로서는 경험해 본 적 없는 결혼·출산·육아라는 차원의 세계인지라 일면 궁금해지기도 했다. 피상적으로 생각한 저자의 삶은 사회가 요구하는 허들을 착실하게, 누구보다 성실하게 넘어온 것처럼 보였다. 그런 저자가 말하는 고독과 축복은 어떤 의미일까? 이런 질문을 걸고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글을 썼고,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글을 썼다. 그러나 육아는 단 한순간도 내게 고상한 것을 보여준 적이 없다. 내가 부릴 수 있는 재주 중에 제일 고상한 글쓰기가, 내가 태어나 해본 것 중에 가장 추레한 육아를 소재로 다루기 시작하니 인지부조화가 시작됐다. 그 사이의 간극이 나를 힘들게 했다. 글쓰기는 나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거였는데, 글쓰기조차 내 마음을 솔직하게 기록하라고 등 떠밀자 사지에 내몰린 사람처럼 두려웠다. p.15


이런 자기 고백으로 시작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일단 굉장히 솔직했다. 육아를 시작한 경험을 토네이도에(p.7) 비유하며 주위에 모든 것이 휩쓸어 사라지는 것 같았다는 비유 속에서 저자는 끊임없이 '나'에 대해서, 자신의 자아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엄마'라는 지위와 '육아'라는 책임 앞에서 저자는 한껏 추레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위축되기도 한다. SNS에서 자신의 모습과 현실에서의 자신의 모습 사이에 괴리를 고백하면서도 그것의 모습과 이것의 모습, 전부 어쩔 수 없는 '나'의 모습임을 인정한다. 육아의 신체적인 부침과 정신적인 방황,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자아 속에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상황을 '고독'으로 정의하면서 해결하는, 나름의 방식으로 상황을 타개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또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경험을 사회적인 이미지로 뭉뚱그려 추상적으로 술회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의 산물로 풀어나가는 점도 진솔하게 느껴진다.


엄마가 된 이가 어른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출산 후 아이를 키우며 지나온 헌신과 돌봄의 시간이 짙은 향이 되어 몸에 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완전히 혼자인 시간을 건너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들을 지나오고 나면 우리는 언제나 어른이 되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완벽히 혼자가 되어봤다는 뜻이라는 것을 엄마가 된 뒤에 알았다. p.28




남성의 육아 휴직 비율이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라지만 위와 같은 에세이에 공감을 보내는 여성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아직도 현실 육아 상황에는 그 자리가 요원한 것 같다. 저자가 경험한 현실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쪼그라든 자아가 애처롭게 느껴지는 반면에 끊임없이 자신만의 자아를 발굴하고 지켜내려고 하는 저자의 노력은 투쟁으로 읽히고, 그런 와중에도 육아와 살림 노동으로 점철되는 일상 속에서 행복이 보내오는 시선을 놓치지않는다. 연애와 결혼에서 사랑이라는 의미의 재정립, 이제는 배우자와 자식으로 묶인 가족이라는 형태 속에서의 자신의 새로운 위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저자의 삶을 뒤흔들었던 결혼, 출산, 육아, 살림이라는 토네이도. 저자가 거대한 고독이라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푹죽 같은 축복의 찰나들을 포착해나가는 모습으 내밀하고도 치열하지만 자못 당차고 씩씩하게 보이기도 한다.



완벽한 이해는 또 다른 차원을 이해하는 데서 오는 이해의 확장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지점은, 저자의 어머니께서 중년의 나이에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는 부분이었다. 처음에 저자는 자신의 육아에 어머니의 도움이 소홀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현실적이고도 사뭇 이기적인 이유로 불퉁해했지만 저자 자신이 로스쿨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그 시간 속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고찰하면서, 부모의 마음을 스스로 깨닫고 이해를 확장하는 부분은 저자가 고독 속에서 찾아낸 가장 찬란한 축복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개인적으로는 가장 감동적인 사유의 순간이었다.


