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 - 내가 머문 아이오와 일기 걸어본다 10
김유진 지음, 김란 그림 / 난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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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 #김유진 #필립글래스 #책스타그램

아이오와 국제 창작 프로그램이란 것에 참가한 한국의 작가 김유진, 서른세 나라의 소설가/시인들과 함께 근 세달의 시간을 보낸 기록. 언어에 민감한 이들이 영어라는 불편한 언어로 부대끼고 얼콰히 취해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어렸을 적 '광호의 일기'에 삘받아 매일같이 썼던 일기가 수십권, 이후 대학서 매천야록이니 윤치호일기를 읽은 걸 제하면 남의 일기를 읽는 건 참 오랫만이었다. 문득 새해를 맞은 김에 일기를 다시 써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불러일으켰던 매력적인 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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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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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oved #ToniMorrison #빌러비드 #토니모리슨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중고책으로 내놓으려다가 그나마도 매입불가로 분류되어 한번 읽어나볼까 하던 책이었다. 어느순간 자세를 고쳐앉아 이 만만치 않은 책을 마주했고, 묘사된 사건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마음과 언행에 대해 덜컥덜컥 멈추어가며 되씹어보게 되었다. 다 읽은 후에는 토니 모리슨이 대체 어떤 괴물인지, 이 책이 각 대형출판사들의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었는지까지 검색해보고 말았다. 역시 문학동네에서 이쁜 표지로 발간했더라만.

게다가 무려 흑인-아프리칸 아메리칸- 여성작가의 소설이다. 비주류의 비주류, 그네들이 펜을 쥐고 전달하려는 자신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닿기란 여전히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 않을까. 그저 내가 무지하고 게을러서일지도 모르지만. 미국 남북전쟁 이후 해방되기 전 노예의 삶을 경험한 african american들이 어떤 마음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는지,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를 껴안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이토록 치명적이고 섬세하게 다룬 글은 처음 읽은 것 같다. 말하자면 톰아저씨의 오두막, 그 정반대편에 위치하는 냉혹한 진실일 수 있겠다.

소설의 배경은 노예제가 한계에 다달아 누군가는 폐지를, 누군가는 인간의 얼굴을 한 노예제-착한 주인이 될 것-를 말하는 와중이다. 이전과 다름없이 노예들을 때가 되면 교미시키곤 부모자식도 없이 사방으로 팔아치우고, 도망이라도 갈라치면 불에 달군 낙인을 찍고 가혹한 매질이나 교수형, 화형으로 죽여버리곤 하는 거다. 차마 삶이라 부를 수도 없던 그것. 목숨을 걸고 자식들과 탈출해 작은 해방촌에 정착한 어미는 옛주인이 추격해 찾아오자 어린 자식의 목을 톱으로 긋는다. 그 beloved, 아이가 혼령으로 또 육체를 가진 무언가로 다시 그 마을에 돌아오면서 가족들을 포함한 옛 노예들의 마음은 제각기의 방향으로 내닫기 시작한다. 영혼을 불러놓고 얼르고 달래다가 꾸짖거나 싸우기도 하고 같이 울기도 하는, 그야말로 한바탕 푸닥거리와도 같은 감정의 대향연.

노예에게 사랑이 가능했을까. 자신의 피붙이에 대해, 타인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게 가능했을까. 좀더 미래지향적으로 질문을 바꿔본다면, 노예였던 이에게 사랑은 가능할까. 해방 직후 그들은 인류라는 종이 아주 오래전 사랑을 포함한 온갖 감정을 처음 경험하고 배울 때의 그 황홀함과 아득함을 압축적으로 겪어낸 건지도 모르겠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는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고, 이전 세대로부터 이어받은 노예로서의 트라우마와 상처들 때문에 더더욱 기괴한 문양을 그려내는 듯 하다. 그리고 사실은, 흑인 노예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삶과 사랑은 과거의 잔해와 상처들이 둥둥 뜬 채 뱅글뱅글 돌아가는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게 이 책이 남겨주는 이 진득한 느낌의 원천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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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 20주년 기념판
제임스 글릭 지음, 박래선 옮김, 김상욱 감수 / 동아시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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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세상만물을 꿰뚫는 하나의 원리가 있다는 생각, 황홀하고도 두려운 생각이다. 커피잔을 저을 때의 소용돌이, 하늘 위 떠가는 구름의 모양과 궤적, 수도꼭지에사 떨어지는 물방울의 템포, 심지어는 심장박동과 주식시장의 그래프까지 관통할 수 있는 하나의 원리가 있다는 이야기고, 그걸 알아낸 사람은 가히 우화등선, 도인이나 신선의 경지 아닐까. 그만큼 신비주의적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란 거겠다.

아마도 그래서일 거다. 주류과학에서 집요하게 내쳐왔던 카오스이론 그리고 그에 기반한 연구결과들.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개개 요소들의 움직임을 깨닫는 것으로 접근했던 분석적인 방법론은, ceteris paribus(다른 조건이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연구실 안의 극히 제약적인 환경에서 선형적인 예측에 집중해왔다. 1987년 출간된 이 책 '카오스'는 그러한 접근법이 놓치고 있는 매크로한 거대이론의 가능성을 아름답게 설파한다. 가능한 상수나 잔차항으로 무시된 부분들이 없도록 전체적인 큰 그림이 그려지도록.

