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습작 -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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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천년습작]을 만날때만 해도 나도 김탁환 작가처럼 화려한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그런 글쓰기 방법을 배울수 있을것이라는 부푼 가슴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나는 그에게서 화려하고 멋진 글을 쓰는 법을 배우는 대신, 마음이 동하여 손이 움직여져 씌여지는 맛깔나는 글을 쓰는 것이 더 멋지지는 않겠는가.......라는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짜면서 팔을 움직여 한글자씩 채워넣는 것보다,
마음이 동하여 정신을 놓게되면서 팔이 저절로 움직이며 채워지는 한글자, 한글자가 더 독자의 마음을 울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 [천년습작]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써도 늘지 않는 글들이 가끔씩 멋져보이게 씌여질때가 있다.
멍때리며 정신줄을 놓고 나도 모르게 손가락들을 움직이며 쓴 글들이 그렇게 보일때가 종종 있다.
그 외엔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 쓴 것이기에 누가 봐도 흔히 쓸수 있는 그다지 독창적이지도
새롭지도 않은 그저그런 평범한 글들일 뿐이다.

글이라는 그런가 보다. 
억지로 만들려 하면 어긋나 보이고, 그저 마음이 동해 손이 저절로 움직여져 씌여지면 참 담백하니 맛깔나보이는게. 마음의 진심이라 해야하는 것인가?

[천년습작]을 읽기 전부터 내가 갖고 있던 화려한 글쓰기의 환상은 [천년습작]으로 사라졌지만,
따뜻하고 푸근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채워줘버린 몹쓸 책이다.

[천년습작]은 말그대로 백년이 걸리든 천년이 걸리든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할 것이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을 가지고 따뜻함을 마음에 품고 인생을 대하라는 일종의 자아성찰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화려하고 수려한 글쓰기를 배우기에는 실패한 듯 하지만,
어쩌면 나는 더 큰 것을 얻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삶에 대한 열정과 내 눈에 보이는 인생의 담담함등을 글로 담아보고 싶은 날이 언젠가는 돌아오지 않을까? 그때 나는 정신줄 놓고 미친듯이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 갈 수 있을까.
많은 것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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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장으로 - 제139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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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료가 없는 국의 맛이 이럴까?
불륜인듯 보이지만, 불륜이 아니고, 연애를 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도 아닌 뭔가 심심한 맛?
[채굴장으로]는 분명 연애 소설인데, 연애 소설이라 하기에는 뭔가 빠진듯한 맛이 난다.
그렇다고 너무 심심하고 맹맹하지도 않은 것이 신기하다.
마치 봄바람이 살랑 거리며 나도 모르는 새에 불어와 내 머릿결을 날려주듯이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다가오며 내 안에 모래성을 조금씩 허물어 버리는 듯한 느낌.........
다 읽고 나서도 "이게 뭐야?" 라는 소리보다는 "음........봄이 지나갔구나." 라는 담백한 느낌이 나는 그런 소설이다. 오랫만에 이런 깔끔한 책을 만났다.
온갖 불륜과 자극적인 소재로 가득차 있던 일본소설 속에서 이렇게 담백하게 맛깔스런 맛을 내는
글을 만날 수 있을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였다.
그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노우에 아레노라는 신인작가를 통해서 말이다.
물론 옮긴이의 설명을 들으니, 그 전에도 어떤 책을 출간했던 적이 있는 실력있는 작가라는 것을 알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채굴장으로]를 통해 만나게 된 신인작가일뿐이다.

어느날 섬에 새로 전근온 알수없는 아리송한 남자 선생님에게 조금씩 마음을 흔들리며
마음이 동함을 느끼는 여주인공의 심리가 디테일하지는 않지만, 섬세하게 잘 표현되어있다.
그렇다고 그녀가 자신의 남편을 배신하는 나쁜 여자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섬에 사는 양호교사의 마음에 어느날 갑자기 조금씩 봄 안개가 피어오르다 다시 수그러지는 그런  일이 잠시 잠깐 일어나는 것 뿐이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그런 변화를 조금은 눈치 채지 않았을까?
그래서 예정보다 도쿄에서 일찍 돌아오고 아내의 기분을 살피고 그랬던 것은 아니였을까?
읽는 내내 느꼈던 내 생각들은 마지막 장을 덮으며 거의 확신에 찼지만서도 뭔가 알수없는 아리송한 느낌이 마구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노우에 아레노의 마법인가보다.