…엄마의 열정을 '나이 먹고 자식 다 길러도 끝나지 않은 꿈' 같은 걸로 치환해서 교수님이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편협함을 지적한 바와 같이 엄마라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인생의 상상력을 마구 축소했다. p.195


이른 나이에 결혼을 결심하고 아이를 가지며 퇴사한 상황을 두고 사회의 잣대는 그녀의 정체성을 거칠게 재단했다. 결혼을 위한 도구로 자신의 직업과 커리어를 폄하하고, 뉴스 기사 앞 자신을 지칭하는 호칭 앞에는 항상 남편의 직업이 따라 붙었다. 출산과 육아로 얻은 '엄마'라는 지위와 그에 따라붙는 각종 책임과 신체적, 정신적 혼란만으로도 넘칠 만큼 버거운 상황인데 저자자는 그 와중에도 사회인으로써의 자아, 자신의 직업과 커리어에 대한 고민 또한 놓지 않는다.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출산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여러 번의 로스쿨 시험에 응시한다. 여러 번 낙방을 거듭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는 미국 로스쿨 대학에 장학금을 받으며 합격하기에 이른다. 저자의 고독은 결괏값으로의 축복이 아닌 고독 속에서 치열하게 분투하는 모든 과정이 축복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어림짐작을 해본다.





저자가 겪은 결혼과 출산, 육아와 살림이라는 경험은 사회가 지적한 여러 문제들을 포함한다. 육아를 전담하는 주 양육자인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 육아 휴직 문제, 독박 육아, 맞벌이 부부를 위한 육아 돌봄 정책의 부재…, 결국 사회 정책의 부재나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들이 많다. 그러면서 파생하는 결혼이나 출산, 육아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들은 자연스럽게 비혼과 저출산으로 귀결되고 만다. 저자의 에세이에 공감과 위로를 받는 같은 처지의 여성들의 후기를 읽다 보니 공감과 위로만으로 현실을 달래야 하는 현실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려 아이를 양육하는 데서 오는 긍정적인 것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이런 모든 부침의 수난을 오로지 개인적인 문제로, 개인의 역량에만 기대어 해결되기를 바라는, 모두가 방관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와는 거의 대척점에 있는 세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른 나이에 급격한 생의 변화 속에서 부단히 중심을 잡고자 했던, 여러 감정과 가치와 사유들이 충돌하면서 내는, 마치 부싯돌 사이에 튀어 오르는 작은 불꽃같은 치열한 고민들의 흔적이었다. 저자는 육아하는 자신의 모습을 두고 고상하지 않다고 했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잣대에 불과하다. 고독 속에서 치열하게 사유하고 고찰하는 모습은 분명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차원의 축복이 아닐 수가 없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 최강 형제가 들려주는 최소한의 정치 교양
최강욱.최강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은 TV로 지상파 뉴스를 보는 대신에 시사·정치 유튜브를 본다.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 이후로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속보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가장 빠르게, 또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해 주는 플랫폼이 유튜브였기 때문이다. 빠른 정보 전달도 전달이었지만 무엇보다 사안에 대한 가감 없는 비평과 해석은 답답한 시국에 유일한 해갈이었달까. 현 상태의 정치적인 생태, 서울대 법대라는 엘리트 카르텔, 변화무쌍한 상황 속에 튀어 오르는 각 사안들을 탁월한 비유를 들어 쉽게 무엇보다 '재미있게' 비평하는, 즐겨보던 채널에서 '유튜버 최강욱'으로 소개되던 최강욱 전 의원이 동생인 최강혁과 함께 쓴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는 그래서 더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특유의 해학적이고도 구수한 말빨(?)이 책 전반에 녹아들어서 '정치'라는 카테고리가 주는 뻣뻣한 인식은 괜한 기우 정도가 되었다.




