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beloved #ToniMorrison #빌러비드 #토니모리슨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중고책으로 내놓으려다가 그나마도 매입불가로 분류되어 한번 읽어나볼까 하던 책이었다. 어느순간 자세를 고쳐앉아 이 만만치 않은 책을 마주했고, 묘사된 사건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마음과 언행에 대해 덜컥덜컥 멈추어가며 되씹어보게 되었다. 다 읽은 후에는 토니 모리슨이 대체 어떤 괴물인지, 이 책이 각 대형출판사들의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었는지까지 검색해보고 말았다. 역시 문학동네에서 이쁜 표지로 발간했더라만.
게다가 무려 흑인-아프리칸 아메리칸- 여성작가의 소설이다. 비주류의 비주류, 그네들이 펜을 쥐고 전달하려는 자신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닿기란 여전히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 않을까. 그저 내가 무지하고 게을러서일지도 모르지만. 미국 남북전쟁 이후 해방되기 전 노예의 삶을 경험한 african american들이 어떤 마음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는지,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를 껴안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이토록 치명적이고 섬세하게 다룬 글은 처음 읽은 것 같다. 말하자면 톰아저씨의 오두막, 그 정반대편에 위치하는 냉혹한 진실일 수 있겠다.
소설의 배경은 노예제가 한계에 다달아 누군가는 폐지를, 누군가는 인간의 얼굴을 한 노예제-착한 주인이 될 것-를 말하는 와중이다. 이전과 다름없이 노예들을 때가 되면 교미시키곤 부모자식도 없이 사방으로 팔아치우고, 도망이라도 갈라치면 불에 달군 낙인을 찍고 가혹한 매질이나 교수형, 화형으로 죽여버리곤 하는 거다. 차마 삶이라 부를 수도 없던 그것. 목숨을 걸고 자식들과 탈출해 작은 해방촌에 정착한 어미는 옛주인이 추격해 찾아오자 어린 자식의 목을 톱으로 긋는다. 그 beloved, 아이가 혼령으로 또 육체를 가진 무언가로 다시 그 마을에 돌아오면서 가족들을 포함한 옛 노예들의 마음은 제각기의 방향으로 내닫기 시작한다. 영혼을 불러놓고 얼르고 달래다가 꾸짖거나 싸우기도 하고 같이 울기도 하는, 그야말로 한바탕 푸닥거리와도 같은 감정의 대향연.
노예에게 사랑이 가능했을까. 자신의 피붙이에 대해, 타인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게 가능했을까. 좀더 미래지향적으로 질문을 바꿔본다면, 노예였던 이에게 사랑은 가능할까. 해방 직후 그들은 인류라는 종이 아주 오래전 사랑을 포함한 온갖 감정을 처음 경험하고 배울 때의 그 황홀함과 아득함을 압축적으로 겪어낸 건지도 모르겠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는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고, 이전 세대로부터 이어받은 노예로서의 트라우마와 상처들 때문에 더더욱 기괴한 문양을 그려내는 듯 하다. 그리고 사실은, 흑인 노예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삶과 사랑은 과거의 잔해와 상처들이 둥둥 뜬 채 뱅글뱅글 돌아가는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게 이 책이 남겨주는 이 진득한 느낌의 원천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