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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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아는 한 교수는 지난 학기 두 가지 변화를 시도했다.

 

하나는 기말고사 시험 후 수업을 한 번 더 했다는 것. 기존에도 중간고사든 기말고사든 시험을 본 후에는 모범 답안을 작성하여 메일로 보내준 적이 있었다. 또 학생들의 답안을 일일이 채점하여 나눠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는 것.

평가는 단순히 학생들의 성적을 점수로 환산하여 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 그 수업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것.

교수는 채점한 답안지를 나눠주고 같이 답안에 대해 학생들과 생각을 나누면서 우리가 무엇을 함께 얻어냈는지, 무엇을 앞으로 더 고민해야 할 것인지 이야기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받은 성적이 부담스러었을 게고 교수는 그렇게 부담스러워 하는 학생들을 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또 자신이 아는 대부분의 수업들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게 부담스러웠을 게고, 요즘 친구들은 그러한 부담을 강의 평가로 표현해 해당 수업을 폐강시키는 힘을 행사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실천하기로 했다.

그리고 수업의 말미에서 이러한 과정이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것임에도 자신은 대학에서 수업을 들을 때도, 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도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성적을 점수로 평가하는 것보다 이러한 과정이 더 필요한 시간임을. 우리는 이렇게나 당연한 것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고 그래서 요구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많을 것인가 생각해 보자며 수업을 마쳤다고 한다.

 

또 하나는 상대평가로 인해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친구들에게 하나하나 메일을 써 보냈다는 것. 교수는 모두가 A+를 받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수업 목표이며 이를 목표로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교수와 학생들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상대평가라는, 폭력적인 제도로 인해 노력과는 별개로 60%의 학생들은 무조건 C 이하의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진 건 교수들이 신뢰할 수 있는 평가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최초의 원인이었을 것이기에 같은 교수로서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점수가 사람을 실망하게 하고 화 나게 하지만, 이딴 메일이 별로 위로될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실망하지 말고 아쉬워하자고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그 친구가 이번 수업에서 어떤 모습이 좋았고 어떤 모습이 기대되었는지를 덧붙이면서.

 

내가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한 교수의 이야기를 길게 이야기한 건 결국 이 소설이 삶의 변화, 작은 시작으로부터 시작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세상의 변화가 누군가의 거대한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삶의 곳곳에 있는 작은 변화가 모여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2. 가족과, 아이와 함께 하는 삶에서 책읽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조금씩 아이가 커가면서 같이 일찍 자는 대신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 방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그 방법을 통해 주말 동안 읽은 책이다. 내 삶에서 어떤 책을 이렇게 빨리 읽어냈다는 것은 기록할 만한 일이다.  

 

이 책은 신형철 평론가의 말 때문에 읽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파링>은 나를 두 번 놀라게 했다. 첫째, 고아 소년이 학교에서 주먹을 휘두르다 소년원에 가서 권투를 배우고 세계챔피언이 됐다가 결국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는 이 낡고 닳은 소재를 2016년에 읽게 되다니. 둘째,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그리고 이번에도 그가 몇 마디 말로 이 소설을 가장 잘 설명했다는 것, 이 책이 가진 의미를 그렇게나 잘 표현하는 능력이 부럽고도 부러웠다.

 

3.  책이 읽는 이로 하여금 다시 이야기하게 한다면 난 그 점만으로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첫 시작이 갖는 부족함이 있을지 몰라도 내가 이만큼 이야기했다면 참 고마운 이야기이고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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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1-17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아애 2017-01-19 16:09   좋아요 1 | URL
그저 올해부터는 읽기만 하지 말고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면 이야기해보자고 마음 먹었을 뿐인데 이렇게 칭찬도 해주시니 참 기분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五車書 님의 글도 항상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cyrus 2017-01-2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이 소설을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결말이 아쉬웠어요. 이야기 전반부부터 힘이 점점 들어가다 정말 마지막에 한 풀 꺾인... 아무튼 뒷맛이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