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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제2판 34곳 삭제판
박유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조선인 위안부는 누구인가. 조선인 위안부가 누구인지 중요한 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의 단초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에 대한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말이다. 한국의 소녀상으로 대변되는 일제에 납치된 어린 성노예, 아니면 일본 우익이 말하는 자발적이고 직업적인 매춘부. 한일간엔 극단적인 관점의 차이가 점점 공고해져만 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우리는 일본이 우익화된다 비난하고, 일본은 혐한류가 치솟는 게 현재의 상황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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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라는 단어의 스펙트럼을 일회성 강간, 납치성 성폭력, 관리매춘까지 넓히곤, 중요한 것은 식민지지배와 전쟁수행 구조 하에서 그것은 결국 모두 일본의 잘못이자 책임임을 말한다. 굳이 꽃다운 소녀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고도, 군대 주변에 자연스레 형성된 성매매업소 종사자들조차 궁극적으로 당시 일본제국주의의 비참한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일본이 위안부 설치와 이용에 대한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선명하다. 항간의 이야기와는 달리 그의 주장은 굉장히 도발적이고 또 근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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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이상한 점들은 꽤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들 중 정대협에 합류하지 않은 이들도 꽤 된다. 일본의 위로금을 거부한 분들 만큼이나 수락한 분들 숫자가 있다. 전쟁 말기 10대 소녀까지 동원해 근로봉사시키는 정신대와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위안부가 헷갈려서 빚어졌던 오류들은 왜 제대로 교정되지 않을까. 정대협이 원하는 해결책은 더이상 법적책임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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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합리적 의심과 근거들이 반복해서 제시된다. 아울러, 일본인, 조선인과 대만인, 네덜란드인 등이 망라된 위안부조직 내에서 조선인 위안부가 갖는 특이한 위치를 강조하고 있다. 제국의 2등국민으로서 전쟁을 함께 수행하는 여성전투원으로, 조선인 위안부들이 개별적으로 겪었던 상황들의 개인차와 다면성을 풍부하게 드러내려 애쓴다. 일본군이 마냥 짐승같지만도 않았고, 위안부들이 마냥 지옥같은 삶만 산 것도 아니며, 그저 희생자인 것만도 아니고, 그들이 미워하는 게 꼭 일본인 한정인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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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박유하는 하나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민족주의라는 프레임으로 가둔 채 항일투쟁에 써먹고 있는 건 아닌가. 그들을 정말 지원하고자 한다면 각자 원하는 방식의 보상과 화해를 얻어내는 것으로도 충분할 텐데, 절반 가까운 분들의 목소리를 지워내며 끝내 비타협적으로 일본 천황의 무릎을 꿇리겠다는 분들만 남기는 건 무슨 속셈이 있는 건 아닌가. 사회운동의 지향이 주가 되고 현장의 사람들은 그저 동력이나 땔감이 되어버리는 본말전도의 현상, 그렇게 할머니들을 항일 민족주의의 전사로 활용하고 있는 건 아니냐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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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군데를 삭제하고 재출간할 정도로 굉장히 논쟁적인 책이지만, 딱히 합리적인 사유에서 벗어난 부분을 찾기도 어렵다. 평면적으로 받아들였던 조선인 위안부의 다면성을 섬세하게 짚어냈다. 사례 수집과 인용에 대한 검증이야 학자들의 몫이니 차치하기로 하고. 다만 아쉬운 건 두가지 정도, 그가 부정적으로 자주 쓰는 '진보좌파'라는 단어가 너무 뭉툭하고 한국엔 특히 부정확해보인단 점이다. 일본과 한국의 진보좌파세력을 한묶음으로 보는데, 반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기치로 한 이상 둘의 차이는 작지 않을 거다. 게다가 한국에서 민족주의 세력을 진보좌파라고 불러야 할지도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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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평택 미군 위안부'라는 호칭과 관련한 기사가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감히 위안부라는 이름을 윤락 여성에 쓸 수 없다'는 격한 반응이 있었다는데, 박유하의 말대로 군대 주변 기지촌 여성들 역시 국가주의와 가부장제 구조 하에서 빚어진 일이니만치 정부의 사죄와 보상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이 일본 나쁜놈, 한국 착한놈 따위 나이브한 관점에 비해 세상을 이해하기에도 도움이 될 뿐더러 사람을 훨씬 더 사람답게 만든다고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