소위 '문송'의 한명으로, 지금 현재 카오스 이론이 얼마나 과학계의 담론을 바꿔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원전의 안전도 측정과 인공강우와 지구온난화, 그런 이슈들에 여전히 선형적인 예측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은 갈 길이 멀구나, 싶을 뿐이다. 하루하루 세상만물이 데이터화되어 측정가능해지는 현시점에서 우리는 어디까지를 통제가능한 변수로 놓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 야심의 끝에서 그려질 세상의 한 장면을 미리 본 것같이 아득한 여행에서 막 돌아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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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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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북으로가는좁은길 #북스타그램 #부커 #콰이강의다리

이 소설을 뭐라면 좋을까. 전쟁의 잔혹함과 아름다움, 사랑의 아름다움과 잔혹함, 그렇게 전쟁과 사랑 사이에 낀 삶들이 제각기 마침표를 찍거나 점선을 그리듯 드문드문 이어지는 풍경을 그려낸 작품에 대해서. 전쟁의 피해자와 가해자와 그들의 가족까지, 모두가 어딘가 망가져버린 채 '발아래 진흙과 더러운 하늘 아래' 희망도 기쁨도 이해도 없이 허우적거리는 다정한 지옥도에 대해서.

2차대전중에 전쟁포로가 되어 시암(태국)의 밀림에서 철로를 건설중인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 포로가 되었으되 각자의 전투를 재정의하고 치뤄내는 이들을 지켜내려는 안간힘은 거듭하여 무위로 돌아간다. 시체가 쌓여간다. 천황의 부품임을 영광스러워하며 이들을 불가능한 작업 앞으로 몰아붙이던 일본군인들은 한참 후에야 시간에 희석된 죄책감을 대면하고, 그럼에도 아무일없이 살아간다.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그렇지만 인간의 인간다움은 그런 극한에서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죽음이 창궐한 곳에서 반벌거벗은 포로들은 진정 삶을 감각하고 자신의 인생을 더욱 생생하게 반추한다. 최소한의 존엄과 생존을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은 전쟁이 지나간 후의 지루하고 무의미한 일상과는 깊이와 무게가 다르다. 그건 가해자 그룹에 속함에도 그때 그곳에서 극한의 상황을 함께 공유했던 일본군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터. 인생은 한순간 불타올랐고, 이후의 삶은 반갑지 않은 덤이 되었다.

대규모 삶이 동원된 전쟁과는 별개로 개개의 인간들은 감정적인 전쟁을 제각기 벌이는 중이기도 하다. 두고 온 연인, 부모, 형제자매에 대해. 이리저리 꼬여버린 인연에 대해 깊숙이 숨겨진 울분과 목마름 같은 것들. 심지어 전쟁이 아니었다면 정혼자를 차버리고 새롭게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섬광같은 사랑에 대해서도. 그 눈먼 열정과 사랑은 그자체로도 눈부시지만 전쟁의 방해로 타이밍을 놓치고 허기가 더해져 일종의 잔혹담으로 화해버렸다. 그 상처와 쓰라림을 안고 살아가는 건 남은 자들의 불행이자 책무, 고슴도치가 되어 남은 삶을 함께 또 홀로 버텨낸다.

+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본 사람이라면 비교해가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모하고 광적인 임무를 강요하는 쪽과 이를 어떻게든 따라야하는 쪽의 큰 긴장, 그리고 그 무의미한 임무를 어떻게 소화시켜 내게 의미있게 만들어낼지에 대한 세세한 긴장, 그리고 군대라는 조직에서의 리더십을 둘러싼 견해와 행동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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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1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덕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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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집의기록 #도스토예프스키 #책스타그램

죽음의 집, 그리고 기록. 제목 그대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시베리아 유형소 생활을 하던 시기에 대한 자전적인 기록에 가까운 소설이다. 그의 소설이 으레 그렇듯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로 마구 꺾여드는 만연체의 문장이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인물들은 제각기의 철학을 펼쳐보이며 서로 합을 겨룬다.

소설은 유형소 생활을 하는 '나'는 그 안에서 맞닥뜨리는 인간군상들의 죄책감 혹은 양심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누가 봐도 천인공노할 패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와 혁명가처럼 정치적인 이슈로 갇힌 자, 혹은 악의를 갖고 반복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와 우발적이거나 비극적인 귀결로 범죄를 저지른 자. 이들의 '죄'를 죄이게 하는 것은 그들의 양심이나 자책감으로부터 기인해야 할 테지만, 대체 그건 일률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죄에 대한 규정이 이렇게 어렵다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 역시 가늠하기가 어렵기 그지없다. 처벌의 목적이 교화에 있는지 그저 이에는 이 식의 등가교환에 있는지부터 근본적인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수용소 생활처럼 '자유'와 '삶의 의미'를 빼앗는 것이 모두에게 동일한 수준의 처벌일 수 있는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게다가 수용소 생활이 제공하는 의식주 수준과 자유도, 여가활동에 만족하는 자/계급과 그렇지 못한 자/계급-아마도 당대 귀족들-간에는 그 효과가 천양지차일 수 밖에 없겠다.

요컨대 이 소설은 '죄란 무엇이고 어떻게 개개인에게 인식되는가', 또 '죄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탐색기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소설속 닳고 닳은 범죄자들이나 귀한 지식인 귀족들이 서로를 '순진한 아기'같다며 각자가 가진 죄와 형벌에 대한 인식을 낮추어 보지만, '그러나, 그러나'의 향연 속에서 그들의 생각들 이면의 속내들은 계속해서 번복되고 또 다채로워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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