대선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 대열전'이라고 표현해도 과연이 아닐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진영 대립이 치열하다고 느낀다. 특히 작금의 사태에서 비롯된 일련의 사회적인 갈등들 속에서 혐오와 분노를 느끼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도대체 왜?'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 이념이 이토록 극단적으로 발현되는지, 이렇게 되기까지 어떤 서사를 가지고 이어져 왔는지, 답답할 뿐이었다. 책에서는 먼저 그에 앞서 보수와 진보의 역사와 개념부터 짚어가기 시작한다. 고대부터 중세, 근대, 현대를 아우르며 세계사의 흐름을 개괄적으로 살펴본다. 이러한 세계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프랑스 혁명의 태동과 함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의 정치 이념이 비로소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왕의 시대가 끝나고 '공화정'의 시대가 열립니다. 나라의 주권이 왕이나 절대군주가 아니라 국민에게 있는 나라, 국민이 투표로 뽑은 대표자들이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는 것,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국민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도록 하는 체제가 공화정이고 공화국입니다. p.69


1부에서 다루는 진보와 보수의 탄생 배경을 세계사의 흐름에 따라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이념의 진정한 본질을 살펴보는 거시적인 흐름이 좋았다. 프랑스 혁명에서 주권이 왕에서 국민으로 넘어오는 과정은 오랜 시간 여러 번의 체제 번복 시도를 오가며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데 그야말로 유혈이 낭자했다. 말 그대로 '피로 쓰여진 민주주의'라는 말이 결코 비유의 표현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랜 역사와 서사를 가진 프랑스 시민 혁명의 과정을 톺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이번 대통령 탄핵 과정을 거치면서 일어났던 반헌법 세력의 무도한 언동들, 극우 세력의 서부 지법 폭동 사건 등을 목도하면서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은 미완의 체제인 것을, 책을 계속해서 읽으면서는 더욱이 그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두고 '진봉 씨'와 '봉수 씨'의 입을 빌려 각자의 입장을 다룬다. 보수의 가치와 진보의 가치가 어떻게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고, 어떠한 방향과 속도로 해결 방안을 타개하는지 두 인물의 대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또 독자에게 친화적으로 설명하며 이해를 돕는다. 진영에 관한 여러 사회학자의 주장과 이론을 가미하며, 특히 <다크 나이트>, <죽은 시인의 사회>, <설국열차>, <기생충> 등의 유명한 영화를 예시로 들어 각 영화 속에 구현된 상황과 그 상황 속의 인물이 취하는 태도를 보수와 진보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해석하는 점은 매우 흥미로웠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은 정치적인 카테고리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빈부 격차, 평등과 복지, 능력주의와 학벌, LGBTQ, 낙태와 사형까지. 사회의 광범위한 분야에서 진보와 보수가 추구하는 가치가 어떤 주장을 하고 각자의 논리를 어떻게 전개하는지 아주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여러 예시를 나의 가치 판단과 비교하고 가늠하며 읽을 수 있는데 모든 가치가 진보와 보수라는 잣대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도 주지 해봐야 할 지점이다. 나 또한 어떤 사항에서는 아주 명확하게 진보 성향이지만 어떤 사항에서는 보수의 방향성이 더 안정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치 성향이 진보인가?, 보수인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나름의 명확한 대답을 하지만 과연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자 하면 입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일 것이다. 나 역시도 굉장히 편협하게 나의 정치적 성향을 이해하고 있었고, 또 나와 반대되는 성향에 대해서도 굉장히 왜곡되고, 특히나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을 반성하게 되는 계기였다. 누군가의 정치적인 입장에 동조하거나 반대하면서 명확하게 나의 의견을 개진할 수 없었던 무지에서 오는 답답함이 상쾌하게 해소되는 기분이었달까? 더불어 상대 진영을 지지하는 자들의 주장을 무조건적인 비판으로, 감정적으로 폄하하고 있던 점도 반성적으로 시선을 개선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지금 '보수'라고 참칭하는 세력은 일부 개신교 세력의 왜곡된 사상과 결탁해서 '극우화'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들이 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나오는지에 대한 서사를 설명해 주며 이해를 돕는다.





