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라는 사람 - 영화 <노무현입니다> 원작
이창재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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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이 허탈하고 허망에 찼던 2016년 말, 개봉관도 찾기 어려웠던 영화 <무현, 두 도시의 이야기>를 겨우겨우 찾아서 봤었다. 영화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숨죽여 울고 있었다. '이게 나라냐?'고 외치기 직전의 분통함과 억울함, 기막힘으로 억장이 무너지고 있는 순간, 영화 속의 두 무현도 실패의 가슴 아픈 쓴맛을 보고 있었다. 진정성으로도 만들어내지 못한 두 도시 무현의 이야기는 그렇게 애달프게 끝이 났다. 묵묵히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가다가 가슴 아프게 끝이 난 현실의 노무현대통령의 생애처럼, 그렇게 그가 가꾸어오던 꽃길이 엉망징창이 되어 진흙탕으로 변한 현실처럼, 영화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리워, 비참해, 가슴아파 한 마음으로 울고 있었던 것이다.

 

반년 후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냈다. 6개월이 마치 60년이나 된듯 촛불로 불붙기 시작한 민심은 기어이 세상을 바꿔냈다. 거짓말처럼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만난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입니다>

노무현대통령 서거 8주기에 즈음에 개봉했던 영화는 순식간에 백만을 돌파하고 이백만을 육박했다. 다큐사상 그렇게 빠르게, 그렇게 많은 관객이 든 경우가 처음이라고 한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6개월 전보다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는 인간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담고 있었지만 보통 이상의 사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극적인 순간을 많이 만들어낸 행보와 스포라고는 할 수도 없는 이미 다 알려진 하이라이트조차도 새롭게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촘촘하고, 진실되게, 그리고 진정성있게 인간 노무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노사모 회원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그리고 인간 노무현이 좋아서 돕고 따랐던 사람들의 가슴에서부터 나오는 인터뷰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어떠했는지 그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영화는 노무현대통령의 서거로 마무리된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사람들은 일어설 생각도 못하고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꿈꾸었던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간 현실보다 그를 잃어버린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더 컸기 때문이다. 분명 6개월 전보다는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도 그도 대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트라우마처럼 솟아오르는 통증은 여전했다. 그렇게 먹먹한 가슴을 안고 극장을 나왔었다.

 

 

그로부터 다시 1년.... 서거 9주기에 출간된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이번에는 책으로 만났다. 생각보다 더 많은 변화와 진보를 겪은 1년. 아직도 미안함과 슬픔으로 가슴이 아리지만 변화하는 세상을 보면서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희망이 싹터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를 조금씩 보내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작년 영화를 볼 때보다는 조금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원작인 이 책은 영화를 만들었던 저자가 영화에 미처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책으로 묶어 펴낸 것이다. 1판1쇄 발행일이 2018년 5월 23일.....인 눈에 가득 들어온다. 9년 전 그 날 아침의 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쉽게 책이 펼쳐지지가 않는다. 한참 마음을 정리하고 읽기 시작했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은 사진을 빼더라도 상당한 분량이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스크린에 가두기에는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는 서문에서 말한다. 처음 영화를 기획할 당시 그는 노무현을 거대한 나무로 봤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노무현은 이미 나무가 아닌 숲이 되어 있었노라고. 영화를 찍는 과정은 그 숲길을 걷는 여정이었다고. 그가 영화를 준비한 것은 2016년 봄이었다고 한다. 한참 서슬퍼런 시절이었다. 주제는 소위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상단에 오르고도 남을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뚝심있게 노무현이라는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아가 나는 노무현을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주인공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그의 마침표를 리와인드해서 그 삶의 웅장했던 희망의 흐름을 되살리고 싶었다. <노무현입니다>를 시작한 2016년 초봄에는 그런 희망이 필요했고 그 희망이 과장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다." ---p.9

 

 

영화 준비를 위해 도움을 청했던 노사모 대표, 배우 명계남의 반응에서도 이 여정이 쉽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신, 그 영화 완성할 수 있어?"

"당신, 그 영화 만 명 이상 보게 할 수 있어?"

"당신, 그 영화로 JTBC 뉴스룸에 출연할 수 있어?"

기습적인 질문에 당황한 나는 대답이 궁색해 머릿속을 휘젓는 척하며 밥알만 꼭꼭 씹었다. 왜 저렇게 까질할까 싶었는데, 이전에도 노무현 영화를 찍겠다고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이 왕왕 있었으나 누구도 영화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게 아닌가. 그의 마음에 실망과 아쉬움을 켜켜이 쌓아놓고 떠나버린 사람들이 남겨놓은 상처는 내가 떠안아야 할 몫으로 남았다.

야심차게 달려든 그들은 왜 도중에 포기하고 떠났을까? 이야기가 너무 방대해서 포기하고, 돈이 없어서 포기하고, 촬영을 하다 이견이 생겨 포기하고, 제작사나 배급사를 구하기가 어려워 포기했단다. 그때까지 오로지 실패 사례만 보았으니 명계남이 나를 까칠하게 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 그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존경하던 어느 감독마저 몇 년간 노무현 작품을 구상하다 결국 접었다고 했다.

