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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친구 집에 다녀왔다. 매일 카톡을 주고받지만 거의 반년 만에 만남이었는데 그 사이, 작고 하얀 말티즈 한 마리가 등장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작고 하얀 개가 친구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온몸으로 맹렬하게 반가움을 드러냈다. 어쩔 도리 없이 문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품에 안고 쓰다듬었다. 연신 '귀엽다, 귀여워'를 남발하며 쓰다듬으면서도 이 작은 생명체의 맹목적인 반가움이 의아스럽기도 했다. 반년의 안부는 제쳐두고 내리 2시간 동안 이 작고 하얀 개의 서사부터 특성과 말썽, 기깔나는 개인기들까지… 쉼이 없었다. 이즈음에 《어린 개가 왔다》를 반쯤 읽고 있었는데 하루를 머물고 돌아와 마저 읽기 시작하니 감흥이 사뭇 남달랐다. 저마다의 고유한 서사였다.
이 책은 작가가 유기견 보호소에서 루돌이를 반려견으로 맞으면서 일어나는 여러 경험과 사유의 기록이다. 유기견 보호소 SNS에서 어린 바둑이를 보고 작가의 가족 구성원 75%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루돌이는 그렇게 가족의 반려견이 되었다. 가족들과 달리 작가는 무지라는 불안과 걱정 속에서 루돌이를 맞을 준비를 한다. 특히 루돌이와의 처음을 맞이하는 전후,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작가가 경험하는 걱정과 불안,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만남의 기쁨보다 책임의 무게를 더 무겁게 느끼는 반려인으로서 작가의 태도를 읽고 나는 그가 곧 루돌이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 누가 온다는 것은 정말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방금 누군가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가, 한 '개'의 일생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p.31
가족 구성원 75%의 절대적인 지지와는 무관하게 루돌이와 가장 많이 지내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작가 자신이었다. 이러한 독박 돌봄에 대한 작은 한탄과 시간적·공간적 자유의 박탈 등은 어느새 루돌이와 함께 하는 일상으로 융해되면서 끝내는 루돌이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다는 고백으로 변모한다. 서로 공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온갖 부침의 과정 속에서 훈련과 교육이 동반되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의 마음을 추동하게 만든 것은 교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나의 '개'가 물리적으로 오는 것이 아닌, 하나의 '세계'가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 것이다. 그 밀물에 살짝 발목만 담가보는 독자이자 비반려인인 나에게도 이것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였던 것이다.
어린 개와 사는 것은 그전에 모르고 지났던, 모르고 지나도 아무 문제 없었던 삶의 여러 지평이 갑자기 넓어지는 일이었다. p.108

반려견과 함께하는 일상의 적응과 초반의 부침에 관한 내용을 읽다 보면 나의 친구가 풀어준 지난한 시간과도 꽤나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퇴근 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에서 마주하는 반려견의 분별없는 배변 자국과 새벽 시간 뜬금없는 하울링,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다른 반려견과의 교류를 주선하지만 좌절되는 무용한 노력들 외에도 크고 작은 질병으로 수술과 케어가 필요했던 상황들은 내가 어림짐작했던 반려 생활의 모든 것을 뛰어넘는 차원이었다. 짜증과 한탄, 현타를 넘어서 이제는 그저 어울렁 더울렁 같이 사는 것이라고, 저 녀석도 저 나름의 고충 속에서 인간인 자신을 이해하고 적응하며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친구의 말은 그야말로 두 세계가 끊임없이 충돌하며 빚어낸 공존의 세계였다.

책장을 넘어갈수록 변모하며 진전하는 작가와 루돌이의 관계성도 감동적인 부분이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세계가 점점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특히 루돌이를 하나의 개체로 독립시켜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반려 견뿐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種이 다른 종種을 대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어야 할 하나의 올바른 관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 명이 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지만 여러 플랫폼에서 빈번하게 마주하는 동물에 관한 학대와 방임과 유기 사건들은 이런 인식의 부재가 초래한 비극이다. 작가가 루돌이를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을 따라 책을 읽다 보면 법적으로 아직도 소유물 혹은 재물로 취급되어버리는 생명체가 더는 없길 바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
…무엇보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깨우침은 모든 개가 개별적 존재임을 알게 한 게 아닌가 싶다. 하나의 인간은 이 세상 어떤 인간들과도 다른 개별 개체인 것처럼 루돌이 역시 이 세상의 어떤 개들과도 다른 개별 개체였다. 우리는 틀림없이 '인류의 일원:개의 일원'이지만 '개별 개체 1:개별 개체 1'로 치환되는 순간 무언가 조금쯤 달라졌다. 우주 아래 동등하게, 너 하나 나 하나. 그렇게 우리는 균등하게 일대일. p.96
책에서는 루돌이와 함께 하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겠지만 모르지도 몰랐을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의 어디쯤에 적힌 문구는 루돌이와 작가가 일상을 함께 해나가면서 경험하는 일들, 그 과정에서 찬란한 사유의 순간들, 그러나 결코 유쾌하지만은 일들을 마주하는 경험들의 총체를 정말 정확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르는 것도 몰랐을 것들의 세계가 확장되면서 서로의 삶은 다채로워진다. 결국은 반려동물과 사랑에 빠지고야 마는 반려인들의 서사는 일면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각 서사의 결은 또 고유하고 개별적이어서 작가가 말한 개별 개체로서의 존재를 다시 끔 생각해 보게 한다. 인간의 오만한 관점을 고백했던 작가의 말처럼 반려견의 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사랑의 무한한 확장은 아닐까를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이 사회의 어떤 분야든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저 '내가 모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태도로 살아간다. 루돌이가 아니었으면 나 역시 '보호받지 못하는 동물의 세계와 그 세계를 둘러싼 여러 일에 대해 인지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내가 사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으므로 계속 모르는 채 평온히 살았을 것이다. 어렴풋이 눈을 뜬 이상 몰랐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p.174
친구의 말티즈는 하룻밤 손님인 나에게도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따뜻하고 작고 하얀 몸통을 찰싹 붙여 앉아 계속해서 손길을 갈구하던 까만 두 눈동자가 아직도 선명하다. 어떤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존재에 대한 이해의 축을 옮겨 가는 것,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 사랑에는 필히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는 것 등과 같은 자명한 사실들은 이것이 결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다시 끔 일깨워 주는 것이다. 그 사랑의 그림자까지도 기꺼이 감내하는 수고로움 앞에 겸허해지고야 만다. '어린 개'에서 비롯한 또 다른 차원으로의 확장은 책을 읽는 독자인 나에게도 인식의 확장을 도와주었다. 책을 덮고도 잠시 여운이 남아 부디 모든 반려의 세계가 안온하고 평화롭기를 빌어본다.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