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폴 오스터 지음, 김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크리스마스에 읽을만한 좋은 소설이라면 역시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꼽을 것이다. 그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도 꽤 괜찮은 크리스마스 소설이다.

오기는 소설 속 화자인 폴 오스터에게 12권의 사진 앨범을 보여준다. 그는 12년 동안 매일 아침 정각 7시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앵글로 사진을 찍어왔다. 4천장이 넘는 사진이 시간 순서대로 앨범에 정리되어 있다. 폴 오스터가 반복되는 똑같은 사진들을 감상하는 척 페이지를 넘기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빨리 보고 있어. 천천히 봐야 이해가 된다고.˝

그가 옳았다. 당연했다. 차분히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다른 앨범을 집어 들고 좀 더 차분히 보려고 애썼다. 작은 변화들에 주의를 기울였다. 날씨의 변화들을 주목했고 계절이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각도를 주시했다. 마침내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거리의 흐름에서 미묘한 변화가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활기찬 주 중의 날들 아침, 비교적 한산한 주말, 일요일과 토요일의 차이, 같은 요일에 따른 변화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나자 조금씩조금씩 배경에 있는 사람들, 즉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같은 사람이 같은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그들은 오기의 카메라에 잡힌 공간 안에서 그들 삶의 한 순간을 살고 있었다. -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15~16쪽

그리고 소설 속 화자는 그가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찍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기는 세익스피어의 한 구절을 읊조린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시간은 하찮은 듯한 걸음걸이로 기어간다.” 이 소설을 각색한 영화 <스모크>에서 더욱 압권인 장면이다. 그 다음 이어지는 오기의 숨겨진 이야기는 특별한 감동이 있다. 그 감동을 스포일러로 공개하고 싶지 않으니 정말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도 그렇지만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많은 이야기 속에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보편적으로 이어온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가 있다. 이 날의 주인공인 예수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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