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의 비밀 - 미각은 어떻게 인간 진화를 이끌어왔나
존 매퀘이드 지음, 이충호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각의비밀 #미각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미각은어떻게인간진화를이끌어왔나

어렸을 적 '탐구생활'에서 봤던 혀의 지도, 가짜란다. 이럴 수가. 단맛과 쓴맛과 짠맛을 감지하는 부위가 달리 나뉘어있는 것이 아니라 혀의 모든 부분에서 전부 감지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쓴 한약을 먹을 때 단맛만 감지한다는 혀끝으로 필사적으로 날름거리던 바보 짓은 그만해도 되겠다. 이쯤해도 충분히 책을 펼친 보람이 있다 싶은데 이게 끝이 아니다.

대부분의 맛 연구는 혀에만 집중하고 있었지만, 현대과학은 이제 몸 곳곳에서 쓴맛을 수용하고 감각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비록 의식에 떠오르지 않고 하는 일도 불분명해 아직은 일종의 그림자 미각계의 일부라고 뭉뚱그려져 있지만, 상상만으로도 뭔가 짜릿하고 신비롭다. 입속에서 폭발적으로 번진 맛의 감각이 소화기관의 어둠 속으로 점차 번져나가고, 거기서 몸속 모든 곳으로 뻗어나간다. 몸 전체가 거대한 혀나 입이 되어 세계에 반응하면서 격렬하게 메시지를 주고 받는 느낌이라니.

이러한 거대한 미각 기관으로 인간을 놓고 보면, 인간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을지에 대해서도 전혀 새로운 상상을 하게 된다. 원시인의 입과 코는 음식을 모든 경험의 촛점으로 만들었을 테고, 치명적이거나 위험할 수 있는 먹거리로부터 쓴맛을 인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을 거다. 어느순간 조리된 음식을 맛봄으로써 에너지 섭취를 쉽게 하는 한편 감칠맛이라는 새로운 맛도 감지하게 되었을 거다.

거대한 화학적 혼돈이라 할 수 있는 식사 한끼를 앞에 두고, 이 책을 읽은 우리는 이제 인류의 역사와 진화에 대해 황홀한 상상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력과 인간 -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2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권력과인간 #사도세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뒤주

뒤주에 갇혀죽은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의 죽음은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온 소재였다. 놀라운 사실 하나는 여태 그 죽음을 초래한 이유와 맥락에 대한 엄정한 학문적인 접근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 왜 죽었는지. 왜 하필 뒤주에서였는지. 한중록이나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1차 사료에 대한 검토조차 부실한 차원의 인식에 그쳐 있었단 지적이다. 와중에 대중역사서를 표방한 '사도세자의 고백'같은 책이 인기를 얻으며 그런 인식을 확대재생산한다는 게 저자의 우려다.

예술의 차원에서라면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양, 혹은 광인, 아니면 최근 영화에서처럼 과잉한 교육열의 피해자로 표현되던 문제될 게 없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가 이는 허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면, 예술이 이를 본성에 따라 아무리 비틀고 뒤집어보아도 역사 자체를 왜곡하여 전달한다는 비난은 부당하단 이야기다. 물론 유아인의 사도세자가 그 역사적 인물에 꽤나 높은 (근거없는) 호감과 공감을 부여한다거나, 누군가는 그런 예술작품을 실제 역사적 사실의 반영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뭐, 할 수 없다.

그 와중에 픽션이라 불리길 거부하거나 영악하게 팩션 따위 얼버무린 단어를 동원해 역사를 대중화한다는 책들의 범람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역사대중화는 대중의 역사적 관심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학문의 영역에서는 아무리 재미없고 대중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결론일지라도 그걸 끝까지 엄정하게 좇아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엄정한 방법론은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지의 전범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참신하고도 재미있는 해석을 이끌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데드 다루는 법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2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데드다루는법 #언데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곤혹스러운 책이다. 좀비물 중에서 이렇게 여리고 약하기만한 좀비를 다룬 작품이 일찍이 있었던가 싶다. 그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뒤집어 되씹어볼 만한 건더기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죽은 자가 되돌아왔을 때 이들은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할까, 법의 보호와 세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죽음은 치유가능한 일종의 질병으로 간주되어야 할까.