물론 나는 내 나름대로 다큐멘터리 영화 베테랑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어쩐지 믿어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겪을 문제도 앞서 실패한 이들과 다르지 않을 테고 또 그에게 쌓인 아픔이 너무 진하게 느껴져 내가 어떻게 말을 해도 희석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2016년 초중반에는 문화계에 블랙리스트 소문이 파다했던 상황이라 제작 가능성은 시계제로에 가까웠다. 나는 구차하게도 그에게 아무런 약속도 쥐어주지 못한 채 한마디만 하고 물러났다.

"어쨌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p142

 

저자는 영화를 완성했고, 만 명을 훌쩍 넘어 이백 만에 가까운 사람들을 보게 했다. JTBC 뉴스룸에는 출현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오히려 역설적으로 훈풍이 불던 시기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균형있는 시각이 어느때보다 필요했던 시기였기에 그를 섭외하지 않았을 수도. 이 부분을 읽는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영화가 잘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영화를 완성해주어 얼마나 감사한지.

 

 

책은 영화처럼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무현의 인간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사람

노무현의 진정성 가슴에 불을 지피는 사람

노무현의 정의 누가 뭐래도 옳다고 판단한 길을 걷는 사람

노무현의 시민의식 끝없이 깨어 있고자 한 사람

노무현의 가치 온몸으로 인간다운 삶을 보여준 사람

노무현의 초지일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사람

노무현의 용기 용감무쌍하게 정면돌파하는 사람

노무현의 책임감 모든 일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

노무현의 리더십 대나무 같이 휘면서도 소나무처럼 강직한 사람

노무현의 의미 들불처럼 살아 움직이는 노무현의 사람들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신격화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에도 책을 읽다보면 정말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말, 그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아무 대가없이 도와주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변하지 않는 신념일 수도, 그의 가치의 공명일 수도, 그의 인간적인 면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권모술수가 판치는 그 정치판에서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초지일관 정면승부할 수 있는 뚝심과 용기는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도 사람이었기에 두려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쉬운 길을 선택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포기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신념이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는 단 1초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그는 쉽지 않은 '노무현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의연하게 걸어갔다.

 

 

"황의완   어떤 정치 고수가 제게 "정치에는 고수, 중수, 하수가 있는데 내게는 중수들의 노림수가 다 보인다"라고 하더라고요. 그것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노무현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표현하기를 "노무현은 무수다!"라고 했어요. 수가 없어서 그분의 수가 안 보인다는 얘기였지요. 예를 들어 한나라당 측에서 탄핵할 때 온갖 꼼수를 다 부렸는데 결국 자기들 칼부림에 자기들이 날아갔잖아요. 노무현은 무수니까요. 아무리 고수여도 무수한테는 못 당합니다. 노무현은 다른 계산을 하지 않고 그냥 가슴이 시키는 대로 움직입니다. " ---p.284

 

어떤 때는 조금만 이용하고, 조금만 돌아갔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탄식이 나올 때도 있다.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런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노무현은 없었을 것이다.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인 노사모도 없었을 것이고, 그를 곁에서 끝까지 지켰던 사람들도 없을 것이고, 그를 지지했고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도 잊혀져 갔을 것이다. 돌아가는 것 같고, 무모해보이는 것 같고, 손해보는 것을 알면서도 굽히지 않았던 그였기에 지금 노무현으로 남아있는 것일 것이다.

 

 

"음모론, 색깔론 그리고 근거 없는 모략 이제 중단해주십시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합작해서, 입을 맞춰서 저를 헐뜯는 것을 방어하기도 참 힘이 듭니다. 제 장인은 좌익 활동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는데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제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잘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서 심판해주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아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신다면 저 대통령 후보 그만두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라고 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p.273

 

극장에서도 이 장면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만큼 통쾌했고 논리적인 반격이었다. 지긋지긋한 이념공세에 그는 정면돌파하며 프레임을 바꿔버렸던 것이다. 모략과 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의 공세를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이 바로 노무현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참 멋있었던 대통령. 퇴임 후 고향 봉화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 모습은 그야말로 인간 노무현 그대로였다. 가끔씩 인터넷에 올라오는 그의 사진에 대한 반응을 보면 인기가 더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정도였다. 손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달리는 사진을 보며 우리에게도 이렇게 멋있는 대통령의 뒷모습이 있다는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꼈고 그의 퇴임 후의 제 2인생을 마음 속으로나마 응원하고 있었다.

 

 

역사의 시계가 한참을 거슬로 올라갈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원심력은 더 큰 반등을 만들어내리라는 것도 확신하고 있었으리라.

 

"유시민  2002년 7월 중순쯤 노무현 후보를 마포 뒷골목에 있던 제 사무실에서 만났어요. 지지율도 떨어지고, 당에서 백지신당이니 하는 헛소리를 하고, 후보 캠프에 돈도 주지 않고, 선대위도 꾸려주지 않아 굉장히 어려운 때였습니다. 대뜸 제게 "노무현의 시대가 올까요?"하고 묻더군요. 제가 "아, 오죠. 오지 않을 수 없죠. 반드시 옵니다" 했더니, "근데 노무현의 시대가 오면 내는 그기 없을 것 같소" 하시더라고요. 제가 피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죠"라고 대답했어요.

