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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집의 기록 ㅣ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1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덕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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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집, 그리고 기록. 제목 그대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시베리아 유형소 생활을 하던 시기에 대한 자전적인 기록에 가까운 소설이다. 그의 소설이 으레 그렇듯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로 마구 꺾여드는 만연체의 문장이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인물들은 제각기의 철학을 펼쳐보이며 서로 합을 겨룬다.
소설은 유형소 생활을 하는 '나'는 그 안에서 맞닥뜨리는 인간군상들의 죄책감 혹은 양심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누가 봐도 천인공노할 패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와 혁명가처럼 정치적인 이슈로 갇힌 자, 혹은 악의를 갖고 반복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와 우발적이거나 비극적인 귀결로 범죄를 저지른 자. 이들의 '죄'를 죄이게 하는 것은 그들의 양심이나 자책감으로부터 기인해야 할 테지만, 대체 그건 일률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죄에 대한 규정이 이렇게 어렵다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 역시 가늠하기가 어렵기 그지없다. 처벌의 목적이 교화에 있는지 그저 이에는 이 식의 등가교환에 있는지부터 근본적인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수용소 생활처럼 '자유'와 '삶의 의미'를 빼앗는 것이 모두에게 동일한 수준의 처벌일 수 있는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게다가 수용소 생활이 제공하는 의식주 수준과 자유도, 여가활동에 만족하는 자/계급과 그렇지 못한 자/계급-아마도 당대 귀족들-간에는 그 효과가 천양지차일 수 밖에 없겠다.
요컨대 이 소설은 '죄란 무엇이고 어떻게 개개인에게 인식되는가', 또 '죄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탐색기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소설속 닳고 닳은 범죄자들이나 귀한 지식인 귀족들이 서로를 '순진한 아기'같다며 각자가 가진 죄와 형벌에 대한 인식을 낮추어 보지만, '그러나, 그러나'의 향연 속에서 그들의 생각들 이면의 속내들은 계속해서 번복되고 또 다채로워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