이러한 맥락의 연장으로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보수'가 요원한 상태에 대해 우려하면서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보수와 진보가 건강하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 필요성을 피력한다. 특히 4부에서 진정한 보수의 예시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진정한 진보의 예시로 미국의 버락 오바마를 예시로 든다. 두 인물 모두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훌륭하게 적용한 인물들이었고 무엇보다 그들의 정치적 행보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까닭은 상대 진영을 배타적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고 대화하고 이해하는 합치의 정치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현시점 우리 정치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는 정치 교양 입문으로 가장 완벽한 정치 교양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단 구어체처럼 흘러가는 서술 방식이 마치 말을 직접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저자 특유의 해학적이고, 위트 있는 표현들이 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진봉 씨와 봉수 씨라는 인물을 설정하여 각각의 입장이 체화된 상태로 서술되는 점도 일상적인 대화 같은 느낌으로 친숙하다. 정치의 큰 두 축을 이루는 '진보'와 '보수'라는 두 개념을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여 정말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서도 세계사적인 흐름에서 탄생한 프랑스 혁명을 시작으로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과 결부되어 가지는 우리만의 독특한 보수와 진보의 특성까지 이르며, 앞으로의 방향성까지 제시한다. 그럼에도 결코 위트를 잃지 않는 모멘트들을 갈무리하며….


📌오늘날 우리가 대기업에 들어가려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신성한 성직에 취임했고, 그래서 별로 성스럽지 않았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때의 일입니다. 감히 종교를 개혁하려 하다니 마르틴 루터는 참 용감한 사람이구나 싶지만, 분위기상 다 할 만하니까 한 것입니다. p.40


📌프랑스는 지금도 집회나 시위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활발합니다. 뉴스에서 "이야~ 시위하는데 막 불 지르고 때려 부수네?" 하고 보면 프랑스입니다. "저긴 또 어느 나란데 저렇게 다 때려 부수냐?" 하고 보면 또 프랑스입니다. p.46


📌아이폰을 만드는 세계적인 IT 기업 애플의 CEO 팀 쿡은 2014년 10월 한 경제 주간지 기고문을 통해 커밍아웃했습니다. 그는 "나는 내가 동성애자란 사실이 자랑스러우며, 신이 준 선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라며 "동성애자로 살면서 소수자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었고 더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라고 썼습니다. 동성애를 죄라고 믿는 목사님들만큼은 진짜 인간적으로 갤럭시 써야 됩니다. p.234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어느 30대 캥거루족의 가족과 나 사이 길 찾기
구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한겨레》 신문에서 연재된 작가의 가족 이야기를 주제로 한 만화를 수정하고 오리지널 에피소드를 추가하여 출간된 책이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와글와글하다. 여러 종류의 인스타툰이나 웹툰은 종종 보지만 지면으로 된 만화를 본 것은 오랜만이라 반가운 기분도 들었다. 읽기 전에는 만화라는 특성 때문에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할지 잠시 고민도 들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책에서 던지는 주제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어서 생각의 갈래가 여러 가지로 뻗어나갔다. 전체적으로는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일상 에피소드의 느낌이고, 그 안에서 30대 작가가 '독립'에 관해 사유하고 고민하는 내용들이다.






사실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마음이 뜨끔했다. 왜냐하면 나도 30대 캥거루족이기 때문이다.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은 20대 중반에서 후반을 넘어가면서부터 내내 마음속 한편에 존재하고 있던 부채감이었다. 우리 집에 큰 캥거루(엄마 아들)가 있기에 작은 캥거루인 나는 그 존재에 숨어 애써 그 질문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내 마음과 상황을 들여다보는 일이었기에 책을 선택하고 읽는 것이 살짝 고민스럽기도 했다. 이미 캥거루의 입장이기에 감상이나 생각이 편협하게 치우쳐지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에, 책을 다 읽고 나서 '캥거루족'에 관한 기사나 칼럼을 부러 찾아보기도 했다.