저와 노 대통령님의 대화는 늘 그런 식이었어요.

"아,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럼 어때요? 그 시대가 오기만 하면 되지요.

후보님은 새로운 변화의 첫 파도에 올라타신 거에요. 이제 첫 파도가 밀려와 가야 할 곳까지 갈 수도 있지만 못 가고 주저앉을 수도 있죠. 그러면 그다음 파도가 또 오겠지요. 계속 파도가 와서 어느 시점엔가 지금 후보님이 생각하는 대통령이 되려는 그 이유, 대통령이 되어 만들고자 하는 사회, 이루고자 하는 변화가 이뤄질 거예요. 그런데 첫 파도를 타고 계시기 때문에 거기까지 못 갈 수도 있습니다. 그게 오기는 와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제가 좀 섭섭하게 대접했죠. 약간 서운하셨을 것 같아요. '아, 후보님. 끝까지 가실 수 있습니다' 하고 이야기해야 맞는데 제가 냉정하게 말한 거지요. 실제로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그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허, 그렇죠. 그런 세상이 오기만 한다면야 내 없으면 어때."" ---p.294~295

 

 

"김종훈 -중략- 제게는 늘 어제 일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요. (눈물) 아마 많은 노사모가 그 5월 23일로 시간이 딱 멈춰 있을 거예요. 아프죠. 너무 많이......, 아파요.

저는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거쳤기에 누구보다 귀한 그분이 그렇게 가신 것이 한스러워요. 국민을 그토록 사랑한 대통령이 없었어요. 아버지의 죽음은 제게 자식으로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거나 인연이 거기까지였다고 스스로 위로가 되는데, 대통령의 서거는 제게 정지된 아픔입니다." ---p.396~367

 

"다큐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을 향한 내 나름대로의 정리와 애도였다. 나는 2년의 영화 제작기간 동안 그와 마음껏 웃고 울고 생각하고, 그런 다음 그를 떠나보내려 했다. 모든 관객 역시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마음을 열어 그와 함께한 뒤 그를 놓아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시간을 영상에 담으면서 이는 쉽게 씻겨나갈 성질의 이야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오히려 그분의 마지막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강한 비극의 에너지를 뿜었다. 일상을 지키려면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할 만큼 그의 마지막은 강렬했다." ---p.399~400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방송인 김어준은 나꼼수 방송을 만들어 그의 방식대로 애도를 했고 공식석상에서는 검은 넥타이를 고수하기도 했다. 가슴에 묻어두고 아파하기도 하기도 하는가 하면, 때가 되면 잊지 않고 찾아가기도 하고, 외면하면서 잊어버리려 하기도 하고, 저자처럼 그의 발자취를 찾아가기도 하면서.

 

"유시민  사회가 바로잡히면 어느 정도 애도가 마무리될 거라고 봅니다. 떠나보낸다고 떠나보내지는 게 아니에요. 때가 되면 저절로 떠나가는 거지요. 저는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극복할 게 있으면 열심히 극복하고, 계승하고 싶은 사람은 열심히 찾아 계승하면 되지요. 떠나보내고 싶은 사람은 떠나보내고요. 보내고 말고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달린 일이에요. 모든 사람에게 애도를 끝낼 때가 올 거에요. 서둘러 애써 떠나보내지 않아도 때가 오면 끝날 겁니다." ---p.403

 

 

아직 우리 사회는 애도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조금씩 밖으로 꺼내어 정면으로 바라보며 치유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가 꿈꿨던 세상에 조금씩 다가갈수록 우리는 손에 든 노란 풍선을 하나씩 놓아갈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런 세상이 오면 아픔보다는 추억으로 그를 생각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슬픔보다는 웃음으로 그를 기릴 수 있을 지 모른다.

그가 이루고자 했던 세상이 오면.

그가 보고 싶어했던 세상이 오면.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입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선의원 시절 첫 대정부 질문. 1988.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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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인테리어 교과서 - 좋아하는 식물 하나만 두어도 인테리어가 된다 LIFE INTERIOR 2
주부의 벗사 지음, 김수정 옮김 / 즐거운상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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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에 들어서면 초록빛 시원한 기운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식물키우는 것을 좋아하시는 시어머니는

평생을 화분과 함께 초록의 공간에서 살고 계신다.

어머님의 손을 거치면 죽어가던 식물들이

생생해지고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마당이 있는 집에서 자라

꽃밭에서 자라는 식물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식물을 보는 것이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지금은 마땅히 식물을 키울 공간이 없다보니

식물이라는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허기사 신경 쓸 일도 많고

끼니 챙겨먹기도 바빴던 시기였으니

생명 하나를 더 들이는 것은

어찌보면 사치처럼 생각되기도 했었다.

어쩌다 화분을 선물로 받으면

베란다 한켠에 놓고 정성을 들이가다도

바빠지는 일상에 뒤로 밀리다

어느 순간 방치하게 되면서

빈 화분만 쌓이게 만들었다.

멀쩡한 생명을 죽이는 것에

죄책감이 들어 식물이든 동물이든

키우지 않기로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초록의 공간과

신선한 내음에 대한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빼꼼히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는 새싹,

어느 순간 환하게 피어있는 꽃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딱히 작정을 하고 꾸며본 적이 없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할 지 몰라서

관련 책을 참조해보기로 했다.