다만 왜 제목이 채굴장으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양호교사의 어머니가 채굴장 끝으로 가다가다. 뭔가를 느끼고 십자가 목거리를 주었기 때문인가? 그다지 큰 의미는 없어보였던 채굴장이 틈틈히 등장하는 것으로봐서는 뭔가 큰 의미가 존재하는 것 같은데, 그것을 느끼지 못해서 아쉽다. 
다시 읽는 다면 나도 양호교사가 그랬듯, 채굴장 끝으로 걸어들어가보고 싶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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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내 말 좀 들어 주세요 - 어느 날 갑자기 가십의 주인공이 돼 버린 한 소녀의 이야기
세라 자르 지음, 김경숙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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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가십의 주인공이 되어버린다면?
그것도 행동불량에 음탕하다는 바가지를 뒤집어 쓰고 말이다.
암담할 것 같다. 겨우 13세살이 견디기에는 온세상이 암흑으로 뒤덮여 우울증이라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작은 마을 퍼시피카에 사는 디에나는 고개를 숙이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당당히 맞서싸우지도 않았지만, 굳이 도망다니며 피해다니지도 않았다.
그런 점은 분명 13세살 치고는 너무나 성숙한 행동들이 아닐까?

최근에 읽었던 [루머의 루머의 루머]라는 책이 생각났다.
디에나와 같이 루머 하나로 온 학교의 모든이가 알아버린 방탕한 아이가 된 그 소녀의 마지막 결정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였다면, 디에나의 선택은 헤쳐나간다는 것이였다.
어느날 갑자기 세상의 하늘같았던 아버지로부터 외면을 받으면서 부터 시작된 디에나의 상처는
그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툭툭 털고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작은 마을, 10대 소녀, 그리고 루머 라는 공통점이 존재하지만, 가족이라는 힘으로 또 자신이라는 의지로
그 루머를 이겨낸다는 부분이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제발 내 말 좀 들어주세요]였다.
다만, 제목이 내용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듯.......[나를 제대로 봐] 나, [나를 보라구~!!!]라고 했더라면,
디에나와 더 잘어울리지 않았을까 싶긴하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며 헤쳐나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10대소녀의
외롭고 절망스러운 상황을 잘 묘사한 듯 하여 10대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상처 속에서 방황하는
20, 30대 어른들이 함께 읽어도 좋을듯 싶다.

지금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어둠이 내리깔려오는 나의 미래에서도 디에나의 방법은 효과를 보일까?
한번 고민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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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
기타노 다케시 지음, 김영희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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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이라는 제목보다는 [기타노 다케시가 꿈꾸는 일본]이란 제목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사실 기타노 다케시란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책을 읽고 나서야 이 사람이 개그맨인가 보다~ 하는 정도이다.

그래도 이름을 걸고 책을 낸 것을 보니, 나름 유명한 사람인가 하고 흥미를 갖고 책을 읽게 되었다.

 

그의 글들은 다소 경박스럽고 가볍고 극닥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런부분에서

기타노 다케시란 인물이 일본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또 그 일본의 미래를 염려하고 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흔히들 말하는 일본에 대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그의 시각에서 풀어넣어준 [위험한 일본학]은 점차 사회적으로 가라앉고 있는 일본에 대한

그의 염려가 물씬 묻어나있었다.