'캥거루족'을 정의하는 개념과 범주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성인이 되어서도 정서적,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지 못한 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30대 캥거루족의 비율은 2배 가까이 상승했고 독립하지 못한 원인으로는 높은 물가 상승률과 저조한 취업률 그리고 높은 주거 비용을 꼽았다. 또, 비혼 비율의 증가로 혼인율이 저조해지면서 독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인식 변화도 그 원인으로 뽑힌다. 최근에 유명 시사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캥거루족에 관해 제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꽤나 크게 이슈가 되었고, 독립하지 못한 자녀와 함께 사는 연예인 가족의 일상을 담은 <다 컸는데 안 나가요>라는 예능이 방영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캥거루족은 이제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관한 여러 기사들은 대부분 비판적인 논조를 띄고 있었다. 외국 사례를 비교하며 기이한 가족 형태를 지적하고, 가족 내의 갈등 문제를 비롯해 부모 세대의 노후 대비 문제 등을 제시한다. 그런 반면에 캥거루족이 독립하지 못하는 원인을 사회의 여러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하거나, 혹은 부동산 업계의 프로파간다의 일종이라는 의견도 찾아볼 수 있었다. 






'졸업-취업-결혼-독립'이라는 사회적인 루트가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하고 그만큼 '독립'이라는 파트가 요원해지기도 한 것이다. p.122, <삶은 미션의 연속>이라는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과 함께 일반적인 루트에서 벗어난 자신의 삶에 대한 사회적인 압박으로 '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럼에도 다시 각자의 길에 충실하자며 p.128, <마라탕 공동체>로 유쾌하게 귀결된다. 이러한 조바심과 불안의 과정 속에서도 작가는 독립이라는 삶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독립하는 삶에서의 주체적인 자아를 고민하기도 한다. 비슷한 세대라면 다분히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많다. 결혼으로 귀결되는 독립, 새로운 가정으로의 독립, 독립 이후의 삶 등 실재적인 고민들이 산재한다.



책을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작가의 가족, 구씨 집안의 에피소드들은 소소하고도 일상적이다. 손재주 만렙의 엄마, 역사 오타쿠 아빠, 도토리 키 재기 만큼 닮은 여동생과 반려견 코난까지. 에피소드들을 읽다보면 1부의 제목이 '우리 집에는 다정이 흐른다'인 이유가 납득이 간다. 이렇게 다복한 가정이라면 독립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각각의 개성적인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복닥복닥 한 일상이 주는 안온한 행복감 속에서 작가는 자신보다 이른 나이에 독립을 하고 가정을 구성한 부모님의 생을 반추해보기도 하며 자신의 독립을 가늠해 보기도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을 한 여러 형태의 가족이 있지만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행복은 그다지 큰 폼이 들지 않는 것 같다. p.77, <아직 변하기 싫은걸>이라는 에피소드에서 엄마와 함께 재래 시장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두 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오며 하는 익숙하고 변함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자신이 속한 가족으로 확대되는 사유의 과정을 공감하기도 하고, p.86, <김치 담글 줄 모르는 인간>에서 다루는 김치 담그는 에피소드는 매년 집에서 큰 캥거루와 작은 캥거루가 엄마의 지휘 아래 파트를 나눠 김치를 담그는 우리 집의 모습과도 닮아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위의 에피소드에서 이어지는 p.100, <주부라는 경제>에서는 가정주부가 가족 내에서 부담하는 가사 노동의 가치를 조명하는데, 우리 모두가 어떤 가정의 한 구성원으로써 반드시 인지해야할 지점을 지적해준 것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가족과 함께 사는 안온한 일상과 독립에 대한 고민 사이를 넘나든다. 그 사이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 결혼과 육아에 대한 다양한 사유, 독립이 자신에게 가질 의미 등의 다채롭고 다양한 결의 가치들이 충돌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더 나은 방향으로 고민하는 모습은 같은 세대로써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 가족을 네버랜드라는 섬으로 비유한 작가가 가족으로부터 노를 젓는 방법을 배우고, 다른 섬들을 바라보면서 자기만의 섬을 꿈꾸는 것처럼, 속도와 방향은 조금 어긋날지언정 독립을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같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작은 결을 제시해준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펼쳐 〈검은 절벽〉을 읽자마자 다짜고짜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로 뚝 떨어진다. 어리둥절해 하는 화자인 마리와 그걸 읽고 더욱 어리둥절해 하는 독자인 내가 있었다. SF를 읽을 때 종종 느끼는 경미한 긴장감을 대번에 느낀다. 활자로 그려지는 우주 공간에 대한 감각들을 더듬으며 작가가 구축한 세계관 속 구석 어딘가에 자리를 잡아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결국 SF도 사람이 쓰고 사람이 읽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어느새 작가 구축한 서사의 세계를 유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야 만다. 선택적 SF 난독증의 극복이자 어쩌면 SF 입덕 부정기였을지 모를 해도연의 SF 소설집, 《진공 붕괴》. 세계관이나 개념의 이해를 적당히 눙치며 요령껏 읽어도 일단은, 재미가 있다.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서 기억을 잃은 채 정신이 든 라미. 위를 보아도 아래를 보아도 무한한 별들만 펼쳐질 뿐이었다. 이런 장면은 읽는 이로 하여금 초반부터 아찔한 기분과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무력한 공포감을 들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같은 우주선에서 생활하던 동료들이 시신으로 발견되고 라미는 자신의 우주복에 묻은 의뭉스러운 핏자국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는 우주에서의 생활 수칙들이 어긋나 있었고, 우주선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상황에서 라미의 생존 분투와 함께 〈검은 절벽〉 '그들을 죽인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후더닛으로 흘러가던 이야기는 '왜?'라는 와이더닛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면서 슬슬 반전이라는 시동을 건다.