 

 

[그린 인테리어 교과서]

그런 의미에서 찾아보게 된 책이다.

'그린 인테리어의 시작부터 끝까지 A to Z

식물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그린 인테리어 교과서'라는

책의 겉표지에 실린 소개글처럼

초보자도 쉽게 준비하고 시작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다.

 

 

초보자용이라고 해서

식물의 종류나 용어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잘 꾸며진 사례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공의 공간을 이론적으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식물을 가꾸고 있는 인스타그래머들의

거주공간에 각자 개성대로 꾸민 모습을 보여주면서

공간별, 취향별, 식물별 특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거주자의 인터뷰와 함께

식물이 꾸며진 공간을 구석구석 소개하고

그 식물의 종류도 소개해주면서

어떤 공간에 어떤 식물이 어울리는지,

어떤 화분과 구성이 적합한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모두 11가지 스타일을 소개하고 있으므로

비슷한 공간에 취향이 맞는 스타일로

모방해서 꾸며보는 것도

초보자가 처음 접근하는 좋은 방법일 듯 싶다.

 

개인적으로 바닥에 많은 것을 놓는 것을

선호하지 않아서

선반이나 매다는 행잉 형태가 좋은데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형태가 있어서 놀랐고

비슷하게라도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박쥐란'은 다양한 집에서 볼 수 있었는데

나무나 돌에 달라 붙어서 생식하는 기생식물로

키우는 것이 어렵지 않고 잎도 힘이 넘쳐보여

일순위로 도전해보고 싶었다.

 

 

두번째로 도전해보고 싶은 것은

은빛 색깔과 잎의 모양이 매력적인

'틸란드시아 세로그라피카'

공기 중에 있는 수분을 흡수해서 성장하여

흙과 비료가 필요없어

초보자도 키우기 쉽다고 한다.

벽걸이로 만들어 액자를

대신할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탈란드시아 종류는 물에 담가 둘 필요가 없어

벽걸이 식물로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색상의 다육식물은

기르기도 쉬고 화려함을 오래 간직할 수 있어

인기가 좋다고 한다.

 

 

2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식물키우는 법을 다룬다.

기본 관리부터 장소에 맞게 식물 고르는 법,

식물과 어울리는 화분 고르는 법,

그린 인테리어 팁,

계절에 따른 주의 점, 물 주는 법,

분갈이하는 법, 다육식물 모아 심는 법,

마지막으로 식물 관리 Q&A까지

실질적으로 이 책을 필요로 하는 초보자에게

꼭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알차게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인기 식물 리스트는

어떤 식물을 고를 지 결정하기 어려울 때

훌륭한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장점을 중심으로 구불구불 소용돌이를 치면서

잎이 무성해지는 독특한 식물로

쉽게 키울 수 있어 초보자에게 안성맞춤이라는

'드리세나 토네이도'는 이 리스트에서 찜.

 

 

3장은 그린 인테리어에 필요한

여러가지 아이템에 대해 소개한다.

4장에서는 다육식물을 모아심기하여

선인장 테라리움을 만드는 방법과 관리법을 알려준다.

 

 

마지막 5장에서는 초보자도 쉽게 따라 만들 수 있는

저렴한 그린 인테리어 DIY를 소개한다.

인스타그래머가 소개하는 여러가지 테크닉을 참고해

응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까 어디를 가든

쇼핑을 가도 상점에 들러도

식물과 인테리어만 보게 된다.

아직까지 집안 곳곳을 꾸밀 자신은 없다.

일단 거실에 있는 책장과 주방의 식탁 주변부터 꾸며볼까 한다.

살아있는 생명이 주는 기운을 느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다음 주에는 운동 겸 산책하는 길 주변에 늘어서있는

화원에 한번 들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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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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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책 팟캐스트 <요조 장강명 책 이게뭐라고!>를 통해서였다.

작가를 방송에서 처음 알게 되다니!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아니, 읽지 않아서

특히 국내소설은 거의 읽지 않아서 그런지

아주 유명한 작가를 빼고는 잘 알지 못한다.

장강명 작가는 문학상 4관왕을 수상한

꽤나 유명한 작가라는데.... 나에게는 생소했다.

공대, 신문기자 출신 소설가.

뭔가 자연스럽지 못한 그의 이력이 호기심을 자아냈지만

그럼에도...이공계 출신이지만 달필일 수도 있고,

마이클 클라이튼이나 테드 창처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멋진 과학소설을 쓰는 소설가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그런 이력보다는

어눌한 말투지만 신문기자 출신다운

날카로운 해석이나 논리가 더 인상깊었었다.

그렇지만 그의 소설은 굳이 찾아서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그의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

소개글을 보게 되었다.

세상 순진할 것만 같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거추장스러운 세상의 관습을 쿨하게 무시하고

자신의 소신과 기준대로 살아가는 강단있는 사람이었다.

잘나가는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언론고시를 준비해 신문기자가 되고,

11년간 우수기자상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다니다가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소설가가 되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니, 쿨하게 무시하고

사랑하는 여자와 혼인신고만 하는 결혼을 한다.

