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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평점 :

비록 아직도 한낮의 햇볕은 따갑기 그지없지만 서늘한 바람이 살랑거리기 시작하는 가을, 여름 내내 가열차게 읽어제꼈던 호러 소설에 대한 감흥이 서서히 식어가고 스산해진 품 속에 묵직한 책 한 권쯤 품고 싶은 계절이 드디어 도래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가을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끝나지 않는 노래》가 일찍이 품 안에 들어왔다. 늦은 밤, 열어 놓은 창가를 통해 불어오는 소슬바람을 빌어 읽어서 그런지? 책을 다 읽고도 남은 여운이 바람의 꼬리를 잡고 길게 늘어지는 기분이다. 마치 꽃씨를 아주 멀리 불어 보내고 싶은 기분이랄까….

《끝나지 않는 노래》는 약 100년에 걸친 한국 근·현대사 속의 여성 3대의 삶을 그려낸다. 두자, 수선과 봉선, 그리고 은하까지. 1930년대 두자의 삶에서 시작된 질곡의 역사는 딸과 그 딸의 딸의 인생까지 모양과 성질을 재주껏 변주하며 따라흐른다. 두자의 생애에서 수선과 봉선의 생애로 이어지는 서사의 흐름과 그 사이에 짧게 삽입되어 있는 은하의 현재의 흐름이 교차한다. 이를 통해 여성 3대를 통과하며 묘하게 중첩되고 있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확실하게 공유하고 있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공통된 정서가 증폭된다.
꽃씨처럼 세상을 둥둥 떠다니는 꿈을 꿨다. 누구의 아내도 며느리도 딸도 아니고 수선이란 이름도 없이, 몸속에 심장이나 내장이나 똥 대신 고운 봄바람만 가득 차서, 가고자 하는 곳도 가야만 하는 곳도 없이, 되는대로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꿈. p.242-243
특히 한국 근·현대사가 내포하는 시대적 고통을 대변하기 위한 인물이 아닌, 개인의 서사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해나가는 부분이 나에게는 몰입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한낱 시대적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존재감을 지니도록 사실감 있게 그려지는데, 한 개인이 오롯이 겪어내야 했던 운명의 파고 속에서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 정서를 세밀하면서도 자못 담담하게 그려낸다. 숙명적인 비애가 삶을 옥죄는 멍에처럼 세대를 거듭하며 계승되고, 딸은 어머니가,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지었던 멍에의 무게를 그렇게 조금씩 가늠하게 되는 것이다.
야가 우리 나이가 되면.
봉선이 아기의 볼을 살살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좀 다를까.
뭐가.
그냥, 사는 게. p.254


오랜만에 묵직한 여운을 곱씹을 수 있었던 책을 만났다. 말미에 박혜진 평론가의 글이나 15년의 간격을 둔 작가의 말과 부록인 '터닝북'에 담긴 최진영 작가와 작품에 세세한 내용들이 《끝나지 않는 노래》가 지닌 여러 가지 의의를 톺아보게 도와준다. 이면의 깊은 해석도 좋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담담하면서도 인물이 내면의 정서를 읊조리는 장면들, 이를테면 사랑과 욕망, 비애 등을 묘사하는 장면들에서 묘사되는 문장들에 잠시 묶여 있기도 해서 행간의 표리, 모두가 감히 좋았다고밖에…. 쉽사리 가시지 않는 여운에 기대어 '끝나지 않는 노래'가 언젠가는 끝나길 바라며, 흩날리는 꽃씨에 힘껏 숨을 보태 불어보는 수밖에….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3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