지구에서나 우주에서나 인간을 가장 강력하게 추동하는 감정은 역시 사랑이었다. 미스터리에서 서서히 로맨스 스릴러로 변모하는 이야기는 '러브조이'라는 인공지능을 두고 역시나 화두를 던진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이 가능한가? 인공지능의 개성을 각각 독립된 개체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읽다 보면 아주 오래전 보았던 영화 <레지던트 이블>의 '레드 퀸'이 생각난다. 인간에 의해 학습되다가 결국에 자아 아닌 자아를 스스로 생성해낸 인공지능은 독자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인간과 반목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행태로 끔찍하게 발현되었을 때 야기할 수 있는 하나의 납득 가능한 시나리오. 인공지능이 선택하는 사랑의 행태와 종국에 인간이 선택하는 사랑의 행태의 구분은 어쩌면 인간이 느끼는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를 상쇄하는 선택은 아니었을까.



또 한 편의 가능한 과학적 사랑 이야기. 여운이 가장 많이 남았던 단편을 꼽자면 〈마리 멜리에스〉를 단박에 꼽을 수 있다. 아내를 잃은 남편이, 나로서는 가늠해 보기도 곤란한, 복잡한 과학 기술을 활용해서 아내를 다시 현실세계로 구현해 내는 이야기이다. 포스트 휴먼이나 프랑켄슈타인 같은 개념을 가져와서 설명할 수도 있으나 요령껏 눙치며 읽은 나는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로 읽었다. 영원한 이별을 한 누군가를 다시 만나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인 소망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구현해놓은 후, 그다음 이야기를 시작한다. 구현된 그 사랑은 전과 '같은' 그 사랑일까?라는 질문을 '마리'라는 존재를 통해 묻는다. 마리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와 의식이 다른 이의 과거로 점철되었다고 한들 현재의 마리를 그렇게 정의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과 과거의 아내에게 느꼈던 감정이 한데 섞여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마리는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일종의 선언을 읽다 보면 어떤 주체를 타인이 정의하고 구현하고자 했던 모든 노력은 결국 무의미하고 일면 오만한 선입견일 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낭만적으로 들리고는 하지만, 마리가 말하는 '선택한 사랑'이라는 의미를 옆에 두고 본다면 사랑의 운명론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덧붙여 과학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방식으로 애도와 사랑을 구현한 마지막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이 책의 제목인 '진공 붕괴'는 〈텅 빈 거품〉에서 등장하는 지구 종말론의 개념이다. 이 진공 붕괴가 일어나는 것은 세계적으로 소수의 인원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이들은 종말이 오기 전까지 남은 시간 동안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유토피아에 살게 만든다는 계획을 가지고 실행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상미는 유토피아와 기생선이라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안락한 절망에서 기만적인 삶을 살 것인가, 무지한 희망에서 기약 없는 삶을 살 것인가?