식을 안올렸으니 신혼여행휴가도 없어

퇴직한 후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정말 이런 용기있는 결정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그가 궁금해졌고

그의 에세이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에세이는 그의 오디오 음성이 들린 것처럼

간결하고 느릿하다.

역시 소설가는 소설가다.

시선이 함께 움직이는 것같은

생생한 묘사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가 소설가임을 분명하게 증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에세이는 그가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왜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떠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부터 시작한다.

HJ라고 부르는 그의 아내와 처음 만나게 된 때부터.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인 그와 그의 아내는

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찐하게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부모님이 둘의 결혼을 반대하자

그는 쿨하게 동거를 선택하고

혼인신고로 결혼을 선언한다.

그리고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합의하고

어영부영 결심히 흔들릴까봐

아예 정관수술을 해버린다.  

어쩌면 사람들이 일상의 피곤함을 떨치기 위해서

상상만 하는 것들을 그들은 그렇게 과감하게 감행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부모님과 HJ를 설득해서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게 만들 자신이 없었다. 1, 2년으로 될 작업이 아니었다. 양측에 최소한 3년은  전력을 다해야 할 것 같았다. 그 3년간 아마 나는 HJ에게 부당한 비난을 받고, 부모님의 무리한 요구를 웃어넘기며 진이 다 빠지고 말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선 내 감정이 중요하다. 나는 즐겁게 살고 싶다. 내 인생 3년을 그런 쓸모없는 일에, LPG 가스통과 화기를 서로 친하게 만드는 작업에 낭비하고 싶지 않다. 기회비용도 엄청나다. 그런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해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감정 상태로 스스로를 가꾸면 3년 동안 장편소설을 최소한 다섯 편은 쓸 수 있다. 내가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감정 상태로 있어야 아내도 사랑하고 부모님도 사랑할 수 있다. 남을 사랑하는 일에도 에너지가 든다.

솔직히 내 부모님과 HJ가 왜 서로 친하게 지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명절에 싫다는 아내를 자기 부모님 댁으로 굳이 데리고 가는 남자들은 왜 그러는 걸까. 보기 싫은 친지들을 만나러 큰집에 가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해마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상담이 급증하고 형제간 폭행으로 누군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꼭 나오는데, 다들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친지들을 만나는 걸까.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뭔지 정확히 모를 것이다. 그냥 막연히 명절에는 가족이 다 모여야 한다고 하니까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뭔지 알지만, 관습의 압력에 맞설 용기가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인 동기가

영향을 미친다." ---p.29~30

 

너무 직설적이고 솔직해서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관성으로 용기가 없어서 숙제처럼

그렇게 명절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금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마음가는대로 살기로 결정한 부부는

드디어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떠난다.

배경 빼고 2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설마 3박 5일동안의 신혼여행에서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랬다.

역시 소설가다운 면모이다.

3박 5일동안 보라카이의 일정이 섬세하게 담겨있다.

여행에세이라고 하기도 그런 것이

옵션도 두어 가지 밖에 하지 않고

그저 쉬고 먹고, 쉬고 자고, 책읽고 음악듣고,

그것이 전부인 그 일정을 어쩜 그리 생생하게,

세세하고 다이나믹하게 그려놓았는지.

단순한 여행스케치가 아니라 가능할 수 있다.

부부란, 사랑이란, 인생이란, 여행이란,

순간순간 그의 철학이 녹아들어가 있어

그렇게 여행지에서 인생을 생각해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아주 강렬한 한 장면 때문이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화이트 비치로 갔다. 해변의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해가 지는 걸 봤다.

그곳이 '적당한 장소'였던 이유는 어느 필리핀 소년으로부터 적당히 가까우면서도 또 적당히 떨어진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스마트폰에 외장 스피커를 연결해서 바닷가에 누워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음악이 딱 노을에 어울렸다. 소년은 긴바지를 입고 상의는 벗은 채였다. 모래로 베개를 만들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쿨한 소년이 실제 세계로 나온다면 바로 이런 모습 아닐까. 매일 보는 풍경일 텐데 지루하지도 않을까.

우리는 소년의 음악을 훔쳐 들으며 해가 지는 모습을 구경했다.

-중략-

소년의 스피커에서는 파 이스트 무브먼트, 아델, 리아나, 싸이가 나왔다. 소년은 무심하게 석양을 보는 듯하면서도 비트가 커지거나 멜로디에 중요한 변환이 있을 때는 다를 흔들거나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나는 어릴 때 그런 음악의 좋은 점을 몰랐다. 곡 길이가 10분, 15분을 넘어가고 박자가 두 번쯤 바뀌고, 기타가 미친 듯이 빨라지는 대목이 있는 '대곡'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쉽고 달콤한 노래들을 우습게 보았다. 친절한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고 허세만 잔뜩 부리고 다녔다.

'내가 여기 소녀였다면 저 소년과 사랑에 빠졌을 거야.'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소년도 우리도 바다만 바라보았다." ---p.172~174

 

얼굴도 모르는 그 소년이 너무 멋졌다.