특히 소년법과 모리 총리에 대한 강한 반감은 그가 정치와 법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주고 있으며, 그의 대책들이 다소 황당하게 비춰지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효과는 보여주지 않을까라는 기대심리를 갖게 해줄 만큼 일본내에서는 심각한 문제들로 보여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가고 있는 소년법이나 부모의 부재로 인한 청소년들의 탈선이

일본에서는 좀 더 잔인하게 현실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이렇게 되지 않을까나?

그럼 우리는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따라 하기 싫은 나라이지만, 또 따라하게 되버리는 일본의 예를 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정말 기타노 다케시의 주장처럼 역소년법을 만들고, 면허증을 만들어주면

범죄가 줄어들까....나도 모르게 그의 황당하고도 극단적인 생각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매력적이거나, 흡수력이 강한 필체는 아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국에 대한

생각들을 나름 잘 정리하여 전달해주는 것을 보니, 그가 자신의 불행의 이유를 잘 찾아낸것이 아닐까 싶다. 일본학이라는 제목에는 어울리지 않는 가벼움으로 치장한 일본인이 바라본 일본은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보이지는 않을까라는 약간의 공포감을 안겨준 무시하기엔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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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눈물 - 그림 앞에서 울어본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제임스 엘킨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아트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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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앞에서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는 나한테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었다.
마음이 메말랐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읽고나면 말라비틀어진 가슴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진 않을까 싶었다.

[그림과 눈물]은 그림 앞에서 울어보거나 그림 에게 모든 혼을 빼앗겨 넋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경험담을 묶어놓은 책이다. 

나는 사실 그림을 보고 울어본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많을까 라는 의구심을 갖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림을 몇번 보지는 못해봤지만, (대개 책을 통해서였다.) 단 한번도 어떤 감흥이나 설레임 그리고 흔히들 
말하는 그림으로 인한 충격 같은 것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드는 생각은 그림이 주는 어떠한 감정에 의해
눈물을 흘리고 멍을 때리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보여지는 그림의 색채감에
우리의 눈은 눈물이라는 것을 흘려보내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왜 이 그림이 그런 느낌을 준다는 것일까?
어떻게 같은 그림을 두고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이리도 다른 것일까? 를 생각해 봤지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내 자신 스스로 설명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자 어쩌면 [그림과 눈물]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도 나같은 기분을 느낀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다 우연히 보게 된 고흐의 자화상.
그동안은 별 느낌없이 지나쳐가던 이 그림엽서 한장이
나를 한동안 멍하게 만들었다.
얼마나 무릎을 끓고 내가 이 그림을 쳐다보고 있었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렸을때는 그냥 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것 같은
허무감과 무기력함만을 느낄수 있었다.
저 노랗게 칠해진 색깔들이 마치 나를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쩌면 나 자신을 혼란의 숲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닐까. 고흐는 나에게 뭔가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등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는 나 자신이
조금은 겁도 나고 감당이 되지 않았다.
저자나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게 이런것이었을까.
그림을 통해 알수 없는 감정들을 느껴보고,
문화적 폭을 넓히라는 ...........?
그림을 보면서 생동감이나 화가의 의중을 읽고 느끼기에는
난 참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나도 아는 나의 이런 맹맹함이
어느날 문득 깨져 이런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했다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또 나에게 어떤 변화가 생겨 이런일이 
생긴 것일까 라는 의아함도 들었다.

요즘은 미술과 관련된 책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클림트, 고흐등의 화가들에 쏟아지는 화려한 관심들이
책과 전시회, 길가의 여러 포스트들에서 느껴지듯이
그림과 우리의 일상 속에 이미 묻혀져버린 우리의 일상이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상들을 얼마나 느끼고 살고 있는 것일까.
무심코 지나쳐버리고, 그냥 하나의 눈요깃거리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이제는 예전처럼 그림앞에서 한참을 서 있는 관람객이나, 그림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관람객에게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는 대신
나도 함께 그 그림 앞에 서서 그 느낌을 공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조심스런 생각을 해본다.
너무 메말라서 아직은 촉촉해지지 못했지만, 그림을 통해 언젠가는 촉촉한 감성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로
고흐의 자화상을 다시 한번 감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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