상미만큼이나 읽는 독자도 치열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선택지다. 디스토피아 위에 세운 유토피아라니, 아무래도 사상누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진공 붕괴로 무너질 세상 위에서 기생선이 사람들을 태우는 모습을 보며 상미는 노아의 방주를 떠올린다. 세상의 종말에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보이는 듯한 기생선에도, 상미는 진공 붕괴 원인의 선후 관계를 생각해 보면서 의문을 품는다. 결국 유토피아나 기생선이나 절대적인 구원은 없을 것이다. 모든 사실을 알고도 유토피아를 선택해 아이를 낳은 인물이 있는 것처럼 모두 저마다의 유토피아 속에서 살아갈 뿐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단편들에 비해 결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은 호러처럼 읽혔다. 오징어 먹물 파스타에 대한 단상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점점 기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낯선 여행지를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한 식당에서 이름 모를 황홀한 음식을 게걸스럽게 맛보는 경험을 한 후, 기괴한 정서가 행간에 흐르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이 식재료에 대한 불쾌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하는데, 미각적으로 불쾌한 감각으로 시작하는 위화감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면서, 기괴하고도 찝찝한 공포로 치환되고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다 읽고 나면 밤하늘의 별자리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느끼게 될 수도 있겠다.



타임 루프를 다른 두 편의 단편인 〈콜러스 신드롬〉〈안녕, 아킬레우스〉. 마치 영상으로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두 편의 이야기는 타임 루프라는 소재가 어떻게 다른 결로 변주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콜러스 신드롬〉에서는 과거의 회한을 만회하기 위해서 무한한 타임 루프를 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안녕, 아킬레우스〉에서는 스스로 타임 루프 속에 갇히기를 선택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 문제적 인물들은 '타임 루프'라는 능력을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굉장히 유해한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었고, 이를 차단 혹은 처단하기 위해 외부에서 인물들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특히 타임 루프를 능력을 이용하기 위한 기술적인 방법이나 반대로 이를 탈피하기 위한 실재적인 기술을 소설적 상상으로 설정한 내용들이 독특하고 흥미로워서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콜러스 신드롬〉에서는 반복되는 생의 사이클 안에서 각 인물들의 과거가 수차례로 분절되는데, 그 분절되는 과거를 하나의 독립된 객체로 인식하는 개념이 흥미로웠다. 그 분절된 과거의 객체들을 구원하기 위해 타임 루프의 순환 고리인 문제적 인물을 처단하는 과정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이런 카타르시스는 분절된 객체를 동일시 여기며 그들을 공감하는 인물이 결국 모든 차원의 객체들을 통합하며 위로하는 데서 기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나름의 결론을 맺는다.


특히 〈안녕, 아킬레우스〉는 영상화 계약까지 이루어졌으나 제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도 아쉽다.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로도 기대가 되는 단편이다. 왜곡된 쾌락에 중독되어 그 순환에 갇히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광기 어린 인물의 욕망이 지배하는 루프 속에서 어떻게든 탈출하려 발버둥 치는 인물이 빚는 갈등이 스릴러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각자의 욕망으로 타임 루프라는 장치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인물들이 맞이하는 결말을 두고는 여러 결의 상념이 스친다. '거북이와 아킬레우스의 달리기'라는 제논의 역설 같은 개념은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이어서 소설의 상황을 대입하며 생각해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인상 깊었던 작품 두세 편 정도만 추려서 언급하려 했던 초반의 계획은 쓰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재밌었는데 하는 욕심으로 결국 모든 단편을 짤막하게나마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한 작가의 과학적인 지식들이 소설 곳곳에서 여러 장치로 설정되어 진성 SF 소설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긴다. 모든 개념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본질은 인간의 이야기로 읽혔다. 그런 반면에 한편으로는 관련 분야나 장르에 조예가 있다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나처럼 눙치며 요령껏 읽은 사람도 재미있게 읽었다. 책의 말미에 각 단편마다 있는 짤막한 작가의 말에서는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나, 영감을 받은 작품들에 대한 언급도 있어 각 단편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한다. 약간의 긴장감으로 시작해 시간을 순삭한 몰입으로 끝난 해도연의 SF 소설집 《진공 붕괴》.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