주어진다고 모두 다 누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노을'이라고 불리는 곳이라지만

늘 곁에 있는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것을 즐길 줄 아는 소년이 부럽고, 또 멋졌다.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인물같았다.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어쩌면 오랜만에 찾아와서...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자연을 느끼고 음악을 즐길 줄 안다면

그 소년은 분명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것 같다.

 

마치 내가 그 곳에서 함께 석양을 본 것처럼

함께 음악을 들은 것처럼 힐링이 된다.

기분좋은 바람과 파도소리, 그리고 석양의 내음이

음악소리와 함께 어울려 느껴지는 것 같다.

 

마침....나도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았었다.

스피커에서는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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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수집 생활 - 밑줄 긋는 카피라이터의 일상적 글쓰기
이유미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읽으면서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책은 대부분

자기계발서 분야의 책들이다.

한 때 내 스스로를 더 담금질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자기계발서 책을 닥치는대로 탐독했었다.

읽다 보면 용기도 불끈 솟고

게으른 일상도 반성하게 되고

다시 마음을 다지면서 긴장도 하게 되고

이 책을 만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도 하면서

열심히 읽었었다.

그러나....읽다 보니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왔다.

아직도 모자라...모자라...

너무 스스로를 다그치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열심히 살고 있는데...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끊임없이 돋움발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읽어대던 자기계발서를 뒤로하고

이제는 책에 관한 책을 주로 읽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떻게 읽었는지가 궁금해서 읽다 보니

독서에세이 자체를 읽는 즐거움에 빠지게 되었다.

읽다보면 정말 읽고 싶은 책도 생기게 되고

새로운 책, 새로운 작가도 알게 되고,

또 무엇보다 읽지도 않은 책이 친숙해지기도 하고 

부분적이지만 그 책에 대한 지식이 쌓이는 맛도 괜찮았다.

 

 

[문장 수집 생활] 역시 책을 소재로 한 책이라는

소개를 읽고 습관처럼 읽기 시작한 책이다.

특히나 소설은 내가 거의 읽지 않고 있는 분야다.

발동 걸리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고

끊임없이 소설의 상황과 공간을 상상해야 하는 부담감,

현실에는 거의 없는 사람들의 집합이라는 이질감 등이

소설에 몰입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직관적인 정보 위주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재미 부분에서 인정받은 소설 몇 권을 구입해서

읽기에 돌입했다.

 

 

이 책의 저자는 나의 성향과는 전혀 반대로 소설을 주로 읽는다.

읽다가 필이 꽂히거나

편집샵 카피에 응용할 만한 문장을 발견하면

필사를 따로 해놓는다고 한다.

당장 쓰지 않더라도 카피가 필요할 때

뒤져보면 제품에 어울리는 문장들을 찾을 수 있고

이를 살짝 비틀거나 가감해서 카피를 뽑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소설 속 문장들은 허를 찌르는 관점의

새로운 카피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툭 던지는 카피는

그럴싸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강렬함을 주면서 기억에 오래 남게 된다. 

 

 

"오후 4시,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 아닐까?

미처 못한 일을 처리하기엔 너무 늦고, 한결

부드러워진 햇살에 유리잔 속의 얼음이 은은하게

빛나는 시간. 낮잠 대신 롱드링크 한 잔을

마시며 자신의 나쁜 습관을 용서하고 보이지

않는 편지를 쓰는 시간. 무의미하게 흘러가버린

하루를 마치고 스스로 자신을 에스코트해 거리로

나서는 시간.

-사사 아랑고【미스터 하이든】 (북폴리오, 2016)

 

낮 4시를 이렇게 표현하다니. 이 문장을 읽고 또 하나의

시간 표현 방식을 배웠다. 오후 4시을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라고 했다. 다 하지 못한 일을 처리하기엔

좀 늦은 감이 있고, 나른해진 몸과 마음으로 하이볼 같은

연한 술이 생각나는. 오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가는 구나,

오늘 난 뭘 했지? 생각이 드는 시각 오후 4시.

정말 그런가?

시간을 이야기하는 문장이니 '시계'를 파는 카피에

응용해봐야겠다. 이렇게 생활 공감을 이끌어내는 문장은

특별한 기능이 없는 제품일수록 좋다.  -중략-

 

 

당신의 4시

지금 오후 4시는

집중하지 않으면 야근하게 될지도 모르는 시각입니다.

내일 오후 4시는

짙어지는 가로수를 보며 커피 한잔 하는 시각이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4시, 라는 타이틀은 구체적인 시간을

어필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집중하게 한다. 여기에

분까지 써줄 수도 있다. ('당신의 4시 32분'처럼.)

이런 구체적이고 평이하지 않은 타이틀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하고

클릭해보게 만든다." ---p.70~73

 

 

"신발은 발하고 바닥이 닿는 접점이잖아. 난 그게

익숙해야만 낯선 곳을 밟을 수 있는 것 같아.

-은희경중국식 룰렛[대용품] (창비, 2016)

 

문장을 읽자마자 '신발'에 대한 신선한 카피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누구나 동의할 만한 말이면서도 그 안에

또 역설이 숨어 있다. '신발은 발하고 바닥이 닿는

접점이란 부분을 보자. 알고는 있지만 작가처럼 표현하진

못했다. 이럴 때 우린 소설가의 표현력을 빌려 쓰는

것이다. -중략-

 

 

좋은 문장을 읽으면 당연히 어딘가 써먹고 싶은 게

읽는 사람의 본능이다. 그래서 이런 글을 만나면 우린

밑줄을 긋고 사진을 찍어 SNS로 공유하는 것이다.