더 중요하게는, 개개인들이 애써 지우려했던 사랑하는 이가 썩어가는 몸뚱이를 질질 끌며 돌아왔을 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화가 가능하거나 감정 표현이 가능하거나, 그런 것들에 따라 극복해야할 정서적인 장벽의 높이는 제각각일 수 있겠지만 정말 돌아온 게 맞을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건 몸을 통해서일까, 아니면 기억과 감정을 통해서일까. 그리고 죽음은 이별과 상실인 걸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곤혹스러운 부분은 더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마음이 급해 뒷장을 서둘러 펼쳐 스토리를 확인하곤, 다시 돌아와 문장 하나하나를 되짚곤 했다. 그래야 조금 조바심을 떨구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싶을만큼 팽팽하고 긴장감넘치는 책이었다. 어디로 튈지 어떻게 번져나갈지 예기하기 힘든 책, 역시 '렛미인'의 작가다운 흡인력과 필력이 압도적인 느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친애하는적 #허지웅 #먼지웅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허지웅은 묘한 캐릭터다. 대중적이지 않은 이야기와 까칠한 캐릭터를 고수하면서도, 방송을 고루 넘나들며 이젠 다이슨을 쥐고 PPL을 하며 어머니와 가족들을 소환하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자연스러워지기에 이르렀다. 그런 그의 행적은 그가 좋아하는 형이라는 신해철과 비슷하다. 마냥 무겁고 진지한 줄 알았는데 이상한 케이블방송에서 시시덕대던 신해철. (트렁크에 교복을 싣고 다닌단 이야기까진 좋았는데.) 그의 에세이집들에서 나는 줄곧 그가 얼마나 컴플렉스와 상처가 많은 사람인지를 읽는다. 그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정치나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마찬가지다. 그저 여봐란 듯이 진열하고 위로를 구하는 매조히즘적인 방식이 아니라 '내가 딛은 바닥은 여기야'에서 뻗어나가는 단단한 결기와 나아지려는 의지에 악센트가 찍힌 방식이다. 그런 식으로 자기연민과 셀프-우쭈쭈와 꼰대화를 피해 스스로 커나가는 길을 찾는다.

이번 에세이집에 담긴 글 중, 드라마 '송곳'이 왜 드라마 '미생'이 되지 못했는지에 대한 글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기성 질서를 환타지화하고 그에 투항하도록 종용한 게 미생이라면, 송곳은 그저 비참하고 비정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양자는 달랐고, 결과 역시 다를 수 밖에 없단 게 그의 분석이었고 이는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리고 어쩌면 허지웅은 스스로를 송곳과 미생 중간쯤의 캐릭터상품으로 포지셔닝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으려는 줄타기. 그를 응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지 착취나 억압의 피해자가 된다고 해서, 혹은 그에 저항한다고 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심지어 남성들도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것이 트렌드라곤 하지만, 페미니즘이 무엇이며 어떤 문제의식과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인지 차분한 이야기를 나누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저자는 명료하게 말한다. 페미니즘이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라고. 남성을 여자 아래로 끌어내리고 여성을 남자 위에 세워올리는 게 아니다. 남성과 여성간의 젠더 전쟁을 벌이자는 건 더더욱 아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 내면화된 성차별주의를 바꿔나간다는 건 그저 '피해자 여성'이 '가해자 남성'에 분노한다는 것 이상을 말함이다.

외부의 적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선 내면의 적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스스로 바뀌기 위한 진단과 공부가 필요한 거다. 자신과 타인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어떻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지 하나하나 철저히 되짚어 보아야 한다. 여성 내부에 체화된 가부장제적인 감수성과 인종적, 계급적인 차이를 무시하는 태도를 유지하고서는 기득권에 편승중이라며 공격받는 남성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셈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종, 계급, 민족 등 스스로가 놓인 지형에 대한 성찰과 고민없는 일부 얼치기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기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수혜자들인 남성과 얼마나 닮았던가. 강자와 약자가 그대로 온존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로라면 페미니즘이란 단어는 개인의 출세와 자기만족을 위한 하나의 발판처럼 쓰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비단 페미니즘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분명한 건 이런 '미러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여성과 남성 모두, 페미니즘의 섬세하고 다채로운 풍경을 조심스레 따라가볼 필요가 있는 거다.

#모두를위한페미니즘 #페미니즘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