제품을 새롭다, 신선하다, 놀랍다, 라는 말로만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뿐더러 일단 재미가 없다.

조금만 비틀어 생각해보자. 때로는 없는 이유도

만들어줘야 하는 게 카피라이터의 역할이다. 

 

바닥과 발이 닿는 접점에 OOO

낯선 곳을 밟을 땐 내 발에 익숙한 OOO을 신는다

---p.89~90

 

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탓에

저자가 소개한 50권의 책 중에서

읽은 책은 다섯 손가락으로도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나마도 이런 문장이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소설의 구도니, 주제니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접근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으로 소개하기 때문에

소설들은 훨씬 가버운 마음으로 접하게 해준다.

소개된 소설의 상당수를 

실제 읽어봐야겠다는  마음도 먹게 한다.

 

소설 속에서 어떻게 카피를 건져 올리는 지

저자는 방법을 열심히 소개해주고 있는데

엉뚱하게도 소설의 내용이 꽂히고 만 것이다.

그럼 어떤가.

내가 카피를 쓸 일이 얼마나 된다고.

기껏해야 글을 쓰고 제목을 뽑는 정도나 될까.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저자의 소설 문장 수집하는 일을 감탄을 하면서 봤다.

흔히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는 경우는

인상깊은 문장도 문장이지만

정보책 등에서 직접 생활에 적용하기 위한

기능적인 목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설의 문장을 그것도 카피에 응용하기 위해

필사한다는 것이 놀랍고 신선했던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컴퓨터를 막 시작하면서

타자 연습을 할 때 이용했던 글이

'한겨레신문 신춘문학상'에 당선된 글들이었다.

단편이었기에 양이 많지 않았고

그냥 앉아서 읽는 것보다는 타자 연습을 하면서

읽으면 집중도 잘 되고

문장 하나하나의 느낌을 맛볼 수 있어서

종종 이용하곤 했었다.

그때는 요즘같은 필사의 개념도 없었을 때였는데

필사를 하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겠구나 생각했었다.

뭔가 그냥 흘러가는 감정들을

꼭꼭 잡아주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소설과 함께 필사도 멀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습관을 꾸준히 유지했으면

지금쯤은 멋진 글 하나 쯤은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시덥찮은 생각도 해본다.

주위에 책이 없으면 불안할 정도로 독서광인

저자는 이렇게 꾸준히 문장을 수집하면서

일에서도 결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뭐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발췌를 해도, 필사를 하더라도

이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물론 감각적인 글을 쓰거나 톡톡 튀는 글을 쓰는 것은

수많은 책들을 읽고 적는 것만으로는 어려울 수도 있다.

어느 정도는 타고난 재능도 필요하리라.

그럼에도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카피는

감각을 키우고 공식이나 규칙을 발견하면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한다.

글 속에서 퍼올린 수많은 재료들을

어떻게 버무리고 요리할 수 있는지

그 요리하는 방법에 대해 

책의 마지막 장에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책을 뒤집어 뒷페이지부터 읽을 수 있게 구성해서

필요할 때마다 참고해보기 쉽게 해주고 있다.

 

 

저자가 다니는 회사의 입점한 물건이

5만 종류 정도 된다고 하니

카피를 기계적으로 뽑아낼 때도 있고

지치거나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생생한 비법은 조금이라도 더 제품을 돋보이게 하고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한 결과물일 것이다.  

카피를 처음 접하는 입문자나 초보자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책을 읽을 때 특히 소설을 읽을 때는

빨리 끝내야 하는 숙제처럼

스토리를 좇아 휙휙 넘기지 못할 것 같다.

아주 귀찮지 않다면 나도 이제

문장을 수집해가며 필사를 해가며 읽어야겠다.

책을 읽으며 빨리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 정말 오랜만이다.

웬만한 자기계발서보다

더 내 마음을,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것도 유쾌하고 부드럽고

아주 감동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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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Table's 자연주의 홈쿡 수업 - 서래마을 인기 쿠킹클래스 ‘그린테이블’의 시크릿 집밥 레시피 그린테이블 3
김윤정 지음 / 비타북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음식을 할 때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지는

꽤 오래 되었다.

MSG의 유해 공방이 일어나기 전

막연히 몸에 해로울 거라는 생각에 넣지 않은 것도 있지만

조미료를 넣었을 때 감칠맛보다는

느끼함과 인공미가 더 강하게 느껴져 

굳이 넣지 않게 된 이유가 더 크다.

맛의 보정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지금도 웬만하면 심심해도 조미료 없이 요리를 한다.

양념보다 재료 자체의 맛을 즐기는 입맛도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나와 달리 가족들은 양념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요리를 할 때마다 고민을 하게 된다.

양념 요리를 좋아하지 않으니

가족들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드는 것에

종종 한계를 느낀다.

물론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맛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맛을 판단할 때와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서로의 입맛에 맞게

조율하면서 요리를 해왔지만

요즘은 가족들에게 좀더 맛있는 건강한 요리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일하느라, 공부하느라 지친 가족들에게

음식은 가장 큰 응원이자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에 최근에는 요리책을 제법

이것저것 보며 참고하고 있는 중이다.

 

 

[Green Table's 자연주의 홈쿡 수업]

그야말로 재료의 맛을 살릴 수 있는

자연주의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요리책이다.

자연주의 요리라는 것과 함께

육수나 베이스를 기본으로

재료별, 끼니별 어울리는 식단을

제시하는 것도 독특한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먼저 Part 1에서는 초보자도 쉽게

요리에 입문할 수 있는 기본기부터 시작한다.

계량법, 다양한 썰기 방법,

가장 중요한 기본인 맛있는 밥 짓기,

요리에 풍미를 더하고 스타일을 살려주는

각종 시판 재료들에 대한 설명도 상세히 들려준다.

사실 각종 요리책에 불쑥 등장하는

이런 재료들에 대한 궁금증이 컸었는데

깔끔하게 해소가 되었다.

 

 

 

다음으로 각종 육수와 만능 양념 만들기.

사실 익숙하지 않다면 딱히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닌데

육수를 만드는 것이 귀찮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만들어진 육수를 이용해 요리를 하면

여러 요리를 할 때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무엇보다 요리를 시작할 때 심적 부담이 덜하고

맛을 더 깊고 진하게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는 가장 많이 이용하는 <해물육수>를 내는 법과

이를 이용해서 정말 초간단으로 끓일 수 있는

<봄동 된장국>, <도토리묵 국>을 소개하고 있다.

 

 

두 번째는 약간 생소한 <만능 채수>다.

약간 달큰한 감칠맛이 난다는 채수는

여러 요리의 국물 베이스로 사용하면 좋다고 한다.

 

 

그외에도 <사골육수>와

다양한 일본식 요리에 사용하는 <만능 쯔유>,

<만능 마늘고추장>,

각종 크림 베이스로 사용되는 <베샤멜소스>

나물이나 샐러드드레싱으로 사용되는 <만능 참깨소스>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소스를 봐서도 알겠지만 이 책에서는

동서양 구분없이 이런 베이스들을

기본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요리들을 소개하고 있다.

 

Part2 에서는 재료에 따른 요리이다.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등 육류와

감자, 시금치,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아보카도,

배추와 양배추, 호박, 버섯 등 채소류,

오징어, 새우, 연어, 고등어&삼치, 조개, 해초 등 해산물,

곡물 등 각 재료의 특성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소개한다.

 

재료별로 손질하는 방법이나 보관하는 것이

은근 어려울 때가 많고

재료의 특성을 살린 요리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가장 유용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스파라거스를 좋아하는데

구워먹는 방법 외에는 딱히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할 지

몰랐는데 아스파라거스를 메인 재료로 사용한

간단하면서 요긴한 요리법을 소개해줘 반가웠다.

 

 

영양만점의 아보카도 역시

간단하면서도 멋드러지게 활용하는 방법을 볼 수 있다.

 

 

Part 3부터는 끼니별 요리를 소개한다.

건강한 재료로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Breakfast에서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다양한 요리들이

소개되어 도전해보고 욕구를 자극한다.

그중에서도 <두부 블루베리 요거트 볼>은

두부와 블루베리, 요거트라는 신선한 조합으로

먹어보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방법은 그야말로 재료만 있으면 초간단으로 만들 수 있다.

 

 

사골육수와 양파를 이용한 <사골 양파 수프> 역시

간편보양식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Part 4 LUNCH는 재료의 맛을 살린
든든한 한 끼의 요리들이 소개된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식욕을 돋우는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이 침샘을 자극한다.

그중에서도 도전해보고 싶은 요리는 <명란 파스타>.

다른 베이스 필요없이 명란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초간단 요리이다.

 

 

도전해보고 싶은 또다른 요리는 <낙지 부추 덮밥>.

된장으로 맛을 낸 독특한 조리법으로

맵지 않아 아이들도 잘 먹을 수 있다고 한다.

 

 

Part 5 DINNER는 함께 먹으면 더욱 좋은

특별한 저녁 요리들을 선보인다.

보기에는 식욕을 자극하며 멋드러지지만

의외로 재료나 조리법이 복잡하지 않고 간단하다.

<우럭 스테이크>.

보통 회나 탕으로 많이 먹는 우럭을 

깔끔하면서도 분위기있는 저녁 식사 메뉴로 탈바꿈하다.

 

 

<스키야키>나 <샤부샤부>는 보통 음식점에서 먹는

익숙한 요리이지만

직접 만든 국물 베이스를 이용해 만들면

근사하면서도 푸짐한 저녁 요리가 될 수 있다.

색다른 파티를 원한다면 <카레 통닭 구이>가

제법 잘 어울릴 것이다.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복잡하지 않고 쉽게 도전해볼 수 있는

깔끔한 요리들이 많아서

주방에 두고 하나씩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당분간 입이 짧은 큰 아이에게

뭘 해줘야할 지 하는 고민은 덜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육수나 베이스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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